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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러버(5회)

김봉곤
2018년 11월 01일
  

 
“뭐야, 전화하면 바로 받을 줄 알았더니 완전 숙면했나봐?”
 
“응. 자기 잠들고 나서 한참 더 있다가 잤거든.”
 
“뭐 하느라?”
 
“……일어나자마자 너무 어려운 거 묻지 말아줄래?”
 
창준이 짐짓 화가 난 척하며 으흐흐 웃었다. 나는 기숙사 로비에서 이온음료 한 캔을 뽑아 중정으로 나갔다. 야작을 끝내고 돌아온 듯한 한 남자애가 벤치에 축 늘어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발에 닿지 않게끔 벤치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내 목소리 들으면 막 목이 메서 말도 못할 줄 알았는데 너 그냥 덜 깨서 잠긴 것 같으다? 좀 섭섭한데.”
 
“왜 목이 메?”
 
“응?”
 
“음?”
 
“몰라? 그냥 그럴 것 같았는데 아님 말구, 호호.”
 
“자기 목소리 듣는데도 나 눈 감겨. 근데 지금 몇시야?”
 
“열한시.”
 
“벌써?”
 
“이제 슬슬 일어나서 학교 가. 잠꿀잠꿀 돼지야.”
 
“알았어. 자기가 모닝콜 해준 거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은 좋다.”
 
“앞으로 맨날 해줄까?”
 
“좋지―”
 
그러고는 그런데……로 시작할,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은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나를 어떻게 자랑할 거야? 내가 그럴 데가 있어? 하면 누구한테 하고 싶은데?와 같은 말들. 나는 확인받고 싶은 마음으로 끓어넘쳤지만 지난밤의 쓸쓸함을 상기시키고 싶지는 않아 창준의 졸린 목소리에 그럼그럼, 나도 사랑해, 하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룸메이트가 떠나고 고요해진 방안으로 들어가 나는 다시 이불을 덮었다. 오늘도 처음인 듯 창준과의 첫 대화부터 나는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고, CJ Archive라고 이름 지은 폴더 안에 차곡차곡 모은 그가 보낸 음악 파일들도 중간중간 열어보았다. 딱 질색인 슬픈 남자들의 발라드 천지였지만 인상이 찌푸려지기보다는 웃음이 새나왔다. 창준이 음악을 보내고, 나 지금 이 노래 들으면서 공부하고 있어!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그 노래 들으면서 나랑 채팅하고 있어!라고 놀려준 흔적이 보였다. 자긴 가수 누구 좋아해?라는 창준의 질문에 난 일본 노래만 들어,라고 말하는 게 어쩐지 좀 부끄러워서 그냥 이것저것, 하며 왕비의 「Eyes On Me」와 오노 아이카가 영어로 부른 노래 몇개를 보내준 흔적도 보였다.
 
창준은 나 이제 씻어!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조금 더 잘지 아니면 밀린 편집 분석 과제를 해야 할지 눈을 감고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을 시늉할 뿐 내 마음은 이미 창준을 만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불쑥 그애가 다니는 학교 앞으로 찾아가 놀래줄까 생각도 했지만, 함께 수업을 들어가보는 건 어떨까, 상상 안해본 건 아니었지만 그럼 오늘은 내가 자기 있는 쪽으로 갈게, 이따 수업 끝나고 봐! 하는 문자를 남겨놓고서 나는 욕실로 향했다.
 
나는 굳이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친한 몇몇에게는 이야기를 해두었고, 혹은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들의 애인이 있느냐는 질문들에도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이 뭐람, 나는 흥을 내어 창준에 대한 애정을 늘어놓았는데 진심인지 인사치레인지 알 수 없지만 대개 같이 만나면 좋겠다! 내가 밥 사줄게, 같이 클럽 가자!와 같은 호의적인 태도였다. 사람들은 내 주변의 게이, 정도로만 신선해했을 뿐 호들갑을 떨거나 충격을 받는 이도 없었다. 나는 그게 당연한 일인 줄로만 알았고(물론 당연해야 한다), 서울은 역시 달라!라고 생각했지만 창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커밍아웃 경험을 듣고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커밍아웃의 경험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창준은 철저한 은둔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은둔에도 여러 유형이 있었지만, 창준은 두 세계를 분리하는 것은 물론, 게이들의 세계에서도 친구 같은 건 만들지 않아왔다고 했다. 나 역시 친구라고는 우연히 엮이게 된 학영밖에 없었지만, 필요를 느끼지 못했거나 그럴 시간을 내지 못했을 뿐 언제든 친구를 사귈 의향은 있었다. 창준은 말뿐인 걸까? 때로는 놀랍도록 대범해지고 놀랍도록 밝은 창준을 보면 그렇게 지내왔다는 것이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나와는 그러고 싶을 정도로 내가 좋은 걸까? 흐흐. 내가 그럴 만큼 좋은 걸까?라고 당연히 생각해보았고, 아마도 그게 맞았지만, 지금 내가 창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결국엔 함께 있어주는 것, 함께 시간을 쌓아가는 것, 그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어째서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는 신촌 거리 여기저기를 혼자 걸어다녔다.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홍익문고에서 잡지를 펼쳐보고, 코즈니에 들어가 그릇과 촛대를 매만지며 창준을 기다렸다. 때로는 정문을 지나 창준이 공부하는 도서관 주변을 한바퀴 빙 둘러보기도 했고, 약속 시간이 임박해질 때면 토다코사에 들어가 폴스미스스토리를 듬뿍 뿌리고 나오기도 했다. 백팩을 메고 백양로를 따라 내려오는 창준을 나는 길 건너에서도 알 수 있었고, 가지런한 이로 한껏 지어 보이는 웃음, 키스하거나 안아주지 못해 나는 가방을 건네받고, 그애가 제 가방끈을 잡는 듯 내 등에 손을 올리면 우리 오늘 또 만났네? 그러길 잘했어, 해가 지고 있어도 오늘 하루도 시작이구나, 생각하며 우리는 파란불로 바뀌는 것을 기다렸다 천천히 길을 건넜다.
 
*
 
때로는 내가 용기가 없어서 여전히 창준을 만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창준과 헤어진 이후 누군가를 만날 때면, 그 누군가가 좋아지기 시작할 때면,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그렇게 되어버리기 전 그만 끝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예외 없었고 자신 없었다. 처음에는 여전히 내가 창준을 좋아한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해 거부해왔다면, 어느순간 누군가를 어떻게 좋아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까마득하게 잊은 것만 같았고, 그 감정도 기억나지 않았고, 처음이라는 걸 또다시 어떻게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사랑의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내 모습은 희미해지다 못해 상상으로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만났다. 그래서 만난 건 아니지만 만났고, 연락을 다시금 주고받았고,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무엇이든 말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만났고, 헤어졌지만, 서로가 잘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만났다. 서로의 불구와 불감을 조언해주려 만났고, 새 사람과 잘되지 않아서 만났고, 잘되라고 만났다. 우리가 헤어져서 깨달은 단 하나가 있다면 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었는데 그러니까 만났고, 이도 저도 아닌 관계라고는 말할 수 없고, 관계라는 말은 우리 둘만 있을 때에는 필요가 없는 단어였고, 내가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더라도, 창준이 지금의 남자와 만나고 있더라도 우리는 만날 수밖에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피자집으로 변해버린 까페 앞에서 만났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나를 발견한 창준이 이어폰을 빼고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사람 존나 많네.”
 
“너가 여기로 오라고 한 거야. 나오기 귀찮다고.”
 
“사람 존나 많다고. 그냥 사람이 많다고 한 건데 왜 시비조야?”
 
“너 사람 많은 거 싫어하는 거 알고 있고, 너 지금 짜증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짜증나 있었던 적 없고, 그냥 사람 많다고 한 거야.”
 
“알았어.”
 
나는 대답하고 창준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창준은 짜증난 게 맞았지만 굳이 시시비비를 가리고 또 싸우고 화해하고 위로하고 기분을 전환하려 머리를 굴리는 것도 귀찮았다. 그냥 생략하고 기분만 전환하자! 내가 잘못한 게 맞다! 싶었는데 창준의 표정은 굳은 채 변하지 않았다.
 
“조용한 데 찾아서 좀 걸을래? 아니면 나 집에 갈까?”
 
“………”
 
“좀만 걸을까? 산울림 쪽으로 가면 그래도 좀 낫잖아. 여긴 사람 많아서 나도 싫어 준아.”
 
“음……”
 
“아님 바로 밥 먹으러 가자. 밥 먹고 나면 여기 사람들 없어질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말이 되는 소릴 하면 니가 알아 듣긴 해? 싸우자는 걸로 오해 안할 자신은 있어?”
 
“됐다.”
 
“뭐가 됐는데? 나 다시 가라고? 장난하냐?”
 
“이제 됐으니까 걍 밥 먹으러 가자고. 너 걷고 싶으면 걸어도 되고.”
 
창준이 화난 표정에서 풀 죽은 표정으로 바꾸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또 이럴 걸 왜,라고 생각하면서, 또 이렇네 생각하면서 나는 창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눈을 한번 흘기고는 싱긋 웃었다.
 
“오늘은 뭐 먹지?”
 
“뭐 먹지? 뭐 먹지?”
 
단풍 아래, 돗자리를 펴고 잔뜩 들어찬 사람들과 줄에 묶여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개 사이를 비집고 우리는 걸었다. 창준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면서도 화냈던 게 미안했는지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역시 미안한 게 맞는군, 이런 건 참 좋아, 생각하던 한순간 창준이 내 손을 톡톡 치더니 먼 곳을 가리키며 노래를 불렀다.
 
“문 리버, 와이더 댄 어 마일―”
 
“놀고 있다.”
 
“암 크로신 유 인 스타일 섬데이―”
 
“그거 이제 재미없거든.”
 
이라고 타박했지만 여전히 재미있긴 했다. 창준이 가리킨 손끝에는 월강 돼지국밥집이 있었고 마땅한 데가 없을 때엔, 머리 굴려 기분 내야 할 때가 아니라면 거기만 한 곳이 없었다. 아무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국밥을 파는 곳이었고 우리가 거기만큼 자주 찾은 식당은 없었으니까.
 


김봉곤
소설가. 소설집 「여름, 스피드」가 있다.
 


6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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