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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러버(6회)

김봉곤
2018년 11월 07일
  

 
우리는 신발을 벗는 가게 안쪽 자리에 앉아 돼지국밥을 주문했다. 주인아저씨가 끄응, 소리를 내며 허리를 굽혀 옹기를 내려놓았고, 나는 창준이 좋아하는 막김치를 접시에 덜어 앞으로 밀어놓았다. 연속동작인 듯 김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 창준을 보면서, 우린 여전히 합이 잘 맞는구나 내심 기뻐하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것을 날름 먹는 모습이 그렇게 또 얄미울 수가 없었다. 어째서 사랑받는 사람이 계속 사랑받는 것 같을까? 왜 그런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 같을까? 아이, 고소해, 밥도 없이 오물오물 김치를 씹어 넘기는 창준의 해맑은 얼굴에 덩달아 마음이 밝아지면서도 한숨이 났다.
 
“여긴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맛이 있어?”
 
“야, 좀 천천히 먹어. 누가 보면 숟가락 씹는 줄 알겠다.”
 
뜨거운 국물을 식히지도 않은 채 호들갑스럽게, 깨물듯 수저를 입안에 집어넣는 모습도 갑자기 못마땅했다. 나는 손을 들어 소주를 한병 주문했고, 음료수 잔에 천천히 차오르는 소주를 보다가 이마저도 몇번은 반복되어온 일이라는 사실을, 이다음에는 창준에게 애정표현을 요구할 것임을, 그러다 나 혼자 잔뜩 취해 연남동 한복판에서 치한처럼 굴 것임을, 창준은 나를 달래다 지쳐버리고 그런 그를 보다 엉엉 울게 될 것임을 예감하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오늘은 조금만 마셔야지! 다짐하고는 원샷을 하고 국물을 한모금 떠 마셨다.
 
“적당히 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창준은 빈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요즘 일은 안 바빠?”
 
“내가 안 바쁜 적 있었니? 근데 요즘 제일 바빠.”
 
“왜, 또 그 대표 형이 일 안해?”
 
“일한 적이나 있었으면 다행이게. 그냥 물어만 와. 물어만.”
 
“거기서 더 바빠지면 어떡하냐구.”
 
“몰라. 하는 데까지 해보고 나도 서른 중반 넘기 전엔 독립해야지.”
 
한참을 소주병을 노려보던 창준이 물컵을 비우고 소주를 따랐다. 
 
와중에 남자 둘을 만나려니 가랑이가 찢어지시겠지요, 하고 빈정대고 싶은 마음도 잠시, 지친 표정으로 술을 넘기는 창준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파왔다. 아까 예민하게 군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까? 나는 다시 술잔을 채우는 창준을 보면서 그저 애교를 부리며 응원할 수도 없고, 때려치워! 내가 먹여 살릴게! 말해줄 수도 없어 고개를 숙이고는 국밥만 이리저리 뒤적였다.
 
창준은 졸업과 동시에 외주 프로덕션에서 PD일을 시작했다. 연차가 꽤 쌓였지만 대표, 창준, 선배 PD 한명과 구성 작가 한명으로 굴러가는 작은 회사였기에 여전히 막내나 다름없었다. 한창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때 나를 처음 만났고, 제대로 공부가 될 리 만무했고, 졸업을 하고도 일년을 더 투자했지만 면접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동향 선배가 현장 경험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감언에 덜컥 일을 시작했고, 반년만 더, 아니 삼개월만 더 하던 것이 벌써 오 년이 지나버린 것이었다. 나 역시 창준이 그 일을 시작하는 데 반대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연인이 직장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사실이 좋았고, 만의 하나 기자라도 되어버리면 물론 그것은 너무 축하할 일이겠지만, 그건 나의 소망이기도 했지만,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들 테고, 창준은 피로할 테고, 소원해질 테고…… 그건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이 절대 아닐 거란 생각에 그에게 바람을 넣었었다.
 
결국 그애의 선택,이라고는 해도 지나치게 소박해진 창준의 삶에 내 책임은 분명 존재했다. 결국 다르게 바랐던 미래라는 게 고작 이런 모습이라는 것에, 이런 형태라는 것에 나는 얼마만큼의 부담감을 느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또 한번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이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을까?
 
가게문을 나서자 늦은 오후의 빛이 쏟아졌다. 길게 늘어지는 사람 그림자를 피해 길모퉁이에서 우리는 가게에서 뽑아 나온 커피를 마셨다. 오늘은 일찍 들어갈 테니 104고지 정거장까지만 같이 가자고 창준에게 말했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배도 꺼트릴 겸 간만에 우리 좀 걸을까?”
 
“괜찮겠어?”
 
“눈치 보는 척하기는 흐흐.”
 
“나야 너무 좋지.”
 
“술도 살짝 오르는 게 기분도 좋고, 오늘 날씨 너무 좋잖아.”
 
“그럼 우리 신촌 가서 와플 사먹을까?”
 
“천재냐?”
 
말하며 창준이 내 엉덩이를 토닥였다. 우리는 연희동 성당을 지나 천천히 신촌으로 걸어올라갔다. 단풍이 들고도 한참이 지난, 떨어지지 않았을 뿐인 낙엽들 아래에서 나는 창준의 손을 잡았다. 자동차가 우리 곁을 지나가긴 했지만, 인적이 없을 때엔 우리가 곧잘 하는 일이었다. 멀리 보이는 사람이 젊은이라면, 우리는 복불복 게임을 했는데 저 사람이 우리를 이상하게 본다면 창준의 승, 무심하게 지나간다면 나의 승리였다.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승률은 비슷할 것이었다.
 
학창 시절 창준이 살던 하숙집 앞을 지나며 우리는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굴다리 앞에서 와플을 두개 사 하나씩 나누어먹었고, 로터리 앞까지 걸어갔을 때 창준이 대실할까? 하고 물어왔다. 나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왼쪽으로 틀어 기차역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좀만 더 걸어보고.”
 
대실은 우리가 헤어지고 나서, 그러고도 다시 만나기 시작하면서 되찾은 이벤트였다. 창준과 동거한 오년, 그리고 마지막 이년 동안 우리는 단 한차례도 섹스를 하지 않았고,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헤어진 결정적인 이유라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우리가 함께 살지 않게 되면서 다시금 섹스를 할 수 있었고, 창준의 새로운 연인이 외박만은 허락하지 않았는지 대실을 하게 되었다. 그건 나로서도 좋았는데 긴 밤을 함께 보냈다면 우리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날들이 떠오를 터였고,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바를 정확히 공략하고 또 만족스러운 섹스를 끝냈을 때는 그와의 시작을 환기했기에 기쁜 마음이 될 수 있었다.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서로를 마주보고 누워 있을 때면, 그리고 그를 안을 때면 나는 창준을 안고 있는 것이었지만, 너무나 두터워진 시간을 끌어안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서글퍼지려 하기 직전, 우리는 샤워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고, 아쉬운 만큼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무거운 것은 마음이 아니라 창준의 몸무게여야 한다고! 되뇌면서.
 
신촌 기차역을 둘러 가면 다시금 창준을 집으로 데려다줄 수도 있었고, 원한다면 모텔촌으로 빠질 수도 있었다. 나는 간만의 소요가 즐거워 조금만 더 지금을 지연하고 싶었다. 저 멀리 기차역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도 오늘은 모텔로 가고 싶어지진 않았다. 정말로 하고 싶었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너도 나도 피곤하니까 집에 가자.”
 
“난 괜찮은데.”
 
“담에 걷지 말고 풀 충전 상태에서 바로 직행하자, 흐흐.”
 
“그럴까?”
 
“응응.”
 
“그럼 나 형이랑도 안하고 아껴놔야지.”
 
창준이 눈을 옆으로 피하는 척 음흉하고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면피용으로 둘러댄 직행 이야기에 이렇게 반응하자 나는 또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정말 그럴 거야?”
 
“그럼그럼.”
 
“좋았어. 내가 더 잘할게. 그리고, 오늘 자기가 나 이해해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고맙지.”
 
“어째 이야기가 이렇게 잘 흘러가?”
 
“이제 이것도 익숙하지 않아?”
 
“그럼, 이다음은 뭔데?”
 
“다시 또 싸우기.”
 
“그러기 싫은데요?”
 
“그럼 오늘 싸우고 헤어질까요?”
 
“그것도 싫어요.”
 
라고 말하고 나자, 창준을 안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창준의 손을 잡아끌어 보이는 건물 안으로 막무가내 들어갔다. 그러고는 창준을 안고, 입맞추고, 다시 끌어안고, 또다시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었다. 그때처럼.
 


김봉곤
소설가. 소설집 「여름, 스피드」가 있다.
 


7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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