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4

문은 문이라서 열린다

이원하
2018년 11월 14일

 

  

'키워드3' 다섯번째 키워드는 '남'과 '북'입니다.
올 한해 굵직한 일이 많았던 남북 이슈를 개별 시민의 시선으로 만나보려고 합니다.
여섯명의 필자가 글을 준비했습니다.
그 첫번째는 올해 데뷔한 이원하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댓글과 투고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투고하실 분은 이메일 munhak3@munhak3.com으로 A4 3장 이내의 완성된 글을 보내주세요.
한분을 선정해 연재의 마지막 지면과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한분께는 신간 『한반도 특강』을 선물로 드립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남북 화해국면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활발한 토론을 
기다립니다.


남-(섬)-북

 


 
버섯

평소 장을 보러 마트에 가면 주로 과자 판매대나 음료, 주류 코너를 어슬렁거리기 바빴다. 그러나 최근에 마트에 갔을 땐 가장 먼저 버섯 코너를 찾았다. 그날 나를 거기로 이끈 건 북한이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여 칠보산 송이버섯 2톤을 남한에 선물한 것. 평소 송이버섯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날엔 그냥 다시금 궁금했다. 그날은 마트에서 자연산 송이버섯을 구하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버섯에 관심을 가지게 된 날이었다.
 
이런 현상이 나에게만 벌어진 건 아니었다. SNS에서 ‘먹스타그램’을 검색해보았다. 먹스타그램은 자신이 먹은 음식 사진을 SNS에 공개적으로 올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상대로 자연산 송이버섯을 구해다 먹은 사람들이 많았다. 비싼 가격이 부담스러웠을 텐데도 사람들은 남북정상회담을 기념이라도 하듯 자연산 송이버섯을 구해다 먹었다. 평소 화려한 케이크나 커피, 또는 서양 음식 사진이 주를 이루던 공간에서 송이버섯의 출현은 매우 신선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선물은 이슈가 될 만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와 다투었을 때 사과를 하며 자라왔다. 물론 이 사과가 먹는 사과는 아니지만 실제로 화해하고 싶은 상대에게 빨간 사과를 손에 쥐어주면 슬쩍 화해가 되기도 한다. 아마도 먹을 것을 나누는 것에 큰 의미가 있기 때문 아닐까. 겨울의 문턱에서 가슴 한편이 따뜻해진 이유, 아마도 먹거리를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서울에 살다가 지금은 제주도에 산 지 2년 됐다. 현재 나의 많은 부분은 ‘섬 생활’에 맞춰져 있다. 말하자면 대체적으로 이런 것이다. 약간의 소외, 이런 소외에 대한 적응. 제주도 동쪽에 위치한 성산읍에 살고 있는데, 이 동네에선 신문을 구하기가 어렵다. 편의점에서도 신문을 판매하지 않는다. 내가 올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도 당선작이 실린 신문을 구할 수 없어서 결국 육지에 계신 부모님이 구해다주셔야 했다.
 
서울에 살 땐 거리상으로 북한이 아주 가까웠다. 미사일이 날아오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전쟁이라는 단어도 자주 들었다. 그런 소문들에 두려움을 느껴 전쟁대비용품(생존가방)을 알아본 적도 있었다. 헛소문에 불과했지만 그땐 그랬다.
 
제주에서는 남북에 관련된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많이 없는 편이다. 한번은 이런 생각도 했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제주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소식을 하루나 이틀 뒤에 접하지 않을까,라는. 그만큼 참 조용한 곳이다. 물론 TV를 틀면 남북문제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정보들의 위력이다. 육지에서는 출근길 지하철역에만 가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종이신문으로 그날의 이슈를 접할 수 있다. 제주에서는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아예 종이신문을 구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구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제주에서 발간되는 신문도 있긴 있다. 그리고 듣기로는 제주국제공항 근처의 번화가에서 중앙지를 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구해본 적은 없다. 나는 내가 가진 걸 최대한 이용해서 남북문제에 관심을 가지려 했고 그러기 위해서 자주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덕후

지난 4월 문재인정부의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SNS가 시끄러웠다. 20~30대 사람들이 남북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 관심의 주제는 ‘통일’이나 통일 이후 얻게 될 ‘경제성장’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신선하게도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발걸음이나 표정 같은 것들, 웃었다면 얼마나 환하게 웃었는가, 또한 리설주 여사의 작은 움직임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평소 정치인을 대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팬들이 아이돌 가수 보듯 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모습들이 마치 ‘덕후’ 같았다. 덕후는 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말 ‘오타쿠’를 우리말로 음차 한 ‘오덕후’의 줄임말이다.
 
중학생 시절,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기 위하여 방송국에 간 적이 있다. 한 가요 프로그램의 방청객으로 간 것이었는데, 특정 가수를 응원하기 위해서는 그 가수의 팬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색상의 풍선을 들고 있어야 했다. 나와 같은 색상의 풍선을 든 사람이 50~60명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모두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우리는 ‘하나’가 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때 느꼈던 묘한 감정. 그 비슷한 감정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다시 느꼈다. 성인이 되어 참석했던 몇번의 촛불집회에서도 느꼈다. 그때 그 시절 나와 ‘하나’가 되어보았다면, 당신도 이러한 감성에 익숙할 것이다.
 
최근 뉴스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북한 방문을 환영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았다. 일제히 한복을 입고 거리로 나와 부채를 흔드는 모습.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던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다. 놀라운 건 그 방송 이후 SNS에서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남한에 방문할 경우 한복을 입고 거리로 나가 부채를 흔들겠다고 한 것이었다. 나와 같은 시절을 살아온 세대만의 방식.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하나’가 될 줄 알고 기쁨을 표현한다. 신나는 가요를 들으며 풍선을 흔들던 세대. 우리는 언제든 신이 날 준비가 되어 있다.
 

조만간

한때는 88서울올림픽 이후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남북문제를 바라볼 때 눈빛이 아련해지지 않았었다. 소원이 통일이었던 적도 없었다. 실향민이셨던 외할아버지의 손에 자라며 자주 북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지만 그때마다 딴청을 피우기 바빴다. 이러한 무관심이 관심이 된 계기는 외할아버지께서 통일이라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신 채로 돌아가신 게 마음이 아파서였다. 외할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뤄드리고 싶다. 이런 마음의 돛에 힘을 실어주듯 현재 남북 사이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최근 ‘서울 답방’을 약속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제주도를 방문할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읽었다. 제주도에 김정은 국방위원장 외가의 묘가 있고 그의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생전 소원이 제주도 방문이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하고 있었다. 기사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면 기자가 북한 주민과 인터뷰를 하다가 제주도에 대해 물으니 “(제주도를) 알고 있으며, 꼭 가보고 싶다”라고 했단다. 감동이었다. 북한 사람들이 제주도를 생각해주고 있는 줄 여태껏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점점 휴전선이 무의미해지고 있는 것일까. 사실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다.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 ‘선’이 왜 필요한가. ‘문’만 있으면 된다. 문은 문이라서 열린다. 모두가 문 앞에 선다면 이 문은 조만간 열릴 것이다.
 

 
이원하
시인.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