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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러버(7회)

김봉곤
2018년 11월 14일
  

 
3. 冬心

 
우리는 서로의 첫 연인이었기에 처음으로 실연을 안겨준 사이이기도 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하나하나 기억할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첫들. 첫이 아니게 되어 좋았던 것들, 반복되는 것들, 익숙해진 것들과 질린 것들 속, 우리는 그다음이 궁금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서로가 아닌 것이 필요하고 궁금했다고. 그럼에도 우리는 처음으로 헤어져야 했기에 유려하지 못했고, 다른 방법을 몰랐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야, 연애는 얼굴 보고 하고, 섹스는 몸 보고 하는 거야.”
 
학영의 집이 있는 약수역으로 걸어가며 내가 창준과 섹스리스로 지낸다는 걸 고백했을 때, 학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덧붙였다.
 
“그래서 나도 애인이랑 연애만 해.”
 
하고 우리는 함께 울상이 되었다.
 
학영의 말을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일 순 없어도,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넌 그러고도 괜찮아?”
 
“나도 그 사람도 그쪽으론 또 좀 심드렁한 편이라서.”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어?”
 
“아니. 그땐 무슨 성중독자처럼 그 생각만 하고 그것만 했지.”
 
좀처럼 부끄러워하지 않는 학영이 눈을 아래로 깔고는 웃었다. 부끄러움과 더불어 애틋함이 묻어나는 미소였다.
 
“근데, 그럼 요즘 안하는 거에 대한 불만 같은 건 없고?”
 
“어 일단 나는 없는 것 같고, 아예 안하고 사는 건 또 아니니까.”
 
“뭐야. 난 아-예 안해.”
 
“오럴도?”
 
“가끔 분위기는 잡아보는데, 그러다가 키스도 하고 애무도 하지. 근데 오럴 좀 하다보면 그냥 까르르 웃어. 웃다가 나도 웃고 그렇게 끝나. 그래도 한때는 웃다가도 다시 분위기가 잡혔는데 이젠 뭐.”
 
“웃음에 지면 안 되는데.”
 
“그리고 이젠 분위기를 잡으려는 내가 웃겨. 아니 웃겼어. 그냥 다 바보 같아. 서로 야할 이유도 없고 의지도 없는 그런 상태.”
 
“그래서 싫어?”
 
“싫지. 싫은데 그런 거 진짜 싫은데, 그래도 좋은 게 문제지.”
 
“못하는 게 문제면 그냥 눈 딱 감고 번개 해.”
 
“안하고도 살아왔잖아. 이렇게 잘 살아 있잖아. 나는 창준이랑 하고 싶은 거야.”
 
“그럼 덮어.”
 
예의 단호한 얼굴로 돌아와 학영은 나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너한테 이야기했는데, 창준이한테 말 안하고 견딜 수 있을까?”
 
“그거 아니고는 괜찮잖아. 아무 문제 없잖아.”
 
“맞아. 근데, 내가 잘못 짚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딱 그거 하나 때문에 날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게 해. 진짜 그런 거 아니라는 거 알지만, 창준이가 말뿐만이 아니라 정말로 나 사랑하는 거 알지만, 그게 난 좀 많이 비참해.”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냥 과학이야 과학.”
 
“너 7차잖아. 수능 때 과탐 안 봤잖아. 과학에 그런 거 없어.”
 
“없다고 없냐?”
 
학영이 별안간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얕은 내리막의 끝에 고가도로가 보였다. 곧 헤어질 시간이었고, 우리는 웃으며 헤어지기 위해 실없는 농담을 또 주고받았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둣집을 발견하고는 나는 찐빵 세개와 고기만두 세개를 샀다. 겨울을 나만큼이나 견디기 힘들어하는 학영은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기 전까지는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했다. 농담이었지만 정말 그러고 싶은 추위였고, 1번 출구에 다다라 우리는 손을 흔들며 내년 여름에 만나! 하고 소리질렀다.
 
 
나는 학영과의 짧은 상담 이후 그애 말대로 그것을 덮었다. 
 
아침, 출근하는 창준을 배웅하면서 입맞춤을 했고, 내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밤이면 그애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함께 온게임넷을 봤다. 엄마가 된장찌개를 얼려 보내줄 때면 식육점에서 고기를 끊어와 함께 구워먹었고, 계절이 바뀔 때면 대발을 붙였다 떼고 러그를 깔았다 접어 들였다. 우리 사이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함께한 세월이 차곡차곡 더 쌓이며 더 많은 추억이,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역시, 똑똑한 학영의 말을 들어서 나쁠 것이 없다고 했고, 그때의 고민은 그때만의 고민으로 머무르는 것 같았다.
 
그 일이 있고도 다시 한번 같은 계절이 돌아왔을 때, 창준과 나는 신촌에서 겨울 외투를 사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거장에 서 있었다. 조금은 무리하다시피 해서 울 코트를 샀고, 백화점 1층에서 숨이 턱 막히도록 달콤하고 따뜻한 향이 나는 향수도 하나 샀다. 월동준비는 이제 시작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더는 필요한 게 없는 것처럼 들뜨고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몇분 뒤에 도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창준은 지도 앱을 켰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애의 핸드폰에 핑크색의 굵은 글씨로 ‘9’라고 적혀 있는 아이콘을 보았다.
 
데이팅앱은 점점 더 차별성을 두기 위해 레벨업을 하는 게임의 개념까지 도입했고, 요즘 핫하다는 그 앱의 존재를 모르지 않았다. 나 역시 구경삼아 나인몬스터를 깐 적이 있었으니까. 창준도 아마 그런 것일 테지,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쇼핑백을 한 손에 쥐고 선 채로 또 다리를 떨고 있었고,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창준의 눈을 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아 진짜 별거 아니야, 지금이라면 가능했을 생각도 그것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는 나조차 감당하기 힘들 만큼 가슴이 짓눌려왔다. 나는 창준에게 추궁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사실을 감당하는 대신이라고도 할 수 있었고 지금을 유지할 구실을 마련해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티브이를 보며 맥주를 두 캔씩 마셨고, 취기가 살짝 돌 때면 그러하듯 입을 맞추고 배와 아랫도리를 쓰다듬었다. 언제나 이쯤이면 그만두고 말았지만 나는 까르르 웃고, 간지럼에 몸을 비트는 창준에 휘말리지 않고 계속해서 진지하고도 다정한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썼다. 이미 샤워는 끝냈기에 원한다면, 가능하다면 섹스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였고 창준도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니면 조금은 원했는지 어느 순간 웃음기가 줄어들어 있었다. 나는 구급상자 안에 들어 있던 젤을 꺼내 소파에 올려두고 창준의 몸 이곳저곳을 애무했다. 우리 사이에 사라졌던 말들, 오늘 자기 진짜 섹시하다, 미치겠는데? 어쩜 이렇게 잘생겼지? 처음 봤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 같은 말들을 해가며, 창준 역시 너 지금 좀 변태 같아서 좋아, 나도 오늘은 못 참겠네, 같은 말을 해가며 우리는 한참을 껴안고 서로를 짓누르며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바로 누운 창준의 허벅지를 들어 올려 내 무릎에 얹었다. 창준은 베개를 찾아 허리 아래로 집어넣었고, 나는 젤을 짜 성기에 발랐다. 그러고는 창준에게 다시 한번 입을 맞추고 삽입하려는 순간, 완전하게 발기가 풀려버렸다. 젤이 차가워서 그런가? 말도 안되는 소리, 자기야 진짜 미안해 잠시만 기다려봐, 아 씨, 왜 이러지? 이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그러고도 한참을 기다리던 창준은 결국 다리를 걷어 모로 누워버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창준과 같은 방향으로 누워 그를 껴안고 손을 옮겨 배를 쓰다듬었다. 창준도 나도 가라앉은 지 오래였고 이런 내가, 우리가 비참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막막했다.
 
한바탕 해프닝이 스쳐지나간 것처럼, 스쳐지나가고도 한참이 지난 것처럼 우리는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고, 창준이 팔베개를 한 내 어깨를 풀고 손을 쥐고는 나긋하고도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곤아. 이제는, 진짜 너랑 친구 해야겠다.”
 


김봉곤
소설가. 소설집 「여름, 스피드」가 있다.
 


8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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