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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온의 밤(10회)

김초엽
2018년 12월 03일
  


발전소는 식물들의 발광포자로 가득 차 있었다. 희끄무레한 빛의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출입을 감지해서 켜져야 할 내부 조명은 아무 반응이 없었고, 어두운 복도에 기계들의 진동음만이 웅웅 댔다. 헬멧 마스크에 포자들이 달라붙었다. 필터로 미세하게 흘러들어오는 공기 중에는 탄내와 금속 냄새가 섞여 있었다. 복도를 둘러보던 세 사람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승희가 중얼거렸다.
 
“아까 그 포자들이 이렇게……”
 
보윤이 손전등을 복도 끝까지 비추었다.
 
“화면이 뿌옇게 보였던 이유를 알겠군요. 어딘가 문이 열려 있거나 벽이 파손되어 있을 겁니다.”
 
인근에서 발생한 화재의 연쇄작용으로 결국 발전소 내부까지 포자들이 유입된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문이 단단히 잠긴 개별 관리실들은 무사했다. 지원이 괜히 기침을 했다.
 
“지난 점검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당연히 안 그랬겠죠. 이렇게 된 건 고작해야 며칠 전일걸요.”
 
“아니, 그거 말고요.”
 
지원이 머쓱해하며 손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조명이 안 들어오잖습니까. 그때는 멀쩡했거든요.”
 
“………”
 
지원은 무언가 해명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보윤이 무신경하게 말했다.
 
“뭐, 로봇들이야 우리처럼 밝은 빛이 필요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보조건물을 지나 중앙제어실로 가는 동안 낮은 주파수의 소음이 점점 커졌다. 헬멧까지 쓰고 있으니 머리가 울리는 기분이었다. 발전소도 인간 작업자들을 고려해서 만든 공간이 아닌 것은 돔과 마찬가지인지, 복도는 좁았고 움직이기에 불편했다.
 
지원은 홀로그램으로 정비 목록을 확인했다. 정기점검을 시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파편 추락 사태로 어떤 문제가 새로 생겼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승희는 정비 목록을 흘끔 읽었지만 모두 약어로 되어 있어 알아볼 수 없었다.
 
그저께 발전소를 원격으로 점검했지만 무인 시스템에서 보고해온 문제는 대부분 원격 제어로 해결되었기에, 관리팀 직원들은 발전소 점검을 후순위로 미루어두었다고 한다.
 
“하필 이런 식으로 터질 줄 알았겠습니까.”
 
지원이 푸념하듯 말했다. 승희는 굳이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더 많았다면, 충분한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있었다면 분명 달랐을 테니까. 기계들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책임지지 않는데도, 우주 공간에서는 몇 안되는 사람들에게 너무 큰 책임이 부과된다.
 
보윤이 장갑으로 헬멧을 문질렀다. 포자들이 헬멧에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이것들 혹시 몸에 해롭지는 않나요?”
 
승희가 대답했다.
 
“마셔도 죽지는 않을걸요. 하지만 신경독성이 있기도 하고 흡입해서 좋을 건 없어요. 아마 여기서는 우리보다 기계들에게 더 위협적일 것 같지만요.”
 
지원이 그 말에 잔뜩 긴장하는 것이 보였다. 승희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설비들에는 집진장치가 있죠?”
 
“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확인이 필요해 보였다. 보윤이 다른 쪽 복도를 살피며 말했다.
 
“관리로봇들은 다 포자 제거에 동원된 것 같아요.”
 
로봇 정비사들이 이따금 분주하게 복도를 지나갔다. 대부분 커다란 분진 제거 장치를 들고 움직이는 중이었다.
 
보조건물을 다 지나오자 바닥이 뻥 뚫린 구역이 보였다. 발전소 코어가 위치한 곳이었다. 공중을 가로질러 다른 구역으로 향하는 통로를 지나야 했다. 지탱하는 기둥 하나 없는 통로는 아슬아슬했다. 난간은 허리를 약간만 숙여도 바로 아래로 떨어질 것처럼 낮았다.
 
코어 외벽에서 발산되는 붉은색 빛이 길 위를 비추었다. 하지만 덕분에 발광포자들이 빛을 분산하여 더 스산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아찔한 통로 위로 가장 먼저 발을 내디딘 건 지원이었다. 삐걱대는 금속 특유의 소리가 나자 승희는 속으로 움찔했지만, 막상 걸음을 옮기는 데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문제는 지원이 통로 끝에 도달했을 때 생겼다. 보윤이 소리쳤다.
 
“조심해요!”
 
승희가 지원을 홱 당겼다. 앞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지원의 길을 가로막았다. 지원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승희는 한발 물러나 피하면서 난간을 붙들었고, 다른 손으로 지원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충돌에 통로가 크게 진동하며 흔들다리처럼 움직였다.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한걸음 뒤에서 따라오던 보윤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저건 대체……”
 
승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세 사람의 앞을 빠르게 스쳐간 기계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커다란 로봇 정비사였다. 보통은 알아서 사람을 잘 피해 가는데, 아마도 감지 기능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화를 내봐야 알아듣지도 못할 테니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괜찮아요?”
 
보윤이 지원에게 물었다. 승희가 아니었다면 지원은 로봇에게 치여 통로 밑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지원은 정말 놀랐는지 충격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어났다. 지원은 승희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보윤이 위로인지 푸념인지 모를 말을 했다.
 
“가끔 이런 일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사람과 협업을 고려한 기계들이 아니어서.”
 
“어중간하게 사람을 끼워 일하면 더 비효율적이라고 하더군요.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네요.”
 
지원이 중얼거렸다.
 
로봇과 마주친 이후로 세 사람은 잔뜩 긴장하며 걸음을 옮겼다. 판단력을 흐리는 진동음과 기척 하나 없이 불쑥 나타나는 로봇들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덕분에 중앙제어실 앞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의 근육이 아플 정도였다. 승희는 복도의 포자들이 제어실 내부로 유입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문을 열었고, 마침 주위를 지나던 정비로봇이 집진 장치를 가동하는 동안 얼른 제어실을 밀폐했다.
 
중앙제어실은 발전소에서 유일하게 인간 작업자들을 위해 설계된 장소였다. 시스템에 직접 연결되어 통제되는 정비 로봇들에게는 제어실이 필요하지 않다. 한동안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채로 방치된 듯한 제어판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지원은 초조한 시선으로 상황판을 확인했다. 승희와 보윤은 그 복잡한 수치들이나 깜빡이는 다이오드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으므로, 제어실 한편에 홀로그램 송수신기를 설치하는 일을 맡았다. 승희는 송수신기를 설치하다 흘끗 제어판을 돌아보았다. 제어실에는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정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승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수신 기능을 켰다. 연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인상을 쓰며 상황판을 보는 지원은 무척 근심 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보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딜 가봐야 할지 좀 아시겠어요?”
 
“몇군데 짐작 가는 곳은 있는데…… 발전 설비보다는 송배전에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일단은 로봇들이 배전 장치를 점검하도록 돌렸어요. 이놈의 포자들이 무슨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겠네요.”
 
어느 설비이든 분진은 정밀한 작동에 문제를 일으킨다. 아마 설아가 지금 이 상황까지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돔 인공태양의 과열을 해결한 다음에는, 인공태양과 연결된 전력 계통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까지만 알아낸 것 같으니까. 어쨌든 문제의 원인을 연구단지 밖에서 찾으려고 한 설아의 판단은 결국 옳았다. 그러고 보면 행성 보어에서의 사고 역시 비슷했다. 운석 충돌 이후 가장 먼저 문제가 생긴 곳은 외부 벽 자체가 아니라 기압유지장치였다. 최악의 상황은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연쇄고리로부터 오는 것이다.
 
곧 달온 연구단지와 통신이 연결되었다. 승희가 입을 열었다.
 
“발전소 조사팀입니다. 이제 중앙 제어실에 도착했습니다. 한지원 팀장님이 살펴보는 중이지만, 발전소 정비 경험이 있는 분들은 모두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는 회의실 사람들에게 상황을 보고할 겸 홀로그램 송수신기를 켠 채로 직원들의 협조를 받으며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들려온 말은 승희가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아직 못 찾으셨어요?”
 
대뜸 끼어든 누군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승희는 당황했다. 홀로그램 화면 너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대신 카메라는 회의실 벽면의 그래프를 비추고 있었다.
 
승희의 표정이 굳었다. 인공태양의 온도는 계속해서 상승 중이었다.
 
“메시지를 몇번이나 보냈는데 이제 보시면 어떡해요. 과열이 안 멈춰요. 이대로면 큰일 나겠어요.”
 
“맞아요. 어떻게 좀……”
 
먼저 다급하게 소리친 사람은 효정 같았지만, 당황하는 목소리는 한둘이 아니었다. 지원이 고개를 돌려 화면 속 그래프를 확인했다. 지원이 지시했다.
 
“아냐. 아직은 괜찮아.”
 
“계속 과열되고 있다니까요.”
 
“돔 내부 냉각 장치를 최대로 가동해.”
 
유경이 끼어들었다.
 
“잠깐, 지금 내부 온도는……”
 
지원이 침착하게 설명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 상승 추세면 몇시간도 충분히 버틸 수 있어요. 설아씨가 태양 자체의 과열 장치 문제를 해결해놨으니까요. 터지지 않을 겁니다. 곧 문제의 원인을 찾을 테니, 연구단지 내부의 온도 제어 시스템으로도 괜찮아요.”
 
하지만 또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아뇨.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오가는 대화 속에 승희는 혼란스러웠다. 카메라가 순간 휙 돌더니 회의실의 사람들을 비추었다. 다들 무어라 말을 하거나 손으로 화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원이 아무리 대단한 전문가라고 해도 도저히 문제를 차분히 살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승희가 나섰다.
 
“여러분, 괜찮다니까요. 그보다는 지금 저희가 제어실을 살피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효정이 다급히 말했다.
 
“우리만 신경 써서 될 게 아니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카메라가 다시 움직였다. 화면이 빙글 돌았다. 이번에는 다른 화면이 보였다. 상승하는 온도 그래프가 있었고, 그 옆에 설아를 비추는 드론 화면이 있었다. 드론은 설아의 생체 신호를 모니터링하는 중이었다. 수치들은 작은 글자로 씌어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승희는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승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돔 구조물 내부는 온도 제어가 안된다고. 우리는 버틸 수 있어도 저 위에 있는 정비사는 못 버텨. 지금 당장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죽을 거야.”
 
“격벽 안쪽 물자함을 다시 찾아봐야 해요. 냉각제가 있어요.”
 
“겨우 냉각제로 해결될 게 아니고, 정 안되면 전체 전력을 끊어야 해요. 태양을 끄자고요. 연구단지의 필수 설비는 비상발전기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해도……”
 
“말도 안되는 소리 좀 하지 맙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요. 전력이 언제 복구될지 어떻게 아는데요?”
 
“하지만 위쪽 온도가 이대로는……”
 
화면 너머 사람들의 언성이 점차 높아지는 순간,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제어실이 조용해졌다. 승희는 멍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았다. 홀로그램 송수신기는 여전히 그래프와 모니터링 화면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목소리는 끊겨 있었다.
 
“자, 저쪽 상황은 알았으니까.”
 
보윤이 홀로그램 송수신기의 소리를 끈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할 일을 합시다. 빨리 움직여야겠네요.”
 
보윤이 말에 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승희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설아가 죽어가고 있다. 승희의 시선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지원이 경계하듯 승희를 보았다.
 
승희가 물었다.
 
“차단기 어딨어요?”
 
“승희씨.”
 
“빨리 말해요. 이 중 차단기가 뭐죠?”
 
“우리끼리 정할 일이 아니에요.”
 
“안 끄면 죽는다잖아요!”
 
“끄면 아무도 안 죽어요?”
 
승희는 말문이 막혔다.
 
“달온 전체를 구하러 온 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어요?”
 
지원이 약간 화가 난 표정으로 승희를 보았고, 승희는 무어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다시 머리가 식는 기분이었다.
 
설아를 구하고 싶다. 하지만 한 사람을 위해 다른 모든 이들을 고통에 처하게 할 수는 없다. 단순명료한 비교가 아니다. 저울에 오르는 것은 또다른 삶일 수도 있다…
 
혼자 돔으로 향했을 설아 역시 그런 건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승희는 힘이 풀렸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보윤이 한숨을 쉬며 끼어들었다.
 
“제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요. 여기, 통신 전환 좀 도와주세요.”
 
승희는 보윤에게 통신 장치를 건네받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보윤은 홀로그램 영상을 다채널 통신으로 전환했다. 화면에는 동시에 두 장소의 영상이 떠 있었다. 다른 화면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쳤다가 휙 사라졌다. 보윤은 곧 내부 마이크를 통신용으로만 전환했고, 헬멧 속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처음 오가는 대화로 보아 달온의 초기 개발에 함께 참여했던 사람에게 발전소 내부 설비에 관해 묻는 것 같았다. 이어지는 대화는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보윤은 다시 회의실로 연결되는 마이크를 켰다. 한번 차단되었던 회의실의 목소리들은 조금 진정했는지 조용했다. 보윤이 모두를 향해 설명했다.
 
“전력 전체를 차단하지 말고, 인공태양으로 향하는 전력만 강제로 끊는 방법이 있어요. 중앙 제어실에서는 개별 통제가 안되지만 물리적인 차단으로 가능할 겁니다.”
 
지원이 물었다.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어디로 가면 되죠?”
 
보윤이 홀로그램 송수신기의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그전에 합의해야 합니다. 태양을 일단 끄고 나면, 복구는 시간이 걸릴 거예요.”
 
보윤의 말에 승희는 무심코 “그건 당연히……” 중얼거렸지만, 다음 순간 보윤이 묻고 있는 대상이 승희가 아닌 회의실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설아를 구하기로 결정한다면 그건 모든 사람의 결정이 될 것이다.
 
홀로그램 송수신기가 제어실 한편에 거대한 홀로그램 영상을 방출했다. 인공태양의 그래프는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었다. 승희는 고개를 돌렸다.
 
조용해진 회의실의 정적을 깬 사람은 단장 송남주였다.
 
“태양을 껐을 때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이 무엇이지요?”
 
남주는 유경에게 묻고 있었다. 유경이 말했다.
 
“온실을 못 쓰게 되는 겁니다. 인공태양에 맞추어 재배 구획이 정해져 있는데, 온도가 불시에 엉망이 되니까요. 복구 기간이 길어져서 식용작물을 회수 못하면 뮤른 행성의 재난이 재현될 수 있고요. 연구작물 역시 망가질 겁니다.”
 
“식량 문제는 내가 어떻게든 해보지요.”
 
남주가 말했다. 유경은 못 미더운 듯 남주를 보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단장을 믿지 못한다는 말을 꺼내는 게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장님. 생태연구소는 괜찮겠습니까?”
 
“연구소는……”
 
유경은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승희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식량은 단장의 말대로 어떻게든 지구에서 끌어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년간의 시간이 들어간 연구작물들은 누가 책임져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유경은 달온에서 이 결정의 의미를 가장 잘 알고 있을 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시도해온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지켜보던 승희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물 먹은 천 뭉치가 목구멍을 틀어막는 기분이었다. 우주 어디에서도 통한 적 없던 그 말이 지금이라고 통할까.
 
짧은 침묵 끝에 유경이 입을 열었다.
 
“괜찮다고는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지금은.”
 
유경은 승희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었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요.”
 
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들린 목소리는 자리에 있던 모두가 또렷이 알아들었다.
 
“그럼, 태양을 끕시다.”
 
선언이 떨어지자 조사팀 세 사람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어실을 벗어나 보윤이 지시하는 장소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뛰어가는 중에 지원의 원격 제어 시스템에서 홀로그램 메시지가 떴다. 포자 유입 위치가 발견된 것 같았다. 지원은 정비 로봇들을 그 위치로 소집했고 외벽 복구를 우선순위로 설정했다. 보윤이 말했다.
 
“로봇 정비사 하나는 이쪽으로 돌려요.”
 
도착한 곳은 배전실이었다. 연구단지의 일부 설비들로 향하는 전력 계통이 관리되고 있었다. 로봇 정비사의 집진 장치를 가동한 채로 지원은 설비를 살폈다. 보윤이 말했다.
 
“접속함에 VT-C11이라고 씌어진 커넥터가 있을 거예요.”
 
전력 설비를 살펴보던 지원이 문제의 원인을 알아차렸다. 아마도 충돌로 인한 진동이 원인이 되어 커넥터의 접촉이 느슨해졌고, 그 사이로 분진이 유입되었던 것이다. 인공태양은 계속해서 재가동 신호를 받았고, 결국 신호 오류의 제어 실패로 태양이 과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원이 로봇 정비사에게 접근 명령을 내렸다. 접속함에는 분진으로 인한 아크가 튀고 있었다. 하지만 로봇은 움직이지 않았다. 로봇의 위험 감지 쎈서가 계속 깜빡였다. 지원이 당황한 듯 말했다.
 
“분진 때문인 것 같은데, 일단 아크를 해결해야……”
 
“그럴 시간 없어요.”
 
로봇을 승희가 옆으로 밀어냈다. “뭐하는 거예요?” 지원이 뭐라 소리치는 순간 승희는 손을 뻗었다.
 
빛이 튀었다. 짧은 비명이 들렸지만 승희가 낸 소리는 아니었다. 커넥터는 분리되었다. 승희는 얼른 접속함에서 손을 뗐다. 이제 된 걸까? 성공한 걸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승희는 저도 모르게 바깥쪽 창을 향해 몸을 홱 돌렸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연구단지 방향이 아니었다.
 
머리를 짚으며 메시지를 주시하던 지원이 말했다.
 
“이제 됐어요.”
 
그 말을 듣고서야 승희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알았다. 심장이 아주 빠르게 뛰어서 튀어나갈 것 같았다. 보윤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보윤은 승희의 손을 보고 있었다. 소매 아래로 의수가 까맣게 탄 자국이 있었다. 보윤은 정말로 놀란 얼굴이었다. 승희는 어색하게 말했다.
 
“네, 뭐… 괜찮아요.”
 
보윤이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승희를 살피는 동안, 승희는 긴장이 풀려 한숨을 내쉬었다. 이 팔을 이런 식으로 써먹을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미리 통각 신경을 꺼놓은 게 다행이었다. 
 
지원은 정비 로봇들이 외벽 복구를 마친 다음 집진 작업을 우선하도록 했다. 근시일 내에 제대로 정밀 점검을 해야 하겠지만, 어차피 본격적인 복구 작업은 세 사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원이 말했다.
 
“일단은 돌아갑시다.”
 
세 사람은 작업용 로봇 하나만을 챙겨 발전소를 빠져나왔다. 이제 레일까지는 다시 한참 걸어야 했다.
 
돌아가는 길은 더 멀게만 느껴졌다. 이미 아는 길이었고, 조명을 비출 필요도 없었다. 세 사람은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승희는 축 처진 채로 걸었다. 몸에서 긴장감이 빠져나가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때 지원이 무언가를 보고 탄식하듯 소리를 냈다. 바닥을 보고 걷던 승희의 어깨를 보윤이 톡톡 두드렸다. 승희는 고개를 들었다.
 
“저길 봐요.”
 
세 사람은 무어라 말을 맞춘 것도 없이 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이전에는 한번도 본 적 없던 풍경이었다.
 
언제나 환히 태양을 밝히던 연구단지는 이제 없었다. 승희는 지금 이곳이 정말로 어디와도 연결되지 않은 외딴 우주의 섬 같다고 생각했다. 행성 카나리스의 푸른 구체가 돔 표면에 연못 위 달처럼 맺혔다. 투명한 돔 안쪽에서 드문드문 새어나오는 흐릿한 빛들은 마치 지구에서 보던 어느 밤의 한 장면 같았다. 어쩌면 그보다도 더 미약한 빛들만이 저곳에 모여 있다. 흩뿌린 점과 같은 빛들. 태양을 끄는 것으로 겨우 그 존재를 드러내는 유약한 별들.
 
그러나 그 희미한 풍경에서 시선이 떠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달온에 완전한 밤이 찾아와 있었다.
 


김초엽
소설가.
 


10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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