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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러버(10회)

김봉곤
2018년 12월 05일
    

 
4. 春愁

 
창준의 짐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눈앞의 황량함과 적막함에 질려버릴 것만 같았다. 정리가 되지 않아 어지럽게 나뒹구는 옷가지, 책, 책상 아래의 선, 화장품과 식기 들. 창준이 있을 때 함께 버리기로 했던 스티로폼 매트와 대나무발은 둘둘 말린 채 작은방에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이것들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나면 얼마나 더 삭막해질지 나는 턱을 덜덜 떨며 거의 두려움마저 느꼈다. 창준보다 내가 먼저 귀가한 날과 다를 바 없겠지만 어쩐지 온 집안의 훈기가 쑥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보일러와 전기장판을 모두 켜고 가습기를 틀었다. TV와 인터넷 공유기는 창준이 모두 가져갔기에 아쉬운 대로 노트북을 열어 음악을 틀었지만 불은 켜고 싶지 않았다.
 
학영으로부터 답장이 와 있었지만 열어보지 않았다. 너무 쉽게 기분을 전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렇게 되고 말 내가 미리 싫어 나는 답장을 미루었다. 양말도 벗지 않은 채로 이부자리에 들어갔다. 보일러를 틀었는데도 이불을 덮지 않은 얼굴에는 냉기가 느껴지는 집, 창준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래 이렇게 추운 집이야, 나는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삼분도 지나지 않아 창준에게 문자를 했다.
 
―마트 가서 물건 좀 샀어?
 
―응 이것저것 사니까 삼십만원이나 나오네;;
 
―우리 처음 이사했을 때 이것저것 사니까 이백 나왔었다구.
 
―양호하네 ㅋㅋ 난 이제 정리 막 끝났다구.
 
―매트리스는 결국 안하기로 했어?
 
―응 잘 모르겠어서 그냥 이불만 샀어.
 
―바닥 안 차?
 
―응 바닥은 괜찮은데 천장이 높아서 그런가 좀 냉랭해.
 
―그럼 집에 있는 온풍기 챙겨 가. 너 리모컨이랑 태국에서 사왔던 술도 놔두고 갔어.
 
―됐어. 그 집 추위 지긋지긋한 거 내가 젤 잘 알거든? 
 
―그럼 보네이도 짝퉁이라도 하나 사든가. 그거 겨울에도 쓴대.
 
―그러든가 해야지. 술이랑 리모컨은 내가 날 잡아서 집으로 가든가 할게. 너 괜찮으면 합정에서 만나서 받아도 되고.
 
―그래그래. 아무것도 없지만 여기 가끔 와주라구……
 
―그래그래.
 
―난 아까 엄마랑 전화하다가 또 울었어. 넘 쓸쓸하고 헛헛하고 호호……
 
―쯧쯧. 집에 남자 들여라!
 
―한 삼일만 슬퍼해야지 ㅎㅎ……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켜고 창준이 더 두고 간 물건은 없는지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누가 써도 상관없을 디퓨저 하나와 거의 다 쓴 창준의 쉐이빙 크림이 다였다.
 
―일단 뭐 보이는 대로 난 모아둘게.
 
―알았어. 곧 보자.
 
―정리 잘하고.
 
창준과 문자를 하자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눈에 보이는 커다란 쓰레기를 한곳에 일단 모아두고, 뜨거운 물로 아주 오래 샤워를 했다. 아니겠지만, 아니었지만 창준 없이도 어쩌면 나는 잘 견딜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되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는 것이겠지만 언젠가는 창준만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어리석게 살지 말아야지, 무너지지 말아야지, 완전 잘 살아야지 온갖 다짐의 말을 내게 던지며 나는 정성스럽게 내 몸을 닦고 얼굴을 문질렀다.
 
긴 샤워를 끝내고 나왔을 때 학영으로부터 다섯통의 부재중 전화가 걸려와 있었다. 나는 물기가 마르지 않아 터치가 빗나가는 손으로 애써가며 학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도 없이 학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살하신 줄.”
 
“자살 못해. 난 이미 죽었으니까.”
 
“지랄.”
 
학영이 쇳소리를 내며 웃었다. 여느 때와 같은 학영의 독설에 나 역시 웃음이 새어나왔고, 아, 나 또 괜찮아지겠구나, 벌써? 아직 좀 이르지 않나, 생각했지만 학영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나는 웃고 말았다.
 
“야, 이 동네 얼어 뒤져. 서울 맞냐? 빨리 나와.”
 
“어딘데?”
 
“나 디엠씨역에서 내려서 수색역 쪽으로 걸어가는 길.”
 
“내가 어딨는 줄 알고.”
 
“응, 집이야.”
 
“헐, 천재야.”
 
“이런 날 그냥 혼자 있지 마. 안 내켜도 그냥 나 만나. 그게 나아.”
 
“응 진짜 안 내키는데 나갈게. 수색역까지 갈 필요 없고, 아직 이마트 안 지났으면 거기 들어가 있어. 거기 1층에 카페도 괜찮고.”
 
“알았어. 얼른 나와.”
 
“어 나 바로 튀어나간다!”
 
나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제대로 다 말리지도 않은 채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초저녁이 조금 지난 시간, 오래된 빌라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들, 대비되듯 맑고 캄캄한 하늘이 보였다. 너무 춥다,고 생각하면서도 코로 들이치는 차가운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변전소를 따라 내려가는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가볍고도 빨라졌다. 마트 1층 커피숍의 유리창 너머 학영이 보였다. 학영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턱을 아래로 잡아당기고는 짐짓 매서운 투로 눈을 치켜떴다. 웃기려는 것이었고 역시나 웃겼다. 나는 오른손바닥을 들어 보였고 학영은 검지를 들어 자신의 목을 그어 보였다. 오늘 같은 날이면 따뜻한 말 한마디나 가벼운 포옹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학영은 학영이었다.
 
 
*
 
 
“인정머리 없는 새끼.”
 
학영은 우체국 6호 박스를 품에 안고 내려가다 던지듯 용달차로 밀어넣었다. 
 
“그래도 니가 이사간다는데 창준이 그 새끼는 코빼기도 안 보이냐?”
 
“바쁘다잖아. 얼마 전에 이직한 거라 연차 쓰는 것도 눈치 보일 때야.”
 
“너도 존나 미련해. 그냥 반포장이나 포장 하지 뭔 돈을 아끼자고 이러니? 나 이사 끝나고 삼십만원어치 얻어먹을 건데 그게 더 손해야.”
 
“이사에 삼십만원 쓰느니 너 삼십만원어치 먹이는 게 나아.”
 
“말은.”
 
학영은 어깨를 주먹으로 때리는 시늉을 하다 다시금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포장이사를 선택하지 않은 건 그저께 엄마와 함께 짐을 싸다 이미 잔뜩 후회했다. 넓은 집이었지만 혼자 살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다시 입지 않을 옷을 몇포대를 버리고, 다시 읽지 않을 책 수백권을 내다버려도 짐은 현관 앞 계단에서 반층 아래에 이르기까지 가득 차 있었다. 학영은 야 이거 다 태워버려! 노끈으로 묶어놓은 책더미를 보며 신경질을 부렸지만, 비죽 튀어나온 장 꼭또의 책과 카즈오 이시구로의 책을 발견할 때면 이건 존나 명작, 하고 책등을 손톱으로 톡톡 쳤다.
 
빌라 앞에는 때 이른 목련이 한창이었다. 짐을 한차례 내려놓을 때면 나는 목장갑으로 땀을 닦으며 다시는 못 볼 것을 눈에 담아두듯 나무를 바라보았다. 창준이 집을 나가고도 이년을 더 이곳에서 살았다. 이주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더 오래 이곳에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주 기간이 고시된 플래카드가 붙었고,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왔는지 모르게 어느 날 안방에는 이주 명령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이라 생각했지만 퇴거일이 한달 남았을 때에도 나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창준과 다시 함께 사는 것을 고려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연인의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고 있었고,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가 그것만은 안 된다고 못박아두었다고 내게 말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마땅한 자리 없이, 나는 이곳저곳에서 시간강사를 하거나 글을 쓴다는 핑계로 여전히 엄마에게 조금의 용돈을 타 쓰고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사람구실을 하지 못하는 나를 타박했지만, 귀신처럼 돈이 떨어질 때면 전화를 해 반찬이랑 쌀을 보내줘? 물어왔고, 집에서 안 해먹는 거 알잖아, 하고 대답하면 엄마는 반찬값 대신이라며 몇십만원을 통장으로 입금해줬다.
 
파주로 이사하기로 결정한 건 순전히 우발적이었다. 학영과 함께 갔던 영상자료원이 근사했다는 것, 맞은편 아웃렛에서 기가 막히게 예쁜 에어맥스를 헐값에 샀던 기억, 어쨌든 서울에서 벗어나면 보증금과 월세 부담이 줄어들 것이란 생각에 나는 그곳에서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학영과 비좁은 용달차 앞자리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밭과 강, 저거 혹시 철새니? 날아오르며 장관을 이루는 새떼를 보다 약간 숙연해지기는 했다. 파주 시내에서도 훨씬 떨어진 곳이었지만, 터무니없이 싼 가격의 신축 빌라였다. 나는 기왕 멀어질 거라면 제대로 유배되기를 원했고, 그렇다면 그곳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입지였다. 수색의 집처럼 3층이란 것도 좋았다.
 
“야, 나 집에 어떻게 가?”
 
“여기도 사람 사는 데거든? 다 방법이 있어.”
 
“삼십만원이 뭐냐. 중국집도 없다 야.”
 
학영은 또다시 투덜대며 창 너머 망막한 풍경을 가리켰다. 하지만 서울보다 조금은 차가운 공기, 그곳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볕, 어쩌면,이 아니라 훨씬 따듯할 이 원룸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망막하긴 했지만, 노랑과 연두와 초록이 제각각 뒤섞여 펼쳐진 초지는 질리지도 않고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학영과 나는 짐을 집 안으로 들여만 놓고 손을 씻고 버스정류장으로 나섰다. 
 
“파주라 그런 거니? 아지랑이가 보여.”
 
“비서울 편견을 멈춰주세요.”
 
“아냐, 나 아지랑이 어른 되고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래?”
 
“넌 안 그래?”
 
“나도 그래.”
 
우리는 것 봐, 하는 시선을 주고받으며 빙긋 웃었다. 
 
사실은 좀 막막했다. 하지만 그 막막함이 싫은 감정이라기보다 설렘으로 다가왔고 그거면 나는 충분했다. 학영이 있고, 봄이 되었고, 눈앞에는 초록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갈 거고, 원한다면 더 멀리 갈 수도 있을 거였다. 군인이 그렇게 끝내준대, 학영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아지랑이 너머 자그만 버스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그거면 정말이지 충분했다.
 


김봉곤
소설가. 소설집 「여름, 스피드」가 있다.
 


11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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