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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온의 밤(마지막회)

김초엽
2018년 12월 17일
  


지구에서는 설아를 취재하고 싶어했다. 행정본부의 성간 전화가 수시로 울렸다. 절반 정도는 정비사 이설아를 인터뷰할 수 있는지 묻는 전화였고, 나머지 절반은 아무나 좋으니 이번 사건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달라는 요구였다. 알고 보니 지난 몇주간 달온에서 생긴 일들이 이미 그럴싸한 드라마로 포장되어 지구로 전해진 모양이었다. 외딴 위성의 돔시티 위로 쏟아진 우주쓰레기들, 이어진 정비사의 실종, 그리고 정비사를 구하기 위한 분투……
 
그런 방식으로 사건을 나열하는 건 분명 왜곡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다. 승희는 아주 먼 우주의 작은 위성에서 일어난 이 일들에 지구 거주자들이 약간이라도 고통이나 슬픔을 느낄지가 궁금했다. 누구도 죽지 않았고 누구도 끔찍한 결말에 다다르지 않았으니, 분명 실재했던 고통과 두려움은 그들의 관점에서는 없던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여전히 이곳의 사람들은 불면증에 시달리는데도.
 
얼마 뒤, 지구로 전해진 과장된 소식의 근원이 다름 아닌 개발본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달온 사람들은 모두 분개했다. 사건의 원흉을 제공한 당사자들이 정작 그 결과를 미담으로 꾸며서 개발사업 홍보에 써먹고 있는 셈이니 화가 날 만도 했다. 결국 단장 송남주가 당분간 외부 연락은 공식 채널을 통한 것 외에는 모두 무시해도 된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직원들은 그날부터 지구에서 오는 성간 전화를 냉정하게 끊어버렸다. 그후에도 조금씩 틈을 비집고 걸려오던 연락들은, 마침 중앙건물에 들른 유경이 전화를 대신 넘겨받아 무책임한 지구인들에 대한 비난과 훈계를 잔뜩 늘어놓는 것으로 비로소 끝이 났다.
 
설아는 무사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중독 증상은 빠르게 나았다. 다만 돔 구조물로 추락하며 생긴 부상은 좀더 입원치료가 필요했다. 여전히 면회시간은 아주 짧았고 직원들과 의료진이 들락날락하는 병실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고작해야 안부를 묻는 정도였지만, 영원히 잃을 수도 있었던 누군가가 다시 돌아와 저 안에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승희에게는 깊은 안도감을 주었다.
 
일주일 뒤에는 자유 면회가 허락되었다. 그날 유경과 승희에게 신문을 받은 설아는 즉시 상황을 알아차렸고, 메일함을 열어 지구에서 온 인터뷰 요청에 답장을 보냈다. 모두 거절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대처였다. 이미 설아를 내세운 기사가 많이 나갔다. 제목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위기에 빠진 달온을 구한 작은 용기’, ‘폭발의 순간, 태양으로 향한 영웅’. 설아는 페이지를 대충 넘기면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유경이 신문을 보며 혀를 찼다.
 
“반성에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아주 재밌나봐.”
 
그중에는 심지어 설아와 가상인터뷰를 진행한 매체도 있었다. 가상인터뷰라는 글씨는 아주 작게 적혀 있어서 무심코 읽었다가는 설아가 정말로 “그래요. 저는 이제 달온의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이곳은 또다른 저의 고향이에요.” 같은 말을 진짜로 한 것처럼 보였다. 승희는 그 대목을 읽어주며 언젠가의 로봇 디자인 3관왕 설아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설아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자 간호사가 다급히 승희와 유경을 병실 밖으로 내보냈다.
 
퇴원한 설아는 단 한곳의 정식 취재에 응했다. 예전에 활동했던 연결주의자 단체에서 소개받은 기자였다. 승희가 옆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들은 답변 내용을 요약하자면, 달온에서 일어난 끔찍한 재난의 결과 중 제대로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으니 터미널 건너 불구경 하지 말고 연결주의 단체에 후원이나 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유경의 맹비난과 설아의 냉담한 반응이 개발본부 측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는 했는지, 그로부터 몇주 뒤에는 재난 복구 물자와 함께 건축용 로봇들을 잔뜩 실은 수송선이 차례로 달온에 착륙했다.
 
지구에서 보내온 수백대의 로봇들이 돔 개축 작업을 시작했다. 로봇들의 선두지휘를 맡은 설아는 무척 즐거워 보였고, 며칠 전까지 입원해 있던 사람답지 않게 기운이 넘쳤다. 한편 발전소에서 무시무시한 로봇을 맞닥뜨렸던 지원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딘가 서글퍼 보이기도 하고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옆에서 함께 로봇들의 그림자를 올려다보던 승희가 말을 걸었다.
 
“설아 말은 엄청 잘 듣는 것 같죠?”
 
지원은 상심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거야, 쟤들은 신형이잖아요.”
 
돔 개축은 온실구역을 확장하는 것과 더불어 기존의 연구단지 구조보다 외부 탐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목적이 있었다. 개발본부에서는 어디까지나 돔을 원상 복구하라는 뜻으로 지원 로봇들을 보냈지만, 어느새 유경이 발 빠르게 돔 확장 계획서를 제출하고 남주가 승인해버린 것이다. 본부에서 최종 승인을 하기도 전에 승희가 보도자료를 써서 지구로 보냈다. 이제 달온 파견 연구진은 한정된 돔 내부를 벗어나서 드넓은 달온 생태계의 진정한 가능성을 발견해보겠다는, 꽤나 거창하고 과장된 내용이었다.
 
중앙건물 로비에서 만난 설아가 그 신문기사를 읽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승희는 조금 당황했다. 분명히 설아가 좋아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달온 생태계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건, 말마따나 달온을 더 지구처럼 만들겠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설아의 표정만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고,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쳤을 때 설아는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 뿐이었다.
 
“방금 마지막으로 검진받고 왔어. 건강하대.”
 
“잘됐네. 근데 그 기사는……”
 
“아, 이거? 왜?”
 
설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패드를 흘끗 보았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듯한 태도였다. 잠시 말문이 막힌 승희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설아가 다시 물었다.
 
“잠깐 같이 걸을래?”
 
이제 막 저녁이 오고 있었다. 돔 밖의 풍경이 서서히 어두워졌고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빛의 색채가 더 짙어졌다. 승희는 언젠가 설아와 기숙사 뒤편의 산책로를 걷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겨울이었고,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날선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그날 승희는 다시는 설아를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중앙건물에서 온실로, 그리고 바깥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이 있었다. 이번 돔 개축 작업을 하면서 새로 개방한 통로였다. 설아는 그 길을 따라 걷자고 했다. 승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주거지역을 지나 동쪽 온실로 들어서자 승희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어딘가 허탈하고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연구단지 전체를 뒤엎다시피 한 개축 작업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틀을 짜는 작업이 끝나가는 것에 불과했다. 원래 온실에 심겨 있던 작물들은 모두 뽑거나 다른 장소로 옮겨져 이곳에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았다. 온실은 아주 삭막하고 황폐했다. 격자형의 통로 사이에 먼지와 흙만 가득하고,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 로봇들만이 돌아다니며 토양 성분을 측정하고 사라졌다. 인공태양을 끄고 나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처음 생각한 방향과는 달랐지만 정말로 현실이 되었다.
 
승희가 중얼거렸다.
 
“무슨 화성에 온 것 같네.”
 
설아는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코끝을 찡그렸다.
 
“여기랑 비교하면 화성이 서운할걸. 화성은 이제 숲도 있고 바다도 있는데.”
 
“오퍼튜니티 혼자서 개척단을 기다리던 초기 화성 같아.”
 
승희가 구체적으로 정정했고, 설아가 만족한 듯 웃었다.
 
온실을 반쯤 지날 때까지 두 사람은 다시 조용해졌다. 설아가 깨어난 이후로 대화를 나눌 기회는 많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묻지는 않았다. 할 말은 많은데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렇게 황폐한 온실을 같이 걷고 있자니,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겠다고 승희는 생각했다. 승희가 물었다.
 
“왜 달온에 왔는지 물어도 돼?”
 
“그거, 내가 너한테 먼저 묻고 싶었던 건데.”
 
“나야 뭐 길게 설명 안해도 되니까.”
 
승희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잘 보이도록 들어올렸다. 발전소에서 약간 태워먹은 이후로 아직 의수를 덮을 피부를 이식하지 않아서 손등의 기계 부품이 드러나 있었다.
 
“유퍼스에서 사고를 당했어. 이렇게 되고 나니까 이상하게 장기 연구직으로는 데려가려는 곳이 없더라고. 지금 생각하니까, 그냥 느긋하게 버티다보면 어디라도 길이 생겼을 텐데 그때는 그냥 세상 끝난 줄 알았어.”
 
“아.”
 
설아는 승희가 가리키는 팔을 보며 잠시 울적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다시 평소처럼 돌아왔다. 어차피 사고로 다치는 사람쯤은 지겹게 보았을 것이다.
 
“나도 비슷했어.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설아는 시선을 내린 채로 천천히 걸었다. 승희는 흙을 밟지 않도록 조심했다. 통로 안쪽으로 들어온 흙이 자꾸 발끝에 채였다.
 
“졸업하기 전에 가족들이 보어 행성으로 이주한다는 소식을 들었어. 특별히 그곳이었던 이유는 없었을 거야. 아마 행성 이주민들에게 제공되는 의료 혜택을 받으려고 했겠지. 아픈 언니를 감당하기 힘들어 보였으니까. 나는 같이 가지 않겠다고 말했어. 그동안 모은 상금을 다 털어서 한달 뒤에 여행자 시술을 잡았거든. 사전검사에 칩 이식까지 다 마쳤고, 본 시술만 하면 끝이었지.”
 
승희가 묻지 않았던 편지들은 아마 그런 소식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가족들이 화를 냈어. 왜 그렇게까지 남처럼 대하냐고. 그 비난이 정당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어. 나는 원한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갈 수 있어야 했지. 나는 실력도 있고 자격도 있었어. 그런데 정작 시술 전날,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모두가, 한때 나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도 오직 살기 위해서 우주로 떠나는데, 나만 우주의 경계를 탐사하고 인류 지식의 최전선에 선다는 꿈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공허하게 느껴졌어.”
 
설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여행자 시술을 몇달 뒤로 보류하고 지구에 있는 우주설비 회사에 들어갔어. 멀리서라도 우주개발의 현실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엄청 충동적인 결정이었지. 그랬는데……”
 
“보어 사건이 그때 터졌구나.”
 
“맞아. 처음에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했는데. 알고 보니 아주 흔한 일이었어. 입사했을 때 보어 행성에 가족들이 살고 있다고 말했더니, 절대로 보어 관련 업무는 배치하지 않겠다는 상사의 말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왜 굳이 그렇게까지?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더 신경 쓸 텐데. 그런데 다 이유가 있던 거야. 혹시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되더라도 적어도 자기 손으로 버튼을 누르지는 말라는 배려였지.”
 
설아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가족들에게는 별일 없었어. 사고 다음날 괜찮다는 연락이 왔거든. 괜찮지 않은 건 나였어. 언젠가부터 나도 그들을 나와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로 여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 터미널 너머의 존재들. 그게 너무 끔찍했지. 한순간에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았어. 왜 우주를 탐사해야 하는 걸까? 승희 네가 예전에 그랬잖아.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수록 그 발견이 누군가에게 주는 기쁨보다는, 발견으로 인해 불행해지는 사람들만 더 늘어날 텐데. 그제야 네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연구직도 관뒀어. 체념한 마음으로 떠돌다보니 달온에 오게 됐지. 나중에 너도 여기서 일한다는 걸 알았고.”
 
“그럼 날 계속 피해다닌 거야?”
 
승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고, 설아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피해다니지는 않았지만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말 같았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승희는 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굳이 다른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다들 그렇게 여기에 오나봐.”
 
“그러게.”
 
승희는 흘끗 고개를 들어 설아를 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승희가 말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나도 그렇게 여기 왔지만, 달온이 싫지는 않았어. 오게 된 이유야 비참했는데 살다보니까 또 괜찮더라고.”
 
“맞아. 나도 그랬어.”
 
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지만, 좋은 사람들도 있는 곳이잖아. 그래서 어쩌면, 정말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 구하고 싶었던 거야. 나는 저 먼 우주의 어떤 사람들도 구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뭔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위기 상황인 걸 알았을 때, 그때는 아주 급한 일이니까 보고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혼자서 당장 가보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는데, 그런 대형사고가 될 줄은 몰랐어. 다들 나 하나를 구하려고 그 고생을 할 줄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넌 영웅 맞아. 사람들이 뭐라고 바보같은 수식어를 붙이든 그게 네가 진짜 대단한 일을 했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아.”
 
승희가 말했다.
 
“그때 네가 태양으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연구단지는 엉망이 됐겠지. 지금 이 정도 폐허는 비교도 안될 만큼. 돔은 파편에는 버텨도 폭발에는 못 버텼을 테니까.”
 
승희의 말에 설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키득거리며 웃었다.
 
“나, 그 말이 정말 듣기 싫었거든. 그런데 승희 네가 말하니까 엄청 다르게 들린다.”
 
“어떻게 들리는데?”
 
그렇게 묻고 나서 승희는 사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질문이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가 아니라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쪽이든 설아가 제대로 답을 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설아는 “글쎄.” 짧게 대답하고는 한동안 다시 말이 없었다.
 
온실의 끝에 도달할 무렵에는 통로가 흙으로 뒤덮여 엉망이었다. 신발 안쪽으로 자꾸 흙이 들어와 까끌한 느낌이 거슬렸다. 곧 연구단지 밖으로 향하는 문 앞이었다. 어느새 밖의 해가 완전히 졌고, 돔 표면이 인공태양의 빛을 반사해서 바깥 풍경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온실의 경계 앞에 멈춰서 잠시 머뭇거렸다.
 
설아가 온실 벽에 비친 둘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있잖아. 우리 다시 만나니까 진짜 좋다.”
 
“그러게.”
 
승희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약속했던 정원은 아니지만.”
 
설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여기도 일종의 정원이잖아.”
 
“여기가?”
 
일종의 정원이라니, 황당한 말이었다. 아직 고르지 못해 커다란 돌멩이가 섞인 흙바닥, 엉망으로 흩어진 건축 자재, 길 한쪽에 쌓여 있는 죽은 작물들, 푸른 잎이나 색색의 꽃들이라고는 아무리 둘러봐도 없는 이곳은 정원과는 가장 거리가 먼 장소였다. 폐허 같기만 한 온실을 로봇들이 커다란 진동음을 울리며 갈아엎고 있었다.
 
설아가 말했다.
 
“언젠가 정원이 되겠지.”
 
텅 빈 온실을 바라보는 설아는 어딘가 다른 풍경을 보는 눈빛이었다. 지금 이곳이 아니라 이후에 올 풍경을. 그래서 승희도 설아를 따라 온실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는 두 사람 다 여기에 없겠지만, 승희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정원이 될 이곳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
 
한달 뒤 승희는 달온 생태계의 변화에 관한 짧은 레터 논문을 써서 지구로 전송했다. 논문 끝에는 아주 신중한 관찰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어쩌면 달온은 천천히 사람들을 그들의 세계 안으로 받아들여줄지도 모른다. 논문에 대한 리뷰는 아주 긍정적이었다. 논문이 웹으로 발행되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특히 외계행성 연구소의 학자들은 질문이 열개씩 담긴 메일을 수십통이나 보내왔다.
 
“하노브로 가기로 했다며?”
 
유경이 물었다. 어제 승희가 수송선 예약을 잡으면서 제출한 서류를 본 모양이었다.
 
“아마도요.”
 
“거긴 그냥 특별한 거 없는 시골 동네 아냐?”
 
“일년 전까지는 그랬죠. 달온도 얼마전까지는 별거 없었잖아요. 최근에 하노브 미개발 지역에서 자꾸 새로운 현상이 발견되고 있대요. 어릴 때 잠깐 하노브에 살았는데,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달온에서의 계약기간이 끝난 승희에게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달온에 좀더 남아서 변화하는 생태계 연구를 이어 진행할 수도 있었고, 이직을 제안한 행성 연구소들 중 하나를 골라 떠날 수도 있었다. 승희는 절충안을 선택했다. 반년간 계약을 연장해서 달온에서의 연구를 이어하다가, 하노브 행 수송선에 오르기로 한 것이다.
 
“강승희 팀장이 가버리면 난 누구랑 철야하지? 같이 보고서 쓸 사람이 없네.”
 
“새로 뽑으시면 되잖아요.”
 
“다들 싫어할걸. 그 자리는.”
 
“저도 딱히 좋아한 건 아닌데……”
 
유경이 픽 웃었다. 연구보조직으로 들어온 승희에게 연구소의 중요한 업무들을 일부러 나서 맡긴 건 유경 방식대로의 배려였다는 걸 승희는 알고 있었다. 유경이 소장으로 남아 있는 한, 생태연구소는 결코 심심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내년에 하노브로 가게 됐다는 소식을 설아에게 전하자 설아는 부러워 죽겠다며 앓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정작 “그럼 같이 갈래?”라는 말에는 단호하게 거절이 튀어 나왔다.
 
“아니, 난 지구로 갈 거야.”
 
“지구는 왜?”
 
“여행자 시술을 하려고.”
 
또 어떤 결심이 섰는지 설아는 싱긋 웃고 있었다. 그날 저녁 승희는 설아가 연결주의자 단체에서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었다. 
 
“전에 활동하던 단체에서 합류를 요청했어. 경계를 감시하는 일을 맡아달래.”
 
“경계?”
 
“신생 개척지들을 그렇게 불러. 특히 소외된 개척지들을 돌아다니면서 달온과 같은 일이 또 생기지는 않는지 확인해달라는 거야. 전담 취재 팀을 꾸리는 중이래. 장기 탐사대를 운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엔지니어가 꼭 필요하기도 하고. 오래 고민했는데, 해보기로 했어.”
 
승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아에게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에 가든 그곳 사람들의 삶이 있겠지. 완벽하게 행복하지도 않고, 오직 불행하기만 하지도 않은. 그냥 그런 삶들이 우주 곳곳에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누구도 단절되지 않도록.”
 
설아는 말했다.
 
“그런게 정말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
 
수송선이 터미널에 대기하고 있다는 신호가 내려왔다. 밖에 서 있던 셔틀이 가동음을 내기 시작했다. 셔틀과 연결된 안쪽 게이트가 열렸다.
 
설아는 게이트 앞에 서 있었다.
 
작별 인사를 하러 멀리까지 나온 사람들이 차례로 설아에게 말을 건넸다. 보윤은 미겔을 데리고 설아를 배웅하러 나왔다. 혹시라도 미겔이 떠나는 설아에게 서운해하지 않을까 다들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정작 미겔은 아주 무덤덤한 태도로 설아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보윤이 옆에서 설명했다.
 
“미겔이 직접 도안을 그려 출력한 거예요.”
 
작은 스노우볼이었다. 유리 안에 달온 연구단지가 있었다. 눈 대신 빛의 입자들이 내렸다. 빛무리로 둘러 싸인 연구단지는 정말로 돔 안의 아늑한 세계처럼 보였다.
 
미겔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악수를 나눈 설아가 이제 승희의 앞에 멈췄다. 이미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동안 실컷 해서 더 나눌 인사도 없었지만, 그래도 예의상 잘가라는 말을 하려는데 설아가 먼저 물었다.
 
“하노브 다음에는 어디로 갈 거야?”
 
“그건 왜?”
 
“거기서 보자고.”
 
“하노브에는 안 올거야?”
 
“거긴 마지막에 갈 거야.”
 
설아의 말에 승희는 웃고 말았다. 전에도 하노브에 굳이 지금 가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엉뚱한 소리를 하더니. 설아에게 이미 처음의 계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승희도 알고 있었다. 그럼 승희에게는 어떨까. 다음은 또 어디가 될까.
 
문득 승희는 이제 떠도는 삶을 상상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걸 알았다.
 
“어디서든 만나겠지.”
 
설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게이트로 걸어갔다.
 
게이트 밖은 어두웠다. 사람들이 조명이 환히 켜진 셔틀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잠시 뒤, 셔틀이 커다란 소리와 함께 떠올라 하늘로 치솟았다. 승희는 공중에 흩뿌려지는 불빛의 조각들을 보았다. 바람이 불어와 주위의 풍경을 흩트려놓았고 굉음은 순식간에 멀어졌다. 셔틀이 점점 작아져서 마침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승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아득히 멀고 다시 만난다면 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미래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우주 어딘가에서 설아를 마주치는 어떤 한 시점의 한 순간을 승희는 상상할 수 있었다. 아주 멀리 있어도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언제라도 가능할 것이라는.
 
그때 선명한 빛이 밤을 가로질렀다. 별과 별 사이를 잇는 직선 같았다.
 


김초엽
소설가.
 


지금까지 「달온의 밤」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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