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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러버(마지막회)

김봉곤
2018년 12월 19일
      

 
다가오는 주말 나는 광화문에서 창준을 만났다. 새봄이 지나, 광장에는 나들이를 나온 관광객과 외국인 여행객, 집회에 참석한 이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는 듯 보여 일사불란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입고 있던 봄 코트를 벗어 오른팔에 걸고 횡단보도를 마저 건넜다. 창준은 오늘 정동길에서 미팅이 있다고 했다. 그동안 만남을 미뤄왔던 건 정말로 시간이 없었던 것일까? 착각이 들 만큼, 오늘 드디어 볼 수 있겠다, 빨리 보고 싶으니까 광화문으로 나와! 하는 들뜬 목소리에 나는 밥도 먹지 않고 서울로 달려왔다.
 
까페에 앉아 커피를 한모금 마시자 슬슬 배가 고파왔다. 이따 창준과 맛있게 밥을 먹으려면 요기를 하지 않는 편이 좋았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베이글을 하나 주문했다. 레몬크림치즈를 추가하며 나는 다시 한번 습관에 대해 생각했고 시트러스 계열의 향수만을 쓰는 창준을 떠올렸다. 한해 중 가장 가벼울 나날들. 창밖으로 가벼운 옷차림과 발걸음으로, 없는 듯 있는 날씨의 영향 아래 사람들이 삼삼오오 지나갔다. 한차례 비가 쏟아진 후였기에 마스크를 낀 사람도 없었다. 창준을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 동안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게 낯설었다. 때로는 너무 보고 싶어서, 때로는 쥐어짜서, 또 때로는 억지를 부려 없는 시간을 쪼개 우리는 만났고, 시간에 허덕이면서도 만나지 못해 불안해하고 안달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으리라 계산하며 나는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쪼개진 시간이 아닌 동안을 내가 견딜 수 있었다니, 견뎌졌다니, 거의 권태롭게 느껴지는 한가함이 나는 새삼스러웠다.
 
익숙한 옷, 나도 좋아했던 남색 봄 잠바를 입은 창준이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저 남자, 카페에 들어와서도 꼭 두리번거린 후에야 알은척을 하는 남자, 그건 그앨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어져오던 것이고 나는 오늘도 먼저 발견한 척 크게 손을 흔들어 창준의 이름을 불렀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창준, 두리번거리는 창준, 내게 걸어오는 창준, 내 손등을 긁는 창준. 오늘의 창준은 언제나 처음이기에, 나는 그애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여전히 사랑하는 걸 느끼고, 눈을 잘 맞추지 못하지만 창준의 미소 짓는 표정, 때로는 근엄하고 때로는 근사해 까무러칠 것 같은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다 안녕, 하고 가까스로 입을 떼었다.
 
“준아, 오늘 날도 좋은데 너 마실 거 사서 밖으로 나갈까?”
 
“좋―지.”
 
“올, 오늘따라 협조적인데? 그럼 레모네이드로 산다?”
 
“응응.”
 
카페 밖으로 나와 우리는 일단 인적이 덜한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창준이 투정을 부리거나 내 다리가 말썽을 부리지 않는 이상 나는 하염없이 걸을 생각이었다. 마침 걷기에도 너무 좋은 한낮의 봄이었고, 창준도 나도 해야 할 일이 더는 없는 주말이었다. 그럴 계획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걷는 종로의 모든 길이 우리가 함께한 지난날을 환기했다. 야심한 밤 헤어지고 싶지 않아 빙빙 돌았던 대사관 사잇길, 창준의 면접 준비를 위해 넥타이를 사러 갔던 소공동의 양장점, 학영과 함께 만났던 무교동의 술집과 싫다고 끝까지 빼는 것을 구슬려 함께 갔던 퍼레이드의 광장. 결국 그날 우리는 크게 싸웠지? 때로는 창준이 내가 잊고 있던 기억을 일러주기도 했다. 야, 우리 저 빌딩 안에서 뽀뽀하다가 간호사 비명 소리에 우리가 더 놀랐잖아. 저기선 입실 거부당했어. 나 대신 디카 수리 맡기러 갔던 데가 저긴데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게 잃어버렸잖아.
 
창준과 나는 이 거리를 걸으며 얼마든지 더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었다. 마침 우리가 함께 살던 집을 꾸미기 위해 젯소와 롤러를 샀던 페인트집이 저 멀리 보였다. 어쩌면 그 추억도 말해주고 싶어 보이지 않는 가게를 나 혼자 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청계천이 보이는 다리에서 잠시 우리는 섰고, 다시금 걷기 시작했을 때 나는 창준의 손을 잡았다. 나란히 걷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도무지 창준의 눈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나는 창준의 옆얼굴을, 나른한 미소를 띠고 앞을 바라보는 창준을 훔쳐보다, 이제는 말을 꺼내야지 입을 뗐는데 눈물이 먼저 흘러내렸다. 거리는 사람으로 가득했고, 물소리는 끊임없었다. 환한 대낮, 손을 잡는 데 집중한 탓일까? 창준은 한 블록을 더 걸어올라갈 때까지 내가 운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 역시 알아주기를 바라면서도 숨죽여 울었다. 한참을 더 걷다가 들어서는 족족 망해 나가는 가게 앞에서 창준이 나를 보고 우뚝 멈추어 섰다. 여기 또 망했어,라는 말을 해주려고 그랬을 거다.
 
창준은 내 얼굴을 보고는 미소를 거두고 앞에 섰다.
 
“너 울어?” 
 
“진짜 느리다 느려.”
 
자꾸만 꺼지는 고개를, 들고 싶지 않아 안간힘을 쓰는 내 얼굴을 창준은 양손으로 바루고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어?”
 
진심을 다해 걱정하는 눈, 다정한 목소리를 내는 입, 봄볕에 익어 살짝 달아오른 볼을 나는 눈물로 범벅이 된 뿌연 시야로도 알 수 있었다.
 
“준아.”
 
“응.”
 
“우리 십년 동안 정말 재밌었다 그지?”
 
“뭔 말을 그렇게 해.”
 
“재밌었지? 지금도 이러는 내가 좀 재밌긴 하지?”
 
“재밌었지 당연히 재밌었지. 근데 지금은 아니야. 이건 별로.”
 
창준은 애써 농담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심각한 표정을 없애진 못했다. 아무리 무딘 사람이어도, 무던한 사람이어도 처음 보는 이런 내 모습에 창준은 당황했다.
 
“준아. 너가 나한테 조금이라도 더 연인일 때 말할게.”
 
“야, 너 말 더 하지 마. 한달 동안 말하는 거 금지야. 진짜 한마디만 더 해.”
 
“준아, 내가 진짜 사랑하는 준아. 이제 그만 만나자. 나 이제 그러고 싶어.”
 
“갑자기 또 왜 그러는데?”
 
“갑자기고, 또 갑자기는 아니야. 그냥 오늘일 뿐이야.”
 
“그럼 오늘은 그냥 들어가고, 나중에 다시 얘기해. 내가 데려다줄게.”
 
“아니, 다시 이야기 안 해. 그 다시, 너도 나도 너무 많이 했잖아.”
 
“그러니까 한번만 더 하자고.”
 
“알잖아. 또 반복될 거. 그러니까, 우리 이제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이젠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이제 정말 그래야 해. 왜 그래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맞아. 그리고 너도 그걸 알아.”
 
내 말이 끝나자 창준은 더는 말을 잇지 않고 나를 끌어안았다. 더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는지, 나를 위로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앞으로도 알 수 없겠지만 나는 창준에게 안겨 한참을 울었다. 오래된 연인은 이별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창준과의 이별이 급작스러운 것이 아님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창준 역시 연락할게,라는 말 대신 연락해,라는 말로 마지막을 대신했다. 나는 좋은 사람 만나라는 말은 안 해도 돼서 좋네, 하고 웃어 보이고는 창준을 먼저 보냈다.
 
창준과 내가 처음으로 만나 마지막으로 헤어진 종로 한가운데 섰다. 자그마치 십년,이라고 혼자 되뇌었고 도로를 질러가는 버스가 그 소리를 공중에 흩어버렸다. 아직은 어떤 기분을 느낄 때는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창준에 대해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애를 처음 만난 여름날에 예감했던 것처럼 그애를, 그애의 얼굴을 잊지 못할 것이다. 올려다본 종각역의 나무는 아직 여린 잎만을 내어놓고 있었지만, 여전히 흐린 내 눈에는 울울 무성한 나무처럼 보였다. 창준을 처음 만난 여름 같은 날은 이내 또 올 것이었다.
 
*
 
지난날과 다르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만으로 나는 정말이지 먼 데까지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서울을, 나의 고향을 기점으로 잡는다면 정말로 멀리 온 게 분명했다. 단조로워 금세 질릴 것만 같았던 파주의 풍경은 서울 못지않게 시시각각으로 변했고, 하루가 다르게 집 앞 물푸레나무는 눈앞에서 부풀어갔다. 고맙게도, 괘씸하게도 창준에게는 단 한번의 연락도 없었다. 나는 상심하면서도 끝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창준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컸다. 나 역시 그애를 떠올릴 때마다 조금은 더 순한 마음이 되어갔다.
 
한동안 나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더듬더듬 앱을 찾아 깔았고, 때로는 만남게시판을 전전했으며, 새로운 문법을 배우고 또 새삼 달라진 매너―좀더 가벼워졌지만 밝아졌달까―에 놀라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기도했다. 거의 유일한 이유, 남자 때문에 나는 모아놓은 돈을 다 털어 중고차를 한대 샀고, 때로는 영종도로 때로는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양주로, 화성으로 남자를 만나러 갔다. 새로운 만남이 ‘이어진’다는 것은 결국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의미했고, 어떤 날은 한껏 들떴다가 어떤 날은 더 가라앉을 수 없을 만큼 울적해지곤 했다.
 
지난주 서로 관심이 있다는 마킹을 주고받은 한 남자에게 문득 다시금 대화를 걸었다. 어디 출장이라도 갔다 온 것일까? 그동안 전혀 보이지 않다 지난주에야 문득 반경 안으로 들어온 네살 연상의 남자였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답장을 막는 듯한 첫 대화를 무릅쓰고 나는 오늘 다시 한번 용기를 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간만에 다시 인사드려요. 가까운 곳에 계시네요?
 
―네 안녕하세요. 그러네요 ^^
 
―오늘 주말인데 뭐하고 계세요?
 
―일하고 있어요 ㅎㅎ
 
―아아, 토요일에도 일하시는구나. 저도 좀 있다가 특근하러 나가려고요.
 
―혹, 직장이 엘지?
 
―아뇨 ㅋㅋ 그냥 프리로 일하는데 주말에 일하는 건 특근이죠 뭐. 파주에 살아요.
 
―아 그러시구나 ^^ 좋네요, 가까운 곳에 멋진 분이 있다는 게.
 
―헉,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전 사실 형이 너무 멋지고 애인도 있는 것 같아서 연락하기 꺼려졌었는데 ㅎㅎ
 
―제가요? 아니에요! 근데 그동안 왜 제가 동생을 못 봤을까요?
 
―어플 깐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랬군요.
 
―넵 ㅎㅎ 이제라도 알게 되면 좋은 거죠. 실제로 만났을 때도 보고 좋으면 더 좋은 거고!
 
―맞아요~ 그럼 오늘 저녁에 둘 다 일 끝내고 차라도 한잔할래요?
 
―오오 진짜요? 좋다!!! 어디가 편해요? 저 고물이지만 차 있어서 형 있는 데로 가도 돼요. 운전 진짜 못하지만 ㅠㅠ
 
―그래줄 수 있어요? 그럼 제가 너무 미안하긴 한데.
 
―목숨을 걸어야죠.
 
―그럼, 여기서 우리 만날래요?
 
―넵! 제가 그리로 갈게요.
 
 
예상과 달리 단번에 만남까지 약속하게 되어 나는 뛸 듯이 기뻐졌다. 일하느라 멋지게 입지 못했다는 그의 말에 나 역시 잠옷과 다를 바 없는 행색으로 나갈 것이라 답장하면서도, 해 질 무렵,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꺼내어 입고, 있는 힘껏 멋을 부려 밖으로 나왔다. 트렁크에서 먼지떨이를 꺼내 뜨겁게 달아오른 자동차의 표면을 닦아내렸다. 창문을 열고 에어컨을 틀고서 나는 학영에게 오늘 만날 남자의 사진과 출격!!!이란 문자를 보냈다. 학영은 덩그러니 관상 굿~, 한마디를 던졌다. 붉게 저무는 하늘을 마주하며 나는 그가 있는 곳으로 힘껏 엑셀을 밟았다.
 
 
그럼, 우리 만날래요?
 
네, 제가 그리로 갈게요.
 
 
그건 사랑해, 하고 내가 처음으로 고백했던 날, 무심코 지워버린 그애와의 첫 대화의 끝이었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만나게 될 한 남자와 나눈 시작의 말이기도 했다. 
 
나는 그 두 문장을 끊임없이 되뇌면서 처음인 듯, 다시 한번 그를 만나러 간다. 
 


김봉곤
소설가. 소설집 「여름, 스피드」가 있다.
 


지금까지 「마이 리틀 러버」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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