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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골목

주민현
2019년 02월 06일
   
 

어두운 골목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나와 걷기 시작했지 
익선동의 작은 골목을

당신은 언젠가 돌반지를 사러 여기에 왔고
나는 오래전 연인과 이곳에 왔었지 

그때 우리는 서로를 몰랐고 
지금은 서로에게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걷고 있다

사랑은 있겠지, 쥐들이 사는 창문에도

골목 끝의 허름한 모텔과
취객이 갈기고 간 흔적을 모른 척하며

정말 사랑은 있겠지, 시궁창 같은 인생에도

속으로 생각하는 동안
당신은 속없이 큰 소리로 유행가를 부르고
누군가 비웃듯 웃으며 지나간다

서로 다른 영화를 보면서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지
어떤 사람들은 그걸 사랑이라 부른다

아이는 자신의 가장 싫은 부분을 닮는다
아이를 향해 윽박지르는 남자는
사실은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거다

휴일이란 아직
책의 남은 페이지들과도 같아

우린 다투어도 좋을
여든일곱 가지의 이유를 갖고 있지만
지금은 돌아가 낮잠을 자기로 한다
 


골목 [골:-] 「명사」

사람과 사람이, 꿈과 꿈이 돌고 도는 구멍.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는 문. 열리기는 하지만 닫을 수는 없는 문; 인생.



주민현

『한국경제신문』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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