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0

삶을 통해 만나는 일

한가선
2019년 02월 08일
  

 

  

'키워드3' 다섯번째 키워드는 '남'과 '북'입니다.
2018년부터 이어지는 굵직한 남북 이슈를 개별 시민의 시선으로 만나보려고 합니다.
네번째는 소수자연구를 하고 있는 한가선 님의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댓글과 투고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투고하실 분은 이메일 munhak3@munhak3.com으로 A4 3장 이내의 완성된 글을 보내주세요.
한분을 선정해 연재의 마지막 지면과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한분께는 신간 『한반도 특강』을 선물로 드립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남북 화해국면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활발한 토론을 
기다립니다.


남-(삶의 단위)-북

 


 
2018년은 한반도 전 지역에 평화와 통일의 기운을 가득 실어다 줬다. 겨울 평창올림픽 남북공동입장을 시작으로, 봄에는 남측예술단의 평양공연과 4‧27 판문점선언이 있었고, 여름과 가을에는 북미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평양공동선언이,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겨울에는 철도 연결을 위한 현지 공동조사 착수까지, 정말 한달이 멀다 하고 놀라운 이벤트들이 한해 내내 이어졌다.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평소에는 투표도 잘 안 하던 친구들이 먼저 통일, 북한, 남북교류를 대화의 소재로 삼는 모습을 보며, 2018년 한반도에 불어닥친 통일 열풍을 실감할 수 있었다. 때문에 온라인이나 방송 등에서 북한을 다루는 콘텐츠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뉴스, 영화, 웹드라마,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들이 서로 앞다투어 북한의 이모저모를 알리고 있었다.
 
여름 즈음이었던가, 통일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남북한 언어를 비교해주는 카드뉴스를 본 적이 있다. 남북의 소통과 교류를 위해 알아두면 좋은 ‘북한말’을 미리 배워보자는 취지였다. 볼펜(남)-원주필(북), 도넛-가락지빵 등의 단어들을 읽는 도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북한말’이라는 게 무엇일까? ‘북한’의 말, 그러니까 평안남북도, 황해남북도, 함경남북도, 자강도, 량강도, 강원도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북한’의 말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는 말이다. 
 
남한 사회에서 흔히들 ‘북한말’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 중 하나가 ‘얼음보숭이’일 것이다. 현재 통일부가 운영하는 북한정보포털(www.nkinfo.unikorea.go.kr)의 남북한 언어 비교 창에도 ‘아이스크림’을 검색하면 ‘얼음보숭이’가 뜬다. 원체 의심이 많은 나는 끊임없이 북한의 각지(평안도 평성, 안주, 황해도 해주, 강원도 김화, 량강도 혜산, 함경도 함흥, 청진, 회령, 온성)에서 온 친구들에게 ‘얼음보숭이’에 대해 물어봤는데, 다들 하나같이 콧방귀를 뀌며 누가 그런 단어를 쓰냐고 한다. ‘얼음보숭이’는 남한에서 잘못 알고 있는 대표적인 단어란다. 평안도에서 살다 온 친구들은 아이스크림을 ‘에스끼모’라고 부르고(이 또한 얼음보숭이 못지않게 충격적이지만), 함경도가 고향인 친구들은 ‘까까오’라고 칭한다 했다. 얼음보숭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단어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현재 북한의 20~30대 청년들이 쓰지 않는 용어인 건 확실해 보이며, ‘아이스크림’에 대응하는 단 하나의 ‘북한말’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남한의 전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오징어’라고 부르는 것을 북한의 전 지역에서 ‘낙지’라고 부르듯이, 남북의 차이라고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는 몇가지 어휘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들 외에는 ‘남한말’ ‘북한말’이라는 호칭보다도 경상도 말, 황해도 말, 충청도 말이라고 칭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누룽지를 전라도에서는 깜밥이라고 하고, 함경도에서는 가마치라고 하고, 평안도에서는 밥깡치‧박강지라고 하는 것처럼.
 
활동 특성상 주변에 북한 출신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탈북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러한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200개쯤 스쳐지나간다. 탈북민들 중 누구의 생각이요?!라고 되묻고 싶지만, 주로 “저마다 생각은 다 다르겠지만, 제 주변 친구들은 이러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정도로 답을 하는 편이다. 나의 생각과 옆집 사는 사람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듯이, 이북이 고향인 친구들도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기에 대답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북한에 대한 질문들은, 내가 쌘프란시스코에 잠깐 살았을 때 이따금씩 한국 친구들로부터 받았던 질문들(‘미국 사람들은 주로 뭐 먹어?’ ‘미국은 날씨 어때?’ 등)과 어쩐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서야 동부, 서부, 남부, 북부의 날씨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알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바라볼 때는 그저 ‘미국’일 뿐, 동부인지 서부인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색맹 테스트 종이를 멀리서 바라볼 때는 크게 두가지 색깔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단위들이 저마다 다른 색을 띠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떠한 존재를 멀리서 바라볼수록, 그 대상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단위들의 고유한 빛은 발견하기 어려운 듯하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북한은 남한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거리감은 세계 어느 국가들보다도 훨씬 멀게 느껴지니 말이다. ‘북한 사람’이나 ‘북한말’처럼 북한을 뭉뚱그려 생각하게 되는 것도 이 심리적 거리 때문일 것이다. 
 
황금돼지의 해를 맞이한 2019년에도 남북은 실질적인 교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정말 통일이 되는 것일까? 남과 북으로의 통행이 가능해지고, 우리 외할아버지 고향인 흥남에 정말 가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지만, 한편으로는 나라와 나라가 합쳐진다고 해서 주민들 간의 심리적 거리감이 쉽게 좁혀지지는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걱정도 된다. 어쩌면 사회‧문화적인 거리감 축소에 공을 들이지 않은 물리적 통합은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겠다.
 
한반도를 남북이 아닌 도별로 바라보다가, 또 그 안에 속한 도시들의 특색을 발견하고, 동네들, 주민들, 개개인들의 고유함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남과 북, 이분법적으로 갈라져 있는 이 공간이 실은 수없이 다원적이고 다층적인 삶의 모습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발견하는 것이 통일을 맞이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준비는 어쩌면 삶의 단위에서 서로를 만나는 일, 즉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한가선
성공회대 사회학과 석사에 재학 중이며, 소수자연구를 하고 있다. 남북청년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활동을 해왔으며, 현재는 ‘사사끼’라는 북한의 놀이문화를 통해 남북 출신 청년들이 함께 만나고 어울리는 활동의 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