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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에 대한 예의

최유안
2019년 02월 18일


음향실은 병동 지하 기계실 옆에 붙어 있었다. 나는 문을 조금 열고 안을 살폈다.

저기요.

내 키만 한 기계 앞에 쪼그려앉아 작업 중이던 관리인이 나를 알아보고 몸을 일으켰다.

얼마 전에도 말씀드렸는데요. 점심시간에 나오는 음악 좀 바꿔주시면 안 되는 거예요?

관리인은 상부에 이미 보고를 했다고, 운영회의를 거쳐야 하니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말하고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아니 도대체 왜 그 음악에 집착하시는 거예요?

비발디의 겨울은… 너무 밝잖아요.

남자는 넋 나간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이주일 전부터 점심 배급 때 들려주는 음악을 바꿔달라고 부탁해왔다. 처음에는 음악을 바꿔달라고만 했고, 나중에는 직접 곡을 다운로드해 가져가기까지 했다. 곡을 듣던 관리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돌던 밥맛도 떨어지겠네.

그 순간 나는 예의에 대해 생각했다. 그 말에 대답하듯 올라온 것이 모욕감이었기 때문이다. 겨울은 일부러 밝을 필요가 없고 무력한 희망은 주지 않느니만 못해요. 그 말을 결국 꺼낼 수 없었다. 병실에 살지 않는 그는 알아들을 리가 없다. 세상의 일은 말해야 하는 것과 말할 필요 없는 것으로 나뉘고, 그게 예의에 대한 말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는 내가 곧 병원을 나갈 걸 안다. 음악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
 
벽에 기대 앉은 명훈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침대 발치에 꽂힌 플라스틱 식탁을 당겨 올리며 물었다.

조금 먹어볼래?

명훈은 눈을 뜨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명훈을 조금 더 기다린 후 식판을 거두어 보호자용 간이침대로 옮겼다. 간이식탁을 밀어 내리는 내게 명훈이 물었다.
아빠는 좀 어떻대?

나는 명훈의 입에 내 귀를 가까이 댔다. 명훈의 입술에서 뭉그러져 나오는 단어들은 집중하지 않으면 이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삼촌은 잘 계시대. 숙모가 걱정하지 말고 네 몸이나 잘 챙기래.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빨리 일어나야 할 텐데. 그래야 아빠 간병을 좀 거들 텐데.

나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고 냉장고 문을 열어 식혜가 담긴 병을 꺼냈다. 이 판국에도 너는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거야? 혼자서는 화장실도 못 가면서, 이제 나 없이는 눕지도 앉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렇게 묻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식혜라도 좀 줄까?

나는 반도 차지 않은 식혜 잔과 수저를 들고 명훈의 발치에 앉았다. 마침 명훈이 실눈을 떴다.

우리 명훈이, 이렇게 잘생겼었네.

내가 말하자 명훈이 싱겁다는 듯 웃었다.

밥도 못 먹는 병신이 잘생겼기는.

아냐, 이렇게 멋진데.

나는 명훈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얼굴을 쓰다듬고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내 손은 명훈의 얼굴 앞에서 가까스로 멈췄다. 살갗이 너무 얇아 건드리면 멍이라도 들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명훈의 어깨 위에 조심히 얹었다. 부서질 것 같은 어깨뼈가 들썩였다. 나는 애꿎은 죽그릇 뚜껑만 두어번 열었다 덮었다. 나 혼자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주치의는 명훈의 배를 열어도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수술을 하는 척이라도 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말에 의사는 의료윤리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미 많이 늦었습니다. 명훈이 삼촌보다 빨리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은 나뿐이었다. 폐암 3기 환자인 아버지를 살려보겠다고 백방으로 나서서 좋다는 음식과 약초를 구하러 다닌 지 꼭 5개월 만이었다. 3차 병원에서는 내일 검진을 해보고 항암치료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주치의는 항암이 어려울 거라고 추측했다. 명훈의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되는 중이었고 그건 나보다 명훈이 더 잘 느낄 터였다.
 
-

명훈과 나는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는 같은 학원에 다녔고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주말을 났다. 명훈의 엄마인 나의 외숙모와 명훈의 고모인 나의 엄마는 우리에게 비슷한 옷을 입히고 같은 신발을 신겼다. 우리는 함께 등교했고 소풍을 가고 집안 행사를 치렀다. 그런 명훈이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고백한 날 나는 처음으로 엄청난 양의 술을 먹고 새벽을 넘겨 집에 들어갔다. 내가 외박을 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는데, 집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정적이 흘렀다. 서럽고 억울하고 머리가 부서질 듯 아팠다. 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명훈이 내 침대에 버젓이 누워 잠을 자는 걸 발견하고 그를 발로 걷어차며 울었다. 명훈은 나를 안으며 말했다.

야, 조용히 해. 내가 고모, 고모부한테 너 잡아온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랬단 말이야. 도대체 왜 전화기를 꺼놨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나는 그런 명훈의 품에 안겨 꺼억꺼억 울었다. 명훈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영지 어땠어? 예쁘지?

그 순간 폭발한 나는 명훈의 가슴을 손으로 퍽퍽 쳐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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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는 갑자기 옆 침대 남자가 피를 토하는 일이 있었다. 남자의 연인은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남자의 곁에서 어쩔 줄 몰라 울어댔다. 나는 스테이션에서 응급 콜을 받고 뛰어온 간호사와 의사 들이 분주하게 그를 치료실로 옮기는 동안 여자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조용히 복도에 함께 서 있었다. 그들은 우리만큼 어렸고 우리보다 조금 더 오래 병원 생활을 견디고 있었다. 가끔 여자의 부모가 병문안을 오기도 했다. 올 때마다 복도에서 큰소리가 났다. 여자의 엄마는 고아와 결혼을 한다고 속을 썩이더니 이제는 죽어가는 놈 간호나 하고 앉아 있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한 복도를 쓰는 병실 사람들이 여자의 사정을 거의 다 알 정도였다. 그런 날이면 여자는 밖에 나가 한참을 울고 들어왔다. 그래도 여자는 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요 며칠 사이 여자는 남자의 대소변을 치우기 시작했다. 처음에 남자는 여자가 기저귀를 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네가 지금 자존심 세울 때야?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남자의 바지를 벗기며 말했다. 입술을 앙다문 여자의 얼굴은 눈물인지 콧물인지로 범벅이었다. 어느날부턴가 남자는 여자가 바지를 벗겨도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지 않았다. 여자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남자의 몸을 모로 세우고 기저귀를 새것으로 갈고 남자의 아래를 닦으며 말했다. 변을 많이 봐야지. 응?

여자가 기저귀를 들고 병실을 빠져나가자 명훈이 내게 손짓했다. 나는 명훈의 입술에 귀를 가까이 댔다. 명훈이 입술 한쪽을 물고 단어마다 힘을 주어 말했다.

내가 저렇게 되면, 넌 그냥 집에 가.

나는 명훈을 바라봤다. 푸석한 눈 주위가 새까맸다.

복도에서 나는 여자와 마주쳤다. 여자의 얼굴에 가시지 않은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 민망했던 나는 힘들죠, 빈말을 했다. 쓸데없는 위로였다. 그런데 여자가 반색하며 내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사촌 병간호는 어디 쉬운가요.

나는 대답을 흐렸다. 나를 찾아온 기분과 시간이 그저 흘러가도록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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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은 명훈은 이를 악다물었다. 침대를 끌어 올려 반쯤 누워 있다가 고통이 줄어들면 그대로 잠드는 게 요 며칠 그의 일상이었다. 잠은 늘 옅었고 모르핀 없이는 반시간도 잠들지 못했다. 나도 늘 잠을 설쳤다. 내가 겨우 잠들면 명훈이 일어나 나를 불렀다. 주로 등을 눌러달라거나 다리를 주물러달라는 거였다. 어느날인가 내가 완전히 잠에 빠져버렸을 때 명훈은 협탁에 있던 자명종 시계를 팔로 쳐서 떨어뜨려버렸다. 시계에 머리를 맞고 일어난 나는 발작을 일으키며 신경질을 부리는 명훈의 옆으로 기듯 올라가서 그의 등을, 어깨를, 발을 주물렀다. 오십분쯤 주무르면 명훈은 그제야 겨우 아주 조금 더 잠을 잘 수 있었다. 통증이 없어지는 게 아니고 완화되는 것뿐이어서 금방 또 일어나 나를 찾았다. 자명종으로 머리를 맞은 후 나는 머리를 반대편 방향으로 두고 잠을 잤다. 잠이 들 때까지 나는 병실 밖을 내다보았다. 늦은 시간에 복도를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의료진이었다. 발은 바빴지만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평온했다. 누군가 끝이 보이거나, 끝을 봤거나, 끝날 예정이란 뜻이었다.

나는 침대로 올라가 명훈의 다리를 들어 내 무릎 위에 올렸다. 비에 젖은 통나무처럼 무겁고 축축한 다리가 내 종아리 위로 올라왔다. 나는 가운뎃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명훈의 발바닥에 대고 천천히 굴리기 시작했다.

왜 그냥 집에 가라고 했어?

내 질문에 명훈이 무슨 뜻이냐는 듯 나를 흘겨봤다.

기저귀 좀 채워주면 어때서.

나중에 서로 창피할 테니까.

대답 대신 나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유리창 바깥으로 오랜만에 희고 선명한 구름떼가 지나갔다. 나는 무언가에 홀리듯 말했다. 

마음에 묻어버리면 되지. 그 정도 비밀쯤 간직해서 나쁠 것 없잖아.

명훈이 천천히 잠들자 나는 마사지를 멈추고 명훈의 곁에 모로 누웠다. 마르고 검은 입술, 불쑥 튀어나온 광대뼈, 곳곳에 피어난 좁쌀처럼 작고 가는 하얀 곰팡이. 굵고 꼿꼿한 명훈의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옅은 잠을 자다 잠시 깨어났다. 쉬쉬. 오싹한 소리가 새어나오는 곳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명훈이 누운 자세 그대로 두 팔을 높이 치켜든 채 흔들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소리가 쉬쉬하고 들렸다. 나는 덮고 있던 홑이불을 입술까지 당겨 덮었다. 그는 이따금 흐느끼며 웃는 소리를 냈다. 머리카락이 뿌리부터 쭈뼛 섰다. 흐흐흐흐흐. 뭉개진 발음으로 그가 흥얼댔다. 옆 침대가 들썩였다. 여자가 이쪽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꼼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으로 그 곡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계절은 아름다우나 나는 눈물을 흘리네. 「시인의 사랑」의 첫 소절이었다.

언젠가 명훈이 내게 그 곡과 곡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슈만은 클라라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대.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슈만의 음악적 스승인 비크는 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았어. 슈만은 스승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지. 2년 동안이나. 공방이 한창이던 시기에 이 곡이 나왔어. 하인리히 하이네라는 시인이 쓴 「시인의 사랑」에 감명받은 슈만이 곡을 입혀서 세상에 내놨어.

무슨 내용인데? 

동생을 사랑하지만 거절당해. 

그 곡을 처음 듣던 날 휘몰아치는 비바람이 정신없이 창문을 때렸던 기억이 난다.

옆 병상이 다시 시끄러워졌다는 걸 알아챈 건 겨우 눈을 떼었을 때였다. 스테이션에서 총출동한 간호사들이 옆 침대를 둘러쌌다. 당직 중이던 의사가 환자의 상황을 보고 돌아섰다. 침대 아래쪽 벽에 서 있던 여자가 몸을 심하게 떨었다. 돌아선 의사에게 여자가 물었다.

어때요, 선생님.

정상입니다. 임종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자는 주저앉았다. 새파란 여자의 팔다리가 흐느적거렸다.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면서도 제 눈을 연인에게서 떼지 않았다.

정상이라니, 뭐가 정상이에요. 선생님,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이게 어떻게 정상이에요.

여자가 울면서 필사적으로 의사에게 매달렸다. 의사는 여자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안정시키더니 곧 병실을 빠져나갔다. 끝을 향한 정상적인 과정, 우리는 다 알지 않습니까. 병실 문 닫히는 소리가 꼭 그렇게 들렸다. 병상 위의 남자는 시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명훈을 올려다봤다. 모르핀을 주입한 지 40여분이 지났는데도 명훈은 아직 깊은 잠 속이었다.

벽에 기대 울던 여자는 명훈의 침대와 옆 침대 사이로 들어갔다. 여자의 움직임에 커튼이 들썩였다. 잠시 후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를 붙들고 우는 것 같았다. 그리고선 주문 외우듯 한참을 중얼거렸는데, 소리를 높인 한마디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사랑해.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그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처럼 낯설었고 나중에는 갑자기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어 숨을 쉬기 힘들었다. 눈물이 예고 없이 터져나왔다. 아닌데, 이건 아니야. 나는 여전히 누운 채 명훈을 바라봤다. 명훈의 눈꺼풀이 더디게 올라갔다. 그는 거의 눈을 뜨지 못했다. 잘해야 실눈금만큼 눈을 뜰 수 있을 뿐이었다. 명훈의 뼈를 덮은 옅고 검은 살가죽에 주름이 갔다. 살이 미어터질 듯 뻣뻣해졌다. 명훈은 우는 걸까.

여자는 남자를 조금 더 붙들고 있다가 간호사를 호출했다. 병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상태를 체크한 간호사가 의사를 불러오겠다며 나갔다. 홀로 남은 여자가 흐느낌을 멈추려고 자꾸만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곤 다시 그에게 마지막까지 들려주기로 작정한 듯, 경전의 구절을 외워 읊듯 남자의 귀에 대고 되풀이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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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도 어쩌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명훈이 아홉살이고 내가 여덟살이었을 때 우리는 처음 이불 속에서 손을 잡았다. 명훈이 먼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명훈의 손바닥을 내 손가락으로 간지럽혔다. 우리는 잡은 손을 내내 붙들고 있었다. 재수 시절에는 명훈이 저녁시간마다 내가 있던 독서실에 찾아왔다. 초밥을 싸들고 오거나 식당에 데려가 밥을 먹였다. 친구들이 남자친구냐고 종종 물었다. 그런 말을 듣는 날 명훈은 내 손을 잡고 독서실 앞까지 나를 데려다줬다. 명훈이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남산타워 레스토랑에 갔다. 명훈이 삼촌과 숙모에게 첫 월급으로 산 속옷을 선물하기도 전이었다. 우리는 십만원짜리 코스요리를 먹었다. 명훈은 앞으로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사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내가 집을 나와 독립했을 때 명훈은 제일 처음 찾아와 내 옷장에 제 옷을 개켜 넣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불투명한 커튼 안에서 우리는 일상을 공유했다.

비발디는… 너무 밝잖아.

그건 명훈의 말이었다. 두려워하는 건 명훈이었다. 그는 자신이 곧 병원을 나갈 거라고, 전과 다름없이 먹고 말하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의심치 않았다. 두려움을 느끼는 건 생존을 증명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에게 그것은 미래이자 내일이었다. 내가 할 일은 그의 희망을 온전히 지켜주는 것뿐이었다. 나는 명훈의 손등 위에 내 손을 살포시 포갰다. 피거품이 가라앉은 딱지로 검붉게 물든 그의 입술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그사이 옆 침대가 나갔고 나는 병상이 비워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눈을 뜨지 않았다. 형식적인 마지막 인사라면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병실이 다시 고요에 휩싸였다. 나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고 명훈 쪽으로 스피커를 돌려세웠다.

계절은 아름다우나 나는 눈물을 흘리네. 그저 소년이 소녀를 사랑할 뿐인 것을. 그대가 나를 떠나는 꿈을 꾸어 나는 잠에서 깨어나서도 오랫동안 슬피 울었네.

명훈의 반쯤 감긴 눈이 오랫동안 그대로 멈추었다. 나는 명훈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명훈의 눈꺼풀이 완전히 감길 때까지 나는 그의 손등에 놓인 내 손을 거두지 않았다. 
 


최유안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어등이어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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