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3

실종

정성은
2019년 02월 18일


죽으려면 태어나야 한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세상이 떠났다가 돌아온다
어제 썼다고 생각한 일기가 다시 보니 쓰여 있지 않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거울을 본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보고 있었다
나와 내가 눈을 마주칠 때마다 거울은 앞에 있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니.
 
지금 걷고 있는 동네가 셀 수 없이 지워진다
저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다 지나치며 생략한다
가게 안이 들여다보인다 두 눈은 가게 안을 본다
전깃줄은 항상 머리 위에 늘어져 있었다
신발 밑창은 내 발에 짓밟힐 때 땅을 밟는다
 
밥을 먹을 때 내가 못 먹게 될 날은 생각하지 않는다
저녁밥을 먹으며 본 뉴스에서는 굶어 죽을 사람들을 여덟 자리 숫자로 이야기했었다
안타깝다, 그리고 생략한다.
 
갈라진다.
나는 나로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나는 내가 나인지 모르겠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내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
내 맨눈으로 볼 수 없다니 
나는 볼 수 있으므로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을 지운다
 
어제는 장례식에 다녀왔다
나는 내가 어떤 얼굴인지 알 수 없어서 나를 모르는 채 다녀왔다
남들처럼 신발을 벗고 남들처럼 고개를 숙였다 모인 모두 나를 몰랐다
집으로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사 온 소금으로 어깨 위를 씻었다
보이지도 않는 걸 씻고 있잖아
혼자 낄낄대다가 현관문을 열었다
어제도 오늘도 지금처럼
 
어둡고 적막한.
눈을 감으면 어둠조차 더 어두워진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눈앞이 덜 어두워진다
애썼구나
 
더는 죽고 싶은 맘이 들지 않는다.
신분증 없이도 사람들은 내가 나라는 걸 믿어줄까
옷 주머니를 비운다 어깨에 멘 가방을 떨어뜨린다
손에 든 열쇠를 놓친다
 
현관문이 닫혀도 잠그지 못한다.
 
예언 하나 해줄래?
내게도 장례가 있을까
 


정성은
'인스턴트 노-북' 마켓 전시에 시(28번, 102번)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