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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몽전파사(4회)

신해욱
2019년 03월 07일
   


진주씨의 제안은 절묘하면서도 고약한 데가 있었다. 천개의 꿈이라. 진주씨가 직접 꾸릴 수 있는 일이 아닌 건 분명했다. 꿈의 아카이브에 대한 몽상을 오래 키웠다 해도 몽상은 몽상일 뿐 그는 야심차게 일을 추진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동안 더러 수집한 꿈도 제대로 보관이나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꿈의 질감과 무늬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수집에 대한 열정을 품은 건 아니었다. 조건 없이 천개의 꿈을 모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목표점이 제시되었다. 가게를 물려받는다는 목표점이. 진주씨는 문을 나서면서 한마디를 더 보탰다. 자기 소망과 내 소망을 한꺼번에 이룰 절호의 기회 아니겠어?
 
딴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암 판정이라는 불운과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는 해오던 대로 느슨하게 해몽전파사를 꾸렸을 것이고 나 역시 하던 일을 그저 해나갈 따름이었을 테니까. 자유롭게 길어 올린 소망이라도 그 소망을 현실로 옮기는 데에는 외부의 동력이 필요하다. 불운이든 채찍이든 떡밥이든. 
 
하지만 유방암의 치료 경과와 생존율, 전이 가능성 같은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나는 곤혹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완치될 수 있겠지. 완치될 것이다. 분명 초기일 거야. 그러니까 꿈은 천천히 모아도 된다. 천천히 모아서 언제?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어서? 막막함이 지나갔다. 전망도 없는 해몽전파사에 내 인생을 바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환우 까페의 암울한 글을 읽고 있으면 진주씨에 대한 근심 사이로 조급증 같은 것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서둘러 모아야 하는 건가? 얼마나? 3년? 2년? 가게의 새 주인이 될 나를 은연중 떠올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진주 씨가 어서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닌지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자책에 사로잡힐 일을 다시 만들 수는 없었다. 그 일만으로도 이미 벅찼다. 반년 전, 내가 일을 나가던 학원 원장이 목을 맸다. 빚이 많았다. 죽기 전날 원장은 내 책상에 놓인 구름떡을 가리키며, 신 선생, 나 그 떡 한쪽만 먹자, 배고프다,라고 했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원장과는 아무것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보충 타령이면서 전달 월급은 입금 전이었다. 마주칠 때마다 우는소리를 하며 며칠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는 엄살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 때문에 그가 죽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굴욕적이었겠지. 떡을 주었으면 달랐을까.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떡은 말랑말랑했으니까. 허기가 가시면 기분도 나아지니까. 나 그 떡 한쪽만 먹자. 그 떡이 위에 얹혀 여태 소화가 되지 않는다. 학원은 풍비박산이 났고 나는 다른 학원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새 학원에서는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참에 학원 일을 그만두고 임용고시 준비에 매진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학원을 알아볼까. 출판 편집 일을 배워볼까. 고민만 한다. 고민만 깊다 만다. 이참에…… 
 
가게를 줄게. 물리치려던 목소리의 방향으로 기어코 다시 고개가 돌아간다. 가게가 뭐라고. 세이렌의 노래도 아닌 것이. 속삭임도 아닌 것이. 애초에 귀를 막고 듣지 말았어야 했는데. 듣고 만 목소리의 잔향이 머릿속을 맴돌며 바다에 뛰어들라고 유혹한다. 저는 수영을 못해요. 수영 강사도 혀를 찼다고요. 음. 파. 음. 파. 물만 먹고 강습을 그만뒀어요. 꿈을 하나 모을 때마다 진주씨의 수명이 하루씩 단축될 것만 같은 몹쓸 기분이 든다. 


#4

마녀와 말다툼을 한다. 됐어. 타고난 대로 사는 거야. 먼 데까지 가는 건 불가능해. 인간 따위가. 마녀가 빈정거린다. 나는 마녀의 말을 받아친다. 맞아. 인간 따위는 팔자대로 살아. 그런데 틀렸어. 우리는 어린이거든. 어린이와 인간은 종자가 다르거든. 잠은 얕다. 속이 다 보인다. 나는 마녀와 싸우면서 마녀와 나의 싸움에 귀를 기울인다. 무슨 구연동화 같군. 손 인형을 팔꿈치까지 끼고. 머리와 턱에 손가락을 넣고. 마녀의 입에서 내 목소리가 나온다. 나의 입에서 그의 목소리가 나온다. 나의 턱을 그의 손이 움직인다. 내 손이 마녀의 턱을 움직인다. 마녀의 턱이 빠질 듯 덜렁거린다. 

“미쳤구나! 지렛대로 삶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아?” 

당연하지! 잘 봐! 나는 벌떡 일어난다. 지렛대로 튕긴 것처럼. 맹스피드로. 

반동과 함께 꿈의 앞 장면이 떠오른다. 옷 때문이다. 옷을 바꿔 입은 것이다. 아니다. 옷을 잘못 입힌 것이다. 나는 사력을 다해 위선의 인형 옷을 뜨고 있었다. 꽈배기를 잘 꼬아야 했는데. 코를 빠트렸다. 빠트린 코로 돌아갔다. 마녀의 집이었다. 색색의 털실 뭉치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벌거벗은 인형이 입을 뻐금거렸다. 진심 같은 것에는 옷 좀 입히자. 남의 진심이 의심되면 너의 진심도 의심해봐. 너의 진심을 알리고 싶으면 남의 진심도 믿어보고. 멱살을 잡혔다. 남의 마음에는 음모만 있고 너만 진심이야? 그래? 그런 거야? 내 손은 인형의 입에 물려 절단 날 것만 같아서. 살릴 코는 살리고. 죽일 코는 죽이고. 다시 코가 빠져서 살릴 코를 죽이고.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배출구에 떨어진 옷을 하나하나 집어 들었다. 옷에는 털이 많았다. 토끼털. 여우털. 각자의 털옷들. 미완성의 털옷들. 자판기에 공급할 옷을 다 뜨지 못했는데. 디자인 개발은 실패였고 나는 남의 털을 뒤집어쓰고 어디를 가야 했다. 어디는 멀었다. 남의 턱으로 화를 내고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야 했다. 자판기 옆에는 마네킹. 마네킹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먼지가 날렸다. 어디에서. 어디는 멀었고 나는 너무 오래 밖에 나가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옛날의 예쁜 털옷을 돌려 입을 수 있어서.

 
*
 
간밤의 꿈은 투명하게 읽힌다. 진주씨의 역할을 대신 맡고 싶은 마음과 맡고 싶지 않은 마음과 맡았다가 잘못되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과 의심과 불안과…… 개꿈이라 했는데. 감정의 앙금이 두껍게 가라앉은 이런 꿈을 수집 목록에 넣어도 되나.
 
밀린 설거지를 한다. 아무 꿈이나 천개를 모으는 게 아니다. 양질의 개꿈 천개인 것이다. 개꿈이란 뭘까. 양질이란 뭘까.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종량제 봉투를 채운다. 봉투 아래에는 걸쭉하고 탁한 물이 고여 있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맑은 개꿈은 어떤 방법으로 떠내는 것일까. 허용되는 불순물의 양은 몇 퍼센트일까. 그릇을 정리한다. 나무주걱에 기름을 먹인다. 수저를 수저통에 넣는다. 수저통 옆에는 거름종이와 면포가 있다. 씽크대 아래에는 채반이 있다. 창틀에는 방충망. 창밖에는 마른 나무. 나무를 본다. 나무는 목련이다. 가지에 꽃눈이 올라와 있다. 나무의 꽃눈을 보고 있으면 방충망의 격자는 흐릿해진다. 방충망의 격자에 맺힌 물방울에 눈을 맞추면 나무는 몇개의 산만한 선에 불과해진다. 일테면 초점의 차이일지도. 개꿈도 이런 거죠, 사장님? 혼자 묻고 혼자 답한다. 그럴 거야. 의미를 읽으려 하면 무늬가 사라지고. 무늬를 살피려 하면 의미가 희미해지고. 개중엔 의미도 무늬도 따로 또 같이 보이고.  

*

“인류가 만일 진화를 거듭해서요. 아무 결핍도 없게 된다면요. 꿈을 안 꾸게 될까요.” 
 
대보름 전이었던가 후였던가, 진주씨와 호두를 까면서 불쑥 이런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글쎄. 꿈도 진화를 거듭하지 않을까. 뇌를 벗어나서.”
 
진주씨는 심드렁히 대답하고는 책장에 놓여 있던 황동문진으로 호두를 쳤다. 호두는 쪼개지지 않았다. 
 
“줘보세요. 제가 해볼게요.”
 
나는 진주씨의 손에서 문진을 빼앗았다. 꿈을 꿈이라 해도 꿈일 수 없는 세계로부터. 문진에 새겨진 글자들. 호두를 두드렸다. 톡톡. 노크를 하듯이. 기척도 없군. 호두를 내리쳤다. 머리통을 갈기듯이. 호두는 박살이 났다. 
 
“뇌를 벗어난 꿈도 꿈일까요.”
 
박살 난 호두껍질 속의 우주. 작은 뇌의 부스러기. 나는 부스러기를 집어 먹었다.
 
“호두껍질 속에 갇혀 있어도 나는 무한공간의 왕이라네. 햄릿이 그랬는데.”
 
“나쁜 꿈을 꾸지만 않는다면. 뒤에 조건절이 붙잖아.”
 
검색창을 열었다. 호두 까는 법,이라고 입력한다는 것이 그만 뇌를 까는 법이 되었다. 지우고 다시. 호두 까는 법. 
 
“뇌간이라는 부위가 있대.” 
 
진주씨는 비닐봉지 안에서 호두알 두개를 더 꺼냈다.
 
“거기에 스위치 같은 것이 있어서 꿈이 뇌 바깥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한다던데,” 
 
그러고는 호두알과 호두알 사이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었다.
 
“뇌와 뇌의 사이, 그래서 뇌간이라는 것 같아.”
 
나는 호두 까는 법에서 눈을 떼고 진주씨의 손가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니죠?”
 
“아니지.”
 
 
#5

배가 아프다. 이것은 복부몽. 나는 지금 배로 꿈을 꾸고 있다. 머리도 없이. 허벅지도 없이. 뇌가 전부는 아니야. 뇌가 없어도 이렇게 잘 보이잖아. 내시경 호스가 식도를 타고 넘어 들어와 내장을 샅샅이 관찰한다.

밝다. 

처형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온다. 

새소리가 들린다. 벌판은 넓다. 등이 굽은 청소부가 긴 집게를 들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모가지들을 모아 마대자루에 담고 있다. 나무에서 갓 떨어진 모과처럼 모가지들은 향긋하고 상처가 깊다. 

배가 아프다. 다 주워가지 말라고 청소부에게 외치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마른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똑딱똑딱. 시계가 간다. 시계는 시간보다 빨리 간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바람은 사정없이 부드럽다. 위액이 역류한다. 맑고 노란 물이 코의 점막을 자극하고 귓바퀴로 흘러나온다. 하늘색과 노란색은 잘 어울리고 나는 괜찮다. 어지럽지 않다. 아프지 않다. 두 손을 다소곳이 배꼽 밑에 모으고 시계추에 맞춰 숨을 조절하면 톱날도 칼날도 아무렇지 않다. 
 
청소부의 마대자루는 불룩하다. 구름 사이로 쏟아진 햇살이 날카롭게 마대자루에 꽂힌다. 괜찮다. 자루는 튼튼하다. 벌판에 우뚝 선 참수 기계가 반짝인다. 참수 기계에 앉아 땀을 닦고 숨을 고르면서도 청소부는 기죽지 않는다. 
 


신해욱
시인.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산문집 『비성년 열전』 『일인용 책』이 있다. 
 


5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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