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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 동물(5회)

박솔뫼
2019년 03월 12일
     

나는 『실내 연구』 옆 옆 옆에 있는 『풍경 연구』를 꺼내들었다. 왜 같은 저자의 책인데 나란히 있지 않지? 싶었는데 『실내 연구』 옆에는 『내부의 미학 - 아름다운 공간 구성을 위하여』라는 책과 『프랑스 서재』라는 책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풍경 연구』의 목차는 다음과 같았다.
 
산책자의 몽상과 풍경의 발견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통한 도시의 풍경
앙리 르페브르를 읽는다는 것
거대 도시에서 인간은 풍경을 발견할 수 있는가?
짓눌리는 인간 ─ 나가야마 노리오
풍경은 어떤 식으로 발견되는가 ─ 변화하는 미디어 이해하기
 
나는 『풍경 연구』와 『실내 연구』 두권을 빌렸다. 배가 고파 지하 매점에서 밥을 사먹었다. 평일 저녁 폐관 시간에 가까워서인지 사람들은 점심때와 달리 몇 보이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세명은 모두 라면을 먹고 있었다. 나는 김치볶음밥을 주문하고 나의 주문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생각에 『실내 연구』 저자는 ‘사무실’ 연구나 ‘매점’ 연구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몽상이나 무의식이 끼어들 부분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런 장소에서 이완된 정신 상태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무언가 목표한 것을 해내는 사람일지 모른다. 과장인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퇴사를 한다는 상상을 하면 그게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퇴사를 마음먹고 이러저러한 절차와 수속들을 끝내고 필요한 서류들을 미리 챙기고 개인 짐은 일주일 전부터 조금씩 나르고 마지막에 그래도 남은 잡동사니들을 버리고 남들이 보는 데서 버리기 뭐한 그들의 명함이라든가 업무용 다이어리 같은 것을 메고 온 배낭에 넣고 모두 퇴근한 사무실을 마지막으로 둘러보다가 나 혼자 잠깐 사무실 불을 끄기 위해 스위치에 손을 올리고 잠깐.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고 이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사무실 냉장고 소리와 형광등이 깜박하는 소리 여기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길고 크고 침묵 속에 잠겨 있는 어떤 짐승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불을 끄고 보안키를 세팅하고 완전히 건물을 빠져나가면 서서히 몸을 움직일 검은 퓨마 같은 조용한 동물. 이제 이곳에 오지 않는다는 확신만이 어떤 것을 보이게 할 것이다. 
 
미원 맛인가 다시다 맛인가 아무튼 조미료 맛이 나는 뜨거운 김치볶음밥을 후후 불며 먹었다. 라면을 먹는 사람들은 모두 멍한 표정이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나도 그런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장면에서 사라진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완전히 사라진다는 가정이 무언가를 바꿀 수는 있다는 것에 관해 오늘 생각하게 되었다. 집에 가서  『실내 연구』부터 읽어볼 것이다. 저자는 아마 『풍경 연구』부터 읽기를 원할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나의 방에 관해서 요즘 생각하고 있다. 읽어본 적 없는 루소를 생각할 것이다. 나의 방은 언제나 내가 그 공간을 이해하고 적응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문을 열고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짧은 시간, 문을 열고 가방을 내려놓고 왜인지 힘들어 외출복 차림으로 침대 끝에 몸을 누인 순간 나는 방이 내가 그곳에 자연스럽게 다시 적응하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사건 4. 
그가 토오꾜오의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화장을 고치고 간단히 소지품을 챙겨 호텔 방을 나갔을 때 방은 서서히 움직여 그를 돌아보게 하였다. 그는 왠지 방의 조명이 따뜻해 보인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어두었다. 카메라 속 방의 모습. 그는 방을 방의 소리와 빛과 오래된 건물에서 풍겨오는 옅은 낡은 냄새를 집중하여 바라보며 -찰칵- 느꼈다. 그가 집중하여 방을 보았을 때 시간이 다른 방식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멈춰선 그의 등 뒤로 흐르는 시간들. 정리된 침구 사이로 움직이는 공기, 접혀 있던 소리와 많은 음들. 이제 가야지, 그는 스스로를 깨우고 방을 나갔다. 방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오후부터 밤까지 바쁘게 걸으며 쇼핑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은행과 도미가 올라간 밥을 저녁으로 사 먹고 편의점에서 젤리를 사서 걸어다니며 먹고 서점에서 책과 만년필용 잉크를 사고 끝으로 호텔 앞 바에서 위스키와 얼음과 위스키 그리고 위스키가 들어간 칵테일 총 세잔의 술을 마시고 바 옆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과 부으면 계란탕이 되는 즉석식품을 사서 붉은 얼굴로 돌아왔다. 가방을 침대 위에 던지고 렌즈를 빼고 화장을 대충 지우고 간단히 샤워를 하고 호텔 가운을 입고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등 뒤에서 피어오르는 흰 안개 같은 더운 김들 사이로 바닥에 벗어둔 회색 니트가 고양이처럼 보였다. 오늘 하루 종일 입고 다닌 회색 캐시미어 니트는 안경을 안 껴서인지 왠지 고양이로 보였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로 고양이였다. 고양이가 맞았다. 
 
차미는 그에 관해 내가 읽고 있는 책의 페이지를 앞발로 짚어 알려주었다. 그 챕터의 제목은 <유동하는 공기 ─ 1) 고양이>였다. 
 
『실내 연구』의 목차를 다시 살펴보았다.
 
『실내 연구』
 
목차
 
시작하며
‘실내’란 무엇인가 ─ ‘풍경’과 ‘실내’
문을 여는 산책자들
실내를 발견한 자, 드루리 레인 ─ 사례로 이해하는 ‘실내’
방에 관한 이야기
무엇보다 중요한 방
방을 구성하는 것 
       1) 습도: 비오는 날의 늦잠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2) 온도: 에어컨의 역사
       3) ‘환기’라는 개념
       4) 관엽식물들 ─ 다시 말해 제외되는 꽃들
       5) 피아노
       6) 많은 책은 당신을 해친다
       7) 6)번의 예외적 경우
       8) 고양이
       9) 잠옷, 양말, 수건
       10) 햇볕과 창
       11) 방향에 관한 여러가지 믿음들
       12) 소리 
             ─ 당신의 방에 돌고래와 인간과 고양이가 함께 있다면
             ─ 그리고 당신은 그 소리를 엿듣는다면
유동하는 공기 
       1) 고양이
       2) 오븐
       3) 비
       4) 먼지
       5) 향의 모든 것
장식을 이해한 자, 필립 말로
신자유주의와 실내 ─ 피할 수 없는 주제 ‘소유’
마치며 ─ 개인, 실내, 무엇보다 개인의 방
 
차미가 짚어준 부분을 우선 읽어보았는데 간단히 말하면 고양이가 실내를 구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고양이는 소리 냄새 촉감 움직임 등으로 고유의 실내를 구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당연한 전개였다. 그런데 이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연금술에 관한 믿음이 높아지던 시기, 당대의 사람들은 여러 재료들을 특정한 조건으로 합하여 금을 만든다는 발상을 이해하자 다른 식의 조합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식의 조합을 시도했던 이들은 극소수였으나 아예 없지는 않았다. 남아 있는 자료에 언급된 적은 없으나 나는 현대의 정밀한 측정기로 고양이가 존재해야 타당한 음, 온도, 소리를 도출할 수 있고 거기에 특정할 수 없는 몇가지 요소들을 합하면 고양이가 실내에서 탄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이들은 이것을 농담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실내를 구성하는 데 미세하고 복잡한 요소들이 필요하며 그 모든 것은 정확한 순간에 서서히 움직이고 합해져 자연스러운 실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모든 실내가 그렇지는 않다. 이 역시 나는 함께 강조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방의 움직임을 느끼고 멈춰 서서 방의 생동을 느낄 때 그 순간을 기억하는 이라면 나의 믿음을 망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는 고양이를 앞에 두고 멈춰 섰다. 고양이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러나 재빠른 몸짓으로 침대 위에 앉았다. 그는 소파에 앉아 머리를 말리며 스킨과 세럼 로션 크림까지 바르고 녹기 시작하는 아이스크림을 방 안 냉장고의 냉동 칸에 넣었다. 고양이는 어느새 팔을 뻗어 누워 있었다. 그는 물을 끓이고 오늘은 토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계란탕의 비닐을 벗겨 끓은 물을 부었다. 텔레비전 리모컨에 손이 갔으나 곧 거두고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는 그를 그는 고양이를 보았고 그는 눈을 깜박-깜박 했다. 이것은 눈인사야. 그러나 고양이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계란탕에서는 김이 작게 나고 그는 휴대폰에 저장된 오후의 방 사진을 보았다. 냉장고 소리가 낮게 들리고 고양이가 발톱을 핥고 깨무는 소리가 그 사이로 침입했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침입이었다. 그는 다 먹은 계란탕 통을 씻어 물을 넣어 바닥에 두었고 고양이 캔을 사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12월 말의 늦은 밤 잠깐 비가 왔나봐. 바닥은 젖어 있었고 부는 바람에서 물냄새가 났다. 토오꾜오는 정말 춥지가 않네. 속옷으로 입은 여름 반팔 티 위에 퀼팅 재킷만을 걸치고 나왔는데 적당히 버틸 만했다. 고양이 캔을 사고 호텔 앞에 서서 구름 속 달을 보았다. 그는 문득 회색 니트를 떠올렸다. 니트는 사라진 걸까. 사라졌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큰 맘을 먹고 백화점에서 캐시미어 니트를 샀던 날이 떠올랐다. 내게 있었나 싶게 희미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데 그것이 아주 옛일이어서라거나 현재와 너무 다른 상황이어서가 아니라 지금은 여행 중이고 외국의 호텔 근처이고 약간 취해 있었고 무엇보다 물건을 사는 것은 사는 순간만이 또렷하게 선명한 경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약간 남은 알코올 기운과 바깥 공기를 맞아 차가워진 코끝과 무한히 인생을 긍정하게 되는 마음이 그 순간 그에게 존재했다. 어딘가 타고 올라가도 좋아 내민 손을 잡게 될지 몰라 하고 흔들거리고 있었는데 그런 마음은 어디든 발을 들여놓겠다는 모험심과 무모함을 손짓했다. 그는 그런 상태였다. 그런 상태로 오래된 호텔의 열쇠를 받아들고 열쇠로 문을 열고 손잡이를 돌렸다. 문을 잠그고 방의 냄새를 맡으며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화장실을 지나 침대 쪽으로 갔을 때.
 
챱챱챱챱
회색 고양이는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편의점 비닐 봉투를 바닥에 깔고 고양이 캔을 따서 그 위에 내용물만 부었다. 국물이 흐르지 않게 티슈로 닦고 뒷정리를 하고 손을 씻고 버릴 것들은 버리고 빠르게 닭가슴살 통조림을 먹고 있는 고양이를 지나 소파에 앉았다. 차가웠던 코끝이 서서히 원래대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온풍기의 온도를 1도 낮추고 지갑 속 영수증을 다시 버리고 고양이는 조용히 다가와 그의 다리에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그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임을 알았다. 이를 닦고 돌아와 휴대폰과 배터리를 충전하고 아직 덜 마른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덮었다. 고양이는 침대 끝으로 와 잠이 들었다. 불을 껐으나 커튼 너머에서 주황색 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마 맞은편 호텔에서 보이는 조명일 것이다. 옆방도 아래층도 위층도 누군가 잠을 잘 것이다. 오늘의 일들을 생각하며 잠을 청할 것이고 맞은편의 아직 불을 끄지 않은 사람도 곧 잠이 들 것이다. 그는 발끝의 고요한 움직임과 무게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그는 침대 끝에서 어제 그가 하루 종일 입고 있던 회색 캐시미어 니트를 발견하였다. 니트의 두 팔이 서로를 껴안는 것처럼 하고 있었다. 니트에 붙은 고양이 수염 두개를 여행 다닐 때만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끼워 넣었다. 조식을 먹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을 일으켜 니트에 얼굴을 묻었다. 메오 메오 들은 적 없는 고양이의 울음을 떠올려보았다. 그는 왠지 이 고양이 이름이 미오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별 이유 없이 친구의 고양이 이름이라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난 것 같다. 잠시 만난 고양이. 함께 잠을 잔 고양이. 그는 가운을 벗고 벗은 몸으로 거울 앞에 섰다. 건조하고 따뜻한 호텔 안의 공기. 벗어둔 반팔 티셔츠와 속옷과 청바지와 재킷을 걸치고 휴대폰과 방 열쇠는 재킷 주머니에 넣고 건조한 얼굴을 손으로 비비고 등 뒤에서 먼지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방을 나섰다. 손끝에 남아있는 손잡이의 감촉, 차가운 금속의 느낌을 의식하며 호텔 복도를 걸었다. 
 
─ 그래서 고양이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야?
 
나는 차미에게 물었지만 차미는 메오 메오 울기만 했다. 텅 빈 사료 그릇에 사료를 채워주고 나는 고양이를 만들어낸다는 저자의 발상에 대해 생각을 했다. 모든 제정신인 멀쩡한 사람들이 무언가를 믿고 해내고 사라지는 모습으로 떠나는 것은 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쩌면 저자가 그의 실내에서 고양이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암시를 믿고 따르는 드문 자들이 실내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하여 언젠가는 물론 고양이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 같은 것은 아니지만 고양이가 머무는 실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40대 후반의 프랑스인이지만 십대 후반 이후 줄곧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가 나타나는 실내에 대해 잠시 생각하지 않으려 주말에 할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방의 장면과 순서들을 마음속으로 꼽아보며 잠이 들었다. 그럴 때 그런 생각들은 좋은 잠과 꿈으로 부드럽게 나를 이어주었다. 그런 생각들은 실제 형태로 존재하여 여러 좋은 일들을 많이 할 것이다. 무척 좋은 존재들이었다. 
 


박솔뫼
소설가.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겨울의 눈빛』 『사랑하는 개』, 장편소설 『을』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머리부터 천천히』가 있다.
 


6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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