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5

구름 숲에서 잠들어 있는 너희 어린이들에게

최지은
2019년 03월 13일
     
 

구름 숲에서 잠들어 있는 너희 
어린이들에게
 
 
내 눈동자 안으로 미모사. 나란히 양쪽으로 줄 서 있는 이파리. 할머니는 손가락 끝으로 잎을 살짝 건드려 보여준다. 느리게 움직이는 미모사. 이파리가 접히는 그 짧은 사이 
무언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단 냄새가 났다.  

덥고 느린 바람. 땀에 젖은 이마 위로 머리칼이 달라붙는. 초여름의 냄새. 할머니에게서 풍기던. 달곰하고 조금 시큼한. 

나는 그 여름 속에 들어와 있었다.

몸속에 깊숙이 잠겨 있던 단 냄새가 올라왔다. 눈동자에는 미모사. 할머니의 뭉툭한 손가락. 두껍고 부서지는 손톱. 그 풍경 속에서 박새가 지저귀는 소리

숲이- 숲이- 숲이- 

그걸 듣고 있는 내가
슬픔 슬픔 슬픔 웅얼거리고.

슬픔 숲이 슬픔 숲이 슬픔. 새들과 같이 떠들고. 낮잠 자던 할머니는 일어나지 않았다. 눈동자 안으로 
여름 구름이 지나갔다. 

석양이 붉고. 구름은 느리게 어두워져갔다. 나는 검은 구름 숲으로 숨었다. 그때부터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갈 길이 없어 자꾸 멀어지는 나의 집. 끝없이 끝없이 구름 숲이 계속되었다. 

단 냄새를 찾으러 

단소 끝으로 담벼락을 탕탕 치며 집으로 걸어가던 
그해 여름 속 길어지는 골목에서. 

숲이- 숲이- 숲이-
새들만 나를 놀리듯 따라다녔다.

할머니는 돌아갔다. 백년 전 할머니가 태어나고. 아직 말을 몰라서 비밀을 모르던 그때로 할머니도 
돌아갔다. 

수백년이 지나면 모두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할머니가 들려준 적도 있었다. 그 말을 다시 들으려 하루에도 여러번 잠에 들었었다. 

눈꺼풀 위로 노란 석양빛이 아른거리고 있다. 꿈이 지나갔지만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설. 늦은 오후였다. 몸 안으로 다시 숨어드는 달고 조금 뜨거운 것. 
혼자였다. 
 
나의 백년도 지나가고 
말을 잃어버린 처음으로 잠시, 돌아간 것처럼.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손톱 「명사」
흰빛만큼 지나쳐온 시간. 흰빛으로 사라지는 시간. 그 사이에서 ‘나중에, 다음에, 언젠가’ 같은 말에 끌려다녔다. 일요일 밤이면, 빠짐없이 모아 깨끗하게 버리고 뒤척이다 얕은 잠에 들었다. 



최지은
2017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