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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 동물(8회)

박솔뫼
2019년 04월 02일
        

피에르와 만나게 된 것은 1월 말 어느 날이었다. 피에르는 내가 메일을 보낸 이메일이 아닌 다른 이메일을 통해 내게 답장을 보냈다. 그는 잠시 인천에 살고 있다고 말을 했다. 우리는 인천공항 구석에 있는 까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세상에서 가장 정신없는 곳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조용했다.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었다. 모두 어딘가로 금세 나아가고 사라지고 들어가기 때문인 것 같았다. 
 
─ 제가 피에르 소골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리신 거지요?
 
─ 엄밀히 말해 피에르 소골이 아닌 것은 아니죠.
 
─ 그렇죠. 그렇긴 하죠.
 
나는 마른 얼굴과 몸을 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남자에게 그러나 책은 재미있었다고 말을 했다. 공항의 까페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 좋은 것 같아요. 인상이라는 것이 기억이라는 것이 귀에 들리는 소리와 빠른 속도에 뒤섞이는 것 같아요,라고 말을 하고 커피를 한잔 더 주문하였다. 그는 웃으며 그런데 파리에서 살았던 것이나 햄프셔에서 공부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 그것도 알아요. 앙리 르페브르도 좋아하는 거 맞잖아요. 책은 재미있었다니까요.
 
─ 의외로 초판으로 찍은 천부는 거의 다 팔렸어요. 재쇄를 찍어야 할지 그만 둬야 할지 고민이에요. 
 
─ 가명의 이름으로 내는 게 꼭 재밌지는 않은 거 같아요. 자기 이름으로 내봐요. 
 
나는 공항의 소리와 속도를 순간순간 정확히 기억해내려 애썼다. 마치 외국어 듣기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조용히 온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공항철도를 타고 피에르의 집으로 향할 때는 그래서 순간 졸음이 쏟아질 정도로 피로했다. 피에르의 집은 지은 지 20년 가까이 된 오피스텔인데 몇년 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의 집에 들어선 순간 거북이가 나온 꿈 속 집과 흡사하여 이상한 기시감에 넋이 나갈 뻔 했지만 생각해봐 지은 지 10년이 넘은 소형 아파트와 빌라와 원룸과 오피스텔을 꿈에서 본 그것을 당신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나는 너무 모든 것을 크게 받아들이지 말고 상황을 정확히 보라고 말했다. 나에게 계속해서 나에게 말했다. 그는 나의 편지에 대답하고 싶었다고 했다. 
 
─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그는 구석에 있는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속으로 이러다 감금당하는 거 아니겠지? 정신을 차려야 할 순간이 바로 지금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부드럽게 그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거의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방에는 사무용 의자가 세개 일렬로 놓여 있었고 가로로 긴 간이 테이블이 벽에 부착되어 있었다. 그는 잠시 나갔다가 커피메이커와 잔을 들고 와 벽에 있던 테이블을 내려 메이커와 잔을 그곳에 두었다. 꼭 이것만을 위한 테이블 같다. 그는 조명을 몇개만 켜고는 내게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나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의자에 앉았고 그도 내 앞으로 앉았다. 그의 등을 보며 가방에 든 책을 꺼내 읽었다. 이곳은 김포발 하네다행 ANA 비행기 안이었다. 나는 그것 외에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 강제된 기분 그러나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기게 되는 그 시간을 이해하며 두시간 가량 책을 읽었다. 그 책의 제목은 _______였다. 비행을 끝냈을 때 가방을 챙기고 문을 열자 그는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하였다. 그가 집에서 챙겨온 귤을 까먹으며 아직 춥지만 봄은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춥지만 몇주 전과 같은 매서운 바람은 아니었다. 나는 다른 많은 일들을 가볍게 그와 동시에 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나의 코트에서 고양이수염을 떼어주었다. 그는 주고 싶지 않은 듯이 약간 멈칫했지만 나는 그대로 받아서 수첩 안에 넣었다. 
 
─ 내가 정말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 귤이 맛있네요. 좋은 귤인가봐요.
 
나는 그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이미 잘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양인들의 헤어짐처럼 가벼운 포옹을 하고 지하철역에서 손을 흔들었다. 공항철도 안에서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졸다 깨다 했다. 집중하고 몰두한 시간들은 시간이 지나도 버튼을 누르면 재생이 되었다. 인천공항 안의 출국카운터 층의 까페의 소리와 속도와 그곳에서는 보통 까페에서 찾기 힘든 마카다미아 라떼와 피스타치오 라떼 그라나따 같은 메뉴가 있었다. 무엇을 겨냥하는지 알기 힘들지만 그런대로 좋다고 생각되는 메뉴들이 자다 깨는 중간에 떠오르다 말았다. 집에 도착하자 그대로 잠이 들었다가 세시간 후쯤 깨어 차미의 화장실을 치우고 물을 갈아주고 사료를 주었다. 차미가 나에게 얼굴을 문질렀다. 나는 그것이 마치 좋은 꿈을 꾸는 것처럼 부드럽고 온전히 좋았다.
 
새벽 잠시 잠에서 깨었을 때 내 발 근처에서 자고 있던 차미가 다가와 말했다.
 
─ 좋은 것은 좋은 것. 밖으로 나가 걷고 집으로 돌아와 쉰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나는 그것이 꿈도 아니고 낮에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그밖의 어떤 것으로 분류될 다른 종류의 것임을 알았다. 거기에도 이름이 필요하다. 
 
피에르를 만난 그 주 주말에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을 이렇게 자주 뵐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선생님은 내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뭐냐고 물어보자 검토 중인 책이 있는데 한번 읽고 어떤지 간단히 의견을 달라고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되니 부담을 갖지 않아도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는 생선 초밥과 커피를 얻어먹고 돌아왔다. 이상한 생각이지만 선생님은 내가 자신을 약간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는 듯 했다. 수상하게 여긴다기보다, 뭔가…… 사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들었던 이상한 사건이나 나를 보며 웃던 일 같은 것은 정말로 너무나 아무 일도 아니었고 보통 때라면 그런 일이 있었나?라고 생각하고 아니 생각조차도 안 하고 말 일이었다. 그러나 왠지…… 뭔가…… 아무튼 뭔가 엉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고 때문에 결국 내가 차미에게 그 일을 의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반갑고 기쁘게 나갔고 초밥도 맛있었고 원고도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고 딱히 이상하다고 할 만한 순간은 없었음에도 평소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느낌이 아니라 조용히 듣는 느낌으로 어쩌면 조금은 방어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다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돌아오는 길 내내 뭔가 석연치 않은 마음이었다. 예전 같으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받은 원고를 펴보았을 테지만 이번에는 책상 위에 두고 일단 씻고 귤을 먹고 차를 마시며 내일 열어보아야지 며칠 뒤에 펴봐도 되겠지라고 미뤄두는 마음이 되었다. 차미는 사람의 물건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고양이였는데 왜인지 선생님이 맡긴 원고 봉투의 냄새를 여러번 맡더니 자꾸 긁으려고 하여 봉투를 서랍 안에 넣어두어야 했다. 이건 맛없게 생기지 않았니? 어떻게 봐도 맛이 없을 것 같아. 아니면 여기에 수상한 냄새가 묻은 걸까? 차미는 짜증이 난다는 듯이 길게 미야------- 하고 외치고 책상에서 의자로 통통 재빠르게 움직이며 침대 밑으로 사라졌다.
 
그사이 나는 할 일을 했다. 회사에 다녔고 주말에 짧게 대전으로 여행을 갔다. 세상에서 가장 여행으로 가지 않을 것 같은 도시였지만 나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역시 떠올리면 여행을 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지. 토요일에 대전에 가서 하룻밤 자고 왔다, 혹은 주말에 대전에 다녀왔다 정도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다리가 다친 나를 줄곧 도와주었던 친구에게 고기를 사주었다. 이것은 답례로 부족하지 나는 너에게 계속 좋은 것을 주고 또 줄 거야. 나는 친구에게 탕수육도 사주고 양념게장도 사줄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게장은 먹기 귀찮다고 고기를 또 사달라고 하였다. 어느 날은 퇴근 후 영화를 보러 광화문에 갔고 틈틈이 필요한 것들을 인터넷으로 사고 또 팔고 버리기도 하였다. 그러다 여기서 더 미루면 완전히 늦은 것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 선생님이 준 봉투를 열어 원고를 확인하였다. 원고의 제목은 <열차의 짐칸과 식당의 의자>였다.  
 
사건 6.
탐정이 여자의 시계를 찾아준 이후 받은 새로운 의뢰는 또다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그사이 그는 도심 빌딩의 경비로 일했다. 이 역시 의뢰라면 의뢰지만 새로운 의뢰라고 보기에는 성격이 조금 달랐다. 그에게 경비로 일해 달라 요청한 사람은 7년 전 그의 도움으로 위험에 빠질 뻔한 재산을 지킨 자산가였다. 7년 만에 연락이 온 그는 여전히 자산가였고 아니 그때보다 더욱 부자였다. 7년이라는 시간은 이미 부자인 사람이 더 큰 부자가 되기에 자연스러운 시간인지 그는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탐정은 의뢰인이 가진 빌딩 중 가장 비싸거나 큰 빌딩은 아니지만 그가 가장 처음 매입한, 그리하여 그의 부의 발판이 된 빌딩의 경비로 일했다. 의뢰인의 빌딩에는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단순히 강도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의뢰인은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고 해결하고 싶었다. 의뢰인이 빌딩만 몇채를 가진 자산가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일은 가벼운 일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 일을 해결하는 데 열흘 가량 경비로 일을 한 셈이니 어떻게 보면 꽤 오랜만의 새로운 의뢰였다. 
 


박솔뫼
소설가.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겨울의 눈빛』 『사랑하는 개』, 장편소설 『을』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머리부터 천천히』가 있다.
 


9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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