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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몽전파사(8회)

신해욱
2019년 04월 04일
       


#17. 감수광

마담 뒤샹의 티파티는 아름답다. 

숲속 공터에 테이블이 놓여 있다. 공터는 넓다. 밤은 깊다. 대보름의 은은한 달빛이 테이블 위를 비춘다. 뼈가 없는 프랑스 홍차. 약간의 개구리알과 일곱개의 왕만두. 일곱개의 단춧구멍으로는 피리를 불 수 있다. 테이블보의 치맛자락이 흔들린다. 막이 열린다. 

그림자 연극이 시작된다. 그림자는 물결처럼 웃는다. 그림자는 튀김처럼 걷는다. 두 박자의 웨이브. 세 박자의 그루브. 잘못 달린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이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지나간 설렘을 안타까워하는 구슬픈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오미자를 모을까 구기자를 거둘까
숲속으로 사라질까 늦은 손님을 맞을까 

꽃가루가 날린다. 꽃가루와 같은 목소리가 흩어진다. 마담 뒤샹의 목소리가 코를 간질인다. 감수광! 감수광! 나는 재채기를 하며 앵콜을 외친다. 그림자 속에 손을 감춘다. 피크닉 바구니 안에는 보드라운 병아리. 고치 속의 밤벌레. 그림자의 인사. 그림자의 앵콜. 
 
*
 
탁자 위의 책을 되는대로 들춰보다가 한 문장에 눈이 멎는다. “유시(酉時)에 꿈을 꾸면 손님이 온다.” 『주공해몽서(周公解夢書)』에 나오는 부분이다. 스터디 모임에서는 요즘 고대의 해몽 문헌들을 읽는데, 어제는 진주씨도 나도 없는 가게에 한명만 나와 맥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간 모양이다. 그가 두고 간 책에는 포스트잇이 많이 붙어 있다. 내 눈이 멎은 페이지에 나는 색깔이 다른 포스트잇을 한장 더 붙인다. 유시에 꿈을 꾸면 손님이 온다. 유시라면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 그 시간에 내가 꿈을 꾸었던가. 그래서 손님이 온 건가. 평소라면 밤잠은커녕 낮잠을 잘 시간도 아니지만 며칠 동안 독감으로 밤낮없이 비몽사몽이었으니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
 
손님이 왔다. 열흘 가까이 가게를 비웠다가 나왔는데, 뜻밖의 손님이 다녀갔다. 삼월씨. 지금은 손님을 삼월씨라고 부르는 수밖에 없다. 삼월씨는 낮부터 가게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가게에 나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그를 보았고, 늦은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으러 가다가 다시 그와 마주쳤다. 오다가다 스쳤을 따름이지만 신발과 걸음걸이 때문에 같은 사람이라는 걸 몰라볼 수는 없었다. 그는 주황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도 운동화는 체격에 비해 한참 컸다. 발끝에서 신발코까지 손가락 한마디만큼은 족히 남아돌 것 같았다. 그런데도 뒤축은 겉돌지 않았고 걸음걸이는 신기할 만큼 사뿐했다. 발만 유독 큰 건가. 아니면 특수처리 밑창을 깐 건가.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나는 그의 뒷모습을 한번 더 쳐다보았다.
 
칼국수를 다 먹고 돌아왔을 때 그는 가게 문턱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운동화는 낡고 깨끗했다. 일자로 묶은 신발끈은 한쪽은 주황색이었고 한쪽은 검정이었다. 나는 1층의 유리문을 열 생각이 없었지만 열쇠를 부러 달그락거리며 기척을 냈다. 그가 머리를 들었다. 내 뒤로 해가 지고 있었던가. 가는 눈을 뜨며 그는 손차양을 만들었고, 반색하는 표정을 지으려다 말고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혹시…… 해몽전업사,였나요, 여기가?” 
 
머뭇거리며 그가 물었다. 나는 가게 간판을 가리켰다. 
 
“전업사는 아니고. 전파사죠. 지금은 닫았고요. 주인도 바뀌었는데.” 
 
나는 그가 예전 주인인 전파사 할아버지를 찾아온 것이려니 했다. 전업사나 전파사나 한 글자 차이니까 이름쯤 잘못 기억한다고 해서 대수로울 일은 아니었다. 
 
“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그는 속상한 얼굴이었다. 
 
“저도 간판은 읽을 줄 알죠. 예전에는 혹시 전업사였냐고요. 전파사가 아니고.” 
 
나로서는 그가 뭘 물어보려 하는 건지 짐작할 수 없어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아니면 이 근처에 해몽전업사라는 이름을 가진 가게는 없나요?” 
 
그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 한장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의 가게 옆에는 누덕누덕 광고 스티커가 붙은 전봇대가 있었고 전봇대 옆에는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우리 가게 간판과 사진 속의 간판을 번갈아 보았다. ‘파’ 대신 ‘업’인 것을 빼고는 놀라울 만큼 모양이 똑같았다. ‘몽’자의 ㅁ이 삐뚜름하게 기운 것까지. 외벽의 색깔 역시 같았다. 그렇지만 건물 형태는 달랐다. 사진 속에는 2층이 없었다. 사진 속의 해몽전업사는 길다란 단층 상가건물의 귀퉁이에 자리 잡은 점포였다. 우리 가게와 달리 벽에 나무로 된 입간판도 걸려 있었다. 위치도 여기는 아니었다. 앞쪽으로 보도블록이 깔려 있고 나무의 그림자가 비스듬히 드리워진 것을 보면 큰길가인 듯했다.
 
“아니겠죠. 여긴.”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그는 휴대전화를 돌려받으며 먼저 중얼거렸다. 진작부터 체념과 실망이 섞인 표정이었다. 얼굴이 추워 보였다. 
 
“그러네요. 아닌 것 같은데요, 여긴……” 
 
나도 추웠다. 입이 말랐다. 아니긴 아닌데, 아닌 건가, 정말? 아니라면 이 닮은꼴은 뭔가? 숨을 크게 들이쉬자 초봄의 찬바람이 콧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2층을 가리켰다. 잠깐 들렀다 가겠냐고 그에게 물었다. 
 
*
 
“주소를 알아요.”
 
그는 지도 앱을 캡처한 사진 한장을 더 보여주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387. 종합도소매. 상왕십리역 바로 앞이었고 현재 위치를 표시하는 파란 동그라미는 대로 맞은편의 스타벅스였다. 대강 어디쯤인지 짐작이 갔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저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놓고 세시간 네시간씩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저 자리에 없거든요. 해몽전업사는.” 
 
그는 한 트위터 계정에서 해몽전업사의 전경과 위치 사진을 내려받았다고 했다. 사진 속 해몽전업사 옆으로는 진원정밀. 성창공예. 그런데 주소를 찍고 찾아가보니 해몽전업사는 없고 그 자리에 국보장식이라는 가게가 있더라는 것이다. 국보장식. 나는 그 가게 앞에 오래 서 있었던 일도 기억났다. 갖가지 재질과 크기의 나비경첩을 진열한 나무판이 벽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반짝이는 나비들. 큰 나비. 작은 나비. 검은 나비. 은색 나비. 환하군. 저 나무판을 통째로 사다가 벽에 걸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사이 바뀌었나보다 했죠. 옆 가게인 진원정밀과 성창공예는 그대로였으니까. 계정에서 사진을 내려받은 지 몇달 지난 후였거든요. 바로 찾아가 보지 않은 게 살짝 아쉬웠지만 특별한 용무가 있었던 건 아니라서. 잊고 지냈어요.” 
 
그는 가방에서 두유와 바나나를 꺼냈다. 나는 두유를 전자렌지에 데워주었고 그가 요기를 하는 사이 진주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주씨는 해몽전업사라는 곳은 금시초문이라 했고, 혹시 모르니 전파사 할아버지에게 물어봐주겠다고 했다.
 
“흐지부지 잊고 있었는데,” 삼월씨는 다 먹은 바나나 껍질을 돌돌 말았다가 펼쳤다가 하며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언니 부탁으로 조카 졸업식에 갔다 오면서 이 가겔 봤어요. 조카가 저 앞의 무학초등학교엘 다녔거든요. 반가웠어요. 여기 있었잖아? 순간 해몽전업사를 찾은 줄 알았죠. 사진 폴더를 다시 뒤졌고요. 사진과 여기를 비교해보고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렇게까지 닮았는데 분명 같은 가게는 아니잖아요.”
 
진주씨가 문자를 보내왔다. 모른대. 30년 전부터 쭉 해몽전파사였다는데? 전업사랑 전파사랑 다른 것도 모르냐며 혀를 차던걸.
 
“모른대요. 지금 주인도 예전 주인도요.”
 
나는 진주씨의 문자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 트위터 계정주에게는 물어보셨어요?”
 
“물어보고 싶었는데요. 없어졌더라고요. 꿒은숨,이라는 계정이었는데.”
 
“꿒은숨이요?” 나는 깜짝 놀랐다.
 
“네. 꿈은 숲이 아니고요.”
 
그는 탁자에 놓여 있던 떡메모지에 글자를 적었다. 
 
“이렇게 써요. 꿒은숨. 이 계정에서 한여름 밤의 꿈을 나누자며 참석자를 모은 적이 있어요. 저는 망설이다가 신청을 했어요. 꿈에서 본 연어가 머릿속을 맴돌았거든요. 배가 터진 연어였어요. 연어알이 쏟아졌죠. 연어알은 바닥을 다 덮었고 연어알을 밟지 않고는 걸을 수가 없었어요. 연어알이 터지는 감촉이 신발 밑창을 타고 전해졌어요. 저는 그 끔찍하면서도 눈부신 느낌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죠. 2017년 7월 26일. 날짜를 기억해요. 제 생일이라서요.” 
 
삼월씨는 손목에 차고 있던 끈으로 머리를 묶은 다음 말을 이었다.
 
“장소는 서울숲 공원이었어요. 도서관을 평소보다 일찍 나와 그곳에 갔죠. 사과나무였나 아무튼 과일이 달린 나무들이 줄지어 선 산책로를 걸었고요. 모인 사람은 다섯명? 여섯명? 일곱명이었을지도 몰라요. 어두웠거든요. 평상에 돗자리를 깔고 모기향을 피웠어요. 먹을거리들이 가운데에 놓였고요. 포도. 샌드위치. 비스킷. 상그리아라는 술. 포도주에 자두랑 복숭아랑 오렌지를 넣고 직접 담갔다고 누가 그러더군요. 다들 챙겨온 것이 있었는데 저만 빈손이라 머쓱했어요. 먹다가 마시다가 꿈을 읽다가 노닥거리다가 그랬죠. 어두웠으니까 종이에 적힌 글자가 보이지 않아서 라이트 어플을 켜고요. 저는 저의 꿈을 읽었고 누군가 또 누군가의 꿈을 읽었고. 숲의 매미는 밤이 깊어도 우렁찼고 벌레와 모기들은 팔다리를 뜯었고. 누군가는 마르셀 프루스트를 읽었고 누군가는 르네 마그리트를 읽었어요. 주위를 배회하던 고양이가 평상 귀퉁이에 올라앉아 야옹거렸죠. 저는 샌드위치 안에 들어있는 햄과 치즈를 일회용 접시에 담아 고양이 앞으로 밀어주었고 고양이는 하루에 스무시간쯤 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고 그 긴 잠속에서 무슨 꿈을 꿀까 궁금했고…… 고양이가 나온 꿈도 불현듯 생각났고…… 누구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죠, 왕십리에 해몽전업사라는 데가 있는데요, 다음 낭독 모임 장소로 눈독 들이는 중이에요…… 알릴게요…… 상그리아는 맛있었고요. 한모금 두모금 홀짝거리다보니 어느새 취기가 이만큼이나 올라와 있었어요.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정말로 한여름 밤의 꿈을 꾼 것만 같더라고요. 밤의 만남이었던 터라 얼굴들은 기억이 나지 않고 목소리만 둥둥 떠다니는 것이…… 기다렸어요. 다음 모임 공지를요. 다음에 나눌 꿈도 미리 챙겨두었는데. 물색 중이라던 장소 사진만 덜렁 올려놓고 그 계정은 사라졌어요.”
 
삼월씨는 내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혹시 거기 계셨던 분은, 아니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서울숲 공원에는 가본 적도 없었다. 그가 쓴 글자들을 다시 보았다. 꿒은숨. 필체는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메모지는 정사각형이었다. 나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메모지 묶음에서 떼어냈다. 반으로 접었다. 다시 반으로 접었다. 네겹이 된 모서리를 만지다가 대각선의 금을 그어 맨 위의 정사각형만 다시 반으로 접었다. 사각형 위에 삼각형. 삼각형과 함께 안쪽으로 접혀 들어갔던 글자의 일부가 나타났다. ㄲ으숨. 글자를 쓴 연필은 뭉툭했다. 연필깎이에 연필을 돌렸다. 연필심 냄새가 났다. 나는 손가락으로 연필을 굴렸고 손가락에서 연필을 놓쳤고 연필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탁자 아래 그의 발은 가지런했다. 크지 않았다. 엄지발가락만 길었다. 양말과 바지 사이의 맨살에는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 있었다. 
 
“여기서도 꿈을 나누는 모임이 열려요.” 
 
나는 허리를 펴다 말고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이에요.”
 
연필심으로 손끝을 눌렀다.
 
“같이 하실래요?”
 
거짓말을 한 걸까, 나는? 꿈을 나누는 모임이 예전에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진주 씨가 다시 시작해보자고 했으니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앞으로 어떻게 되기도 전에 가게는 개점휴업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더구나 오늘은 아무 모임도 없는 날이었다. 뭐였을까. 시야의 가장자리에 얼비친 것들. 희끗한 것들. 해몽전업사의 따가운 햇볕. 꿒은숨의 술렁이는 잎사귀. 어떤 질투. 어떤 갈급. 들뜸. 부풂. 
 
“몽몽교환 프로젝트라는 거요?”
 
그는 1층 유리문에 적힌 문구를 보았다고 했다. 
 
“일을 하러 가야 해서. 오늘은 어렵고요. 생각해보고 연락을 드릴게요.” 
 
신고 있던 실내화를 벗어 그는 현관 앞 신발대에 단정히 올렸다.  
 
“삼월이에요.”
 
운동화의 입속으로 미끄러지듯 발이 사라졌고 내가 채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자동잠금장치가 찰칵, 하며 돌아갔다. 망연했다. 나는 그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이 삼월이라는 건가. 삼월 안에 다시 오겠다는 건가. 이름이나 별명이 삼월이라는 건가. 손에는 접다 만 종이가 들려 있었다. 종이를 다시 펼쳐 그가 쓴 글자 아래에 삼월,이라고 적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삼월의 걸음. 삼월의 소리. 나는 창가에 서서 삼월씨가 골목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삼월씨는 세 집 정도를 지나 주춤거리며 멈춰 섰고, 홍학처럼 한쪽 다리로 서서 다른 쪽 신발 밑창을 뚫어지게 살폈다. 동전 같은 것으로 껌을 떼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신발을 벗어들고 하면 편할 텐데. 굳이 저런 어려운 자세로. 그러고 보니 운동화는 주황색이라기보다 홍학색이나 연어색에 가까운가. 연어알이 쏟아졌어요. 연어알을 밟지 않고는 걸을 수가 없었어요. 연어알을 밟은 신발. 연어알을 터트린 신발. 그는 그 자세로 오래 서 있었다. 중심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신해욱
시인.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산문집 『비성년 열전』 『일인용 책』이 있다. 
 


9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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