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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몽전파사(9회)

신해욱
2019년 04월 11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387. 삼월씨를 만난 이튿날 국보장식을 둘러보았다. 간판은 오랜 시간 눈비를 맞은 흔적이 역력했다. 배수관 주위에는 녹이 슬어 있었다. 안쪽의 책상에는 청색 잠바를 입은 백발의 남자가 유선전화기로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국보장식은 이 자리를 오래 지켜온 것이 분명했다. 해몽전업사가 폐업하고 새로 들어선 가게일 리 없었다. 진원정밀, 성창공예, 옆으로 이어진 가게들은 사진 속과 똑같지만. 보도블록의 모양과 색깔도 똑같지만. 사진 속에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가 내 옆에도 서 있지만. 사진 속 나무의 그림자는 잎이 무성하다. 내 옆의 나무에는 아직 잎이 나지 않았다. 이 나무와 저 나무는. 같은 나무일까 다른 나무일까.
 
가게에 잠시 들른 진주씨에게 나는 해몽전업사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해몽전파사도 아니고. 국보장식도 아니고. 어딜까요. 여긴. 솜씨 좋게 합성한 게 아닌가도 싶지만. 그러기엔 디테일이 미묘하게 달라요.”

예의 생각에 잠길 때의 버릇대로 진주씨는 아랫입술로 윗입술을 덮으며 먼 데를 보았다. 입술과 턱 사이에 복숭아씨가 생겼다. 복숭아씨는 한참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사진 속 해몽전업사에 관심을 기울이기에 진주씨의 머릿속은 이미 충분히 복잡했는지도 모른다. 

“뭐라더라, 평행우주? 멀티유니버스?”

내가 내려준 커피가 다 식은 다음에야 진주씨는 입을 열었다. 하하. 나는 웃었다. 진주씨는 웃지 않았다. 나는 진주씨의 진지한 얼굴을 피했다. 뭐라고 말을 이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삼월씨의 꿒은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의 꿒은숨에 대해서는 삼월씨에게도 진주씨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
 
서랍을 뒤져 사업자등록증을 꺼내본다. 상호: 꿒은숨. 개업연월일: 2017년 8월 14일. 해몽전파사를 드나든 지 일년쯤 지났을 때 1인 출판사를 등록했다. 시작만 하면 뭐든 될 것처럼 의기 충전한 날이었고 해몽전파사를 꿈의 가게로 꾸려보고 싶은 몽상이 부풀기 시작하던 즈음이기도 했다. 전파사와 출판사. 라임도 딱딱 맞고. 어깨동무를 한 커플 같지 않은가. 여기서 읽는 글들만 모아도 꿈의 시선집, 꿈의 산문집, 꿈의 자료집이 바로 나온다. 꿈의 사전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잡지도 창간하자. 모던몽유록 잡지를. 몽유록의 현대적 부활을 기치로 내거는 거다. 꿈의 이미지 꼭지. 이건 시에 가깝겠지. 꿈의 이야기 꼭지. 이건 소설에 가까울 것이다. 꿈을 빙자한 정치풍자 세태풍자도 좋고. 꿈에서 출발한 묵직한 사유의 에세이도 좋고. 직접몽유록 파트와 간접몽유록 파트로 나눠보면 어떨까. 
 
뜬구름은 점점 부풀었고 나는 바로 구청에 가서 등록절차를 문의하고 신청서를 받아왔다. 절차가 간단해서 일사천리일 줄 알았지만, 출판사 이름을 정하는 건 의외로 쉽지 않았다. 염두에 두었던 몇 가지는 이미 등록이 되어 있었고 해몽출판사,는 사용가능한 상호였지만 중고서점의 천원 코너에서나 보일 법한 이름이었다. 늦게까지 검색과 고민을 거듭하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보았다. 더웠다. 팔다리가 끈적거렸다. 이불은 눅눅했고 선풍기 바람은 미지근했다. 에어컨을 사야지. 에어컨이 없으니까 머릿속이 막혀버린 거다. 열대야는 열흘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고, 맞다, 밥솥의 남은 밥을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데, 에어컨을 사야지, 에어컨이 없으니까 눈꺼풀이 이렇게 무거운 거다……
 
 
#18. 꿒은 숨

꽉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떨어진다. 이마 위로. 이마 위로 물방울의 간격이. 이마를 보호해야 하는데 손에 힘이 없다. 헐겁다. 매미가 운다. 매미 소리가 달라붙은 밤의 열기와 습기는 유릿가루를 입힌 줄처럼 날카롭고 투명해서. 스르르 머리를 벤다. 이마 윗부분이 매끈하게 절단된다. 두개골이 열린다. 머리 안에 머리를 넣어 안을 들여다본다. 나의 뇌는 울창하다. 녹음이 우거져 있다. 바닥에 흩어진 꿈은 잎사귀에 가려 보이지 않고 잎사귀는 부채처럼 펄럭거리고 

꿒은 숨. 나무는 좀비.
 
*
 
씻지도 않고 불도 끄지 않고 잠든 어렴풋한 밤. 나는 나의 뇌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뇌 안의 화려하고 웅장한 풍경은 초고속으로 지나가서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손가락을 깨워 간신히 붙잡은 것은 꿒은 숨. 나무는 좀비. 열어둔 창밖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냉장고에 넣지 않은 밥은 기어이 쉬어 있었다. 나는 머리를 감으며 두개골을 만져보았고 출판 등록 신청서의 빈칸을 메웠다. 싱거웠지만 생각을 오래 한다고 더 멋진 이름이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었다. 며칠 후 구청에서 찾아온 신고확인증에는 꿒은숨, 띄어쓰기를 했던 칸이 사라지고 세글자로 된 한단어가 기재되어 있었다. 
출판사를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친구 L에게 나는 나의 원대한 계획을 털어놓았다. 같이 하지 않겠냐는 은근한 제안이기도 했다. L은 냉정히 잘라 말했다. 돈 많아? 다짜고짜 돈 얘기부터 꺼낸 L에게 나는 서운함을 표했던 것 같다. 그래? 그럼 말을 바꾸자. 꿈값 있냐고. 꿈을 사려면 값을 치러야지. 쌀이든 비단이든. 우물쭈물 나는 재미가 어떻고 의미가 어떻고 대꾸를 해보았지만 내 허술한 변명을 L은 하나하나 간단하게 쳐냈다. ……시선집? 요즘은 다 재수록료 받아. ……인디자인은 다룰 줄 알아? ……홍보랑 마케팅은 어떡할 건데? ……예전 출판사에서 내가 잡지를 만들었잖니. 편집장은 아이디어도 많고 필자 인맥도 넓은 사람이었어. 근데 사장이 원고료를 아까워해. 원고료가 박하면 좋은 글이 안 들어와. 죽도 밥도 안 되더라. 
 
L과 헤어지면서 나는 풀이 죽어버렸다. 뜬구름은 가볍게 흩어졌다. 벌을 서다 나온 기분이었다. 나는 막연했고 L은 구체적이었다. 도무지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진주씨를 처음 만난 날이 다시금 떠오르기도 했다. 진주씨가 꿈값을 후하게 쳐주어서 얼마나 흐뭇했던지. 꿈값 때문에 꿈을 건넨 건 아니었지만. 꿈값을 받지 않았어도 해몽전파사를 계속 드나들었을까. 받았더라도 밥 한끼를 먹을 수 없는 값이었다면. 나는 돈이 없었고 기술이 없었고 열정으로 의기투합할 친구도 없었다. 호기롭게 등록만 해놓았을 뿐 출판의 다음 걸음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삼월씨를 만나고서야 잊고 있었던 꿒은숨이 기억났다. 나는 꿒은숨의 주인이었다. 책을 낸 적도 낼 예정도 없는 유령출판사가 되고 말았지만 여하간 개업을 한 건 사실이고 사업자등록증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꿒은숨은 내가 꾸릴 세계여야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꿒은숨에, 삼월씨는 이미 다녀왔다고?
 
*
 
도서관에 들러 평행우주에 관한 책을 빌렸다. “이 세계에서는 우주들이 거품처럼 피어오른다. 끈이론은 10500개의 변형들이 각기 다른 우주를 묘사할 수 있다는 깨우침에 도달했다……” “우주는 여러 상태들로 동시에 존재하며 분화를 거듭한다. 양자역학의 체계가 중첩상태에 있는 것을 관측할 때마다 우주의 새로운 가지가 생겨난다……”
 
해몽전업사는 다른 우주에 있는 가게인가? 일테면 이 우주와 아주 약간만 차이가 나는 이웃우주에? 그쪽에도 이쪽에도 스타벅스와 진원정밀과 성창공예가 있지만 그쪽에는 해몽전파사 대신 해몽전업사가 있다? 해몽전업사에서는 꿒은숨의 다음 모임이 예정되어 있고? 꿒은숨은 유령출판사가 아니라 꿈을 나누는 모임의 트위터 계정이고? 허황된 몽상 같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는 삼월씨의 이야기를 납득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삼월씨는 어떻게 그 모임엘 다녀온 거지? 과학자들의 말대로라면 무한한 각각의 우주들은 심오하게 격리되어 있다. 우주와 우주 사이에는 어떤 시공간적 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 말이 맞다면 해몽전업사의 사진이 여기 있어서는 안 된다. 삼월씨도 그 모임에 다녀와서는 안 된다. 안 되어야 한다. 안 되어야 하는데. 안 되는 것만은 아니라면. 만약 아니라면. 저쪽 우주에도 나라는 사람이 있어 진주씨와 인연을 맺었을까. 진주씨는 저쪽에서도 수술을 기다리고 있을까.
 
우주적 스케일의 꿈을 몇번쯤 꾼 적이 있다. 눈을 뜬 후 나는 충만했고 또 아연했다. 꿈은 꿈일 뿐이지만. 꿈속에서는 말과 이미지의 관절이 아무 데로나 돌아가고 바로 그 아무 데로나의 유연함 때문에 신비하고 감탄스럽지만. 그래도 삶을 재료로 삼는 것이 아닌가. 내 삶과 무관한 이 장엄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19. 광란의 푸른 별

일식의 컴컴한 하늘 아래. 전갈자리가 뚜렷이 보인다. 전갈의 꼬리가 움직인다. 

꼬리의 마지막별이 떨어진다. 이쪽으로 떨어진다. 광란의 푸른 별이. 고리를 겹겹 두른 얇고 푸른 별이. 삶의 부록과도 같은 산산조각의 창백한 별이. 

나는 활주로에 혼자 서서. 비행기도 없이 날개도 없이 혼자 서서. 떨어지는 별을 본다. 

미지의 우주에서 온 하나의 에피소드로 우리의 삶은 이토록 풍요롭구나. 그 모든 표절을 무릅쓰고 눈물겹구나.


#20. 음력의 막

음력의 막이 눈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다. 

설마. 가슴이 뛴다. 지열이 끓는 모래벌판으로부터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하늘에서는 거룩한 함박눈이 내린다. 여름의 아지랑이와 겨울의 함박눈이 만나는 무릎 높이에 투명한 막이 형성되어 지평선 끝까지 끝의 끝까지. 몇백년에 한번 나타나는 기현상이라는데. 설마.

웅크린 몸을 일으킨다. 등이 잘 펴지지 않는다. 기다리는 줄도 모르면서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이 분명하다. 신발을 벗는다. 음력의 막 위에 올라선다. 맨발에 닿는 음력의 막은 살얼음보다 얇고 비단보다 부드럽다. 찢어질 것처럼 환하게 시야가 트인다. 

가슴이 뛴다. 뒤로 물러선 지평선을 따라 멀리 저 멀리 음력의 난민 행렬이 지나간다. 알 것 같다. 내 삶의 숨겨진 무한수열. 닿을 수 없지만 나는 모호한 열망에 휩싸인다. 놓치고 싶지 않아. 목에 걸린 망원경을 눈에 대고 초점을 맞춘다. 

앞이 사라진다. 

틀렸구나. 이쪽으로 행렬을 끌어당겨야 했는데. 나의 눈동자가 행렬 속으로 빨려든다. 거추장스러운 몸뚱이는 버려두고. 저쪽이 먼저였어. 저쪽이 더 힘이 세다. 음력으로만 시간이 흘러서. 나는 음력에 익숙하지 않아서. 안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다가 쓰러진다. 

알을 매기지 않은 미래의 새총이 이마를 겨눈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여행의 흔적이 조약돌 형태로 가슴을 꿰뚫었다고요 아팠다고요.

종말은 아직이잖아요.

잠긴 목소리로 나는 어디다 대고 뇌까린다. 제대로 잠복하고 망을 보라고 했잖아. 조짐이 있으면 신호를 보내라고 했잖아. 함부로 초과되지 말라고 했잖아. 뭣도 모르고 먼저 발각돼서 음력에 갇혔잖아. 앞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초크를 들고 있는 것 같다. 외딴 공장에서. 음력의 투명한 막을 걷어 망토와 이불을 만드는 식민지에서. 
 
*
 
음력의 막은 눈앞에 순간적으로 펼쳐졌던가. 이미 펼쳐져 있었던가. 펼쳐진다, 펼쳐져 있다, 펼쳐진다, 펼쳐져 있다, 펼쳐짐과 펼쳐져 있음 사이에서 나는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시간은 음력으로만 흐른다. 펼쳐짐인가 펼쳐져 있음인가에 따라 음력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다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음력의 우주는 다른 가지를 친다. 단어의 한끗 차이로도.
 
언젠가 나는 진주씨에게 꿈을 옮겨 적는 고충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햇수로는 분명 30년쯤 되는 시간이 휙 지났는데 시간 감각이 없어요. 주마등처럼 지났다거나 그런 게 아니고요, 무시간적이라고도 못하겠고요, 없음, 시간 없음 그 자체에요, 이런 없음은 어떻게 살리죠? 진주씨는 나름의 옮겨 적기 원칙을 정했다고 했다. 70%의 원료. 20%의 문체. 10%의 작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이 정도 비율을 지켜보려고 해. 원료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저쪽의 원료를 이쪽으로 옮기려면 때로는 멜로디가 살아야 하고. 때로는 비트가 도드라져야 하고. 어떤 문장에는 메아리가 필요하고. 메아리보다는 음영이 필요할 때도 있고. 
 
이쪽의 알맞은 단어와 접속되지 못한 장면들. 장면 속에 배치되지 못하고 겉도는 목소리들. 그런 것들을 이쪽 세계로 옮겨오기 위해 나는 몇 퍼센트의 작위를 섞고 있는 것일까. 때로는 손에 피를 묻히는 기분이다. 내 잠속에 잠시 들른 것들을 강제로 붙잡아두기 위해 꿈의 숨통을 끊어 박제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 삼월씨가 다녀온 저쪽 우주에 또다른 내가 살고 있다면, 그 우주의 나도 이 우주의 나와 똑같은 꿈을 꾸었다면, 어떤 문체로 얼마만큼의 작위를 더해 음력의 막을 옮겨 적었을지. 그 우주에 옮겨진 음력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있을지. 
 
생각을 해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삼월씨는 아직 무소식이다. 꿒은숨을 꾼 적이 있다고 나는 미처 그에게 말하지 못했다. 삼월이 가고 있다. 삼월이 가면 만우절이 온다. 삼월이 가기 전까지 연락이 없으면 삼월씨도 악의 없는 거짓말 중 하나가 되어버릴 듯한 기분. 안타까운가. 모르겠다. 나는 그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도 같고 영영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도 같다.



신해욱
시인.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산문집 『비성년 열전』 『일인용 책』이 있다. 
 


10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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