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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 동물(10회)

박솔뫼
2019년 04월 16일
          


대전에 가 있던 것은 하루뿐이었지만 친구가 집에 들러 차미를 챙겨주었다. 친구는 집에 종종 놀러왔지만 차미와 친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사이이다. 이전에도 며칠 여행을 갔을 때 친구가 와서 차미를 챙겨주었다. 차미에게 밥을 주고 물을 주고 화장실을 청소해주고 간식도 주고 말도 걸어주고 놀아주려 시도하였다. 그보다 긴 여행을 가게 된다면 상상하기 힘들지만 친구에게 우리 집에서 살라고 부탁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내가 어딘가 가 있을 때 차미는 무얼 할까. 차미는 잠을 잔다. 차미는 침대가 좋다. 내가 먼 곳에서 오래 한달쯤 있다면 누군가 나의 집에서 차미를 도와주고 차미를 챙겨주고 나는 먼 곳에서 그곳에 익숙해지려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는 그게 왜 이렇게까지 쓸쓸한 생각인가 잠깐 생각했다. 목발을 쓸 때는 거의 외국에서 사는 것 같았다.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길과 거리와 타려고 들면 탈 수 있겠지만 시도하지 않게 되는 지하철과 버스를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 목발을 쓰는 사람과 휠체어에 탄 사람들의 집으로 가는 길을 나는 이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목발은 아직 버리지 않고 베란다에 두었다. 차미는 목발을 자꾸만 때려서 쓰러뜨리려고 했다. 나의 눈으로는 알 수 없는 침대 밑에 있는 눈이 보는 목발의 움직임들. 아무튼 나는 멀리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계속 방에 있고 싶었다. 대전 중앙로역 근처를 걸으며 모든 곳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곳의 모두는 왜 어디로 가고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 어떤 방에 누울까. 친구는 차미에게 욕을 먹었다. 차미는 친구를 여러번 보았지만 놀랐는지 탐탁지 않은지 언짢아했다. 그래도 친구는 차미에게 밥을 주고 물을 새로 갈아주었다. 간식도 주었다. 나는 나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기는 다르고 차미는 목발을 때리고 목발은 차미를 위협하고 대전에서는 무엇이 반복되고 돌아갈 호텔의 방은 건조하고 실내 온도가 높을 것이다. 물론 온풍기를 켜고 나서의 이야기이지만.
 
주말에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다. 친구에게 피에르의 이야기를 하였다. 친구는 피에르의 본명을 물었다. 
 
─ 제 이름은 평범한데요. ○○○이에요.
 
피에르의 집에서 들었던 이름이 떠올랐는데 왜인지 말하기가 꺼려졌다. 내가 그게 하고 머뭇거리자 친구가 뭐야 비밀이야? 됐어 몰라도 돼 아냐 나중에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 친구의 이름은…… 그냥 공평하게 둘 다 말하지 않는 게 낫겠다. 아무튼 친구가 오기 전 피자를 시켜놓고 기다렸다. 지난번에 고기를 먹었으니까 오늘은 뭐 다른 거 먹지. 오랜만에 피자를 먹기로 하고 친구는 선물로 딸기를 받았다고 가지고 온다고 하였다. 우리는 피자를 먹으며 이전에 본 영화를 배경음악처럼 틀어놓고 각자 핸드폰을 확인하고 또 아무 것도 안했다. 가끔 친구를 만나 동네를 걸으면 모르는 골목을 마주하게 되고 여기가 어디야 물으면 여기 그때 너 휠체어로 자주 다니던 길이잖아라는 답이 돌아왔는데 앉아서 보던 길과 일어서서 보던 길은 왜인지 어딘가 다르게 보였다. 피자를 세조각씩 먹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쉬다가 커피를 내리고 딸기를 씻어왔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천천히 딸기를 먹었다. 우리에게는 소화시킬 겸 걷자라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왜인지 둘 다 꾸물거리고 있었다.
 
─ 나 다쳤을 때 안 도와줬던 사람들 다 패고 다닐 거야.
 
─ 뭔가 아무 것도 안 했는데 다 처리가 되는 거면 좋겠는걸.
 
그런 게 계획적인 복수 같은 건가 생각하다가 나는 그런 걸 하고 싶은 게 아닌데. 이 개새끼 소새끼들 씨발놈들 나는 너를 인간 취급하지 않아라고 줘 패는 걸 하고 싶은 건데.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복수는 필요하다. 우리는 겨우 남은 힘을 그러모아 산책을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래서 밖으로 걸으러 나왔다. 우리는 배를 꺼뜨리려고 했는데 피자 세조각은 웬만해서는 사라지지 않는가보다. 삼십분쯤 걷다가 집으로 왔다. 
 
一 나는 하네다로 도쿄에 가본 적이 없는데.
 
─ 나는 나리타로 가본 적이 없는데.
 
─ 거기에 가면 김포에서 하네다로 가는 기분을 알 수도 있는 건가.
 
─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너무 그런 생각만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런 책을 읽고 계속 그런 생각하고 그래서 그렇게 느끼는 건가. 암튼 그렇기는 했는데.
 
때마침 피에르에게 연락이 왔고 나는 친구와 함께 피에르를 만나기로 하였다. 그곳이 여전히 항공기 같으며 나는 창 너머 저편이 구름이라고 여전히 믿게 될까. 친구는 나를 데려다주고 우리는 손을 흔들었다. 너는 너의 집으로 방으로 나도 얼른 방에서 침대에서 이불 안으로 그것을 잘 이해하는 것은 어린이일 것이다. 잠이 들고 나를 씻어 말리듯 널어놓는 기분으로 일어나 회사에 가야 하겠지만 어쨌든 방으로 침대로 이불 속으로. 
 
친구와 나 피에르는 계양역에서 만났다. 지난번처럼 인천공항에서 만나서 갈까 생각했지만 세 명의 시간이 맞지 않았다. 공항철도는 여러곳을 지나고 거기에는 공항과 상관없는 번화가 오피스 어떤 곳 어떤 곳들이 대부분이지만 왜인지 공항철도를 타는 것만으로 공항에 가는 건가 어딘가 새로 만든 레일이 있고 트렁크를 끌고 다니고 그곳으로 가는 건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계양역은 서울에서 생각보다 가까웠고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우리는 인적이 드문 길을 걷거나 인천 지하철로 갈아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피에르가 차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나와 친구는 뒷자리에 타고 자동차 시트가 따뜻해지고 나는 차미를 생각했다. 고양이들은 차를 타면 무서워하고 괴로워하겠지? 아니면 좋아하는 고양이도 어쩌면 있겠지. 내가 운전하고 나와 차미만 타는 차도 고양이들은 힘들어할까 그런데 따뜻한 자동차 시트는 좋아할 것 같았고 이 새 시트를 얼른 발톱으로 뜯어놓고 싶겠지 생각하다가 부드러운 털 만지고 싶고 봉제인형에서 나는 냄새와 땅콩버터 냄새를 섞은 것 같은 차미의 냄새. 나는 너가 너무 좋아. 그의 오피스텔까지는 더 긴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웠다.
 
─ 이렇게 가까웠나요?
 
─ 별로 멀지 않아요. 그런데 걷기엔 좋지 않죠 길이.
 
─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셋은 어색하게 한마디씩하고 인사하고 또 다시 인사하고. 그는 괜찮으면 외투를 걸어주겠다고 하였다. 내 코트에 붙어 있는 고양이털이 왠지 반복되는 장면 같고 이것은 기꺼운 반복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서 있는 세명의 성인은 창밖의 눈을 보고 눈이다 낮게 탄성을 지르고 큰 창으로 다가가고 눈에도 무게가 있잖아. 함박눈 같은 것이 아니라 가볍게 흩날리는 눈을 보며 문득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시간이 너무 지난 것 같아 우리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고 울리는 가벼운 외침을 각자의 가슴 속에서 느꼈다. 왜 아이처럼 시간이 막연하게 많지 않을까? 우리는 일을 하고 차를 타고 운전을 한다. 친구는 피에르의 이름을 묻고 뭐라고 불러야 되냐고 묻고 피에르도 친구의 이름을 묻고 나는 정수기에서 물을 마셔도 되겠느냐고 묻고 가루처럼 흩날리는 눈과 서 있는 두 사람을 보다가 미지근한 물을 삼켰다. 송년회도 신년회도 아니지만 우리는 식탁에 앉아 샴페인과 와인과 그런데 운전할지도 모르니 저는 토닉워터를 마시겠어요. 치즈와 샐러드와 과일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함께 먹기 위해 가져온 쿠키와 케이크를 먹고 홍차를 마시다 그의 안내로 기내에 준비된 좌석에 앉았다. 그는 또 다시 종이컵에 커피를 주었고 기내는 건조했고 따뜻했다. 나는 눈을 감고 졸다가 깨어나 그외에 달리 할 일이 없을 때의 정말로 다른 것이 금지된 상황에서의 독서를 했다. 친구는 계속 창에 기대 잠을 잤다. 친구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두시간이 지나 있었고 우리는 거실로 나와 홍차를 한잔씩 더 마셨다. 피에르는 우리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눈은 흔적도 없었다. 올해는 눈을 제대로 못 봤네. 나는 어느 해 겨울에 본,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쌓이고 치우고 내리고를 반복하던 도시를 떠올렸다. 눈이 보고 싶어졌다. 차미의 배에 나의 시린 손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차미는 먀 조용히 일어나 밥을 먹으러 갔다.
 
이런 한주. 긴 겨울에 해내는 몇가지 일들.
 
어디서 들고 왔는지 차미는 세이코 시계를 다시 꺼내와 앞발로? 손인가요? 마구 때렸다.
 
나는 시계를 서랍에 넣었다. 방안을 청소하고 테이블 위를 치우고 버릴 것들을 버렸다. 
 
이렇게 간신히 해내는 몇가지 일들. 
 


박솔뫼
소설가.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겨울의 눈빛』 『사랑하는 개』, 장편소설 『을』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머리부터 천천히』가 있다.
 


11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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