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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몽전파사(10회)

신해욱
2019년 04월 18일
         


J가 다시 메일을 보내왔다. 
 
Re: Re: 제목없음
잘 지내고 계신가요. 아직 춥네요. 저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엄마는 다행히 위기를 넘겼고 일반병실로 옮겼어요. 며칠 후면 퇴원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오랫동안 재활 치료를 받으셔야겠지만요.
 
보내주신 꿈을 읽고 조금 힘들었어요. 옛날 일이 생각나서요. 내가 꾼 꿈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잠시 들더라고요. 초등학교 몇학년 때였더라. 엄마가 직접 싸준 김밥을 먹고 싶다고 떼를 쓴 적이 있어요. 며칠 동안 저는 엄마와 말도 안 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어요. 김밥을 싸주지 않으면 모녀 관계라도 끊겠다고 나설 대단한 기세였죠. 왜 그랬을까요. 실은 김밥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엄마는 정말 김밥을 싸고 있었어요. 단무지 대신 통조림 파인애플을 넣어서요. 엄마는 김밥을 싸본 적도 없고 먹지도 않으니까. 김밥 안의 단단하고 노란 것이 파인애플인 줄 알았대요. 파인애플김밥. 지금 적고 보니 샐러드김밥 돈까스김밥 유부김밥 같은 것들에 이은 신메뉴 같네요. 근데 그때 저는 못된 말을 뱉었고 엄마의 손을 뿌리치다가 도마 위의 김밥을 바닥에 팽개쳐버렸어요. 아주 나빴죠.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려요. 어림해보니 그때 엄마는 지금의 저보다 어렸던 것 같아요. 어린 엄마의 머릴 저도 쓰다듬어주면 좋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늙고 초췌해지셨네요. 헐렁한 환자복을 입고 머리맡 폴대엔 주사액 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요. 주무시면서 미간을 자꾸 찌푸려요. 무슨 꿈을 꾸고 계신 걸까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해몽전파사에 처음 간 건 루시드드림 강좌 때문이었어요. 친구 하나가 루시드드림이란 걸 알려줬죠. 자기는 꿈속에서 꿈을 꾼다는 사실을 자주 자각한다는 거예요. 내키면 날 수도 있고 무서운 기분이 들면 요령껏 깰 수도 있다나. 연습하면 누구나 꿀 수 있고. 그러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추천해줬죠. 그래? 정말? 저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초보자 가이드를 보며 연습을 했어요.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꿈일기를 쓰고 꿈표식을 찾고 하루 한번씩 이완 연습도 하면서 틈날 때마다 시도했는데요. 안 되더라고요. 다들 열심히 꿈속에서 꿈을 자각한 경험담을 올리는데 나는 뭔가 모자란 사람인가. 실망스럽고 속상했어요. 그러던 차에 커뮤니티 운영진 중 한분이 오프라인 강좌를 한다고 공지를 올렸더군요. 해몽전파사라는 데서요. 해몽전파사에서 여러가지 꿈 모임이 열린다는 걸 강좌에 참석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날 밤 알람을 맞추고 MILD라는 훈련 방식을 시도했는데, 역시나 루시드드림은 실패였지만요, 실패한 루시드드림에 대한 꿈이 신기할 만큼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았어요. 무서웠지만 손끝 발끝까지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었달까. 그 꿈을 일기장에 옮기면서 저는 루시드드림에 대한 욕심을 접었어요. 그리고 해몽전파사의 낭독 모임에 나오기로 마음먹었죠. 그 꿈을 보내요. 언젠가 모임에서 읽으려 했는데 늘 벼르다가 말아버렸네요.
 
 
#21. 영도에서

우리는 영도에 모여 있다. 

빠르게 물이 차오른다. 이상하다. 밀물은 멀었는데. 영도는 물에 잠길 것이고 을숙도는 을숙도의 개와 새와 갈대와 함께 이미 잠겨 사라진 것 같다. “청습현상이 임박했습니다.” 가이드가 입을 연다.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루시드드림 일일투어를 하는 중이다. “안 되겠어요.” 그는 우리에게 마스크를 나눠주고 태연하게 기지개를 켠다. 

우리는 운이 나쁘다. 청습현상이 일어난 곳에는 꿈의 굵직한 입자들이 침투하지 못한다. 굵직한 입자 없이는 뚜렷한 이야기도 가까운 신기루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미세먼지만 청습현상을 뚫고 흐릿하게 떠다닐 것이다. 초보에게는 무리다. 초보란 그런 것이다. 호흡기가 망가지고 기침과 재채기만 하는 그런 것이다. 가망이 없다. 영도는 끝이다. “끝이라고요? 영도가 끝이면 다 끝인가요?” 우리는 영도의 돌을 움켜쥐고 항의를 한다. “영도 말고는 없다는 게 말이 돼요?” 우리는 팔매질을 할 기세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세계의 끝 부산에. 투어에 참가하려고 적금을 깨고 가족도 버렸는데.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원통하다. “정 그러시다면.” 가이드는 하품을 하며 덧붙인다. “마이너스 포인트로 가야 해요. 플러스 포인트로 가는 길은 막혔습니다.” 그는 턱 끝으로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내고 맨홀 뚜껑을 연다.

맨홀 아래로 나선형의 갱도가 이어진다. 영도에서 그만둘 것이 아니라면 더 깊은 데로 가는 수밖에 없다. 갱도는 좁고 어둡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메아리를 조심하세요.” 앞서가는 가이드의 목소리만 텅텅 울린다. 블랙아웃에 화이트노이즈. “잘못 깨면 끝장이에요.” 이마에 석회물이 떨어진다. 메아리가 갱도를 메운다. 목소리의 방향은 짐작되지 않고 목소리는 메아리는 잘못 깨면 끝장이다. 플러스 포인트 쪽으로는 은회색의 수로가 이어지죠. 수로를 따라가면 코를 막지 않고도 꿈속으로 잠수할 수 있지만. 마이너스 포인트는. 아시죠. 늪이죠. 늪에 고여 썩어가다가 다른 꿈의 거름이 되는 겁니다. 습기에 비린내가 섞인다. 갱도의 바닥은 점점 질척해진다. 이윽고 마이너스 포인트에 다가온 거구나. 밑창이 두꺼운 운동화를 신었는데도 발바닥에 물컹한 것이 닿는다. 뛰고 싶다. 서둘러야 하는데 우리는 신분증이 없다. 루트가 정해진 투어인데도 우리는 어쩐지 쫓기는 것 같다. 주머니에 손을 넣자 성냥갑이 만져진다. 성냥갑의 성냥개비 끝에는 죽은 감정이 입혀져 있다. 다행이다. 죽은 감정에 불이 더 잘 붙으니까. 가족도 버렸으니까.

성냥을 켠다. 우리는 죽다 만 쥐. 쥐벼룩. 쥐며느리. 쥐며느리가 물어뜯은 팔다리를 밟고 서서.

성냥을 켠다. 눈이 퇴화한 여자가 동굴의 문을 지키며 점자책을 읽고 있다. 

성냥을 켠다. 영도의 물이 넘어온다.

성냥이 꺼진다. 다른 빛이 든다. 뚫리겠구나. 뚫리지 않는다. 손바닥은 뚫리지 않는다. 손가락으로는 손바닥이 뚫리지 않고 빛은 커튼을 뚫고 들어온다. 
 
*
 
J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J가 해몽전파사에 처음 온 날을 기억할 수 없다. 내가 J보다 나중에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J는 왜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진주씨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심코 섞여 나온 걸까. 
 
나는 J와 주고받은 메일을 진주씨에게 보여주었다. 
 
“이메일 주소를 안 알려주시니까 저에게 보내잖아요. 못 나오게 된 사정도 처음 나오게 된 사연도 사장님에게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진주씨는 내 말을 흘리고 J와 나 사이에 오간 꿈들만 골똘히 들여다보다가 딴소리를 했다. 
 
“벌써 세 사람 꿈이 모였네? 번호 옆에 꿈꾼 사람의 이니셜을 달아주면 어떨까. 자기는 H, 나는 P, 이런 식으로.”
 
나는 고집스레 내가 하던 말을 이어갔다. 
 
“이번 영도 꿈도 저번에 보낸 피의 꿈도 사장님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려던 거잖아요.”
 
J의 의중을 멋대로 지어내면서 뜨끔했지만, 말해놓고 보니 또 그게 사실인 것도 같았다. 
 
“자기들 둘이 주고받아서 더 좋았잖아.” 
 
진주씨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뭐가요?”
 
“엄마 이야기도 나누고.”
 
“사장님과도 나눴겠죠.”
 
“나는 엄마 몰라.”
 
“……저는 루시드드림 같은 거 몰라요.”
 
나는 말문이 막혀 침을 꿀꺽 삼킨 후에도 어쩌자는 건지 집요했다. 
 
진주씨는 한숨을 쉬며 눈을 들었다. 그러고는 책장에서 책을 한권 꺼내 내게 건넸다.  꿈 : 내가 원하는 대로 꾸기. 저자는 스티븐 라버지. 책장에 늘 꽂혀 있어 눈에 익은 제목이지만 그동안 한번도 펼쳐볼 생각을 하지 않은 책이었다. 청춘들이여, 큰 꿈을 품어라, 같은 하나마나한 내용이 장황하게 적혀 있을 줄 알았다. 나는 진주씨가 건넨 책을 그제야 뜨악한 표정으로 듬성듬성 훑어보았다. 기억술을 이용한 의식적 꿈꾸기 유도 테크닉(Mnemonic Induction of Lucid Dreams), 일명 MILD, J가 말한 MILD라는 게 이건가, 또 최면 테크닉, 자기 암시 테크닉, 무슨무슨 테크닉에 대한 설명이 많았다. 자기계발서나 멘토링북 계열이 아니라는 건 확인했지만 꿈꾸기 테크닉이라니, 아무래도 나는 얕보는 마음이었고, 휴대형 의식적 꿈꾸기 유도 기구인 드림라이트……라는 구절을 보고는 급기야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웃긴 건 아니었는데도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었다. 

“자각몽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름 고전이야.”

진주씨는 나무라는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그래서. 해보셨어요?”

빈정거리려던 건 아니었는데. 터트렸던 웃음을 나는 얼굴에서 깨끗이 지워내기 어려웠다. 지운 웃음과 남은 웃음이 뒤섞여 광대뼈를 건드리고 입 주변의 근육을 일그러트렸다. 진주씨는 조금 화가 난 듯했다. 카디건 자락을 여미고 창밖을 보며 소리 없이 어깻숨을 쉬었다. 

“여기서 자각몽 강좌를 열었던 강사는 내 대학 동기야.”

진주 씨는 숨을 크게 들이쉰 후 장식장에서 모래시계를 꺼내 탁자에 올렸다.

“그 친구가 개업선물이라며 준 거.”

모래가 흘러내렸다.

“한시간짜리야. 이걸로 시간을 맞추고 나도 한동안 마일드를 해봤지.”

진주씨는 마일드라는 것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일단 알람을 맞추고 네다섯시간 자고 일어나 꿈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한시간 정도 깨어 있다가 다시 누운 다음 좀 전에 꾼 꿈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음을 집중한다. 꿈은 대체로 렘수면기에 꾸는데, 수면 주기가 반복될수록 렘수면 시간이 길어지고 간격은 짧아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마지막 수면 주기에 들면 자각몽을 꿀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건가요.”

“그런 거지.”

“정말 맘대로 날아다니기도 하고 그래요?”

“아니.”

“그럼요?”

“추락했어. 나는.”
 
 
#22-P4. 청색증

전망은 환상적이다. 하늘. 바다. 초원. 초원에 점점이 흩어진 함석집들. 도장으로 꾹꾹 눌러놓은 듯 함석집들은 다 똑같고 반듯하다. 좋군. 아무래도 좋다. 삶은 푸르고 나는 청색증을 앓고 있다. 청색의 바람이 분다. 청색의 구름이 흘러간다. 처마에서 처마로 빨랫줄은 줄줄이 이어지고 빨랫줄에는 어떤 속옷이 어떤 이불이 어떤 양말이. 해진 것이 빳빳한 것이 창백한 것이. 이토록 아름다운 늘어진 빨랫줄을 본 적이 없다. 탄성이 흘러나온다. 남의 집 빨래를 훔쳐보는 일은 왜 이렇게 즐거운가. 빨랫줄에 널린 빨래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빨래 바구니를 든 여자가 빨랫줄을 향해 걸어간다. 바구니는 푸르고 여자의 걸음은 가볍다. 바구니 속에 몰래 숨을 수만 있다면. 저 풍경 속에서 내가 빨랫줄의 곡선처럼 아름다울 수만 있다면. 나는 침을 삼키며 다음을 기다린다. 구하면 얻으리니. 믿으면 이루어지리니. 바구니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던 나의 그림자는 바닥에 떨어진다. 떨어지면 돌아가리니. 나의 그림자는 오염물이 제거되지 않아 빨랫줄에 걸릴 자격이 없다. 다시 세탁기 안으로 돌아가야 하겠지.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선다. 펄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의 귀에 숨은 신이 속삭인다. “맹목성을 통해서만 펼쳐지는 시야가 있어. 앞을 봐.” 

나의 어깨에 숨은 신이 손을 올린다. “천진함에 의해서만 가능한 도약이 있어. 앞을 보라니까.” 

앞을 본다. 눈을 감고. 숨은 신이 나의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일어선다. 비로소 나는 깨닫는다. 꿈속이구나. 청색증은 꿈속의 풍토병이구나. 청색증 때문에 숨은 신을 만난 거구나. 나는 아래를 내려다본다. 고랭지의 꿈은 푸르고 전망은 환상적이고 한발 앞은 절벽. 땡볕. 신이 나의 등을 떠민다. 

삶은 푸르다. 나는 바닥에 누워 있다. 어디까지 추락해서. 깨났군요. 좋죠. 이것은 어스름의 목소리. 반짝이는 거미줄이 머리 위를 가로지른다. 거미줄에 걸린 옷가지들이 펄럭거린다. 빨랫줄은 어디 가고 거미줄이. 멀고 또렷하다. 장대에서 장대로 저 먼 가지 끝으로 지붕 밑으로 난간으로 거미줄은 겁 없이 가늘고 유연하고…… 천진하고 맹목적이고…… 새벽의 푸른빛을 자르고 있다.
 
*
 
진주씨는 루시드드림이 일종의 줄타기인 것 같다고 했다. 왼쪽 마음은 꿈속으로 몰입하고. 오른쪽 마음은 꿈속을 관찰하고.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기술이 중요하다. 몰입만 하면 꿈에 빠져들어 꿈인 줄 모르면서 꿈을 꾼다. 관찰하려는 의욕이 너무 크면 잡념이 쳐들어와 불면의 피로만 쌓인다.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은 따라주지 않더라. 나로서는 어려웠어. 수련과 명상을 이어갈 만한 인내심은 없었고. 자각몽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번번이 추락했어. 날다가 추락하고. 걷다가도 추락하고. 누워 있는데도 추락하고. 

나는 진주씨의 실패담을 들으며 어디선가 읽은 돌고래 이야기가 생각났다. 돌고래는 좌뇌와 우뇌가 번갈아 잠에 든다던가. 좌뇌가 잠을 자는 동안 우뇌는 깨어서 망을 본다. 우뇌가 잠에 들면 좌뇌가 깨어 호흡을 조절하고 지느러미나 꼬리를 돌본다. 꿈도 번갈아 꾸겠지. 좌뇌의 꿈은 우뇌가 관찰하고. 우뇌의 꿈은 좌뇌가 살펴주고. 그러면 돌고래가 꾸는 꿈은 전부 다 루시드드림일까.

“진주씨.”

나는 오랜만에 진주씨를 진주씨라고 불렀다. 

“응?”

진주씨는 모래시계 안의 모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듣고 있다는 표시만을 했다. 

돌고래의 잠에 대해 들어보셨어요?

라고 운을 뗀 다음 나는 무례하게 군 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다. 모래는 거의 다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위쪽에 남은 모래의 양이 얼마 되지 않자 점점 더 빠르게 시간이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수술할 때 누가 옆에 있어요?”

내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진주씨는 나를 가만히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모래시계를 뒤집어놓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신해욱
시인.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산문집 『비성년 열전』 『일인용 책』이 있다. 
 


11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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