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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몽전파사(11회)

신해욱
2019년 04월 25일
          


#23. 냉동껍질

환등기가 돌아간다. 스크린이 밝아온다. 눈이 눈을 뜨고. 눈이 눈을 깜빡인다. 이목구비가 늘어난다. 눈꺼풀 속에서 멋대로 떠다니던 반점들이 부산스레 정렬하며 두벌, 세벌, 웃는 실눈, 웃는 입술, 한쪽 귀, 동그란 귀, 방향이 바뀌자 입술이 일그러지고, 다시 두벌, 이목구비 옆에 숫자와 기호가 명멸하고 낄낄거리고,

“20분의 7은 신비로 가득하대.” 
“3.5로 바꾸면 맹탕이야.”
“곱하면 잡탕인데.”
“더하면 재탕이지.”
“어려운 맛이라서 이마를 찌푸릴걸.”
“약봉지를 풀었다고 쳐. 지수와 로그에서 긁어낸 가루를 입안에 털어 넣은 거야.”

두런두런 만담이 오간다. 마카다미아 말인가. 마카다미아 말을 몰라도 나는 다 알아듣는다. 통역용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편리하다. 렌즈를 낀 채로 눈만 감고 있으면 된다. 체온으로 렌즈가 적당히 따뜻해지면 한 글자 두 글자 자막이 뜨고 자막은 스크린을 지나 호흡의 리듬을 타고 심장의 박동을 타고

“이것은 냉동껍질이잖아.”

목소리가 되어. 마카다미아의 목소리가 나에게 렌즈를 빼라고 다그친다. 목소리의 뒤로 사운드트랙이 흘러나온다. 슈베르트의 망가진 멜로디구나. 환등기가 돌아가는데 영화는 시작되지 못해서 멜로디에 딱지가 앉고. 옛날 영화는 껍질을 벗겨내야만 상영될 수 있다는데 목소리는 뭉개지고 자막은 흐려지고 만담은 잡음이 된다. 영화의 껍질이란 그런 껍질이란. 눈꺼풀을 비벼서 사납게 비벼서 비늘처럼 비듬처럼 입김으로 날려버리면 나는 스크린 속에서. 스크린 속의 저 푸른 하늘 아래서. 
 
*
 
팔을 베고 잠시 엎드렸다가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던 게 맞나. 의식은 반쯤 깨어 있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나의 숨소리가 들렸고 이마에 눌린 왼쪽 팔은 저렸다. 머릿속 스크린에 이상한 얼굴과 이상한 말들이 떠다니는 동안 내 귀는 바깥으로 열려 있었고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이런 것도 자각몽일까. 자각몽은 꿈속에서 꿈이라는 걸 자각하는 거라던데. 내가 자각한 건 반대로 내 신체의 감각이니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러면 백일몽인가. 환등기의 빛을 받은 스크린은 하늘색이었던 것 같다. 스크린에 뜬 눈 코 입과 자막은 흰색이었던 것 같다. 청명한 인공 하늘에 실구름으로 그린 그림처럼. 실은 자각몽도 백일몽도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白日夢. daydream. 대낮에 꾸는 꿈이 백일몽인가. 꿈속의 세계가 대낮이라야 백일몽인가. 아니면 흰빛이 도는 꿈을 백일몽이라 하는 건가. 
 
정오가 가까워진다. 하늘엔 여태 달이 떠 있다. 내 꿈의 배색처럼 파란 바탕에 흰 반원. 어제를 끝으로 학원은 그만 나가기로 했다,기보다는 잘렸다. 독감 때문에 한주를 통째로 빠진 탓이 컸지만 그전부터도 내 수업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았던가 보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새로 오는 강사에게 인수인계를 한 다음 밤늦게 가게에 왔다. 큰 미련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속상했고 아이들에게는 미안했다.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고 모래시계와 놀며 밤을 보냈다. 모래시계는 아직 탁자 위에 있다. 진주씨는 모래의 양이 한시간짜리라고 했지만 정확히 한시간은 아니다. 처음 잰 모래의 시간은 58분 47초. 뒤집어 놓은 두번째 모래의 시간은 1시간 4초. 가게를 물려주는 건 됐고. 진주씨에게 나를 해몽전파사의 정식 매니저로 채용해달라고 할까. J와 계속 몽몽교환 편지나 주고받아볼까. 다시 뒤집은 세번째 모래의 시간은 58분 48초. 일기를 뒤적이던 네번째 모래의 시간은 1시간 3초. 모래가 쌓이는 불룩한 부분도 모래가 통과하는 잘록한 연결 부위도 눈으로는 위아래가 똑같아 보이는데 약 1분만큼 비대칭이다. 비대칭의 시간. 비대칭의 전파사와 전업사. 비대칭의 전파사와 출판사. 비대칭의 꿒은숨. 삼월씨에게 먼저 연락을 해볼까. 없는 번호이면 어쩌나. 다섯번째 모래의 시간은 1시간 4초. 모래시계를 뒤집을 때마다 맥주 한 캔. 나는 모래알의 형태로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이 좋았다. 쌓였다가 흘러내리며 다시 쌓이는 모래알의 다른 속도가 좋았다. 사라지지 않고 까마득해지지 않고 투명한 용기 안에 머물러주는 모래의 담담한 시간이 좋았다. 손가락 사이에서 모래알처럼 흘러나간 꿈속의 아이들도 좋았다. 나의 친구였던 아이들.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 내 곁을 스쳐갔던 아이들. 아이들은 환했고 또 슬펐다. 
 
 
# 24. 응고몽

“곤생님!”

저쪽에서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나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반갑지만 의아하다. 언제 교문으로 들어선 걸까. 아이들은 왜 나를 곤생님이라 부를까. 우체국에 가야 하는데. 우체국은 휴일이고 내 손에는 편지가 들려 있다. 봉투에는 주소가 없다. 어디로 보내려던 편지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궁지에 몰린 기분이다.

나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아이들은 맨발로 양동이 주위에 모여 있다. 어깻죽지까지 팔을 넣어 양동이 안의 물을 휘젓고 있다. 아이들은 해동학교 1학년이다. 얼음을 녹여 물의 근원을 탐색하고 있다. 물이 다시 얼지 않게. 물이 결코 증발되지 않게. 원심력을 이용해 물을 물로 건조시키는 것이다. 이토록 실험정신으로 충만하다니. 대견하구나. 나의 어린 과학자들. 나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한 말을 건넨다. 물도 물이 되기 위해 애를 썼을 거야. 

“건조가 아니에요. 응고예요.” 

한 아이가 엄숙하게 말한다. 다른 아이가 양동이를 가리키며 나를 노려본다. 나는 아이의 눈빛을 이해한다. 아이가 시키는 대로 머리를 양동이 속에 집어넣는다. 깊이. 근원보다 더 깊이. 민물이 아니구나. 꿈의 액체였어. 나는 머리를 담그고서야 깨닫는다. 거푸집에 쇳물이 들어가듯 대뇌피질의 주름을 따라 액체가 채워진다. 액체는 구불구불 리본 모양으로 응고된다. 응고몽이 되어간다. 나는 생체실험을 당하고 있다. 아이들은 응고몽의 실험대상을 곤생님이라 부른다. 

양동이인 줄 알았던 그릇은 비닐이다. 아이들은 비닐을 살살 떼어낸다. 응고몽은 쏟아지거나 흘러내리지 않는다. 투명하고 부드럽다. 나는 어쩐지 수영장의 푸른 물 위에 큰 대 자로 떠 있는 것 같다. 팔돌리기도 발차기도 못하고 가만히 물밑을 보고 있다. 코로 물이 들어온다. 비강에도 응고몽이 가득한데 숨쉬기는 어렵지 않다. 이쪽이에요. 이쪽에 담겨주세요. 아이들의 말소리가 물밑으로 가라앉는다.


#25. 청계천의 고독

천변의 벤치에 앉아 있다. 따뜻하고 나른하다. 박자를 착착 맞춰 길게 기운 오후의 그림자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지나간다. 다들 한 손에 고깔 모양의 종이봉투를 들고 있다. 교과서를 찢어 만든 봉투겠지. 봉투 안에는 포장마차의 번데기가 들어있을 테고. 번데기는 자고로 엄지와 검지로 집어 야금야금 먹어야 제맛이 난다. 좋겠군. 번데기도 다 먹고. 나는 양손 엄지와 검지를 엇갈려 대고는 자세를 낮추어 구도를 잡아본다. 청계천의 고독 속에는 좋은 구도가 많다. 빈 시간은 네모나다. 보도블록은 단순하다. 담아두고 싶은 좋은 나무. 좋은 지붕. 보기 좋게 그을린 갈색의 얼굴들. 학생들은 노닥거리며 점점 더 청계천으로 쏟아진다. 도표의 네모칸에 넣을 수 있는 감정들이 두개, 세개… 일곱개, 여덟개… 속도가 붙는다. 과학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수량은 속도로 변환됩니다. 질량가속도의 법칙이죠. 학생은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되고 장대에 매달린 깃발은 석양 속에서 검게 펄럭인다. 청계천의 복개공사는 아직 멀었지만 나는 서둘러 일어난다. 저 대열에 따라붙지 않으면 낙오되고 말 거야.

대로와 교차로를 휙휙 지나 우리는 광장에 모인다. 오늘은 4월 16일입니다. 집회가 열리기 시작한다. 누가 내 등을 떠민다. 앞으로 앞으로 떠밀려 나는 기어이 무대 단상에 오른다. 노래를 해야겠지. 다리에서 힘이 빠진다. 손이 떨려 보면대가 넘어진다. 보면대에 놓여 있던 악보에서 음표들이 흩어지고 악기를 조율하는 오케스트라의 어지러운 소리는 부채꼴로 번진다. 악보에 적힌 곡들은 현대인의 성대로는 따라 부를 수 없는 옛날 노래들이다. 선동가를 힘차게 불러 청계천의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하는데 나는 목이 트이지 않는다. 다들 단단히 서로 팔짱을 꼈는데. 오순도순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 우리는 이렇게 스크럼을 짜고 있는데. 경찰이 들이닥치면 물폭탄에 최루가스에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 몫을 무를 수는 없다. 노래를 해야 한다. 발성이 안 되면 악이라도 써야 한다.

오리야, 오리야, 오리의 멱을 따듯  

쓸쓸한 오리의 끝에 오리야 울지 마라 미운 오리야 울지를 마라

메아리가 울리고 노래는 어느새 돌림노래가 된다. 미운 오리야 울지를 마라 울지를 마라. 우리는 팔짱을 풀고 어깨동무를 한다. 설움이 북받쳐 눈물과 콧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오리야, 오리야, 쓸쓸한 오리의 끝에서 노래는 담비야, 담비야, 담비의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잔잔한 담비의 끝에 담비야 울지 마라 매운 담비야 울지를 마라

괜찮아. 그만하면 됐어. 노래와 흐느낌 사이에서 교복이 나의 팔을 잡고 속삭인다. 청계천의 갈색 얼굴. 청계천의 네모난 감정. 목에 소박한 화환을 걸고 가슴에 단 명찰에는 조정미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조정미는 번데기를 집어먹던 엄지와 검지로 동그란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큐. 동그랗게 내민 입술. 동그란 갈색의 얼굴. 머리는 반백이다. 소매 끝은 새까맣다. 언제 이렇게 늙은 거니. 조정미가 나의 볼을 만진다. 손마디가 굵다. 인중에는 구순구개열의 흔적이 있다. 눈 밑이 가볍게 떨린다. 조정미의 뒤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
 
나는 이 꿈속의 시간을 안다. 서기 2039년 11월 26일. 304번째 마지막 304낭독회가 열리는 날. 아마 그럴 것이다. 광화문광장에 들렀던 어느 토요일 오후, 작은 부스에 비치된 노란 소책자를 집어든 적이 있다. 오늘은 4월 16일입니다. 이 문장으로 시작되는 낭독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엉거주춤 뒤쪽에 앉아 세월호를 기억하는 목소리들을 들었다. 낭독회는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 304회에 걸쳐 열릴 것이라고 했다. 한달에 한번씩 304회라면 몇년인가. 계산기로 나누기 더하기 빼기를 하며 셈을 해보니 2039년 11월 26일, 2039년이라니, 그 애들은 몇살인가, 나는 몇살인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먼 시간이었다. 
 
실감은 꿈속으로 먼저 찾아왔다. 교복과 함께. 열네살에 죽은 내 친구 조정미와 함께. 정미야. 안녕? 일기를 훑어보며 이 꿈을 다시 읽다가 오랜만에 인사를 했다. 노트북 모니터에 대고 손도 흔들었다. 너는 왜 맥주도 못 마셔보고 일찍 죽었니. 정미야. 왜 그랬니. 눈물이 났다. 진주씨랑 마지막 304낭독회에 함께 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서기 2039년. 진주씨도 늙고 나도 늙은 미래에. 그때쯤엔 천개의 꿈을 다 모았을까…… 해몽전파사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눈을 비볐다. 대낮에 누굴까. 진주씨라면 비밀번호를 눌렀을 텐데. 우편물인가. 전도하는 교회 사람인가. 거울을 보았다.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눈은 부어 있고 이마에서 왼쪽 광대뼈까지 소맷부리의 솔기 자국이 빨갛게 찍혀 있는데 다시 똑똑. 두리번거리다가 옷걸이에 걸린 진주씨의 벙거지를 눌러썼다. 누구세요. 걸쇠를 풀었다. 문밖의 주황색 운동화를 보고 나는 조금 당황했다. 
 
“어쩐 일이세요?”
 
문 앞의 삼월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새벽에 문자 치셨잖아요. 오늘 꼭 와달라고.”



신해욱
시인.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산문집 『비성년 열전』 『일인용 책』이 있다. 
 


마지막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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