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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몽전파사(마지막회)

신해욱
2019년 05월 02일
           


알루미늄 링에 털실을 감는다. 링의 지름은 12cm. 털실은 여섯가닥. 드림캐처를 만들고 있다. 꼼꼼히 감으셔야죠. 사이가 뜨면 안 돼요. 선생님이 주의를 준다. 그렇게 대강 겹쳐도 안 되죠. 링이 울퉁불퉁해지잖아요. 나의 털실은 청회색이다. 털실을 고르게 감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여섯 가닥을 한꺼번에 감다보니 가닥가닥 말리고 두가닥 세가닥씩 꼬이고 여섯가닥이 뒤죽박죽 엉켜버린다. 말리고 꼬이고 엉킨 실을 푸느라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드림캐처 선생님은 어제 갑자기 연락을 해왔다. 강좌를 열기로 예정되었던 장소에 문제가 생겼다며 오후에 가게를 빌릴 수 있겠냐고 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알겠다고 했고, 내 몫의 재료도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해보자. 손재주 타령이나 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직접 드림캐처를 만들어보는 거다. 틀림없이 못생긴 그물이 나오겠지만. 괜찮다. 그물은 어떤 그물이든 감동적이므로.
 
털실 감기를 간신히 끝내고 그물 짜기에 들어선다. 눈대중으로 링의 둘레에 12개의 꼭짓점을 찍고 꼭짓점마다 자수실을 돌려 원에 내접한 12각형을 만든다. 그물의 밑작업이다. 그다음은 실뜨기와 비슷하다. 실과 실 사이에 실을 걸고 잡아당기다 보면 세모가 생기고 세모는 마름모가 되고 링은 차츰 그물로 채워진다. 너무 팽팽하게 당기지 마세요. 그물이 안 예뻐져요. 선생님은 나의 그물을 만져서 실이 조금 느슨해지도록 조정해준다. 마름모의 그물눈이 부드럽게 휜다. 안심이 된다. 거미의 유능함에 근접해가는 기분이다. 털실 감기가 어려웠다는 걸 그새 잊고 더 큰 링에 더 넓은 그물을 치지 않은 게 아쉬워진다. 이런 곡률의 그물눈이라면 좋은 꿈만 통과할 수 있는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 구슬을 달 차례다. 선생님이 가져온 원석 상자에서 나는 진주 한알을 발견한다. 하나밖에 없어서 청금석도 함께 집어든다. 그렇게 조합하면 크기도 색깔도 안 맞잖아요. 선생님은 말리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진주씨는 어제 수술을 받았다. 최종 조직검사 결과는 며칠 후에 나온다고 한다. 결과에 따라 수술 후의 치료 방법이 정해질 거라고 간호사가 일러주었다. 어떤 치료가 되든 어려운 시간이 이어지겠지. 침대 맡에 이 드림캐처를 걸어주려고 한다. 드림캐처의 그물은 나쁜 꿈을 걸러내고 좋은 꿈만 내려보낼 것이다. 진주씨가 악몽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 26. 두고 온 짐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다시 그 집에 가는 중이다. 두고 온 짐이 있다. 이사를 한 지 여러 계절이 지났는데도 챙겨오지 않은 짐이 여태 남아 있다. 이상한 일이다. 짐을 다 뺀 것을 확인했는데. 벽장을 열어보고 모서리의 거미줄도 다 떼어냈는데. 돌아서고 나면 남은 짐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거미가 다시 그물을 치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야 한다.

건물은 ㅁ자 모양이다. 마른 나무껍질처럼 벽의 페인트가 들떠 있다. 안마당에는 이삿짐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초라한 아이들이 낡은 가구와 집기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역광을 받는 인부들의 검은 윤곽이 외벽에 난 허약한 계단을 지그재그로 오르내린다. 인부들은 어깨마다 커다란 창틀을 짊어지고 있다. 큰일이다. 창틀은 뷰파인더다. 누가 사진을 찍으려는 것이다. 셔터가 눌리기 전에 이삿짐 사이에서 두고 온 것을 찾아야 하는데. 나는 무엇을 두고 왔는지 모른다. 옥상의 태양열 전지판이 번쩍거려 눈이 부시다. 

마당에 부려놓은 이삿짐 사이에서 나는 한 아이를 찾아내고 옷자락을 붙잡는다. 내놔. 내가 손을 내밀자 아이는 윙크를 한 다음 눈동자로 방향을 가리킨다. 나는 아이의 눈동자를 따라간다. 허리 높이로 쌓인 헌책들이 노끈으로 묶여 있다. 숨바꼭질을 하던 아이들이 고개를 빼고 일제히 까르르 웃으며 말풍선을 터트린다. 

“터가 좋지 않아요.”
“이런 걸 속수무책이라고 해.”
“이사비를 줘야지.”

나는 헌책 더미 사이에서 숨은 그림처럼 파묻힌 인질을 발견한다. 잠의 노끈에 둘둘 말려 팔과 가슴팍이 꼼짝없이 묶여 있다. 입에 물린 재갈 사이로 침이 흘러내린다. 거미의 먹이가 되어버렸구나. 나의 룸메이트.

아이가 나를 안내한다. 인질이 된 룸메이트를 대신해서 나는 아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간다. “3등급 방이에요.” 아이가 말한다. 나는 벽지를 만져본다. 도배를 새로 했지만 나는 이 방을 안다. 내가 머물다 이사를 나온 방이다. 두고 온 짐을 챙겨가려고 왔을 뿐인데 다시 이사를 와야 하다니. 방은 허술한 파티션에 의해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한쪽 구역엔 안락의자. 검은 하수구. 흰 하수구. 다른 한쪽 구역엔 옷걸이. 책상. 개다리소반. 예전 방주인의 물건들이다. 아이가 개다리소반 아래를 가리킨다. 소반 위엔 쇠로 만든 주사위가 놓여 있다. 나는 으르렁거리는 자세로 여기에 머무르며 잡무를 맡고 주사위점을 쳐야 한다. 3등급이니까 어쩔 수 없다.
 
*
 
간밤의 꿈에서는 익숙한 패턴이 읽힌다. 뭔지 모르지만 잃거나 잊은 것이 있고, 뭔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부질없이 찾아 헤매고, 헤매다 보면 어느새 떠난 자리로 되돌아와 있는 원점 회귀. 링반데룽 패턴이라 불러도 좋겠지. 그러나 링반데룽 패턴이라서 이 꿈에 마음이 쓰이는 건 아니다. 패턴은 변주된다. 패턴으로 환원되지 않는 디테일을 나는 자꾸 곱씹는다. 꿈속의 거미는 아무래도 음산하고 불길했는데. 이런 거미를 보고 나서 드림캐처의 그물을 짜도 괜찮은 걸까. 거미의 먹이가 되어버린 나의 룸메이트는 누구였을까.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혹시 진주씨는 아니었을까. 삼월씨는 아니었을까.
 
삼월씨는 낼모레부터 낭독 모임을 함께하기로 했다. 학원을 그만두고 가게에서 보낸 밤 취한 호기로 삼월씨에게 문자를 보냈었나보다. 내 문자를 받고 고맙게도 찾아와준 삼월씨에게 나는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잊고 있었던 꿒은숨에 대해. 비틀거리는 해몽전파사에 대해. 천개의 꿈에 대해. 또 흑진주에 대해. 삼월씨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나의 등 뒤에 눈길을 주었다. 
 
“난로 위에. 알로카시아가 있네요?”
 
삼월씨의 시선을 따라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임시로 올려두었던 건데. 어쩌다보니 자리가 잡혀버렸어요.” 
 
삼월씨는 난로 쪽으로 다가갔다. 
 
“아시나요? 알로카시아는 별명이 코끼리 귀래요.”
 
꽃장수도 그랬었지. 코끼리 귀라고. 알로카시아를 사던 날이 떠올랐다. 골목 초입에 꽃트럭이 와 있었다. 나는 꽃 핀 식물들이 가득 실린 트럭을 한참 동안 기웃거렸고 꽃장수는 어떤 걸 찾느냐고 물었다. 키우기 쉬운 거요. 잎이 큼직하면 좋겠고. 꽃장수는 한뼘 정도 높이의 목대에 돌돌 말린 잎이 하나 올라온 포트를 내밀었다. 이래봬도 코끼리 귀라 불려요. 지금 코끼리 귀는 다섯장. 옆구리에는 새끼가 올라와 있다. 창문을 열어두면 펄럭거린다. 
 
“동물에서 가져온 식물 이름이 많잖아요. 재밌어요. 극락조, 제비꽃, 노루귀, 쥐오줌풀, 산세베리아는 영어로 스네이크 플랜트라 하고……”
 
삼월씨는 그렇게 말하며 지갑에서 조그만 책갈피를 꺼냈다. 
 
“그날 꿒은숨의 모임에 있던 한 분이 선물로 준 거에요. 유일한 증표죠. 그 모임에 제가 다녀왔다는.”
 
나는 책갈피를 손바닥에 올려보았다. 말린 제비꽃을 코팅지로 누른 것이었다. 누구시더라. 코울리지였던가. 만약에 네가 잠들었는데. 잠들어서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천국에 갔는데. 천국에서 제비꽃을 꺾었는데. 그 꽃이 손바닥에 있다면. 잠에서 깬 너의 손바닥에 있다면. 
 
“이 꽃 때문이었을까, 저는 재규어꽃이 활짝 핀 벌판에 있는 꿈을 꾸었어요. 그 꿈을 가져가려고 했었죠. 해몽전업사에서 열릴 거라던 모임에.”
 
삼월씨는 다음 모임에 그 꿈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해몽전업사가 아닌 해몽전파사로.
 
*
 
알로카시아의 잎사귀를 물티슈로 닦아준다. 튼 손에 로션을 바르는 느낌이다. 잎사귀의 앞면은 꺼끌꺼끌하다. 뒷면에서는 연갈색 분말이 묻어난다. 줄기와 이어지는 오목한 부분에는 오래 묵은 거미줄 같은 것이 엉겨 있다. 알로카시아는 응애를 앓고 있다. 환기와 물 조절을 잘못해서 시들시들한 줄로만 알았는데 응애라는 작은 벌레 때문이라는 걸 최근에 알았다. 물티슈를 한장 더 꺼낸다. 나는 잠시 손을 멈춘다. 이건 또 어디서 나타났을까. 잎사귀 하나에 민달팽이가 기어간다. 집도 옷도 살갗도 없는 투명하고 끈적한 생물. 슬로우모드로 재생되는 포르노 영상을 보는 것 같다. 스톱. 아니면 점프 컷. 나는 길을 막고 나무젓가락에 민달팽이를 태워 드림캐처의 그물에 옮겨놓는다. 스톱. 아니면 점프 컷. 그물 위의 달팽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달팽이의 뿔만 움직인다. 달팽이의 오른쪽 뿔에는 촉나라가 있다던가. 왼쪽 뿔에는 만나라가 있고.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일 것이다. 왼쪽 뿔에 사는 만나라 사람들과 오른쪽 뿔에 사는 촉나라 사람들은 전쟁을 했다는데, 드림캐처에 걸려 있는 달팽이의 뿔을 보고 있자니 꿈속에서 치고받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치고받기만 했을까. 왼쪽 뿔의 제비꽃을 오른쪽 뿔로 건네고 오른쪽 뿔의 돌멩이를 왼쪽 뿔로 넘기기도 했겠지. 삼월씨가 다녀온 꿒은숨은 오른쪽 뿔 속이었을까. 왼쪽 뿔 속이었을까. 해몽전파사는 왼쪽 뿔에 있는 가게일까. 오른쪽 뿔에 있는 가게일까. 나는 진주씨의 제안에 여태 답을 하지 못했다. 천개의 꿈이 모이면 달팽이의 뿔과 뿔 사이에 통로가 열린대요. 아무렇게나 사이비 예언을 지어내어 대답을 대신할까. 달팽이를 그물에서 내려 유리컵으로 옮긴다. 버리려고 모아둔 딸기 꼭지 하나를 함께 넣어준다. 기다려라. 뿔과 뿔 사이에 통로가 열릴 때까지. 시계를 본다. J와 병원 로비에서 만나 진주씨의 문병을 함께 가기로 했다. 드림캐처를 들고 문을 나서다가 가게를 둘러본다. 탁자 위의 모래시계. 난로 위의 코끼리 귀. 유리컵 속의 민달팽이. 꿈을 꿈이라 해도 꿈일 수 없는 세계로부터. 해몽전파사에서는 꿈을 모은다. 오래오래 모을 것이다. 진주씨는 오래오래 해몽전파사의 주인일 것이고 나는 오래오래 꿒은숨의 안내인일 것이다.
 
 
# 27. 알라바마 알리바바
 
자전거를 타고 있다. 배달을 가는 중이다. 중앙시장을 가로지른다. 성당과 수녀원을 지나고 개울을 건넌다. 가파른 비탈을 오르며 페달을 밟는데도 숨이 차지 않는다. 짐받이에는 상추 한 박스가 실려 있다. 커다란 잎사귀들의 푸짐한 부피가 등에 닿는다. 내가 쓴 글들도 상추와 같은 작물이어서 상중하로 품질을 나누어 출하한다. 각자 쓸모가 있으므로 언제나 뿌듯하다. 대자보는 보자기로 삼으면 좋다. 일기는 반드시 삼각형으로 쓰니까 고깔모자로 접어서 머리에 얹으면 된다. 시들시들한 것으로는 주스나 잼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까 다 괜찮다. 낫 놓고 기억력이 엉망이어도 된다. 
 
구름이 흘러간다. 나는 팔각정 앞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팔각정 툇마루에는 한 소년이 앉아 있다. 소년은 반바지 아래로 무릎을 내놓고 있다. 무릎은 아주 동그랗다. 따로 떼어 굴리면 고무공처럼 굴러갈 것이다. 고양이가 다가와 소년의 무릎을 꼬리로 간질이고 사라진다. 나는 소년에게 말을 붙이고 싶어진다. 자전거포가 어딨니. 소년은 빙그레 웃으며 자전거의 바큇살을 만지다가 나의 팔을 잡아당긴다. 알라바마에 있지. 팔은 쉽게 빠진다. 알리바바 다음에. 연골이 없는 문장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뼈와 뼈가 부딪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단어 하나를 흘렸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뒤를 본다. 바람이 분다. 페이지가 넘어간다. 알라바마. 알리바바. 
 
일요일에 연락할게. 알리바바. 알리바바. 
 
일요일만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페이지가 바람에 날려 무수히 넘어간다.




신해욱
시인.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산문집 『비성년 열전』 『일인용 책』이 있다. 
 


지금까지 「해몽전파사」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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