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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

남지은
2019년 05월 09일
            
 

모조
 

우린 열한번째 손가락
어쩌면 신이 떨어낸 모래 알갱이
뻥 뚫린 시간 속으로 튕겨진

개와 어린이의 영혼은 공터만 보면 뛰쳐나가도록 설계되었어
넓으면 넓을수록 비어 있으면 비어 있을수록 
망치기 좋은 것들이 가득한 세계

누구야?
달궈진 쇠공을 저 높이에 매달아둔 거
잠깐 졸았을 뿐인데 
굴러다니던 머리통에 징그러운 팔뚝을 꽂아넣은 거

살짝 부는 바람과 가지 끝에 연두
레몬빛 태양을 깨물면 시큼한 땀냄새가 퍼졌어
서로의 옷 속에 집어넣기 좋도록 우린 만들어져 있었어

흙모래가 무릎에 박혀 만들어진 무늬
어쩜 나무들이 쏟아낸 그림자
목이 좀 마른데
웃다가 보면 쏟아지는 여름잠

겹겹이 포개진 손을 떼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어
안쪽의 일은 지어낸 이야기 같아요
죽고 싶은 마음과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나란한 것 같아요 
웃어 보이면 많은 것이 넘쳤어

남은 건 문밖의 일
개와 어린이를 향해 어색하게 웃는 일
매끈한 알전구가 깜박이는 일

의심은 나쁜 거여서
윤기 나는 잎사귀 하나를 떼어내 
우린 서로의 입속에 깊숙이 찔러넣었어
분간하기 어려운 발음이었어
 


모조(模造) 「명사」
건물 밖에 쏟아지는 햇빛. 너희의 기쁨을 흉내내도 되겠니? 



남지은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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