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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는 노동자인가 자영업자인가

이다혜
2019년 05월 14일
  

 

  

'키워드3' 여섯번째 키워드는 'yes'과 'no'입니다.
응답이기도, 태도나 허가이기도 한 두 단어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두번째 글은 매거진 『프리낫프리』의 이다혜 편집장이 보내주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댓글과 투고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투고하실 분은 이메일 munhak3@munhak3.com으로 A4 3장 이내의 완성된 글을 보내주세요.
한분을 선정해 연재의 마지막 지면과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분 중 한분께는 문학지 8호와 신간을 선물로 드립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yes-(경계의 일)-no

 


 
에피소드 1
 
얼마 전 건강보험료를 낮춰보겠다고 건강보험공단에 전화를 했다. 프리랜서는 직장가입자가 아니라 지역가입자로 건강보험료를 낸다. 지역건강보험료 산정 방식은 월수입이 뚜렷하게 보이는 직장인과는 달리, 보통 2년 전 수입으로 올해의 건강보험료가 산정된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2017년 연간 수입을 2018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로 확정하고 2018년 11월부터 2017년 연간 수입을 바탕으로 산정된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방식이다. 즉, 2019년에 수입이 적어도 2017년 수입이 많았다면, 그때를 기준으로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딱 그랬고 그렇게 책정된 보험료는 꽤 비쌌다. 그래서 몇푼이라도 낮춰보겠다고 건강보험공단에 전화를 하게 된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의 친절한 상담원은 “선생님께서 알바로 일하셨던 곳의 해촉증명서1)를 제출하시면 해당 근무처의 수입은 건강보험료 산정 기준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알바’, 아르바이트의 줄임말로 본 단어보다 더 대중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프리랜서이지만 알바라는 단어에 딱히 아니라고 반박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물론 2년 전 클라이언트에게 일일이 해촉증명서를 요청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라 건강보험료를 낮추는 것은 포기했다. 

 
에피소드 2
 
종종 클라이언트 사무실에서 일하는 날이 있다. 그날도 사무실에서 원고를 편집하고 있는데 다른 일로 한번 만난 적 있던 작가 A가 클라이언트 사무실에 왔다. A는 나처럼 프리랜서로 클라이언트와 자주 작업을 하는 작가였다. 나를 보자 반갑다며 인사를 하더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냐고 물었다. 내가 일을 한다고 하니 A는 “아~ 알바 하시는구나”라며 무심한 말을 던지고 회의에 들어갔다. 미처 ‘아르바이트는 아니고 프리랜서입니다!’라고 외칠 시간도 없이 대화가 종료되었다. (나중에 지인 작가에게 듣기로 예술가들은 작품활동을 제외한 돈 버는 일을 모두 알바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

 
에피소드 3 
 
매거진을 내기 위해 사업자 등록을 했다. 절차는 매우 간단했다. 구청과 세무서를 몇번 왕복하니 사업자등록증이 나왔다. 사업자 대표가 되기 위한 자격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서류를 챙겨서 절차대로 신고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이전까지는 무조건 개인으로 원천징수세 떼고 외주비를 받았는데, 어쩌다보니 사업자등록증이란 게 생겨 사업체 대 사업체로 계약할 수 있게 되었다. 사업자등록증을 받고 나서 종종 나를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표할 무언가가 없는데, 대표님이라고 하시니 민망합니다. 하하하”라며 멋쩍게 웃어넘겼다. 늘 민망해하기도 지쳐서 누군가 대표님이라고 부르면 사업자등록증 종이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알바생과 대표님이라는 아이덴티티가 공존하는 삶
 
프리랜서가 이렇다. 누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노동자 신분인 아르바이트와 사용자 신분인 사업주를 수시로 오간다. 일단 조직 밖에서 일하는 사람은 맞는데, 그렇다고 이 사람을 사업주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노동자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다. 
 
“(프리랜서는) 일하는 것에 있어서는 노동자 취급을 받는데, 대우 면에서는 자영업자처럼 대우를 받기 때문에, 그런데 양쪽이 가지는 대우는 둘 다 못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계약서라도 쓰고 일 하시는데, 그게 유효하든 안 유효하든. 저는 그런 것도 없는 상황이니까…” (방송 PD C씨의 면담기록 중에서)

노동자 취급과 자영업자 대우, 바로 이 두 구절이야말로 우리가 살펴본 프리랜서의 종사상 지위를 명확히 나타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에서는 근로자와 같이 거의 사업주의 지휘․감독을 받으면서도 보수, 사회보험, 계약 등에서는 자영업자와 동일하게 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을 프리랜서가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2)
 
프리랜서를 다루는 매거진을 만들며 들춰본 수많은 자료 중 하나인 『프리랜서의 노동과 위험』 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나 역시 “노동자 취급과 자영업자 대우”가 현재 프리랜서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다. (보고서가 발행되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와 자영업자 대우’를 받는 상태로 프리랜서의 사회보장 상태가 머물러 있다는 점이 놀랍다.) 

 
프리랜서를 노동자라고 할 수 있어?
 
2016년, 페미니즘 메시지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개인 SNS에 올린 여성 일러스트레이터가 모 게임회사로부터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모 웹툰 플랫폼은 저작권 매절, 과도한 지각비 지불 요구, 수익금 지연 지급 등 불공정거래로 웹툰 작가를 착취한다는 이슈가 일었다. 플랫폼에서 웹소설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종료한 사건도 있었다. 웹소설 판매 수익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작가들은 뭔가를 준비할 새도 없이 하루아침에 밥줄이 끊겼다. 그렇다고 고용 노동자처럼 퇴직금과 실업급여 등의 제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각 분야에서 노동 권익 보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던 웹소설, 웹툰, 일러스트 작가들은 2018년 12월 디지털콘텐츠창작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여성노동조합 산하에 디지털 콘텐츠 프리랜서 노동조합인 디지털콘텐츠창작지회, 디콘지회를 설립했다. 디콘지회 설립 소식에 ‘자발적’으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노조가 웬 말이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애초에 노동자도 아닌데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일련의 사태를 보며 나는 지인 프리랜서와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다. 
 
“생각해보니 정규직 소설가, 정규직 만화가, 정규직 일러스트레이터는 못 본 것 같아. 본 적 있니?”

“아니. 소설가,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단어와 ‘정규직’이라는 단어가 만나니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모순되게 느껴져” 
 
창작계열 노동자는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로 포섭되지 못하고 필요할 때 한시적 계약 형태로 일하는 프리랜서가 된다. 정규직 노동자로 일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이 노동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창작계통 프리랜서는 플랫폼 혹은 에이전시와 계약 관계를 맺고 그들의 노동을 투입해 끊임없이 콘텐츠를 생산한다. 이 행위는 사업주가 하는 어떠한 행위들과 다른 감각을 가진다. 그들을 노동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창작계열 노동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른바 ‘긱 이코노미(Gig Economy)’3)로 칭해지는 노동 구조, 즉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한시적으로 고용하는 구조 속에서 일회적으로 고용되는 ‘플랫폼 노동자’4)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노동을 제공하지만, 자영업자 대우를 받으며 4대 보험과 퇴직금을 포함해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그 어떤 권익도 보호받지 못한다. 
 
사실 노동의 분야에 관계없이 한시적 계약으로 일하는 프리랜서는 일방적 계약 종료, 외주비 지연 지급 등 모든 부당한 상황에 그대로 노출된다. 그때마다 프리랜서는 독립계약자의 신분으로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노동자’가 아니므로 사회적으로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다. 단적인 예로 최저임금제도는 있지만, 최저단가제도는 없다. 

 
얕은 사고는 비주류의 존재를 지운다
 
사람들은 쉬운 걸 좋아한다. 쉬운 걸 좋아하는 본성은 역기능적 이분법적 사고(흑백논리)를 낳았다. 내가 더욱더 흥미롭게 보는 흑백논리의 예시는 어떤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을 때 자연스럽게 그 대척점의 개념으로 귀결되는 흐름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남자입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하면 자연스럽게 ‘여자’가 된다. ‘남자’가 아니면 ‘여자’일수도 있고 중성인 ‘안드로진’일수도 있으며 젠더가 없는 ‘에이젠더’일 수도 있다. 수많은 젠더 중 하나인 ‘남자’에 아니[오]라고 답했을 뿐인데 아주 자연스럽게 가장 반대되는 개념인 ‘여성’으로 즉결되는 사고의 흐름이 나로서는 매우 흥미롭다. 
 
일하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회사에 다닙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면 나이에 따라 20대면 취업준비생, 중년 남성은 자영업자, 기혼 여성은 전업주부로 사고가 흐른다. 이도 아니면 백수로 치부하거나. 제도적으로도 “고용된 상태로 노동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는 사람은 노동자로서의 지위는 상실되고 곧바로 자영업자가 된다. 
 
이런 이분법에서는 비주류의 존재가 지워진다. 남성과 여성이 아닌 성 정체성이 지워지고, 노동자와 자영업자(사업가)로 딱 구분하기 어려운 수많은 형태로 일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지워진다. 프리랜서는 그렇게 지워진 노동자다. 

 
결국 노동자와 사업주로 이분하는 통념은 무의미하다
 
Yes와 No라는 키워드를 받고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쓰다 보니 나도 함정에 빠지는 기분이다. 나는 Yes와 No라는 키워드를 받아 들고 ‘경계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자와 사업주로 무 자르듯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데까지 사고가 이어졌다. 아마도 사업주의 계약 형태로 일하지만 사업하는 사람은 아닌, 노동자 신분으로 일하지만 제도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상태로 오래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그리고 프리랜서에 대한 매거진을 만들며 수많은 프리랜서를 만났다. 그들은 통념 위에서 노동자나 사업주로 분류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나처럼 독립출판을 하는 사람들은 ISBN 넘버를 발행하기 위해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결국 프리랜서 형태로 노동하며 먹고산다. 책방을 운영하며 프리랜서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예술가 중에는 작품활동과 별개로 먹고살기 위해 외주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의 김예지 작가는 청소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산다. 
 
나는 노동에 관련한 그 어떤 것도 공부해보지 않았고, 전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의 의식의 흐름으로 써내려간 이 글에서 어떤 방향을 제시하기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아주 분명한 것은 앞서 서술한 수많은 프리랜서, 즉 조직이라는 틀 밖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노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 내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좋겠다. 단순히 노동자와 자영업자(사업주)로 나누는 것이 아닌 노동자의 제도적 위치, 사회적 위치, 개인적 상황을 고려해 수많은 층위로 구분하고 각 층위에 맞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지워진 어떤 존재를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시 포섭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1)  발급하는 조직(기관, 회사 등)에서 발급인의 근무나 재직 그리고 인건비 등의 금전 지불 관계가 종료 되었다는 것을 증빙해주는 서류.

2)  이승렬‧김삼수‧황준욱‧박명준‧신현구 『프리랜서의 노동과 위험』, 한국노동연구원 2009, 322~323면.

3)  긱 이코노미는 ‘새로운 디지털 장터에서 거래되는 기간제 근로’(맥킨지)로 통칭되는 형태의 노동 거래 방식이다. 쉽게 말해 대리운전 앱, 가사노동 앱 등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에서 사용자와 노동자가 한시적 계약으로 노동을 거래하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4)  플랫폼 노동자는 온디맨드 서비스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에서 한시적인 계약으로 프로젝트를 수주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노동자를 통칭한다. 
 

 
이다혜
프리랜서, 마감노동자, 알바생, 대표님 등 다양한 직책으로 불리며 노동 시장 끄트머리를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다.
유연 노동자(프리랜서)의 이야기를 담은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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