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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늄

정다연
2019년 06월 06일
               
 

제라늄
 

넌 목이 꺾였지. 

제라늄이라서 모두의 발에 공평히 짓밟혔다. 네가 뿌리 내린 곳에서 통째로 뿌리 뽑혔다. 강의실 앞 화단이든, 집이든, 거리든, 가리지 않고 네 잎은 몰살의 흔적으로 범벅을 당했다. 네 목을 따러 울타리를 넘어오는 자들과 물구나무의 자세로 마주했다. 홀로 혹은 같이

풍족했다. 네 형제들의 묶음으로, 다발로, 사람의 이름으로 축하를 장식하거나 애도하기 위해서. 혹은 의미 없이 강물에 돌을 빠뜨리고 그 돌이 어떻게 되는지를 황홀하게 지켜보듯. 무서웠다. 실은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 그래서 네 죽음은 모든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이름으로.

가장 손쉬웠다. 제라늄을 제라늄으로만 보는 건 모자라거나 초과하지 않았다. 배경에도 서 있지 않은 사람. 청소, 청소

부수적 피해, 질병, 유행, 학살의 불기둥 솟아오르고 파편으로 녹아내리는 유리창 너머에

넌 없었다고 한다. 임신한 여자가 과일을 베어 물고 유모차를 앞뒤로 흔드는 풍경 속에. 아이가 아이를 간지럽히고 손을 놓치고 풍선이 날아오르고
연인이 무릎을 꿇어 서로의 신발끈을 고쳐 묶는 잔디 아래, 땅에 닿지 않은 채 공중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그을린 광장, 덮어도 덮어도 끝이 없는 하얀 면포 아래

자전거가 종을 울리며 
휙 휙
짓밟으며 길을 낼 때
휙 휙 
목 꺾일 때

발끝에서 뻗어나간 그림자가 땅에 퍼져
더더욱 어두워질 때
 
한걸음이 한걸음으로 완성될 때

나는 똑바로 서 있었다
 
 


풍선 「명사」
공중의 목젖. 누군가는 그것에 숨을 불어넣고 바닥을 향해 뻥 뻥 걷어찬다. 



정다연
2015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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