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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낮음(1회)

장류진
2019년 06월 07일
 
 
 
장우가 오랜만에 쓴 곡의 제목은 ‘냉장고송’이었다. 처음부터 곡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었다. 누리끼리하고 커다란 구식 냉장고 앞에 서 있는 유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멜로디가 떠올랐다. 유미는 마트에서 사온 우유와 계란을 냉장고에 채워넣고 있었다. 장우는 삐걱거리는 침대에 걸터앉아 기타 줄을 튕기거나 기타의 바디를 두들기거나 했다. 그리고 가사 없이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유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돌아 장우를 쳐다봤다. 

“방금 그 곡 뭐야? 좋은데?”

그 말을 듣고 장우는 아무렇게나 가사를 붙였다. 

“냉장고 장고 장고 장고 장고 고장은 아닐 거야.”

가사라 봤자 이 한마디가 다였다. 유미는 고개를 젖히고 깔깔거리더니 말했다. 

“자기야, 이 노래 대박이야. 중독성 있어.”

유미는 냉장고송을 금세 외워 따라 불렀다. 그리고 휴대폰의 카메라를 켜고 말했다. 

“이런 건 까먹기 전에 남겨놔야 해.”

호들갑을 떨며 이리저리 구도를 잡았다. 장우는 유미가 시키는 대로 냉장고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아침부터 잠옷 바람으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유미가 하도 성화를 해서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 

“찍는다, 시이작.”

장우는 기타로 코드를 짚으며 냉장고송을 불렀다. 냉장고 장고 장고 장고 장고 고장은 아닐 거야. G 코드와 D 코드가 반복적으로 구성된, 미디엄템포의 곡이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던 장우도 두번, 세번 찍으면서 카메라는 신경 쓰지 않고 음악에 몰두해서 연주하고 노래했다. 부르면 부를수록 노래가 점점 더 맛깔스러워졌다.

다음 날 유미가 영상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렸는데,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댓글이 백개, 천개, 만개가 넘어가고 조회 수 삼십만을 찍자 둘은 어리둥절해졌다. 때마침 시즌이던 몇몇 페스티벌에서 섭외 전화가 걸려왔다. 메인 무대가 아니라 티켓 부스 옆에 설치된 작은 오프닝 무대였지만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관객들은 음원도 공개되지 않은 냉장고송을 따라 불렀다. 홍대에서는 제법 유명인사가 됐다. 딱 스물여덟장 팔린 것이 전부였던 장우네 밴드 ‘백열램프’의 1집 앨범을 사람들이 뒤늦게 조금씩 찾아 듣는다는 소식도 들렸다. 모든 게 뜻밖이었다.
 
*
 
원래 유미는 이 냉장고를 싫어했다. 오래되어 누렇게 바랜 색깔도 마음에 안 들고, 시도 때도 없이 윙윙대는 소음도 거슬린다고 했다. 게다가 성능마저 시원찮았다. 유미는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들이 상할까봐 늘 걱정했고, 자주 꺼내서 냄새를 맡았다. 그러고는 꼭 이렇게 말했다. 

“이놈의 냉장고, 버려버리든가 해야지.”

그러면 장우는 늘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아직 냉장고잖아.”

냉장고송이 유명해지자 유미는 태도를 바꿨다. 

“예뻐 죽겠어.”

바로 이 냉장고가 삼십만명이 본 슈퍼스타라며 냉장실의 플라스틱 선반을 일일이 꺼내 뜨거운 물과 세제로 청소하기까지 했다.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이런 이야기만 하면 유미가 속물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나쁜 애는 아니었다. 오히려 속은 누구보다도 여린 면이 있었다. 언젠가 장우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이야기를 유미에게 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걸 듣고서는 마치 자기 아버지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와락, 울음을 터트렸었다. 장우는 들썩이는 유미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그녀가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냉장고는 장우가 처음 서울에 올라와 자취방을 얻던 해에 아버지가 장만해준 물건이었다.

“거, 살림 중에 제일로 비싼 게 뭐냐.”

수수께끼 같은 질문에 장우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냉장고라 대답했고, 다음 날 바로 냉장고가 배달되었다. 지금은 부도가 나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회사의 제품이었다. 위 칸은 냉동실이고 아래 칸은 냉장실로 되어 있는, 당시 가장 흔히 팔리던 냉장고였다. 그렇지만 손바닥만 한 자취방에 놓기에는 지나치게 큰 사이즈였다. 가장 부티 나는 선물을 하려는 아버지의 의도였을 텐데 그 욕망이 오히려 집을 초라해 보이게 만들었다. 첫 자취방은 다섯평도 안 되는 반지하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벽 한쪽에 엉성히 붙은 부엌이 한눈에 들어왔고, 시선을 돌리면 커다랗고 새하얀 냉장고가 반대쪽 벽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방 전체가 냉장고 보관소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가져본 냉장고는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 느낌은 냉장고 문을 열자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코드를 꽂고 텅 빈 냉장고의 문을 처음 열었을 때, 장우는 그 안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꽤 오랜 시간을, 머리통이 얼얼해질 때까지 들여다보고 있었다. 냉장고 안은 생각보다 근사했다. 그 하얗고 깊은 공간은 주황빛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빨려가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장우는 그뒤에도 한동안, 생각이 날 때마다 냉장고 속에 머리를 집어넣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냉장고는 퍽 시원했고 소음도 덜했다.

아버지는 오년 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의 순간에는 눈을 반쯤 뜨고 있었다고 했다. 그 모습을 장우가 직접 본 것은 아니었고,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이 혀를 차며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알게 됐다. 애지중지 키운 삼대독자 아들. 땅 팔고 소 팔아 서울로 대학까지 보내놨는데 기타치고 음악 한다며 반 거지꼴로 사니까 화병이 나서 눈도 못 감고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장우를 통해서 당신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정의한 행복의 방식과 장우의 방식이 달랐다. 그게 갈등의 시작이었다. 아버지는 장우가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장우 역시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왜 노력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뒤늦게 혼자 해보기도 했다. 아마도 그때는, 아버지가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설득할 수 없다고 단정했을 것이었다. 발인하는 내내 장우는 아버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죽었다는 것, 이곳에 없다는 것. 그러면 다른 곳이 있는 걸까. 어디로 가신 걸까. 어딘지는 몰라도 존 레넌도 있고 프레디 머큐리도 있는 곳이겠지. 아버지는 그들을 마주쳐도 누군지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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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획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계약을 하고 싶다고 했다. 스위프트사운드라고, 대형 기획사는 아니지만 장우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꽤 유명한 회사였다. 발라드를 부르는 솔로 가수 두명이 소속된 회사인데, 최근 들어서 가능성 있는 홍대의 인디 뮤지션들한테도 투자를 하는 모양이었다. 얼떨떨해진 장우는 고개만 끄덕이다가 급하게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바싹 붙어 대화를 엿듣던 유미는 통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말했다. 

“자기네 아버지가 이 모습을 보고 가셨어야 하는데!”

그러고는 한참을 울먹이다가 갑자기 정색하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휴대폰 다시 줘봐.”

유미는 기획사에 전화를 걸어 혹시 보이스피싱은 아닌지, 계약을 하게 되면 계약금을 몇 퍼센트나 먼저 주는지 같은 것들을 이것저것 확인하고 전화를 끊
었다. 그리고 비장하게 말했다. 

“오래 기다렸다. 이제 고생은 다 끝났어. 드디어 세상이 천재를 알아보기 시작한 거야.”

유미는 눈물을 삼키고 장우에게 입을 맞췄다. 장우는 한 손으로 유미의 속옷을 재빨리 풀었다. 

이상하게 섹스를 하는 내내, 유미와 처음 자던 날이 생각났다. 유미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름조차 모르는 밴드 백열램프의 몇 안 되는 팬이었다. 무명 밴드의 평일 클럽 공연은 늘 한산했다. 열명 남짓의 관객은 매일 조금씩 바뀌었다. 그중에 변하지 않고 항상 보이는 얼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유미였다. 관객이 다섯이 되고 둘이 되고 결국은 한명, 유미만 남던 날, 둘만의 뒤풀이를 가졌다. 유미는 첫잔을 비우면서 말했다. 

“나는 기타 치는 남자가 그렇게 좋더라.”

장우가 묻기도 전에 유미는 “왜인 줄 알아요?” 하고 묻더니 혼자 대답했다. 기타 연주에 몰두해 있는 남자의 얼굴은 오르가슴에 도달한 남자의 얼굴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는 공연을 보고 나면 그 남자와 화학적 교감을 한 것과 다름없는 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장우는 그 말을 듣고 유미와 자게 될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미는 그날 일부러 장우를 자극하기 위해 그 대사를 생각해갔다고 했다. 
그날과 마찬가지로 유미와의 섹스는 만족스러웠다. 유미는 스위프트사운드와의 통화 후에 더 흥분한 것 같았다. “나 지금 락스타랑 하고 있는 거야?”라고 했을 때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관계가 끝난 뒤 유미는 혼자 천장을 바라보고 히죽거리더니 이내 엎드려서 턱을 괴었다. 그리고는 스위프트사운드에 소속된 가수에 대해 줄줄이 읊어대기 시작했다. 장우가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야, 이제 라디오에서 자기 노래를 많이 틀어줄 거야. 라디오에 게스트로 나갈지도 모르니까 토크 연습도 좀 해 둬. 자기 노래가 드라마나 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 그땐 진짜 대박 나는 거야. 그러니까 말랑말랑한 곡도 좀 써놓고. 또 잘되면 ‘유스케’도 나가고.”

장우가 그 말을 듣고 되물었다. 

“유스케? 슈스케가 아니라?”

유미는 장우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치며 대답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유스케. 자기는 이미 아티스트인데 슈스케 같은 오디션 프로에 나갈 필요가 없지. 유스케를 나가야지.”

스스로 매니저의 지위를 부여한 유미는 아직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는데도 작은 클럽의 섭외전화는 자기가 받아서 거절했고, 큰 클럽이더라도 주말이 아닌 평일 공연은 가지 말자고 했다. 유미는 이제 장우가 유스케에 나가고 국제적인 락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서는 일만 남았다며 장우가 이미 락스타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장우는 유미를 만났던 평일의 클럽공연을 누구보다 좋아했다. 공연장이 미어터질 듯 꽉 찬 관객들을 보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자신이 서고 싶은 위치에 각자 띄엄띄엄 서 있는 관객들을 보며 공연하는 것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장우가 연주하고 부르는 음악이 더 높은 밀도로 한 사람에게 가닿는 모습. 그리고 그걸 받아들인 관객이 고개, 어깨,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으로 리듬을 타는 모습이 무대에서 온전히 다 보이는 것도 좋았다. 유미가 최후의 관객이었던 그날도, 공연 내내 발목을 까딱거리며 박자를 맞추는 모습을 지켜봤다. 장우는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유미의 발목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장류진
소설가. 2018년 창비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회에서 계속됩니다.
(6월 중 목요일에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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