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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2회)

강화길
2019년 0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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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인천 제물포항이 개항장이 되면서 서양의 외교관, 선교사, 상인 등 많은 사람들이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인천에서 서울까지 가는 방법은 걷거나 우마차를 타는 것뿐이었다. 12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인천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 날 이동하곤 했다. 눈치 빠른 무역상인 ‘호리 히사타로’는 인천항 근처에 2층짜리 목조건물을 세우고 숙박업을 시작한다. 주위에 별다른 숙박시설이 없었던 터라 그의 건물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황에 힘입어 호리 히사타로는 1888년, 목조건물 옆에 붉은 벽돌의 3층짜리 서양식 건물을 신축한다. 이것이 바로 대불호텔이다.

소설이 안 써지던 그즈음 어느날, 친구가 내게 말했다.

“니꼴라 유치원은 그 호텔과 좀 비슷해.”

인천이 고향인 그는 내가 「니꼴라 유치원」에 대해 말할 때마다 대불호텔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나는 곧장 대불호텔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리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대불호텔은 1978년에 철거되어서, 터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내 친구는 ‘대불호텔’을 봤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설명을 듣고서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내가 묘사하는 ‘니꼴라 유치원’의 풍경이 대불호텔 빈터와 주변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고. 그 풍경이란 인천우체국, 구(舊)일본우선주식회사, 일본제1은행, 답동성당 등으로 이루어진 인천 중구의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덧붙였다. 내가 그 동네에 직접 가보면,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솔깃했다. 인천이라면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내서 다녀올 수 있었다. 게다가 근처에 생활사 박물관이 있다는 말에 더 흥미를 느꼈다. 식민지시대부터 현대까지 쓰이던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고 했다. 당시 나는 어린 시절과 식민지시대의 지하 음악실을 뒤섞어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 사실에 약간 흥분했다. 대불호텔 터와 주위 풍경, 그리고 옛 물건들을 보면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다소 의아하다. 왜 그렇게 확신했는지, 어떻게 그런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는지 말이다. 어쨌든 나는 지체하지 않았다. 그 주 목요일 아침, 나는 인천으로 향하는 1호선 전철을 탔다. 그렇게 나는 대불호텔에 가게 되었다.
 
*

그러나 빈터뿐이었다. 말 그대로 폐허였다. ‘대불호텔 터 유적’이라는 안내판이 없었다면 유구(遺構)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마저도 매우 초라했다. 바닥에 붉은 벽돌더미들이 볼품없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곳곳에 잡초들이 잔뜩 나 있어서 건물의 구조나 모양새를 추측하기도 어려웠다. 건축에 조예가 있으면 모를까, 나 같은 문외한에게 눈앞의 풍경은 버려진 무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심지어 그 광경도 내가 몰래 들여다본 것이었다.

회색 쇠창살 울타리가 빈터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다. 울타리 입구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생활사 전시관을 목표로 한 건물 재건축 공사에 들어가니 완료일까지 접근을 불허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기대했던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막힌 기억이 스윽 뚫리면서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든지, 아니면 영감을 자극하는 놀라운 광경을 본다거나 하는 일들은 없었다. 나는 그저 쇠창살 사이로 보이는 건물터를 몰래 훔쳐보기만 했다. 그 자리에서 꽤 오래도록 서성였지만 어떤 기적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생활사 박물관이나 둘러본 뒤 서울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미련이 남았던 것 같다. 나는 쇠창살 틈으로 눈을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 그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빈터 한가운데 서 있었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곳에 있었다.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녹색 재킷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베이지색 치마를 입었고, 머리는 한갈래로 묶었다. 호리호리했지만 키는 별로 크지 않았다. 입술이 매우 붉고 도톰했는데, 내가 본 건 딱 그만큼이었다. 차양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어서 더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저 사람 대체 저기서 뭐 하는 거지?

그때였다.  

“아가씨, 거기서 뭐 해요.”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중년 여자 한명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잡티가 많은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사람이었고, 목에는 박물관 직원증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내게 당장 그 앞에서 비켜서라고 말했다. 뭐라 변명할 새도 없었다. 사무적이고 엄격한 말이 계속 이어졌던 것이다. 공사 중이라 위험하고, 유적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뭐든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고, 무슨 일이 생길 경우 책임소재는…… 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울타리에서 물러섰다. 동시에 안쪽을 슬쩍 쳐다봤다. 약간 억울했던 것이다. 밖에서 좀 훔쳐본 것 가지고 이렇게 뭐라고 하는데,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에게는 뭐라고 하려나. 그래. 빈터는 유적이지 않은가. 저 사람이야말로 책임소재가 만만치 않을 텐데.

그러나 여자는 없었다.

나는 홀린 기분으로 그 자리에 서서 그녀를 찾았다. 아무도 없었다.

“왜 그래요?”

내가 이상해 보였던지 직원이 물었다. 나는 물었다.

“혹시 못 보셨어요? 저기 누가 있었어요. 어떤 여자였는데……”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나는 창피하기도 하고, 뭔가 섬뜩하기도 해서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지하철역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데, 기분이 이상해서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그 직원이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

며칠 후, 나는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는 별로 집중해서 듣지 않았다. 친구는 원래 그런 류의 이야기에 흥미가 없었고, 나 역시도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지 섬뜩한 기분이 꽤 날아간 터라 좀 심드렁했다.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말했고, 그 역시 딱 그만큼 받아들였다. 그런데 얼마 후 그에게 연락이 왔다. 할머니 생신을 맞이해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목격한 그 여자에 대해 지나가듯 말했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매우 놀라워하셨다는 것이다.

“왜?”

그가 빠르게 대답했다.

“1955년에 사건이 하나 있었대.”

두분이 입을 모아 말하길, 내가 목격한 여자의 생김새가 그 일에 연루된 인물들 중 한명과 매우 흡사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조르기 시작했다. 자세히 좀 말해줘. 무슨 사건이야? 그리고 그 여자는 누구지? 연루되었다는 사람은 누구누구야? 그러나 그는 아쉽게도 여기까지밖에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덧붙였다. 혹시 나만 괜찮다면, 자신의 조부모님을 찾아와 나머지 이야기를 들어도 좋다고.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강화길
소설가. 소설집 『괜찮은 사람』, 장편소설 『다른 사람』이 있다.




3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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