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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둥근 잔에 입술을 댈 때

정다연
2019년 06월 12일
                
 

네가 둥근 잔에 입술을 댈 때
 

후드득 일시적 소나기가 내리고
벤치에 앉아 졸다 화들짝 놀란 사람은
신문지를 뒤집어쓰고 
아주 조금 젖지
아주 잠시 하늘의

기울어짐
 
네가 둥근 잔에 입술을 대어
한모금의 포도주를 넘길 때 
쿵,
내려놓을 때

나무 아래서
잠자던 박쥐들은 갈증에 눈 뜨고
입 벌린 악어가 있는
강물 속으로 뛰어들지 퐁당퐁당
못 견디지

네가 네 입술의 문양이 묻은 둥근 잔에
마침내 영원히 두 손을 뗄 때
배고픈 악어의 허기는 풍족해지고
피자두가 피자두로 익어가면서
지상으로 추락하는 폭발을 기다릴 때

나는 그 아래 서서 뜬 눈으로 입을 벌리지
네 잔과 내 잔이 부딪힌
짧은 순간
깨지며 달아난 영혼의 총성을 듣지

잔이 넘친다
삼켜지다 만 젖은 박쥐 떼가 떤다 떠오른다
내가 네 둥근 잔에 내 입술을 포개면

 


총성(銃聲) 「명사」
총성이 울려도 어떤 새는 날아가지 않는다. 더 집요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정다연
2015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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