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6

다소 낮음(2회)

장류진
2019년 06월 13일
 
 
 
 

조회 수 501,043 ┃ 좋아요 4.8만 ┃ 싫어요 316

홍대의 한 카페에서 스위프트사운드의 대표를 만났다. 홍대 근처에서 오다가다 많이 본 얼굴이었다. 한번 보고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인상이기도 했다. 대단한 거구에, 단발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동여맨 모습이었다. 그 머리 총이 몸집에 비해 너무 작게 느껴져서 장우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뚱뚱해서 그런지, 돈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본명이 ‘돈’ 자로 끝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그를 ‘돈사장’이라고 불렀다. 아주 오래전, 홍대 앞에 뮤지션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던 초창기에 돈사장이 한 헤비메탈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했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는 꽤 날씬한 편이었다고. 얼마 전 유미한테 들은 것이었다. 장우가 먼저 돈사장을 알아보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사장은 “유튜브 스타님, 영광입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돈사장은 원래 장우랑 친했던 사이처럼 장우의 어깨를 툭 짚으면서 말했다.

“이 친구 1집 낸 지 한참 됐잖아. 내가 세번째 트랙을 정말 좋아했다고.”

돈사장은 그동안 장우가 뭘 하고 사나 궁금했는데, 인터넷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더라며 알은척을 했다. 심지어 노래까지 큰 소리로 불렀다.

냉장고 장고 장고 장고 장고 장고 고장은 아닐 거야. 허허허.”

돈사장은 한참을 장우와 냉장고송에 대해 칭찬하다가 아이스커피를 한잔 다 비우고 나서야 목소리를 한 톤 낮추고 원하는 계약 조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돈사장이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녹음실이 준비되어 있으니 당장 내일이라도 냉장고송으로 디지털 싱글 음원을 내자는 것이었다. 냉장고송의 인기가 식기 전에 이 곡으로 음원 수익을 최대한 내고, 그 수익으로 2집 앨범도 제작하고 1집 리마스터링 앨범도 내자고 했다.

장우는 돈사장의 제의가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았다. 냉장고송은 장난처럼 만든 곡이었다. 그런 멜로디는 누구나 만들 수 있었고, 어디에나 있었다. 코드 진행도 사실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팝송의 일부를 그대로 갖다 쓴 것이었다. 단지 우스꽝스러운 가사와 허접스러운 유튜브 영상 때문에 유명해진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장우는 아직도 음악을 앨범 단위로만 듣는 사람이었다. 장우에게 앨범은 첫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생명력을 지니는 하나의 작품이었다. 심지어 장우의 가방에는 아직도 CD 플레이어가 들어 있었다. 물론 휴대폰으로 듣는 일이 더 많았지만 그럴 때에도 장우는 무조건 앨범 전체를 다운받아 들었다. 그게 음악을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디지털 싱글은 책을 원하는 장만 찢어서 가지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겨졌다. 장우는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하겠는데요. 아무래도 음악을 딱 한곡만, 그것도 음원이나 스트리밍으로만 듣는다는 게 아직까진 영 납득이 안 가서.”

그러고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한마디 덧붙였다.

“냉장고송은 음원으로 내놓을 만한 곡도 아니고요. 그냥 웃자고 만든 거예요.”

돈사장은 예상 밖이라는 듯 난감해했다.

“아니 냉장고송이 어때서? 얼마나 감각적으로 잘 뽑은 곡인데!”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큰 결심을 한 듯 자세를 낮추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CD가 꼭 있어야겠다면, 찍어줄게. 많이 안 찍으면 되니까.”

그거야 한 백장 찍는 건 일도 아니라고 했다. 대신 냉장고송 한곡만 들어 있는 CD가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요즘 누가 노래를 앨범 단위로 듣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요즘은 뭐든지 유행이 금방금방 지나간다고, 지금이야 냉장고송이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지만, 곧 잊힐 거라고 했다. 묻히기 전에 바짝 당겨서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아니 조회 수가 오십만이면 뭐해, 그게 오백만원, 오천만원이 되어야지.”

돈사장은 컵에 남아 있는 얼음을 입에 털어넣고 소리 내서 씹었다.

“이 사람아. 잘 생각해 돼. 요즘은 그냥 순간이야, 순간. 딱 한곡이라고. 이 많고 많은 유혹이 넘쳐나는 세계에서 삼분 정도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았으면 그걸로 된 거야. 최선을 다한 거야.”

장우는 시선을 내리깔고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냉장고송은 그냥 유튜브용이에요. 거기서 사람들이 좋아해줬으면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말씀드리지만 저는 진정한 음악은 풀렝스 앨범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장님도 밴드를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곡과 곡 사이에도 기승전결이라는 게 있고 스토리가 있는 건데. 그렇죠?”

이 대목에서 장우는 사장을 한번 힐끗 올려다보고 말을 이었다.

“저는 곡이 한곡만 덜렁 있으면 뭐랄까요. 이를테면 뮤지컬을 보는데 인터미션부터 들어가는 기분 같아서요. 그러니까 소설책을 두번째 장만 찢어서 가지는 사람은 없잖아요.”

돈사장은 한숨을 내쉬며 살다 살다 이렇게 답답한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장우는 좀더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하고 카페를 나왔다.

유미는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온 장우를 이해하지 못했다. 계약도 하고 앨범도 내준다는데 그걸 왜 마다하느냐는 거였다. 장우가 웅얼거렸다.

“그게, 냉장고송으로 디지털 싱글을 내라고 하잖아……”

유미가 헛웃음을 짓더니 장우를 노려봤다.

“누가 음악 관두래? 음악 포기하고 회사 다니래? 그게 아니잖아. 그 좋아하는 음악하고, 앨범 내라는 거잖아.”

유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장우가 주눅이 들어 답했다.

“냉장고송은 그냥 재미로 만든 거잖아. 내가 추구하는 음악이 아니란 말이야. 나는 진짜 제대로 된 곡으로 정규 2집 앨범을 내는 게 꿈이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미한테 등을 세게 얻어맞았다. 유미는 당장 돈사장한테 전화해서 다시 약속을 잡으라며 소리쳤다.

조회 수 1,002,638 ┃ 좋아요 11만 ┃ 싫어요 491

다시 만난 돈사장은 카페 테이블 위에 양손을 가지런히 올려둔 채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있었다. 그새 머리가 더 길어진 것 같았다. 잔머리 한올도 남기지 않고 야무지게 묶은 머리. 어쩐지 결의에 찬 듯한 모습이었다.

“2집 내줄게. 그게 뭐 어려워? 내면 되지.”

돈사장이 먼저 정규앨범을 내자고 제안했다. 장우가 한 손으로 뒷머리를 쓸어 넘기며 조금 웃었다. 그때 돈사장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대신, 지금 당장.”

그러고는 앨범으로 낼 곡을 써두기는 한 건지 물었다. 장우가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그게 아직…… 제가 곡 쓰는 데 좀 오래 걸리는 스타일이라서요. 지금 한 서너곡 정도는 있어요.”

돈 사장이 눈을 반짝 빛냈다.

“그래? 그럼 적어도 서너곡은 더 있어야 될 텐데, 금방 뽑아볼 수 있을까? 딱 냉장고송 같은 거, 그런 거 한두개에 나머지는 그냥 좀 깔아주는 걸로다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장우는 깔아준다는 말에 기분이 상했다.

“바로는 안 돼요.”

돈사장이 재촉하듯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한두달이면 되겠어?”

장우가 난색을 보였다.

“네? 한두달이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최소한 일년은 넘게 걸리죠.”

돈사장이 천천히 등을 의자에 기댔다. 담배 한대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더니 연기를 내뿜으며 체념한 듯 내뱉었다.

“이 친구,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친구네.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누군지는 알아요?”

장우가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침묵했다. 돈사장은 페스티벌 기획자, 라디오 피디, 유명 음원 사이트 대표 등이 있다며 이름을 댔다. 대부분 장우가 처음 듣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자기 밑에서 열심히 하면 장우도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장우는 어쩐지 기분이 나빠졌다.

“전 막 열심히 하기도 싫고, 막 성공하고 싶지도 않은데요.”

돈사장이 장우로부터 시선을 거두면서 크게 웃었다.

“성격이 더러워서 음악은 잘 만들겠네. 아까워 죽겠어.”

그리고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유미의 반응을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아팠다. 장우는 홍대입구와 상수를 지나 망원 쪽으로 한없이 걸었다. 한여름 정오의 땡볕이 정수리에 내리꽂혔다. 등에 땀이 주룩 흘렀다. 멀다. 나도 예전에는 여기 살았는데. 뮤지션들이 홍대를 젊음의 거리로 만들어놓자 홍대 땅값이 하루가 다르게 비싸졌다고 했다. 정작 홍대를 지금의 홍대로 만든 뮤지션들은 성공한 몇몇을 제외하고 비싸진 방세에 상수로 밀려났는데, 상수에 지하철역이 생기고 나서는 상수까지 비싸졌다고. 장우와 친구들은 망원으로 성산으로 계속 밀려났다.

집에 도착한 장우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활짝 열린 냉장고 앞에 서 있는 유미의 작은 등이었다. 유미는 냉장고 안의 음식을 꺼내서 또 냄새를 맡고 있었다.

“이거 상한 거 같은데. 무슨 놈의 냉장고가 시원하지가 않아.”

유미는 장우가 온 줄도 모르고 중얼거렸다. 장우는 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유미가 냉장고 문을 세차게 닫았다.

“넌 대체 왜 그렇게 살아?”

유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야, 난 그래도 니가 어느정도는 생각이 있는 줄 알았어. 성공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말하고서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두어 번 고르더니 다시 장우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제발 인생을 좀 효율적으로 살아봐. 적어도 남들처럼!”

그러고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들고 신경질적으로 흔들었다.

“지금 뭐든 해야 해. 전기요금 연체돼서 두달 치 밀렸다고!”

유미가 냉장고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낮게 윙윙대던 냉장고의 소음이 순간 뚝 끊겼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냉장고는 다시 더 날카롭고 크게 윙윙대기 시작했다. 유미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구겨 쥐고 펑펑 울면서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장우는 차마 옆에 가지 못하고 바닥에 담요를 펴고 누웠다. 유미의 흐느낌과 냉장고의 진동이 바닥을 통해 미세하게 전해졌다.

조회 수 1,013,574 ┃ 좋아요 11만 ┃ 싫어요 651

유튜브 조회 수는 며칠째 비슷했다. 더는 올라가지 않았다. 장우는 기타 레슨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오고 있었다. 늘 다니던 골목을 지나다가 이상하게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은 시선을 느꼈다. 장우는 눈빛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두개의 새까만 눈동자와 마주쳤다. 동물병원 쇼윈도에 놓여 있는 개였다. 새하얗고 곱슬거리는 털을 가진 개였는데, 얼굴 주변의 털이 공처럼 동그랗게 깎여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동그란 솜사탕 같았다. 장우가 가까이 다가가자 개는 유리벽에 앞발을 짚고 일어섰다. 배꼽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개는 마치 오래전 헤어진 주인을 다시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장우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정신없이 꼬리 쳤다.

저 개는 내가 대체 누군 줄 알고 이렇게 반기는 걸까. 말 못하는 짐승의 마음을 들을 수는 없지만 장우는 저 개가 분명히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눈빛이 가능할 리 없었다. 무대 아래에서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던 예전 유미의 눈길과 비슷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네가 너여서 좋다는 그 눈빛. 장우는 자기도 모르게 동물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개는 생각보다 비쌌다. 프랑스에서도 귀한 품종견인데 지금 특별히 할인된 가격으로 판다는 것이었다. 마침 두달 치 레슨비로 받은 돈 봉투가 뒷주머니에 있었다.

전기요금은 그냥 밀린 것뿐이니까. 아직 끊긴 게 아니니까. 좀 천천히 내도 되지 않을까. 끊기기 전에만 내면 어차피 모든 게 똑같지 않나. 이번 달 말에 유미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에서 밀린 월급을 주기로 했다니까 그때 내도 괜찮지 않을까. 장우는 뒷주머니에 꽂혀있던 돈 봉투를 그대로 내고 개를 샀다. 어쩔 수 없는 일, 원래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우의 품에 안긴 개는 집에 오는 내내 장우를 바라보며 연신 장우의 가슴팍을 핥았다. 웃고 있는 개의 입꼬리가 그리는 모양이 거짓말처럼 예뻤다. 장우는 개의 이름을 보리라고 지었다.

유미는 더이상 울지도 않았다. 머리 뒤로 기타 케이스가 뿔처럼 비죽 튀어나온 장우와 그런 장우의 품에 안긴 작고 하얀 보리를 번갈아 보고서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침대에 걸터앉았다.

“넌 제정신이 아니야.”

그러고는 고개를 미세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시선은 방바닥을 불안하게 훑었다.

“전기요금이 연체됐는데, 월급을 털어서 개새끼를 사오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왜 그렇게 쓸모없는 짓만 골라서 해? 넌 완전히 맛이 갔어. 나도 이제 더는 못 참아.”

유미는 벌떡 일어나 옷장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더니 옷장의 몸통을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옷장 위에 올려져 있던 캐리어가 툭,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처음 장우네 집에 올 때 들고 왔던 캐리어였다. 유미는 옷과 살림을 손에 닿는 대로 욱여넣고 지퍼를 단단히 잠갔다. 그러고는 장우와 냉장고를 한번씩 노려보더니 돌아서서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장우는 유미가 나간 집을 둘러봤다. 갑자기 겁이 났다. 장우는 보리를 꼭 끌어안았다. 보리의 보송한 털 사이로 장우의 손가락이 폭 파묻혔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장류진
소설가. 2018년 창비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3회에서 계속됩니다.
(6월 중 목요일에 연재)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