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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3회)

강화길
2019년 0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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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 그해 호리 가문은 대불호텔을 중국인 라이웬차오(賴文操)에게 매각했다. 오래된 경영난 때문이었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사람들이 인천에서 굳이 하루를 머물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이후 대불호텔은 ‘중화루(中華樓)’, 그러니까 청요릿집으로 변모한다. 중화루가 영업하기 시작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어떤 기록에는 1922년 문을 열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등기부 이전은 1922년에 이루어졌고, 그 유명한 중국풍 금색 간판이 제작된 것도 같은 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18년에 중화루가 나타났다는 기록 역시 꽤 많다. 어쩌면 1918년, 몰락해가는 대불호텔을 감당하지 못한 호리 가문이 라이(賴)에게 상권을 넘겨줬다가 1922년에 이르러서야 정식으로 매각한 것은 아닐까.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이야기는 1918년 개장한 중화루가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청요릿집 중의 하나로 성공했다는데서 출발한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를 내게 해준 사람, 바로 친구의 할머니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호황이었다. 조선에 거주하던 중국인은 물론, 일본인, 조선인, 맛집을 찾아온 온갖 손님들이 모두 중화루 앞에 줄을 섰다. 메뉴는 북경요리를 중심으로 한 고급요리였지만, 산둥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값싸고 먹기 편한 요리들도 많았다. 따뜻한 닭국물 냄새와 볶은 야채에서 피어오르던 훈기,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와 3층 홀 한쪽에서 무심하게 울리던 피아노 소리는 전쟁을 기점으로 서서히 잦아들었다. 화교들은 먹고살기 힘들어진 이 땅을 서서히 떠나갔다. 라이 가문도 마찬가지였다. 1954년 그들은 미국으로 이주한다.

다음 해 10월 2일, 인천항에 백인 여자 한명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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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선, ‘고연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녀는 당시 중화루에서 숙식하던 프런트 직원으로 1955년 당시 스무살이었다. 인천 토박이였고 중구에서 태어났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처음부터 중화루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선교사들의 일을 돕는 고용인의 딸이었다. 정확히 말해 그는 그 고용인의 고용인이었다. 영어 실력이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때문인지 그는 선교사들을 독대하기보다는 자신의 직속 고용인이 시키는 일을 했다. 그래도 세상물정에 밝은 사람이었던지라, 고용인이 둘째 딸을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보내는 걸 보고서 곧장 외동딸인 고연주를 그곳에 입학시켰다. 그가 뭘 꿈꿨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뭘 원했는지도 알 수 없다. 이듬해 그는 세상을 떠났으니까.

그가 죽고 가세가 기울면서 고연주는 식구들과 헤어졌다. 어머니와 막냇동생이 큰아들 내외가 있는 서울로 떠날 때 따라가지 않았던 것이다. 형편 때문이었다. 그녀는 큰오빠에게 짐을 더 지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선교사들의 배려가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고연주가 그들 숙소에 기거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때 그녀는 겨우 열두살이었다. 무력하고 서럽고, 외톨이였다. 그러나 3년 정도 지났을 때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녀는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울지 않았고, 처지를 비관하며 겁먹지 않았다. 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실용적으로 살았다. 자신의 장점인 높은 집중력과 학습능력을 발휘해 영어를 배웠고 선교사들의 마음을 얻었다. 물론 영어를 가장 잘하는 학생이 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뭘 원하는지 영영 알 수 없었던 의뭉스런 아버지와 달리, 그녀의 생각은 늘 명확했다.

그녀는 선교사들이 귀국할 때 ‘가장 뛰어난 학생’을 데리고 미국에 간다는 소문을 믿었다. 기대하고 바라게 되었다. 어찌 보면 그녀는 울지 않게 되었을 뿐, 계속 과거에 매여 있었던 셈이다. 그녀는 누군가의 호의가 사라지면 그와 함께 내동댕이쳐질지 모르는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이 나라를 떠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은 완벽한 나라로 보였으니까. 거기에 도착하면 누구에게도 신세지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아, 아름다운 아메리칸 드림. 그녀는 오직 이 나라를 떠나기 위해 공부했고, 선교사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문제는 선교사들이 누군가를 데리고 가긴 갔다는 것이다. 

고용인의 딸이었다. 애초에 약속된 결과였다. 그러니까 현실적인 맥락이 있었던 것이다. 고용인은 진즉부터 딸을 유학 보낼 생각으로 선교사들과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건 일종의 거래였다. 숙박은 교회를 통해 해결하지만 유학비용은 고용인이 감당하고, 선교사들이 취직자리를 알아봐주는 대신 알선료를 내고 뭐 이런 맥락. 그의 가족은 딸의 기반을 밑천 삼아 이민을 갈 예정이었다. 반면 고연주가 믿은 맥락은 ‘가장 뛰어난 학생’이라는 표현 하나 뿐이었다. 선교사들은 고연주에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것이 그들이 남긴 마지막 배려였고 고연주는 학교를 나와야 했다. 그리고 중화루로 갔다.

두달 뒤에 전쟁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래서 남동생이 학도병에 징집되어 전사하고, 어머니와 큰오빠 내외와도 연락이 끊길 걸 알았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연주는, 3년 동안 알아서 먹고사는가 싶더니 갑자기 나타나 숟가락을 얹는 철없는 여동생이 되고 싶지 않았던 열다섯살짜리 여자애는, 그렇게 했다. 청요릿집에서 서양인들에게 통역을 하는 일을 받아들였다. 사실 당시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중화루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밀려드는 유명 음식점이었다. 하루 매출이 어느정도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알 필요가 없었다. 고연주를 고용한 건 그런 여유 때문이었다. 서양인들이 그렇게 많이 찾아오는 건 아니었지만, 종종 찾아오는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이후에도 찾아오게 하려던 것이었다. 라이 가문의 생각 역시 명확했던 셈이다. 여유가 넘칠 때는 언제나 순간의 판단만 존재할 뿐이다.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고, 시련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니까. 고연주, 라이 가문의 사람들, 그리고 중화루에 드나들었던 많은 손님들. 그들이 무엇을 알았겠는가.

여기까지 듣는 동안, 나는 온 힘을 다해 집중했다. 그럴 만한 이야기였다. 흥미로웠다. 고연주와 중화루의 사연은 지금껏 내가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너무 두서없었던 것이다. 순서는 뒤죽박죽이었고 앞뒤 내용이 다르기도 했다. 1950년대 중화루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1918년 호리 가문의 실패에 대해 말했고, 고연주의 처지를 설명하다가 그녀의 가족에 대해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느 부분에서 그녀는 과도하게 몰입했고, 또 어느 부분은 슬렁슬렁 넘어갔다. 그녀는 모든 인물들에게 객관적인 듯 했지만, 전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고. 하지만 내가 혼란스러워 했던 진짜 이유는 이 이야기의 화자가 한명 더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친구의 할아버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자주 부딪혔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요한 부분까지 달랐다. 그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말다툼을 했다. 당신이 틀렸고 내가 옳다는 충돌은 이야기 전체를 자주 흔들었다. 때문에 나는 연도와 이름, 사건들의 디테일한 부분을 두 버전으로 메모해야 했다. 어떤 면에서 그건 그것대로 흥미로웠다. 진짜 문제는 이야기를 정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각자의 이야기가 워낙 정신이 없는데다가, 상반되는 부분이 많다보니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불친절했고 불안정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나의 상상력이 필요했다. 자의적인 해석 없이는 인물들에게 이입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모두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그들을 모른다. 어쩌면 모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정리하는 일에 매달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그때의 질감을 느껴보기 위해서. 이야기의 또다른 등장인물, 지영현을 화자로 내세우면서까지 말이다.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음을 우선 말해두고 싶다.

 


강화길
소설가. 소설집 『괜찮은 사람』, 장편소설 『다른 사람』이 있다.




4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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