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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일을 다시 쓰기

임국희
2019년 06월 20일
 

 

주목: 일×존엄을 상상하기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결혼한 지 삼년쯤 되었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시점이었다. 아이가 있는 삶을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2000년대 초반에 대학에 입학해 당시 학내 여성주의의 영향을 받고 함께 여성운동을 했던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는, 저항의 언어에 훨씬 익숙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우리 인생에 아이는 없다고 못 박았던 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확실할 것이 없는 인생인데 무엇이든 미리 결단을 내려놓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좀더 ‘자연스러운’ 선택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었다.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으면서 연애 때처럼 피임을 늘 철저히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아이를 낳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라는 귀여운 존재를 갖고 싶다거나, 알콩달콩 3인 핵가족을 이루고 싶은 욕망보다는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나와 남편은 오랫동안 친구였다가 꽤 긴 연애를 하고, 함께 살다가 결혼을 했다. 물론 시시때때로 싸웠지만 우리 커플은 나름 갈등을 건강하게 해결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마 아이가 없어도 때로 싸우고 해결하고, 서로의 새로움을 발견하다가도 ‘인간은 정말 변하지 않아’라는 말을 내뱉으며 잘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 삼년쯤 살다보니 내가 맺을 수 있는 친밀한 관계가 이제 막을 내린다는 게 참 서운했다. 또다른 관계를 만들어서 친밀한 관계의 역동을 활성화시키고 싶었다. 누군가와 연관되고 돌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박사과정을 수료하자마자 임신을 했고 그해 11월에 남편의 이목구비와 나의 표정을 쏙 닮은 딸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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