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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함의 선택은 나의 것이다

박창진
2019년 06월 20일
 


 

주목: 일×존엄을 상상하기


 

한 기자에게 긴 인터뷰 청탁 문자를 받았다. 그간 같은 내용으로 많은 인터뷰를 했던 터라 별다른 이슈가 없는 요즘 굳이 나서서 주절주절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완곡하게 거절한 이후에 다시 받은 청탁이었다. 그런데 문자를 읽고 나니, 이번에는 거절을 하기 힘들게 되었다. 알고 보니 기자가 대한항공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승무원 출신이었던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지만, 한때 후배였던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해보겠다는데 선배 된 자로서 도움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약속을 잡고 그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사무장님 지금 팀에 부팀장으로 S씨가 계시죠?”
 

“네, 기자님이 어떻게 그걸 아시는지요?”
 

기자는 잠시 침묵하다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 그녀도 그 부팀장 S와 퇴사 전에 같은 팀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녀가 다른 직업을 선택하고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그의 지속적인 괴롭힘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뭇 이해가 가서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거짓으로 감출 수가 없었다. 이미 나도 지난 수개월간 그녀가 겪은 상황과 거의 비슷한 형태의 업무적 힘듦과 괴롭힘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한항공은 1년 단위로 팀장, 부팀장 그리고 15명가량의 팀원으로 구성된 팀제를 순환 운영한다. 그러다보니 서로 맞지 않는 관리자를 만나게 되면 1년 동안 퇴사를 고민할 정도로 힘들다. 회사 입장에서 직원들을 손쉽게 관리하는 방식이 내부 직원들에게는 고통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인사권을 가진 관리자를 상대로 부당함을 토로하기 힘드니 결국은 곪아터질 때까지 참아내거나, 일할 권리를 포기하고 퇴사를 하거나 장기 병가를 내는 등의 방법을 개인적으로 찾을 수밖에 없다.)
 

“사무장님께 이런 말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회사를 떠났지만, 지인을 통해 회사 소식은 자주 듣고 있습니다. 지금 팀도 그렇고, 회사에서 사무장님이 복직했을 때부터 사무장님을 잘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로 팀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무장님도 짐작하고 계실 거예요. 제가 퇴사를 고민하고 있던 때가 ‘땅콩회항’ 사건 이후 1년 반 만에 사무장님이 복직을 했던 시기였습니다. 어느날 기가 잔뜩 죽은 채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던 박 사무장님을 향해 S 사무장이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쏟아낸 적이 있어요. 저 자식은 왜 아직 회사를 다니는 거냐, 방송 나오고 하더니 아주 연예인인 줄 안다, 건방지다. 그리고 회사를 상대로 그렇게 비방을 해대던 놈이 회사는 왜 또 기어나온 거냐? 양심 없는 새끼, 저런 놈들은 기회주의자다. 저 놈 회사 얼마나 더 다니나 지켜볼 거다. 아마 6개월도 못 넘길 거다, 누가 저 놈하고 같이 일하고 싶겠어…… 제가 그 부팀장 S에게 원한이 있어 이런 말을 굳이 옮긴다 오해하실까봐 고민했지만, 사무장님을 뵙게 되면 꼭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해 용기 냈습니다. 사무장님, 매번 비행하실 때 항상 조심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어떤 꼬투리를 잡힐지 모릅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덧붙인 말은 어쩌면 나 또한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내용들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직접 들으니 자못 충격적이었다. 조직에 반기를 든 자를 대하는 방법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이성적이지 못하다. 전후 맥락, 배경 등 무엇이 그로 하여금 반기를 들게 하였는지에 대한 고찰보다는, 조직에 해를 끼친 반역자라는 비난이 우선이라 조직 안에서 지지를 얻기란 무척 힘들다. 아직 구성원 개인의 권리보장이나 보호보다는 조직을 더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혀 사내 다른 동료들에게 수많은 2차 가해를 줄기차게 받아왔으며, 괴롭힘 때문에 회사에 복직한 지 1년 반 만에 어른 주먹만한 양성종양을 수술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듣는 수많은 폄훼의 말 중 자주 반복되는 말이 있었다. 조직을 그렇게 비방할 거면 당신이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 바로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이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피고용인일 뿐인데 왜 스스로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자신들이 이 회사의 주인인 것인 양 다른 동료에게 회사에 피해 주지 말고 그만둘 것을 반복해서 강요하고 공격하는 것일까? 주인과 노예의 관계처럼, 마치 주인이 이런 일이라도 하게끔, 노예의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자비를 베풀었다는 착각에서 비롯한 발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고용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에 맞서 나는 왜 힘겹게 버티고 있을까? 나는 왜 사내의 수많은 2차 가해와 괴롭힘에서 손쉽게 벗어날 방법인 포기, 즉 ‘그만두기’라는 선택을 하지 않고 ‘일 계속하기’라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개인적인 성향이 오만해서일 수도 있고, 다른 일거리를 구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땅콩회항’ 사건 이전과 이후의 나는 분명하게 달라졌다.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 가운데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는 극과 극이라 할 정도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이전의 나 또한 마치 노예의 한 사람과도 같은 시각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나에게 일할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조직에 감사하고, 조직이 그 어떤 부당한 희생을 강요하더라도 감내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은 부당함에 온몸이 억눌려와도 결코 항거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체념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땅콩회항’이라는 사건을 겪으면서, 생존을 위한 투쟁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지 묻게 되었고 의도하지 않게 노동권에 대한 자각의 눈을 뜨게 되었다. 나의 노동은 나만의 필요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 이윤추구가 필요한 고용주, 조직과의 상호 계약관계로 이루어진다는 단순한 명제조차 새롭게 다시 깨닫는 과정이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누가 누구보다 우위에 있다는, 상하관계로 종속하는 것이 아님을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기에, 내 주체적 선택인 ‘일할 권리’를 타인의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하여 포기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 일이란 나에게 있어 누군가에 의해서 주어진 의무가 아니다. 나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나의 의지에 따라 행하고 있는 자발적 선택인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방해나 참견에 휘둘려서 그만두거나 변경할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다른 일을 선택하거나 더이상 이 일을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한다고 해도 그 주체는 마찬가지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
 

나는 이제야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지급받는 것이 회사와 노동자의 관계이고, 일은 노동자 개개인의 주체적 활동이라는 것을 안다.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굶주린 배를 채우는 생활과 삶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이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것일지라도 그것은 누군가가 베풀어준 은덕이나 자선 덕택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행해진다. 노동의 대가로 지불되는 보상이 나에게 절실한 만큼 나의 노동이 필요한 누군가가 노동의 대가로 내게 지불한 것이며, 노동과 보상은 서로 상호관계에서 정당한 방식과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계약이며 거래인 것이다. 

 

지난 3월 27일 대한항공의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에 대한 사내이사 재선임 건이 쟁점이 되었다. 나는 내가 속한 노조와 참여연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의 외부 시민단체 등과 함께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막기 위한 소액주주의 주주권 행사 운동을 벌였다. 이에 맞서 사측은 내부 노동자 중 주식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을 대상으로 조양호 회장의 연임을 찬성해달라며 주주권 위임을 요청・강요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 다수의 직원들이 평소에 해오던 행동이나 말과 다르게 회사 측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며 자신들의 주주권을 위임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중 몇몇의 동료에게 왜 당신의 의지와 다른 일에 동의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모두 미리 준비해둔 듯이 항상 똑같았다.
 

“우리가 저항한다고 바뀌겠어요, 절대 바뀌지 않아요.” 
 

약자의 입장에서 저항을 선택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는 포기의 말들이었다. 나에게 그들의 답변은 자신의 일에 대한 주체성을 상실한 목소리로 들렸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아주 무책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기들이 하고 있는 노동의 주체가 본인 자신들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강요된 상황인 듯, 태연히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사고가 왜 이토록 관습적인 타성에 젖게 된 것일까? 무척 아쉽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자기들이 의지를 밝혀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던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날 조양호 회장은 사내이사 재선임이 되지 않았다. 주식을 가지고 있던 70퍼센트가량의 동료들이 사측에 자신들의 권리를 위임했지만, 대부분의 사외 주주들은 반대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번 주주총회에서의 결정이 우리가 막연히 가지고 있던, 노동자와 고용주의 관계에서 우리가 절대로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얼마나 틀린 생각이었는지 증명되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번 일을 경험으로 삼아 적어도 대한항공 내부의 노동자들이 그 결과가 비록 실패로 귀결된다 하더라도, 절대 자신의 주체적 권리를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내게 현재 하는 일을 계속해야 할 명분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내가 그 일을 계속하겠다고 선택하는 한 나는 언제까지나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고, 그 속에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더이상 내 노동이 투여된 현장의 일들을 타자의 선택에 맡기지 않을 것이고, 주인 된 입장에서 나의 노동을 둘러싼 선택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갈 것이다. 절대 노동의 현장에서 쉬운 포기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출근을 위해 하얀 유니폼 셔츠를 다리고, 정장 구두를 깨끗이 닦는다. 이것은 나를 위한 행위이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아부의 행동도, 마지못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강요의 산물도 아니다. 내가 선택한, 신성한 노동을 하기 위한 경건한 준비의식일 뿐이다.

 
   

 

남는 질문들


3 직장에 대한, 노동에 대한 의식의 변화 과정이 인상 깊다. 글에서 언급한 대로 관습적인 타성에 젖어 노동자로서 스스로의 권리와 주체성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직장 속에서 그런 의식의 전환을 이끌어낼 만한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
 
박창진 우선 내가 속한 업무나 직장을 대하는 태도에 다른 관점으로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사회는 취직을 하고 월급을 받는다는 이유로 맹목적 충성을 다해야만 노동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는 관념에 휩싸여 있는 듯하다. 이런 통념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데 교묘히 이용되고 있다. 고용자가 이런저런 사유를 들며 노동자의 이해와 양보를 요구할 때 그에 응하지 않으면 노동자가 나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은밀히 들여다보면 어쩔 수 없이 더 많이 가져가는 쪽은 고용자 측이다.
 
우리나라도 초・중・고등 학습과정에서 노동자에 대한 의식과 권리 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적어도 직장인이 되어 노동자로 살아간다면 최소한 자신의 권리와 노동권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알아보고 공부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노동자 개인이 자발성을 가지기는 어렵기 때문에 건전한 노동조합 등이 나서서 교육과 정보 제공을 해줘야 한다. 자각, 즉 의식의 변화는 큰 부침이 없는 이상, 스스로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3 상호 동등한 계약관계임에도 노동자 스스로 자기 권리를 위임, 포기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자기 권리를 포기하거나 회사에 위임하는 것도 자신의 ‘주체적 선택’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박창진 이 부분은 결국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와 관련된 문제가 아닌가 한다. 가령 공익제보자가 사회에 문제를 알리고 난 후 과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공익제보자가 제기한 공익성은 다수의 이익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많으나, 그들 자신의 권리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에서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더 비참해지기 십상이다. 이것은 노동자와 경제권력 간에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고소 고발과 배상소송, 재산권 침해에 대한 차압 등으로 노동자는 기본적 권리인 파업 등의 행동이 제한되고 있다. 아시다시피 현 정부의 공약이었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조차 진전 없이 정체되고 있다. 이런 보호막이 없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포기라는 쉬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 내 권리를 위임하는 것도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말에 있어서는 그 선택의 주체가 나 자신이었다는 점에서 주체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과연 그 계약관계에 대한 이해와 주체성을 넘기고 난 후에 파생될 문제점까지 충분한 검토를 거치고 이루어진 결정이냐가 더 큰 논점일 듯하다. 대부분의 약자에게는 제대로 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이면에 다른 계약 조항이 있음에도 법적 검토 등에서 충분한 이해가 없어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만약 바른 정보를 제공받고 알아볼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고 모든 조건이 공정하다면 나 또한 그런 사람을 주체적이지 않다고 비판하지는 못할 듯하다.
 
3 복직 후 2차 가해, 괴롭힘 등에 대해 주로 이야기해주었는데 그럼에도 믿고 지지하는 동료들도 있었을 것 같다. 복직 후 힘이 되었던 동료들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박창진 스스로 처한 입장과 그로 인해 자각하게 된 노동환경, 부조리한 사회구조 등을 이야기할 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보니 2차 가해가 서슴지 않게 일어나는 사회풍토에 대한 비판에도 초점을 벗어나서 사람에 대한 비난 정도로 편협하게 이해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구조의 모순을 이야기하다보니 그 안에 있던 사람과 행동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음을 먼저 짚는다. 결코 개인을 비판하기 위한 일들은 아니다.
 
아울러 나 자신은 모순적 구조나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입장인 관계로 피해를 겪고 있으나, 그 어려운 난관 속에서 생존이 가능했던 또다른 이유는 많은 지지와 응원의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속에는 차마 나서서 말과 행동은 못하지만 묵묵히 함께해주는 많은 동료들도 포함된다. 특히 지금은 ‘직원연대’라는 노동조합을 함께하면서 궂은 비를 같이 맞겠다고 나선 용감한 동료들도 곁에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과 도움들을 잘 알고 있기에 이 불공정한 노동현장에서 힘들어하는 다른 동료들의 처지에 눈을 감지 못하는 점도 있다. 그래서 더 분발해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박창진
1996년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VIP 담당팀 및 객실 사무장으로 근무하였다. 2014년 '땅콩회항' 사건으로 업무상재해를 인정받아 휴직했다가 복직하며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되었다. 회사를 상대로 부당징계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기각되었고 현재 항소 중이다. 대한항공 직원연대노조 초대 지부장을 맡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플라이 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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