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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낮음(마지막회)

장류진
2019년 06월 20일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보리는 비숑프리제라는 견종이었다. 프랑스의 귀족들이 주로 키우던 종인데 사교성이 좋고 주인을 잘 따르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만큼 몸값이 비쌌다. 게다가 미용비도 많이 들었다. 특유의 동그란 털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털을 자주 손질해야 해서였다. 밴드 친구들은 장우를 놀렸다. 
 
“개가 귀족이면 뭐 해, 주인이 홍대 최빈민층인데.”
 
“제발 네 머리부터 좀 깎아.”
 
덥수룩한 머리에 비쩍 마른 장우가 다 떨어진 기타 가방을 멘 채로 하얗고 동그랗게 미용을 한 보리를 끌고 다니는 모습은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웠다. 장우가 자신은 라면만 먹으면서 보리에게는 유기농 간식을 사 먹인다는 소문도 돌았다. 사람들은 그나마 유미가 있어서 장우가 인간답게 살았는데, 유미가 떠나고 나서는 완전히 미쳐버린 것 같다고 수군거렸다. 
 
장우는 새 곡을 쓰기 시작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2집에 수록할 곡들이었다. 곡이 완성되면 보리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보리는 장우의 기타 반주만 들으면 꼬리를 치면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가끔 고개를 쭉 빼고 늑대처럼 울부짖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언제나 장우와 눈을 마주쳤다. 보리가 솜사탕처럼 동그란 얼굴을 하고서는 장우를 쳐다보고 헥헥거릴 때면 장우는 한없이 벅차올랐다. 말 못하는 짐승이 말 대신 보내는 그 신뢰의 눈빛을, 장우는 좋아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보리가 집에 적응하고 화장실도 가리게 될 때 즈음, 통장에 음악저작권협회로부터 3만원 남짓한 돈이 입금되었다. 1집 음원이 뒤늦게, 18,078번 재생되었다고 했다. 그에 대한 저작권료였다. 3만원이라는 숫자보다, 18,078이라는 숫자가 더 기분이 좋았다. 음악 인생 최고의 히트였다. 장우는 그 3만원을 현금으로 뽑아서 새하얀 봉투에 따로 넣은 다음, 가방 깊숙한 곳에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 왠지 이 돈만큼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날 새벽, 잘 울리지 않던 장우의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에는 그게 유미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유미가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수화기 너머는 조용했지만 숨소리를 듣고 유미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유미야,라고 부르니 유미는 응,하고 답했다. 예전보다 기운이 많이 빠진 목소리였다. 어디서 지내는지 궁금했는데 일산의 언니 네서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그렇구나, 다행이네.”
 
“다행이라고?”
 
유미가 살짝 언성을 높였지만 이내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유미는 여러모로 많이 누그러져 있었고, 다시 돌아오고 싶은 눈치였다. 자기가 좀 심했다는 기색도 은근히 내비쳤다. 평소의 유미에게서는 잘 볼 수 없는 태도였다. 
 
유미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수없이 바랐는데. 막상 시간이 흐르고 나니 유미에 대한 감정이 예전 같지 않았다.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있었지만. 다시 이 집에서 유미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그 자연스럽던 일상이, 이상하게도 이제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털 뭉치가 집안 곳곳 굴러다니고, 던진 공을 몇번이고 다시 물고 오는 보리가 있는 이 풍경이 더는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 컸다. 장우가 한마디만 하면 유미는 금방 자세를 낮추고 돌아올 기세였지만 끝내 돌아오라는 말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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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곡이 마음에 들어서 오랜만에 밴드 합주를 잡은 날이었다. 장우가 합주실에 가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을 때, 보리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가끔 이런 적이 있긴 했지만 여러번 계속해서 구토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평소답지 않았다. 새카맣게 반짝이던 눈빛은 초점을 잃었고 털은 윤기 없이 푸석거렸다. 장우는 보리를 상수역 근처의 동물병원에 맡기고 합주실로 향했다. 합주하는 내내 보리 생각에 기타 연주가 어긋났고, 음이탈까지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연습이 중단됐다. 장우는 휴대폰을 꺼냈다. 부재중전화 여러통과 문자메시지 하나가 와 있었다. 보리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메시지였다. 믿기지 않아 메시지만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을 때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수의사는 보리가 오래전부터 탈장 증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병원에 데려오지 않았냐고 장우를 나무랐다. 게다가 지금 보리는 면역 시스템이 무너져서 적혈구가 제 기능을 못하는 심각한 빈혈 증세를 보인다고 했다. 장우는 의사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저, 그러면 탈장이 문제인가요, 빈혈이 문제인가요……?”
 
“둘 다 문제죠.”
 
의사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보리를 바로 데려갈 수는 없고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우선 입원시킨 상태로 보리의 경과를 지켜보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하고 나서도 입원이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수술비와 입원비를 계산해보니 장우의 넉달 치 레슨비와 맞먹었다.
 
장우는 알고 있었다. 당장 그만큼의 돈이 나올 곳이 없다는 것을. 장우의 통장과 주변 지인들의 신용을 바닥까지 긁어도 그 돈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지만 보리한테 받은 것을 생각한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리가 장우를 살렸으니, 장우도 보리를 살려야 했다. 죽는 것 빼고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우는 돈사장에게서 받았던 명함을 꺼내 들었다.
 
스위프트사운드는 홍대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로비에는 소속 가수들의 콘서트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장충체육관 R석 139,000원, S석 99,000원. 장우는 머릿속으로 13만 9천에 백을 곱하고, 9만 9천에 3백을 곱한 다음 더해보려고 애썼다. 그때 장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누구야. 우리 아티스트님께서.”
 
돈사장이 장우 쪽으로 다가오며 인사를 건넸다. 
 
기다리면서 어금니를 하도 꽉 깨물고 있었더니 턱관절이 다 아팠다. 장우가 입을 열었다. 
 
“혹시 계약……”
 
더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리자 돈사장은 “뭐라고?” 하며 되물었다. 장우가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계약할 수 있을지 해서요.”
 
돈사장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장우의 어깨를 짚더니 두어차례 두드렸다. 
 
“요새 우리가 키우고 있는 애들이 많아서. 지금은 어렵고, 내가 여력이 있으면 다시 전화를 줄게.”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이 친구 타이밍 참 못 잡네.”   
 
아무런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우는 휴대전화로 유튜브에 접속해보았다. 가장 최근에 작성된 댓글이 일주일 전 댓글이었다. 재생 횟수도 백만대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장우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선 노트를 꺼내고 기타를 잡았다. 하기 싫었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선 노트의 제목 칸에 ‘냉장고송 2탄’이라고 적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장우의 눈에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가 들어왔다. 
 
“나는 일반 세탁기, 드럼보다 덩치도 크고 물도 많이 먹는 일반 세탁기.”
 
장우는 셀프카메라 영상을 ‘세탁기송’이라는 제목을 달고 유튜브에 올렸다.
 
온종일 새로고침을 누르며 새로 올린 동영상의 조회 수를 확인했지만 조회 수는 백도 넘지 못했다. 댓글도 달리지 않았다. 나흘째 되던 날, 동영상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는 알림이 떠서 장우는 부리나케 링크를 클릭했다.
 
―오, 되게 별론데? 
 
“뭐?” 장우가 댓글을 달려는 찰나, 동물병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보리는 수술대 위에 엎드려 있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장우와 마주쳤다. 옅은 회색에 가까운 눈동자였다. 
 
“선생님, 보리 아직 안 죽었어요.”
 
수의사가 대답했다. 
 
“죽은 거예요.”
 
장우가 되물었다. 
 
“아직 눈 뜨고 있는데요.”
 
수의사가 보리의 사체를 수습하며 말했다. 
 
“원래 죽을 때 눈을 감고 죽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많이들 놀라세요.”
 
그리고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듯 사무적인 말투로 물었다. 
 
“원하시면 꿰매드려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장우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네, 해주세요.”
 
의사가 건조하게 말했다. 
 
“비용은 3만원입니다.”
 
장우는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3만원이 든 흰 봉투를 꺼냈다. 수의사가 능숙한 솜씨로 보리의 눈꺼풀을 꿰맸다. 의사의 손이 지나간 자리마다 바늘땀이 찍혔다. 보리의 눈이 감겼다. 보리는 그제야 편안해 보였다. 
 
*
 
금요일 밤의 홍대는 오직 즐기기 위해 나선 것 같은 사람들의 흥분으로 가득했다. 그 화려한 거리를 보리의 유해가 담긴 상자를 안고 걷자니, 장우는 자신이 꼭 세상의 비밀을 품고 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보리의 유해는 내일 교외의 어딘가에 묻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 묻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버지가 묻혀 있는 고향의 선산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옆에 보리를 묻으면 아버지가 엄청나게 화를 내시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피식 나왔다. 보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눈을 감고 자고 있을 것이고 아버지는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치실 것 같았다. 
 
아버지는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하셨을까. 유미는 늘 아버지가 묻혀 있는 곳에 같이 가보자고 했었다. 죽고 나서의 화해가 무슨 소용일까 싶어 거절했었는데, 이상하게 이제는 그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미는 잘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같은 합주실을 쓰는 다른 밴드의 베이시스트 형으로부터, 유미가 자기네 레이블의 홍보실 직원으로 취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장우는 유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고 긴 통화음이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유미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장우는 현관문을 열었다. 냉장고에서 나는 낮고 긴 소음만이 방 안에 가득했다. 이제는 아버지도, 유미도, 보리도 없었다. 창문이 북쪽을 향하고 있는 자취방에는 빛이 잘 들지 않았다. 장우는 무거운 기타를 내려놓고 부엌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주황빛 조명이 장우의 발등 위로 쏟아져내렸다. 눈이 부셨다. 장우는 냉장고가 전기를 많이 먹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냉장고는 성능이 시원찮은 대신 조명이 기막히게 밝았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 냉장고 조명이 비추는 그 한폭의 공간만큼은 밝아서 눈이 시릴 정도였다. 
 
장우는 냉장고 문을 연 채로 입구 쪽에 머리를 두고 누웠다. 그래도 냉장고라고,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참을 가만 누워 있으니 나름대로 시원했다. 시원찮지만, 그래도 냉장고니까. 그래 이 정도면 됐지, 하고 장우는 생각했다. 냉장고의 진동이 장우의 뒤통수와 등을 타고 전해졌다. 낮게 웅웅거리는 냉장고 소리가 장우의 심장 박동과 만나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냈다. 장우는 그제야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무사히 돌아온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장우는 냉장고의 문짝을 가만 올려다보았다. 부채꼴 모양의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장우의 냉장고는 4등급, 다소 낮음이었다.

 
* 소설의 제목은 밴드 이스턴사이드킥의 1집 앨범에 수록된 동명의 곡에서 따왔습니다. ‘엉성히 붙어 있는 부엌 아래’라는 가사로부터 소설의 착상을 얻었습니다. 이스턴사이드킥은 해체되었으며, 소설 속 밴드는 해당 밴드와 관련이 없습니다.
 


장류진
소설가. 2018년 창비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다소 낮음」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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