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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4회)

강화길
2019년 06월 25일

 
 

 
 
2부

1

나는 줄곧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다가설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들은 목적지가 어디인지 몰라서 헤매는 이들, 그러니까 낯선 친절함을 기대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여행객들과 조금 달랐다. 갈 곳이 명확해 보였고 길도 제법 알고 있는 듯했다. 물론 남자에 국한해서 그랬다. 그는 진한 매부리코에 조금 긴 얼굴을 가리는 덥수룩한 수염이 눈에 띄는 백인이었는데, 배에서 내린 순간부터 줄곧 어떤 쪽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쪽지와 거리를 번갈아보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약도인 듯했다. 바로 그 모습 때문에 틈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보다 약도를 더 믿는 듯이 보였던 것이다. 그 확신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래, 꽤 위풍당당했다. 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사람, 남자의 뒤를 따라 걷고 있는 여자는 약간 우중충했다. 외모는 남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양인이었고, 책상에 오래 앉아 일을 하는 인텔리처럼 보였다. 테두리가 두꺼운 검은색 안경을 썼고 약간 통통한 편이었다. 웨이브가 뚜렷한 갈색 머리를 하나로 모아 묶었다. 그녀는 계속 인상을 쓰고 있었는데,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왼쪽 발목이 미세하게 팔자로 벌어졌다. 매우 피곤해 보였다.

남자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빨리 오라는 뜻 같았다. 뒤에 멀찍이 서 있다가 난데없이 그의 시선을 목격한 나는 순간 불쾌해졌다. 묘하게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달까.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밀려왔다. 상대를 완전히 무시하거나 사람 이하로 취급하는 그런 시선은 또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눈빛에는 애정이라는 감정 역시 꽤 담겨 있었다. 그래 보였다. 그러나 잠시 스쳐지나갈 뿐인 이 왜소한 감정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할 일을 해야 했다. 두 사람을 ‘중화루’로 데려가는 일을 말이다.

이내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뒤에서 함께 걸었다. 나는 아직 때를 보는 중이었다. 이들은 여전히 내게 어떤 여유도 내어주지 않았다. 남자는 약도에만 집중했고, 여자는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내게 이런 손님들이 처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일은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들 곁에 다가섰다.

“익스큐즈 미.”

내 목소리에 여자가 먼저 반응했다. 그녀는 나를 빠르게 위아래로 훑어봤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아 유 루킹 포 호텔? 아이 해드 라이크 투 인터듀스 유.”

그러자 여자가 남자에게 뭐라고 말을 건넸다. 분명 듣고 있었을 게 뻔한데, 남자는 그제야 알아봤다는 듯 내게 시선을 힐끔 던졌다.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짧게 몇마디를 주고받았다.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사실 나는 영어를 못했다. 그저 영어 문장 몇가지를 외워서 말하는 것뿐이었다. “호텔을 찾으시나요? 제가 안내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이상으로 말이 길어지는 일이 한번도 없었기에 영어를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한때 호리 일가가 성공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중화루는 항구에서 무척 가까웠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이 길이 맞는 건가, 고객이 그런 의심을 품기도 전에 중화루의 높은 굴뚝이 나타나곤 했었다. 그때 내가 하는 말은 언제나 같았다.

웰컴! 해브 어 나이스 데이.

“No.”

남자가 내게 말했다. 말투를 보아하니 싫다는 뜻 같았다. 잔뜩 찡그린 얼굴을 보니 나를 매우 귀찮아하고 짜증도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면서 곧장 뒤로 물러났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말을 건네보고, 싫다고 하면 받아들이는 것. 애를 더 쓸 필요는 없었다. 종종 외국인들은 내가 자신들의 말을 모른다는 걸 알고 온갖 험한 말을 함부로 내뱉는 듯 했지만, 어차피 알아듣지 못하기에 타격은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똑같은 짓거리는 얼마든지 했으니까.

“미친놈. 성질내고 지랄이야.”

나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고, 뒤돌아 항구 쪽으로 걸었다. 오늘도 허탕인가. 그러다 멈췄다. 갑자기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졌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걸어가는 방향에 바로 중화루가 있었던 것이다.

혹시?

나는 다시 뒤돌았다. 그들을 눈으로 쫓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쪽지를 든 손으로 저편의 무언가를 가리켰다. 나는 그의 손끝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일본식 기와를 얹은 ‘중화루’의 지붕 끄트머리가 보였다. 얼씨구, 이게 웬일이야. 알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니. 나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곧장 뛰기 시작했다. 두 사람보다 중화루에 먼저 도착해야 했다. 내가 그들을 데려왔다고 말해야 했다. 두 사람의 판단이나 생각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고연주, 내게는 그 사람이 중요했다.

나는 빠르게 뒷길로 들어섰다. 물웅덩이 위를 뛰어가자 종아리에 차가운 흙탕물이 튀었다. 어느새 중화루 건물 뒤편이 보였다. 나는 더 속도를 냈고 도착하자마자 뒷문 계단을 뛰어 올랐다. 문을 열자 기름지고 고소한 냄새가 확 풍겼다. 한창 음식을 만들던 중이었던 모양이다. 음식쓰레기를 정리하던 직원이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먼지투성이로 어딜 감히 들어오냐는 힐난이 눈빛에 담겨 있었다. 나는 눈치를 보며 부엌을 빠져나가 계단으로 향했다. 언제 폐업할지 모르는 상태이긴 했지만 그래도 중화루는 중화루였다. 직원들은 나 같은 외부인이 부엌을 드나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3층 숙박을 돕고 있다는 이유로 적당히 참아주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면 그냥 피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불운, 그러니까 고연주의 기운을 옮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라이 가문이 미국으로 떠난 후, 중화루를 맡은 사람은 ‘차오’라는 남자였다. 라이 가문과의 오랜 친분 때문에 건물을 맡기는 했으나, 그 역시 청관거리에 별로 희망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도 미국 이민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가게를 인수하자마자 직원 절반을 해고하고 3층을 폐쇄했다. 그리고 왜 아직도 기거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여자애, 고연주를 내쫓으려 했다.

실패했다.

소문에 의하면 고연주가 중화루에 그렇게 오래 머무를 수 있었던 건 라이 가문 누군가의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차오는 약간 결벽한 구석이 있는 남자라서, 그 소문에 진저리를 냈다. 그는 중화루가 아무리 당장 버릴 물건이라지만 그런 추잡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원치 않았다. 그래서 당장 고연주를 내쫓으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어이없어 하는 차오에게 누군가 소문 하나를 더 전했다.

“내버려둬. 귀신 붙은 년이야.”

들어보니 정말 황당한 이야기였다. 전쟁 직후, 라이는 영업을 정돈하며 고연주에게 나가달라고 말했다. 통역사를 두던 화려한 시절은 끝났던 것이다. 고연주는 당장 갈 곳이 없으니 일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부엌일이든 청소든 뭐든 하겠다고 말이다. 그간의 정이 있는지라 라이는 거절하지 않았다. 다정한 결정이었을까? 아니었다. 그는 오갈 데 없는 여자아이가 무슨 일을 겪을지 뻔히 알았다. 누구보다 그가 제일 잘 알았다. 하지만 그 자신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는데, 모종의 어떤 사건들 때문이었다. 고연주가 부엌일을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아, 일꾼 몇몇이 그녀를 보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중 조리사 한명은 직원들 전체가 다 알 정도로 악질이었다. 그는 눈치를 보며 여자를 꾀어내거나 슬슬 간을 보며 구석으로 몰아가는 짓조차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연주의 뒤를 집요하게 쫓고, 만지고, 위협하는 걸 보며 웃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일종의 스포츠와 같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긴 했다.

주말 밤이었던가. 그가 술을 먹고 3층으로 올라갔다. 슬쩍슬쩍 만지는 일이 지겨웠던 모양이다. 단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고연주는 그 안에서 죽은 듯 숨어 있었다. 그는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렀다. 발로 문을 차며 말했다. 두고 봐라. 내가 이 문을 열고 만다. 조막만한 계집이 어디서 감히 문을 닫아. 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고 말 것이야. 그리고 돌아 나와 계단을 밟자마자 그는 균형을 잃었다. 넘어졌다. 목뼈가 부러졌다.

이야기를 다 들은 차오가 물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요?”

이야기를 꺼낸 자가 대답했다.

“라오 아들 팔이 부러졌던 건 기억하지?”

차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냥 저 계집이 이 집과 함께 쇠락하도록 내버려둬.”

차오는 비웃었다. 그리고 거친 일을 대신할 사람들을 고용했다. 그런데 한명은 잠긴 문을 밀어 열다가 팔이 빠졌고, 다른 한명은 계단을 오르기도 전에 머리가 아프다며 쓰러졌다. 결국 차오가 직접 나섰다. 그는 고연주를 끌어내기 위해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계단 끝에 발끝을 딛는 순간, 미끄러졌다. 그는 발목을 심하게 접질렸다. 운이 좋았다. 누구보다 차오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왜냐하면 바닥에 쓰러진 순간 고개를 들었을 때, 벽이 눈앞에 보였던 것이다. 그는 목뼈가 부러졌을 수도 있었다.

나는 3층으로 빠르게 뛰어 올랐다. 가파른 나무 계단이 삐걱대는 소리를 냈다.

“연주야! 손님이야!”

생각보다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서 나는 흠칫 놀랐다. 낡아빠진 이 건물에서는 늘 소리가 이상하게 울렸다. 목소리를 작게 내면 크게 들렸고, 크게 말하면 속삭임처럼 가라앉았다. 때로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소리가 기이하게 뒤틀린다는 것만 일치했지 매번 다르게 들려왔기 때문에 나는 항상 놀랐다. 연주는 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층에 올라서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홀은 한때 사람으로 가득했다. 호텔을 찾아온 이들의 사교장이었고, 중화루에서 가장 많은 손님을 수용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관리하기 힘든, 쓸데없이 넓은 공간에 불과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쪽으로 밀어둔 테이블과 의자 위에는 매일 먼지가 쌓이고 있었고, 호텔 시절부터 있던 피아노는 조율되지 않은 상태로 벽난로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벽난로 위 벽에는 한때 세련되게 반짝거리던 청동 장식이 있었는데, 이제는 뜯겨나간 자국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전쟁 때 누군가 몰래 들어와 장식품을 훔쳐 갔다고 했다. 그와 짝을 맞추기라도 한 건지 먼지더미로 가득한 벽난로 역시 흉물스럽기 짝이 없었다. 연주는 그 앞에 ‘대불호텔’ 프런트를 차렸다. 그래봤자 건물 안에 굴러다니는 테이블 하나를 놓고, 나무판자로 만든 작은 패널을 놓아두었을 뿐이지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이후 차오는 연주를 내버려두었다. 어차피 버릴 물건인데 쓸데없이 힘 빼고 싶지 않다고 호방하게 말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이에 자존심이 상했던 건지 아니면 현실적인 계산을 마쳤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조건을 하나 붙였다. 그녀가 이 건물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속 허드렛일을 시킬 모양이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차오는 그녀에게 3층 숙박과 건물 관리를 맡겼다.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이냐고, 왜 새파란 어린애에게 돈을 만지게 하는 거냐고, 혹시 차오와 연주도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냐고 수군거렸지만 사실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차오 입장에서 숙박은 어차피 운 좋게 걸려드는 푼돈을 쥐는 일에 불과했다. 그는 연주가 자신의 건물에 공짜로 숙식하는 것이 싫었을 뿐이다. 발목을 접질린 일도 꽤 화가 났고. 즉, 연주에게 건물 전체 청소를 맡긴 것이었다. 그렇게 괴롭히면 알아서 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런데 약간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연주가 그 일에 열정을 보인 것이다. 그녀는 일을 시작한 첫날 아침부터 인천항을 돌아다니며 호객행위를 했다. 차오는 연주에게 딱히 뭐라고 하지 못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돈을 벌겠다는 것이었으니까. 싼 값에 하룻밤 묵어가려는 이들이 한달에 대여섯명은 있었다. 게다가 연주는 건물 청소를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물론 구설수에 오르긴 했다. 스무살이 내일모레인 여자애가 항구를 돌아다니며 하룻밤 지낼 곳이 있다고 떠들고 다녔으니. 그중 연주를 따라온 어떤 남자는 진짜 ‘숙소’라는 것을 알고 화를 내기도 했고, 어떤 남자는 밤새 방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연주가 화교의 첩실 노릇도 부족해 이제는 몸까지 팔려 든다고 수군거렸다. 그리고 또 말했다. 귀신이 들러붙지 않고서야 저런 팔자는 없지.

“영현이니?”

뒤에서 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연주가 탁탁, 발소리를 내며 금세 내 곁에 다가왔다. 어깨 부근을 웃도는 머리카락 끝이 물기에 젖어 있었다. 막 씻고 나온 것 같았다. 물비린내가 살짝 풍겼다. 덜 익은 풋콩 냄새와 비슷했다. 연주가 물었다.

“몇명이야?”

“두명.”

“그래? 그런데 왜 혼자 들어와?”

“응, 곧 들어올 거야.”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만일 두 사람이 대불호텔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면? 성급한 마음에 실수를 저지른 것이라면? 그러나 나는 확실치 않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기대에 찬 연주의 얼굴을 보니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빠르게 입을 다물며 시선을 옮겼다. 순식간에 몇초가 흘렀다. 결국 티가 난 모양이다. 연주의 분위기가 조금 딱딱해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후회가 되었다. 급했다. 너무 급했다. 그냥 항구를 돌아다니는 다른 이를 찾으면 되었을 텐데. 그저 빨리 오고 싶다는 마음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슬며시 연주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내게 실망한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약간 굳은 표정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두달 전, 연주는 내게 손님 찾는 일을 좀 도와달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수입이 나쁘지 않다며 더 열심히 해보고 싶다고 했다. 당숙모에게 그 말을 전하자, 그녀는 어디서 그런 천한 것과 어울리냐며 나를 희뜩하니 쳐다봤다. 당숙모는 그러면서도 연주를 통해 내가 벌어온 돈은 꼬박꼬박 챙겼다. 종종 묻긴 했다.

“걔랑 같이 있으면 찜찜하지 않냐?”

전혀.

아줌마랑 있는 게 더 찜찜해요. 지루하기도 하죠.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갈 데 없는 나를 거둬준 먼 친척 어른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배시시 웃기만 했다. 사실 나는 연주를 가리키는 표현들, 그러니까 불운, 재수 없음, 귀신의 해코지, 원한, 팔자 사나운 년, 같은 말들이 좋았다. 어차피 그 말들은 연주를 제대로 가리키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그 표현들을 오히려 그녀를 해치려 했던 사람들을 겨냥했을 때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사실 연주는 자기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부러웠다.

그리고 궁금했다. 어떻게 그렇게 한 것일까.

솔직히 나와 연주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연주는 나보다 많이 배웠고, 그래서 교양이 있었고, 외국어에 능통하긴 했지만, 똑같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당숙모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나 불쑥 찾아온 남편의 친척 아이에게 내보일 연민은 없었다. 그녀에게도 자식이 넷이나 있었다. 당숙은 직장을 자주 그만뒀고,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 나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주정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당숙모의 떡 장사를 돕고, 집안일과 심부름을 하고, 다른 집의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돈을 벌어왔다. 그러나 당숙모의 화를 잠재우기에는 부족했다. 나는 그녀를 이해했다. 동생들이 무능한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보다 나를 탓하는 것이 더 쉬웠기에 내게 거리를 둔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렇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고, 오갈 데 없다고 해서 고독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나는 두려웠고, 절박했다. 당숙 집에 계속 얹혀살고 싶지 않았다. 더부살이 인생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상황을 감내하는 것뿐이었다. 반면 연주는 오래된 건물의 3층에 버젓이 앉아 있었다. 누구도 그녀를 내쫓지 못했다. 누구도 그녀를 괴롭히지 못했다. 그녀야말로 그 건물의 진짜 주인이었다.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나도 차라리 귀신에 씌고 싶었다.

그러나 귀신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비록 당숙모를 이해했지만,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내게 분통을 터뜨릴 때마다 그녀를 밀어 넘어뜨리고 싶었다. 나의 분노 역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지 않았던 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이미 박복한 인생을 더 아래로 끌어내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신이 씌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나. 그건 내 탓이 아니다. 내 속을 헤집고 들어온 누군가의 탓이다.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연주를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종종 연주가 되는 상상을 했다. 그 건물의 주인이 된 나를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어느 쪽으로도 뻗어나가지 못했다. 그곳에 산다는 것, 뭔가를 소유한다는 것, 나를 해치려는 무엇을 물리친다는 느낌을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것은 숨어서 견디는 것, 모르는 척 하는 것,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눈을 감는 것이었다. 나는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없었기에, 종종 집착에 사로잡혔다. 만일 연주와 가까워진다면, 그래서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나 역시 귀신의 호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연주의 표정은 차가웠다. 내가 그녀를 실망시켰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아래층이 소란스러워졌다.

“올라가요. 위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어 나무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연주의 표정이 빠르게 밝아졌다. 그녀는 접어올린 소매를 폈고, 바지 무릎께를 탁탁 털어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리고는 손을 가지런히 모아 프런트 옆에 섰다. 어깨를 펴고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어른스러워 보였다.

두 사람이 홀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그 서양인들이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몰래 안도했다.

연주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Welcome, please come in.”

남자는 나를 대할 때와는 태도가 달랐다. 그는 꽤나 친절한 목소리로 연주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연주가 싹싹하게 대답했다. 호텔에 관한 내용일 것이다. 숙박비와 방위치, 아래층의 화장실 이용법, 아침식사 같은 것 말이다. 뒤에 서 있는 여자는 여전히 피곤해 보였고, 살짝 짜증도 나 보였다. 하지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묘하게 생기 있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 뒤로 슬금슬금 움직였다. 괜히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알아보면, 연주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할지도 몰랐고, 잘못하면 숙박을 취소할지도 모르니까. 나는 조용히 홀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가 나를 향해 몸을 확 돌렸다. 나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뻣뻣하게 섰다. 곧장 고개를 숙였다. 식은땀이 흘렀다. 여자가 나를 알아봤던 것이다. 분명 그런 눈빛이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의아해하고 있었다. 여자가 연주에게 뭐라고 말을 거는 것이 들렸다. 나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연주의 대답이 들렸고, 이어 여자의 다른 말이 이어졌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렸다. 마치 내 귀에 대고 직접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연주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더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홀 안이 소리로 꽉 찼고, 나는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연주야, 그게 아니라……”

그러나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도 없었다. 세 사람은 복도에 있었다. 홀에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강화길
소설가. 소설집 『괜찮은 사람』, 장편소설 『다른 사람』이 있다.




5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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