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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5회)

강화길
2019년 07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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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연주가 나를 찾아왔다.

“얘, 너 나랑 같이 살지 않을래?”

그녀의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빨랫물에 손이 퉁퉁 불어 있었던 것이다. 등과 목은 땀에 젖었고, 몇시간 내내 노동에 시달린 터라 입에서는 쉰내가 났다. 반면 연주는 매우 예뻤다.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긴 후 한갈래로 묶었고, 흰색 원피스 위에 녹색 재킷을 걸쳤다. 손톱은 가지런했고 구두에서는 광이 났다. 옅게 화장을 해서 원래 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이 더 돋보였다. 동네 사람들이 입을 모아 험담하는 그 모습이었다. 화교의 숨겨진 여자, 호의호식하며 사치스럽게 사는 여자, 예쁘긴 하지만 팔자 사나운, 신들린 계집애. 그녀는 아름다웠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연주는 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생각에 잠겼다. 할 말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축축한 손을 뒤로 슬쩍 감췄다. 연주를 보고 있으니, 내가 흙바닥에 떨어뜨린 빨랫감처럼 남루하고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른 때는 안 그랬던가. 연주를 마주하고 있으면, 이 고상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항상 몸 어딘가 홧홧해지곤 했다.

그런데 같이 살자니. 그것도 ‘대불호텔’에서.

“얼마 전에 네가 데려온 손님들 기억하지?”

연주가 속삭이듯 말했다. 묘하게 은밀한 말투에 나는 목덜미가 살짝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전쟁 이후, 나는 어떤 일에도 크게 놀라거나 호들갑 떨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속내를 잘 숨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주가 내게 조금 더 다가왔다. 그녀의 숨소리가 종잇장처럼 사각거렸다. 그녀가 내게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당분간 여자 혼자 있을 거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챙겨 대불호텔로 갔다. 3층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계단을 밟았을 때, 바닥이 훅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계단에서 넘어진 이들이 떠오르며 소름이 돋았고 나는 재빨리 복도로 들어갔다. 그런 생각으로 내려다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계단이 약간 이상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폭이 넓었고, 크기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것도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보이는 다섯계단 정도가 그랬을 뿐이다. 그 아래 이어지는 계단은 아예 잘 보이지 않았다. 뭔가에 가려졌다거나 시야 바깥에 있어서가 아니었다. 계단 색깔이 똑같아서 선과 면이 구분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여기서 내려가는 길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아래에 커다란 구멍이 파인 것 같았고, 3층 전체가 공중에 붕 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누구든 여기서 함부로 발을 뻗으면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았다. 나는 발끝으로 슬며시 계단을 눌러보았다. 마치 얇은 얼음판을 건드렸을 때처럼 빠지직, 깨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세게 잡았다.

“왜 그래?”

연주였다.

“어?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계단은 그대로였다. 금이 가지도 않았고 바닥으로 꺼지지도 않았다. 멀쩡했다. 나는 연주의 안내를 따라 복도 끝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곳에 연주의 방이 있었다. 앞으로 나도 함께 머물 공간이었다. 실제로 나는 서양식 방을 처음 보았다. 낡은 커튼과 오래된 침대, 냄새나는 일인용 소파와 흔들리는 티 테이블, 이가 빠진 찻잔과 창가의 작은 화분. 허름하고 소박했지만 지금껏 내가 지낸 곳 중 가장 좋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이런 곳에 있을 수 있다니. 그리고 나는 궁금했다. 이 물건들 모두 예전부터 있던 것들일까. 인천항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지고, 추운 밤을 지새우기 위해 찾아오던 그때부터 계속 이곳에 있었던 것들일까. 어느 곳으로도 밀려나지 않고 오랜 시간동안 계속 여기에 있던 것들. 그런 생각을 하자 기분이 좋았다.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연주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 호텔 때부터 있던 것들은 아냐. 다 새로 구했어.”

“그래?”

나는 멋쩍게 웃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엉덩이가 푹신하게 가라앉았다. 부드러웠다.

연주가 옆에 앉으며 말했다. “고마워. 선뜻 받아들여줘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고맙지.”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연주를 좋아했고, 역주 역시 내게 호의적이었지만 이 밤중에 이렇게 가까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어색했다. 뭐든 아무 말이라도 해서 이 기묘한 분위기를 좀 풀어야 할 것 같았다.

“사실은 며칠 전부터 당숙모가 시집가라고 성화셨어. 사람도 찾아놨다면서.”

“그래? 어떤 사람인데?”

“음, 잘 몰라. 전라도 어디에서 농사짓는 사람이랬어.”

그러자 연주는 약간 당황한 듯 했다.

“이야기가 많이 진행된 모양이네…… 여기 온다고 하니까 뭐라고 하셨어? 허락하셨어?”

“허락은 무슨.” 나는 웃었다. “알아서 하라고 하셨어. 어차피 군식구였잖아.”

거짓말이었다. 당숙모는 나를 시집보내는 대가로 그 집에서 돈을 받기로 했다. 그녀는 나보고 이대로 나가면 안 된다고 난리를 피웠다. 내가 싫다고 하자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졌다. 내게 배은망덕한 년이라고 했다. 핏줄 같지도 않은 년 데리고 살았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고 했다. 당숙모의 그런 모습이 싫었던지, 아니면 내게 차마 화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숙이 당숙모의 말을 막았다.

“그만해 알아서 살겠다잖아.”

그러자 당숙모가 끼어들지 말라고 쏘아붙였고, 그런 일이 일어날 때면 늘 그랬듯 그는 곧장 아내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말했다.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야.”

당숙모가 울면서 대꾸했다.

“당신은 온 식구가 길바닥에서 죽었다는데, 눈물 한방울 안 흘리는 쟤가 사람 같소?”

연주가 물었다.

“아쉽지 않아?”

“뭐가?”

“그냥, 시집가면 상황이 지금보다 좀 낫지 않겠어?”

“낫겠지. 운이 좋으면.”

“운?”

“그렇잖아. 운 좋으면 가난해도 밭일 한번 안 시키겠지만, 운 나쁘면 반대겠지.”

연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물었다.

“운이 나쁠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

나는 대답했다.

“응. 좋을 것 같지는 않아.”

“왜?”

더이상 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 여자 분은 어디 있어? 지금 뭐 해?”

“옆방에 있어. 자는 것 같아.”

사정을 설명하자면 이랬다. 두 사람 중 남자가 먼저 떠났다. 그는 연주에게 석달치 숙박비를 지불하면서 아내가 이만큼 더 머무를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웃돈을 얹어 주었다. 거기에는 하루 세끼 식사 비용과 청소, 빨래 등등의 비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연주는 건물 관리까지 힘겹게 감당하고 있던 터였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그건 지금까지 ‘대불호텔’을 운영하며 만져본 돈 중 가장 큰 금액이었다. 연주는 당분간 호객을 멈추고 여자를 접대하는 일에만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왜 여자 혼자 남은 거야?” 나는 물었다.

“모르겠어.”

연주가 대답했다. 정말로 모른다는, 그리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그런데 어색했다. 연주는 여자에 대해 뭔가를 숨기는 것 같았다. 혹시 차오 때문인가. 서양인 부부가 목돈을 지불한 것을 차오에게 숨기고 있는 걸까. 설마…… 돈을 들고 달아나려는 것일까. 순간 나는 연주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마음은 가라앉았다. 만일 그랬다면 연주는 남자가 목돈을 줬다는 걸 내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나를 불러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연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래로 향한 긴 속눈썹 때문에 눈가에 그림자가 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연주는 여자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셜리 잭슨. 공포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다.

 


강화길
소설가. 소설집 『괜찮은 사람』, 장편소설 『다른 사람』이 있다.




6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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