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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의 동문서답(1회)

서현경
2019년 07월 04일
 
 
 

 
로라는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다. 마우스나 키보드 누르는 소리만 가끔 들리고, 완전히 작업에 몰두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로라가 마주 보고 있는 것은 노트북이 아니라 나였다. 사람은 뒷모습으로도 표정을 짓는 걸까? 로라는 등 전체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두시간 전 로라의 숙소에 들어섰을 때, 로라는 내게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대신 준비해놓았다는 듯 가방 속에서 봉투를 뜯지 않은 편지를 꺼냈다. “잊고 있었네”라며 편지를 내밀었지만, 정작 로라가 잊은 것은 우리의 저녁 약속이었다. 그래서 로라의 홈웨어를 훑으며 “밥 먹고 해도 되는 거지?”라고 물었고, 로라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로라는 화장실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내가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할 때까지 로라는 화장실에서 버텼다. 로라가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을 때, 나는 김희경 씨의 편지 몇줄을 프랑스어로 옮겨 적고 있었다.
 
“나갈래?”
 
로라의 말에 나는 “삼십분만”이라고 대답했다. 로라는 어깨를 한번 털고는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후로 지금까지 나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숨죽이고 노트북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김희경 씨는 로라의 여동생에 대해 적어놓았다. 로라보다 세살이 어리고, 이년째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다. 성적이 좋아서 외국인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게 되었는데, 덕분에 학비 걱정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김희경 씨는 여동생이 기특하지 않느냐고 묻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로라에게 시선이 향했다. 로라의 등을 감싼 녹색 티셔츠는 내가 빠리에서 유학할 때부터 봐온 옷이었다. 물이 빠져서 하늘색처럼 보였는데, 로라를 처음 만났을 때도 티셔츠는 선명한 녹색이 아니었다.
 
너와 아주 많이 닮았다. 누가 자매 아니랄까봐.
 
나는 자매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거짓말을 해야겠다. 로라를 위해서.
 
“지나, 너무 완벽하게 할 거 없어.” 슬쩍 돌아앉은 로라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너무 애쓰면 오히려 부담스러워.” 로라는 잠깐 편지로 시선을 옮겼다가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
 
나는 동그라미 위에 ‘×’ 표시를, 다시 그 위에 언니,라고 쓰고는 김희경 씨의 글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읽었다. 한 문장을 무사히 넘기면 다른 문장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결국 노트를 덮었다. 관심 없는 듯 노트북만 들여다보던 로라가 그 소리에 몸을 돌렸다. 무관심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방금 로라의 반응은 너무 빨랐다.
 
“나가자.”
 
내가 말했지만 로라는 노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더니 시계를 흘낏 보고 “열한시네” 하며 몸을 돌렸다.
 
우리는 근처 대만식 심야식당에 갔다. 늦은 시간에도 빈 테이블이 거의 없었다. 구석 자리에 테이블 하나가 비어 있어 거기에 앉았다. 가지튀김과 오이무침, 우롱차를 주문한 후 나는 “국수 종류도 시킬까?”라고 물었다. 로라는 빠리에서도 중식을 자주 먹는다며 거절했다.
 
“15구 한국인 유학생 절반이 너한테 과외를 받았을 거야.” 음식을 기다리며 로라에게 말을 건넸다.
 
“한국인이 정말 많았지.”
 
“아직도 그 말 해?”
 
“무슨?”
 
“‘난 언니가 아니야.’”
 
로라는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잊지 않고 말하지.”
 
음식이 나오자 로라는 배가 고팠는지 아무 말 없이 식사에 열중했다. 능숙한 젓가락질로 연신 오이 조각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로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낯설었다. 서울에서 만난 로라는 빠리에서와 달라 보였다. 뭐가 다른 거지? “쥬느쉬빠 언니.” 나는 로라의 억양을 흉내 내며 다시 그 말을 중얼거렸다.
 
로라를 처음 만나던 날, “안녕, 난 로라.” 다음으로 들은 말이 쥬느쉬빠 언니였다. 나는 로라가 한국어로 ‘언니’라고 발음했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했다. 로라가 한국계 입양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로라를 만났을 때, 나는 로라의 얼굴을 바라보며 음식이 사람의 외모에 미치는 영향 따위를 생각하고 있었다. 로라는 아시안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래서 로라가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로라는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과외선생이었다. 빠리에서 자라 빠리1대학을 졸업했고, 프랑스어 과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한국 학생들은 로라를 프랑스인이 아닌 먼저 유학 온 선배쯤으로 여겼다. 로라가 아무리 거리를 두려 해도 그들은 쉽게 마음을 열었고, 로라에게 의지했다. 로라를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로라는 한국인 친구들에게 만큼이나 ‘언니’라는 단어에 질려 있었다. 나는 언니라고 생각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한 후에야 과외 스케줄을 정할 수 있었다. 그후로도 로라는 나에게 “쥬느쉬빠 언니”를 수없이 반복해 들려주었다.
 
하지만 로라는, 달랐다. 그때 나는 프랑스인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완벽하게 그 세계에 속해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먹고, 웃고, 느끼는 것들을 흉내 내며, 내 감각기관에 프랑스인다운 반응을 밀어붙였다. 그런데 로라와 함께 있을 때면 애써 프랑스인이 될 필요가 없었다. 로라가 한국계여서는 아니었다. “나는 프랑스인이야.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로라는 어떤 프랑스인보다도 자신이 프랑스인임을 분명히 했다. 그 단호함은 로라가 세상으로부터 같은 질문을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지 짐작하게 했다. 로라는 민족주의적 발언이나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경계하는 사회 안에서 자신의 출생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인종차별을 겪고 있었다. 꼴라주 강의를 맡고 있는 교수에게서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굳이 로라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로라는 자신의 출생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었다. 그런 로라가 나에게는 너무나 한국인처럼 보였다. 그래서였다.
 
로라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대만 맥주 한병을 주문했다. 밥을 먹는 동안 로라는 김희경 씨의 편지에 대해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했다. 로라는 식당 안을 둘러보더니 한국인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그러게, 이 시간에도”
 
나는 로라의 말에 맞장구쳐주면서 주위에 앉은 외국인들을 훑어봤다.
 
“한국에 별로 관심 없었는데 면접에서 자꾸 떨어지니까 관심이 좀 생기더라고.”
 
로라는 빠리1대학을 졸업한 후, 이름 있는 스튜디오 몇군데에서 일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그리고 최종 면접에서 전부 떨어졌다. 포트폴리오만 봤을 때 함께 일하고 싶다던 회사들이 그녀를 만나면 전부 태도를 바꾸었다. 로라는 그 이유가 자신이 아시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인만 사는 곳에서도 최종 면접에서 떨어져.”
 
내 말에 로라는 맥주를 한모금 삼키더니 ‘마망’이 한국에 대해 잘 안다고 했다.
 
“나를 위해서 공부했어. 나는 관심 없었는데도. 언젠가 궁금할 때가 올 거다, 필요할 때가 올 거다. 난 오히려 그게 더 궁금했지. 왜 그럴 때가 오는 거지?”
 
그때 휴대폰이 울렸고, 나는 로라의 말을 끊으며 입술만 움직여 ‘갤러리’라고 알려주었다.
 
“진아씨, 나 그만둔다고 내일 관장님께 얘기할 거야. 나 없어도 잘 할 수 있겠지?”
 
팀장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세달 동안 레스토랑 오픈에만 매달리고 있잖아. 그런데 우리가 레스토랑에 대해 뭘 알아. 레스토랑 직원을 더 안 뽑고 갤러리 팀을 그쪽으로 돌리는 게 말이 돼?”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하라고요.”
 
나라고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었다. 해야 하니까 할 뿐이다. 팀장은 자꾸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나는 네, 그렇죠,라고만 대꾸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로라가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고, 나는 갤러리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말해주었다. 로라가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이상하네.”
 
“배려가 없지.”
 
“너도 레스토랑 일을 하고 있어?”
 
“갤러리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니까 당장은 같이할 수밖에 없어.”
 
“팀장은 선택을 했대?” 
 
“내일 관장님이 결정하겠지.” 
 
“레스토랑을 오픈하면 팀장은 갤러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거야?” 
 
“그건 모르지.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팀장이 그만두면 넌?” 
 
“조금 힘들어도 견뎌야지. 안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지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어?”
 
“말해야 아나?”
 
그러자 로라가 “무례하네”라고 중얼거렸는데, 억양도 없이 뭉개지는 발음으로 작게 내뱉은 말이라 앞부분의 ‘쎄떰ㅃ’까지만 들렸다. 무례하네? 아니, 어이없다는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다시 묻지는 않았다. 팀장이나 관장을 향한 말이었겠지만, 묘하게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로라는 가끔 내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말했는데 그럴 때 로라의 무료한 얼굴에서 평소와 다른 활기가 느껴졌다. 
 
“어디까지 말했지?”
 
“김희경이 뭐래?”

 


서현경
소설가.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회에서 계속됩니다.
(7월 매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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