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2

대불호텔의 유령(6회)

강화길
2019년 07월 09일

 
 

 
 
3

내가 알게 된 건 셜리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나는 호텔 살림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셜리를 대접하는 규칙을 익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8시 이후, 다섯시간 간격으로 식사를 했다. 이건 그녀의 뜻이라기보다는 식사를 제공하는 중화루와 시간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셜리는 아침과 저녁은 방에서 혼자 먹었지만, 점심은 홀에 마련한 테이블에서 연주와 함께 먹었다. 규칙적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많이 먹지 않았고 식사를 거르는 때도 많았다. 방 밖으로 나오는 일도 없었다. 산책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 마치 그녀는 이 호텔에 스스로를 유폐한 것만 같았다. 그래도 점심시간에 홀에 나오는 일만큼은 지켰다. 바로 그때 내가 그녀의 방을 청소했기 때문이다.

나는 셜리의 방을 청소하는 일이 싫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술과 담배 냄새로 가득한 이 방에는 우울과 낙담의 기운이 배어 있었다. 나는 셜리에게 자주 환기를 시키라고 여러번 말했지만 셜리는 무시했다. 어차피 환기를 해도 냄새를 제거하기는 어려웠다. 매일매일, 담뱃재와 술이 떨어진 자국이 바닥에 엉겨 붙어 있었다. 그 흔적들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지 않았다. 대체 방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거울이 달린 화장대를 책상으로 쓰는 모양이었다. 뭔가를 잔뜩 휘갈긴 종이 더미가 화장대 위에 가득했다. 거울에도 메모지가 잔뜩 붙어 있었다. 셜리는 내게 책상에 손대지 말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을 지켰다. 어차피 손대고 싶지도 않았다. 그걸 치워야 한다는 상상만 해도 짜증이 났다. 이런 방에서는 하루는커녕 한시간도 있고 싶지 않았다. 자기가 돈을 냈으니 함부로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쓰레기장보다 가치가 없었다. 그것이 내가 이 방을 싫어하는 이유였다. 나는 이 호텔에 머무를 수 있다면, 뭐든 감수할 수 있었다. 귀신이든 뭐든 그보다 더한 것이든. 하지만 셜리는 이곳에 머무르게 된 일이 마치 끔찍한 벌이라도 되는 양 온갖 유난을 떨고 있었다. 그렇다고 온종일 방에 처박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에 한번, 밖에 꼬박꼬박 나와서는 남이 그 더러운 방을 치워주는 걸 당연하게 기다렸다.

청소를 마치고 나오니 홀에서 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셜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셜리는 시큰둥한 말투로 대답만 짧게 하고 있었다. 살짝 부아가 치밀었다. 역시 셜리는 이 호텔에 머무는 걸 싫어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연주를 저렇게 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떠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셜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게 피부색만큼이나 다른 사람이었으며, 영영 알 수 없을 존재였다. 하지만 연주는 그런 셜리의 호감을 얻기 위해 매일 애를 썼다. 저 사람이 숙박을 취소하고 떠날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지금껏 나는 연주가 그런 현실적인 행동을 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솔직히 약간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랬다. 어떻게 혼자서 이 건물을 관리해왔겠는가. 무슨 수로 운영을 해왔겠는가. 3층에는 방이 세개였고, 홀이 있었으며 복도에 계단까지 있었다. 2층과 1층 청소도 해야 했다. 그 모든 걸 어떻게 했겠는가. 방에 혼자 앉아서? 정말로 귀신이라도 불러들여서? 게다가 연주는 직접 밖에 나가서 손님들을 찾아왔다. 억척스럽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 주위에 일어났던 불가사의한 일들? 어느날 나는 이 생각을 하다가 허허, 웃어버렸다. 위험천만한 모양의 3층 계단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곳에서는 누구든, 언제든 넘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일들? 글쎄. 운이 좋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운은 누구에게나 따르는 법이니까. 전쟁 통에서 내가 당숙 집을 단번에 찾아냈던 것처럼 말이다. 처음에 나는 그들을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전쟁으로 인천도 완전히 뒤집어졌고, 나는 당숙 부부의 얼굴과 이름 석자만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만났다. 시장 바닥에서 떡을 팔러 온 당숙모를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렸던 것이다.

가끔 당숙모는 그때 어떻게 자신을 알아봤냐고 묻곤 했다. 나는 이렇다 할 설명을 할 수 없었다. 그건 정말 운이었다. 그렇듯 연주에게도 기묘한 운이 따랐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연주는 그 사건들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을 한 적이 없었다. 단 한번도 진실을 말한 적이 없었다. 이상한 소문이 돌아다니든 말든 그냥 내버려두었다. 결국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를 그저 보고 싶은 대로 봤다. 그랬다.  

 
덕분에 나는 연주와 나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일을 시작했다. 복도와 창문을 닦고, 다음에는 화장실을 청소했다. 그러면 오전이 다 갔다. 오후에는 각 방의 소품들을 정리하고 빨래를 했다. 셜리의 끼니를 챙기고 심부름을 하고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다보면 하루가 금세 갔다. 연주는 항상 뭔가와 싸우는 표정으로 잠들었다. 종종 악몽을 꾸는지 고함에 가까운 잠꼬대를 했다. 그러나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단 한번, 꿈에 대해 말한 적이 있긴 했다.

이틀 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연주의 신음 소리에 잠이 깼다. 그녀는 악몽을 꾸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에 찬 소리를 냈다. 나는 연주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연주야, 괜찮아?”

하지만 연주는 계속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나는 큰 소리로 연주를 불렀다. 연주야. 연주야. 그녀는 반응이 없다가 갑자기 허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그대로 멈췄다. 나는 강렬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이건 사람이 죽어갈 때의 모습이었다. 틀림없었다. 피난길에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람을 불러야했다. 그때, 연주가 내 팔뚝을 움켜잡았다. 그녀가 눈을 감은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지더니 가느다랗게 떨렸다. 곧 그 떨림은 양쪽 눈썹 끝을 향해 움직였고 콧잔등으로 번져나갔다. 이어 살짝 벌어진 입속에서 숨소리가 짧게 끊어져 나왔다.

“연주야? 정신 들어?”

그 순간 연주가 허!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크게 내뱉으며 눈을 떴다. 나는 한숨을 쉬며 연주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안쓰러웠다. 이것이 그녀의 삶이었다. 가장자리에 간신히 서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나도 항상 그랬다. 소리 지르는 당숙모 앞에 서 있을 때, 동생들의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저녁을 굶을 때, 허드렛일을 하며 구박을 받을 때, 이렇게 해야 하나. 꼭 이런 식으로 해야 하나.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 하지만 늘 같은 대답을 떠올리곤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할 건데. 그녀를 짓누르는 압박감도 이와 마찬가지겠지.

“안 좋은 꿈이라도 꿨어?”

내 질문에 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되물었다.

“무슨 꿈이었는데?”

조용한 밤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가만히 들려왔다.

“아무도 없었어. 아무도.”

문득, 포탄이 떨어지던 피난길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내 가족들은 우왕좌왕했다. 추측이다. 그랬을 것이다. 그들이 어땠을지 나는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도망쳤으니까. 나는 온 힘을 다해 혼자 길가 너머로 뛰었다. 논두렁 아래 몸을 숨겼다. 축축한 흙탕물에 몸이 모두 젖었다. 나는 얼굴까지 물에 처박았다. 진흙 맛이 느껴졌다. 나는 어둠속에서 몸을 떨었다. 그 와중에도 몸이 젖은 축축한 느낌이 싫었다. 손끝에 만져지는 미끌미끌한 진흙더미가 싫었다. 메마른 풀잎 몇조각까지도. 어디부터였더라.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연주에게 그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꿈을 꿔. 이게 꿈인지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때 일이 계속 반복되는 그런 꿈을 꿔. 나는 논두렁에 머리를 박고 누워 있어. 숨이 막히고, 무서워서 온몸이 떨리고, 눈을 뜨면 아무도 없어.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봐. 다른 사람들은? 가족들은? 모두 어디에 있지?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아무도. 나는 몸을 떨며 옆을 바라봐. 그리고 시선을 멈추고 말지. 거기에는 내가 있어. 길게 옆으로 누워서 눈을 뜨고 있는 내가 있어. 피를 흘리고 의식을 잃어가는, 죽어가는 모습이야.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나를 흔들어.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봐. 아직 죽지 않은 거야. 하지만 너무 고통스러워하고 있어. 몸이 떨리고, 입에서는 침과 피가 흐르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나는 손을 뻗어 내 눈을 감기는데, 잘 안 돼. 눈꺼풀이 자꾸만 다시 위로 올라가. 내리면 다시 올라가고, 내리면 다시 올라가고. 결국 나는 손으로 내 눈꺼풀 위를 덮고 있어. 아주 오래도록. 입속에서는 계속 진흙 맛이 나.

이야기를 마쳤을 때, 동이 터오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둠이 한겹 벗겨졌다. 좁고 아늑한 방이었다. 어느 순간, 연주가 내 손을 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다행이야. 꿈이어서.”

그건 내가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연주에게 귀신이 붙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귀신이 될지도 모르는 빌어먹을 팔자와 싸우고 있었으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때문에 나는 셜리가 싫었던 것이다. 그녀는 절대 우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셜리에게 속내를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연주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내 일은 그녀를 돕는 것이었으니까.

연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가 웃음을 멈출 때까지 복도에 가만히 서 있다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셜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강화길
소설가. 소설집 『괜찮은 사람』, 장편소설 『다른 사람』이 있다.




7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