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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의 동문서답(2회)

서현경
2019년 07월 11일
 
 
 
너 언니래. 나는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입을 열지 않자 로라가 “간단하게”라고 말했고, 나는 “여동생이 있대”라고 정말 간단하게 대답했다. 로라의 시선이 느리게 위를 향하다 다시 내려왔다. 로라가 기다리는 걸 알았지만 나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김희경 씨의 편지는 이번이 두번째였다. 그녀의 첫번째 편지를 한국어로 바꾸어 로라에게 전한 것도 나였다. 로라가 처음 서울에 왔던 지난 2월이었다. 로라의 첫 한국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빠리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그 자리에서 로라는 복지회를 통해 받은 편지를 보여주며 한국인 부모를 찾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단순한 여행이라고만 생각했던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로라가 읽어달라고 내민 편지는 침묵을 깨기에 아주 좋은 핑계였다. 나는 재빨리 나서서 편지를 읽었다.
 
편지는 연락을 받고 너무 기뻤다고, 언제 만날 수 있겠냐고 묻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로라가 졸업한 대학이 프랑스 최고의 대학이 아니냐며,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한참을 자랑하고 다녔다는 말에 로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부루퉁한 입술에서 짧게 터진 웃음은 서로 다른 사람의 것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장황하게 늘어놓는 내용들을 프랑스어로 고쳐 읽으며 나는 자주 더듬거렸다. 편지는 자식을 잘 둔 덕에 프랑스 구경을 하게 생겼다며 기뻐하는 것으로 끝났다.
 
로라는 편지를 받아들고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이렇게 적어줄 수 있어?”라고 물었다.

“편지 잘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에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찾아뵙겠습니다.”
 
한국어로 내용을 받아 적으면서 나는 왠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로라가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로라는 내가 건네주는 편지를 받아 이름을 적은 후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주소를 가르쳐주지 않아서 다행이네.”
 
로라는 한동안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한국에 머무는 시간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정도였다. 빠리로 돌아간 후, 로라는 어느 때보다 다정한 메일을 보내왔다. 한국의 친구들이 보여준 친절에 감사한다는 인사였다. 내한한 외국 배우들이 흔히 사용할 법한 정중한 표현 속에서 나는 로라가 지키고 싶어하는 거리를 읽어냈다.
 
나는 그때 내가 친구들 앞에서 로라를 망신 주려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로라가 귀를 기울이고, 애써 담담한 척 구는 모습을 봐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김희경 씨였다. 하지만 로라에게 닿은 것은 내 목소리와 말이었고, 나는 그런 상황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식당을 나오며 로라는 “자고 갈래?”라고 물었다. 나는 아직 다 옮기지 못한 편지를 떠올리며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로라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김희경 씨는 로라가 여동생을 만나면 서로 할 얘기가 많을 거라고 했다. 그녀는 로라를 빠리에서 유학하는 학생이라 생각하는 걸까. 나는 ‘공부’라는 단어를 ‘일’로 고쳤다. 이제 로라의 동생은 일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이 되었다. 조금은 로라와 닮아 보였다. 그러자 동그라미와 가위표, 언니로 엉망이 된 문장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떠올랐다.
 
너를 많이 닮아서,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났단다.
 
단어 몇개 바꾸었을 뿐인데도 힘이 빠져 편지에서 시선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로라의 노트북에 시선이 갔다.
 
화면에는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인물의 옆모습이 보였다. 인물은 배경 속 한없이 깊은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목적지에 닿지 못하고 중간에 멈춰진 팔이나 손의 동작 따위에서 감정이 느껴질 여지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화면 속 인물이 자꾸만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이 담고 있는 심도는 이차원의 공간이 표현해낼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에 인물을 던져 놓았다. 그것은 거리의 깊이였다. 로라의 사진 속 인물은 나에게서 너무 멀어 보였다.
 
내가 처음 본 로라의 사진은 프랑스 부모의 사진이었다. 그들에게서는 게르만족의 특성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고향이 어디냐고 묻자, 부모가 모두 독일에서 건너온 이민자 출신이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사진을 한장씩 내밀며 ‘파파’ ‘마망’이라는 단어를 뱉어냈다. 아빠와 엄마로는 번역될 수 없는 낯선 단어들을 듣는 기분이었다.
 
나는 로라의 사진 앞에 설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피사체로부터 무한으로 밀려나는 느낌. 로라의 사진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지금, 나는 이것이 로라가 세상으로부터 느낀 거리라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서 아무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는지 로라가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지나, 요즘 프랑스어 공부는 계속하고 있는 거야?”
 
로라가 지금처럼 걱정스럽다는 듯이 질문을 던지면, 그건 질문이 아니라 로라가 내린 평가였다. 지나, 프랑스어 실력이 형편없어졌구나, 정도로 알아들으면 무리가 없었다. 로라가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이유는 아시안이라서가 아닐 것이다. 나는 노트의 빈 페이지에 번역된 글을 옮겨 적어 로라에게 건넸다. 로라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편지를 읽었다. 그러더니 노트에 몇 문장 적어 내밀었다. 내용은 간결했다.
 
고생이 많겠네요. 타지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나는 잠깐 고민하다 ‘일’을 공부‘로 바꾸어 프랑스어로 옮겨 적었다. 로라는 노트를 뜯어 아래에 이름을 적고, 칼을 들고 와 뜯어진 부분을 깔끔하게 잘랐다. 여백으로 가득한 종이는 반듯하게 접혀 봉투 안에 들어갔다.
 
“내가 만약 입양되지 않았다면, 나도 외국에 돈 벌러 나가야 했을까?”
 
“그럴지도.”
 
나의 대답에 로라가 고개를 몇번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안됐네”라고 중얼거렸다. 평소보다 부드러운 말투였다. 나는 로라의 말투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궁금했다. 장학금을 받으며 일본에서 유학을 한다는 로라의 동생이 떠올랐다. 나는 로라를 향해 부드럽게 “다들 안됐지”라고 답했다.
 
김희경 씨의 편지에 드러나는 여유나 반가움은 분명 어딘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내가 느껴야 할 감정이 아니었다. 불편함은 사실 로라가 겪어야 할 문제였다. 로라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마음이 불편하다,라는 말을 제대로 옮기자면 이런 내용이어야 했다.
 
로라, 김희경 씨의 편지를 읽고 네가 불편함을 느낄 수 없게 만들어서 내 마음이 불편해.
 
로라가 조용히 움직여 나에게 이불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이다 소파 등받이에 얼굴을 묻었다. 로라는 “잘 자”라고 중얼거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를 작게 골았다.
 
 
화면을 꽉 채운 입술이 쉬지 않고 달싹거렸다. 소리가 제거된 영상인데도 입술에서 고조된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입꼬리가 자주 올라가는 입술은 보고 있으면 따라 웃게 만들 정도로 표정이 풍부했다. 사람들이 입술의 생기 넘치는 수다에 빠져들 무렵, 화면이 180도 회전했다. 입술의 울고 웃는 순간이 뒤바뀌었다.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간 것이었고, 내려간 입꼬리는 거꾸로 올라간 것이었다. 사람들은 입술을 비죽거리며 불만을 쏟아내는 입술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화면은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고, 화면 속 입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꼬리를 올리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입술을 따라 웃는 사람은 이제 없었다. 화면 속에서는 이제 불만스러운 입술이 웃는 척하며 투덜거렸다.
 
“팀장님, 관장님이 우설 각도 조절 좀 하라시는데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를 팀장이라고 부르는 직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미간을 찌푸린 관장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관장이 “조명 살짝 틀까? 너무 빨리 상하는 거 같은데”라고 말하고 코 밑을 살짝 만졌다. 테이블 위에는 생기 없이 불그스레한 장미 다섯송이가 꽂힌 화병이 놓여 있었다. 저민 소 혀를 말아서 만든 장미였다. 사람들은 화병 앞을 무관심하게 지나쳤다. 조명을 받고 있는데도 작품일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내가 직원에게 눈짓을 하자, 직원이 재빨리 조명을 조정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장이 “아영씨 잘하네요. 지금 딱 좋다”라며 웃었다. 
 
“관장님, 저 기획안 말인데요,”
 
그 말에 걸음을 옮기던 관장이 “기획안 준비할 시간도 있었어?”하고 되물었다. 너무 놀란 표정이라, 그게 내 일이라고 알려줘야 하나 고민했다. 내가 검토해달라고 하자, 관장은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녀는 자리를 벗어나기 전에 “그리고 레스토랑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어. 고생 좀 해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팀장의 사표가 수리된 후, 나는 어느새 팀장이 되어 있었고, 관장은 나에게 말을 놓았다. 내가 갤러리에서 일한 경력은 이전 팀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잘 것 없었다. 그런데도 관장은 나를 팀장처럼 대했다. 의견도, 이견도 없는 관리인을 다루는 데 익숙한 관장 앞에서 나는 새로울 것도 없고, 조심할 필요도 없는 익숙한 직원이 되었다.
 
“관장님이 팀장님한테는 정말 편하게 대하시네요. 저한테는 아직도 딱딱하신데. 부러워요.”
 
나는 직원의 얼굴을 쳐다보다 조명으로 시선을 돌렸다. 관장이 딱 좋다고 칭찬했던 조명은 작품에 그림자가 지게 만들었다. 관장이 직원들 의견을 잘 들어준다고 좋아하는 직원의 말을 들으며 “나한테도 처음엔 그랬어”라며 웃어줬다.
 
“아직은 조심스러우시겠지.”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라는 걸 확인하고 내키지 않아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알로? 아니, 여보세요?”
 
“진아, 왜 이렇게 전화가 안 돼?”
 
엄마는 마망이 아닌 엄마다운 질문으로 통화를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중이라고 말해도 엄마는 다음 말을 이어서 꺼냈다.
 
“내일 몇시에 올 거니? 네 언니네는 좀 늦을 거라던데.”
 
“일 끝나면 아홉시야.”
 
“네 고모들은 점심 전에 올 거래.”
 
엄마는 지난 며칠 동안 신기할 정도로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처음부터 같은 대화를 반복하는 것이 엄마의 방식이었다. 내가 어떻게 말해야 엄마에게 그대로 전해질 수 있을까, 따위의 고민은 오래 전에 그만두었다. 어떤 말도 엄마가 듣지 않을 걸 알고 있어서 입을 다물었다.
 
“진아야, 가능하면 시간 맞춰보도록 해. 너 때문에 고모들이랑 언니네도 시간 비운 거니까.”
 
엄마는 일방적으로 가족 모임 날짜를 정했다. 나를 위해서 내가 쉬는 날 모이기로 했다지만, 요즘 나는 휴일을 챙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고모들과 언니네까지 내 일정에 맞춰 움직였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엄마와 통화를 하는 사이 로라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확인해보니 김희경 씨의 편지가 촬영된 사진이었다. 로라에게 전화를 거니 바로 연결되었다.
 
“일하는 중이야. 무슨 일이야?”
 
“김희경 씨 편지 확인했어?”
 
로라는 내일이면 프랑스로 돌아간다. 시도 때도 없이 내게 물어보거나 부탁하기 위해 연락을 하던 로라는 어제 저녁 “이틀 뒤에 출발해. 시간이 좀 걸리는 일들이라 빠리로 돌아가서 기다리려고”라는 말을 꺼냈다. 로라를 도와주면서 그녀가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는 짐작은 했다. 한국에 머무를 결심까지 한 데는 김희경 씨의 편지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나는 갤러리 중앙을 차지한 채 썩어가는 혀를 보며 나는 방금 전 관장이 그랬던 것처럼 코 밑을 손가락으로 슬쩍 문지르듯 막았다. 날이 더워서인지 벌써부터 거무스름하게 변하고 있었다. 전시하는 동안 장미는 점차 검게 썩어 들어갈 것이다. 부패하는 장미는 인상적이고 고약하다. 나는 입안의 혀를 괜히 움직여봤다. 
 
“징그러워.”
 
로라는 말을 놓친 사람처럼 되물었다.
 
“뭐?”
 
“혀가 징그러워.”
 
“내 말이?”
 
로라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웃었다. 로라는 ‘혀’를 ‘말’이라고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장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징그럽다는 뜻을 가진 몇가지의 떠오르는 단어들을 뱉었다.
 
“혀가 불쾌해. 소름끼쳐. 거슬려. 아, 대체 뭐지?”
 
“지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지금 보고 있거든. 말이 견디기 힘들어.”
 
나는 그게 사전적인 의미에 불과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정말 단어를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로라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나는 변명하듯이 로라에게 소 혀로 만든 장미에 대해 설명했다. 로라가 길게 한숨을 쉬더니 “혀가 징그러워”라고 알려주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내가 원하던 표현이야. 고마워. 편지 집에 가서 확인할게.”
 
나는 화병 위로 그림자를 만드는 조명 각도를 다시 조정했다.

 


서현경
소설가.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3회에서 계속됩니다.
(7월 매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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