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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7회)

강화길
2019년 0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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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한달이 갔다. 추운 날이 시작되었다. 중화루는 자주 문을 닫았다. 추위와 적은 매출, 그리고 유지비 때문이었다. 차오가 건물을 넘기기 일보 직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1층에서 불을 때지 않는 날이면 건물 전체가 꽁꽁 얼었다. 연주는 그런 상황에 꽤나 단련이 된 모양이었다. 그녀는 추위에 떠는 나와 셜리를 위해 알아서 불을 때고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중화루가 문을 닫으면 음식도 알아서 해 먹어야 했기에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봤자 옥수수가루를 풀은 죽이나 찬밥을 눌러 만든 누룽지, 김치와 마른 밥이 대부분이었다. 어차피 나는 이렇다 할 음식을 먹어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몸을 데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감사했다. 의외로 셜리는 음식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곧 떠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불평을 했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조용했다. 대신 술과 담배를 꼬박꼬박 요구했고, 연주는 그걸 구하느라 고생했다. 그녀가 원하는 품질의 ‘미제’는 흔치 않았다. 구한다고 해도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싸구려 제품이었다. 셜리는 투덜대면서 술과 담배를 빠르게 소진했다. 그녀는 늘 취해 있었다. 꼭 그래야만 하는 사람 같았다. 그러다 술과 담배가 덜어지면 약간 정신을 잃었다. 연주에게 고함을 치거나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때마다 연주는 최선을 다해 셜리를 달랬다. 셜리는 끈질기게 연주를 무시했지만, 연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셜리의 추태를 다 받아줬다. 그런 날 밤이면 연주는 특히 더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함께 나라즈케를 만드는 시간이 소중했다. 먹을 것이 워낙 부족했지만, 특히 가장 아쉬운 건 채소반찬이었다. 그래서 연주와 나는 함께 김치를 담고 야채를 소금에 절여 반찬을 만들었다. 그중 연주가 가장 좋아한 반찬이 바로 야채를 누룩에 숙성시켜 만드는 일본식 반찬인 나라즈케였다. 사실 사치스런 음식이었다. 누룩을 구해야 했으니까. 다행히 우리가 중화루 직원이라는 사실이 도움이 됐다. 나도 그 반찬을 좋아하긴 했지만 술 냄새 때문에 많이 먹지는 못했는데, 연주는 나라즈케를 반찬은 물론 주전부리로도 먹고 야식으로도 먹었다.

그 정도로 좋아했으니 나라즈케가 떨어지기 전에 다시 담는 것도 일이었다. 겨울이 되면서 다른 반찬이 마땅치 않다보니 우리는 나라즈케를 자주 만들었다. 연주는 무와 오이, 당근, 무청 등등 구할 수 있는 야채를 모두 누룩에 절인 뒤 날짜를 적은 장독에 담아두었다. 가장 오래된 것부터 하나씩 먹으면서 새로운 야채를 누룩에 절이는 것. 그녀가 유일하게 즐거워 보이는 시간이었다.

오늘 재료는 시래기였다. 조리사가 구해다 준 누룩이 다 떨어지는 바람에 오래된 술 찌꺼기로 만들기로 했다. 냄새가 꽤 지독했다. 연주는 삶은 시래기를 칼로 듬성듬성 썰었다. 조용했다. 중화루는 문을 닫았고, 셜리는 술주정을 하다 잠든 모양이었다. 평화로웠다. 시래기를 손질하며 약간 신이 나 보이는 연주를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냄새 때문에 살짝 열어놓은 뒷문 틈으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한기가 돌 정도는 아니었다. 벌써 한달이 지나갔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이제 한달이 또 금세 지날 것이고 시간은 계속 흘러가겠지. 이런, 냄새에 취했나. 하지만 이런 감상적인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연주가 중얼거렸다.

“좋아할지 모르겠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야?”

연주가 말했다.

“아, 셜리 말이야. 오늘 저녁 반찬이 없어서. 예전에 담아둔 나라즈케 꺼내서 주려고.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

나는 연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술 냄새 나니까 뭐 좋아하겠지.”

너무 빈정거렸나 싶어 덧붙였다.

“좋아할 거야. 중식이나 다른 음식도 잘 먹으니까. 아무튼 너도 참 대단해. 셜리가 은혜 갚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어.”

연주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돈 받은 만큼 하는 건데 뭐.”

그리고 희미하게 웃었는데, 확실치 않았다. 웃은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으니까. 역시 지금 나는 취한 걸까. 절여진 시래기에서 윤기가 흘렀다. 연주는 그릇을 들고 뒷문으로 걸어갔다. 바깥 장독대에 넣어두는 일이 다음 차례였으니까. 나는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줬다. 차가운 바람이 우리 얼굴로 밀려들었다. 나는 먼저 밖으로 나가 장독대 문을 열었다. 이제 나라즈케를 넣고 몇달간 숙성시키면 된다. 물론 그 전에 먹어치우겠지만. 뒤뜰에는 나라즈케를 넣어둔 장독대가 여러개 있었다. 김치를 넣어둔 장독대도 있었고, 장을 담아둔 장독대도 있었다. 모두 나와 연주가 함께 만들었다. 맨 오른쪽 장독대의 된장이 사라질 즈음이면 봄이 올 것이고, 그러면 새 된장을 담아야 할 것이다. 지금 먹고 있는 나라즈케는 몇달은커녕 몇주도 되지 않아 꺼낸 것들이다. 연주는 맛이 궁금해서 어쩔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반찬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꺼낸 것이었다. 이번 나라즈케는 충분히 숙성시킬 수 있을까. 차라리 염장이 많이 된 젓갈류를 준비하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이상하게 뿌듯했다. 호텔의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였다. 물론 나 혼자 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연주를 돌아봤다. 그런데.

연주가 문 안쪽에 뻣뻣한 자세로 서 있었다. 장독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매우 무섭고 끔찍한 것을 봤다는 듯 얼굴이 창백했다. 잔뜩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도저히 이쪽에 올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얼마 전 악몽을 꿨을 때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연주야?”

나는 그녀를 불렀다. 그제야 연주는 정신이 든다는 듯 나를 봤다.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나라즈케를 장독대에 집어넣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빨리 들어가자.”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확실했다.


잠에서 막 깨어난 터라 셜리의 얼굴은 잔뜩 부어 있었다. 방도 마찬가지였다. 머리카락 뭉치들이 여기저기 보였고 메모한 종이들도 함께 굴러다녔다. 그중 일부는 술에 젖어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견디다 못한 나는 창문을 열었다. 셜리는 연주를 붙잡고 쉬지 않고 계속 말했다. 나는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술주정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연주의 의연한 대처가 안쓰러웠다. 나는 문가에 서서 연주가 돌아서기를 기다렸다. 1층에 내려가 함께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셜리는 말을 끊지 않았다. 평소에는 냉담하리만큼 말이 없더니, 오늘은 귀찮을 정도로 말이 많았다. 나는 몰래 한숨을 밀어내며 문가에 기댔다. 그 순간, 연주가 나를 돌아봤다.

“같이 저녁 먹자고 하네.”

나는 곧장 말귀를 알아들었다. 셜리와 함께 있어야 할 것 같으니 나 혼자 나가라는 뜻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연주의 일이었고 이것이 나의 일이었으니. 문을 열다가 무심코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는데, 연주가 셜리의 어깨를 부드럽게 매만지는 모습이 보였다. 셜리는 연주의 그 손을 잡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손길이 친숙해 보였다.

그때 셜리가 나를 향해 뭐라고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 위에 연주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너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대.”


그렇게 이상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막상 밥을 먹기 시작하자 셜리는 별 말이 없었다. 중간중간 무슨 말을 하긴 했는데 연주가 통역하지 않는 걸 보면 쓸데없는 이야기인 듯 했다. 두 사람은 말이 통하고 나는 그렇지 않다보니 내용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저 여자의 속내를 알아서 뭐하나 싶었다. 내게 할 말이 있다면 셜리가 나를 보고 말했을 것이고 연주가 통역을 해줬을 테니. 어쨌든 어색했다. 나는 빨리 식사가 끝났으면 했다. 어쩌다보니 이 여자의 변덕에 맞춰주게 되는 바람에 할 일이 잔뜩 밀렸다. 어서 마무리하고 방에 들어가 잠들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셜리가 포크를 내려놓더니 내게 어떤 말을 건넸다. 나는 곧장 연주를 바라보았다. 연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너는 잠잘 때 괜찮아?” 

연주가 물었다. 셜리의 질문이라고 했다.

“무슨 소리에요, 그게?”

나는 셜리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그녀는 퀭한 얼굴로 나를 들여다봤는데, 농담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진지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덧붙였다.

“가끔 악몽을 꿔요.”

셜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나는 연주의 목소리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꿈이 아니에요.”

어젯밤, 갑자기 잠에서 깼어요. 처음에는 침대 밑에서 들려왔어요. 쥐라고 생각했어요. 여기 온 첫날, 사실 쥐를 봤거든요. 끔찍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그건 살아 있는 것이니까요. 살아 있는 것들은 기껏해야 똑같이 살아 있는 존재에게 해를 끼칠 뿐이죠. 쥐는 바닥 아래 갇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방에 들어올 일은 없을 테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냥 잠을 청했어요. 눈을 감는 순간, 소리가 커졌어요. 정확히 말하면 소리가 많아졌어요. 한마리가 아니라 다섯마리는 되는 것 같았어요. 불안한 마음에 일어났죠. 그러자 소리가 멈췄어요. 마치 그런 적 없다는 듯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침대에 누웠어요. 그 순간, 방바닥 전체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어요. 마치 우박이 거꾸로 쏟아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매일매일 그래요.

그리고 셜리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대답했다.

“저는…… 저는 들은 적이 없어요.”

문득, 연주가 악몽에 시달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뭔가를 봤다는 듯, 잊을 수 없는 걸 목격했다는 듯. 조금 전 장독대를 바라볼 때도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

연주가 내 말을 통역하자 셜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나는 약간 의아했다. 들은 적 없다는 말이 저렇게 놀랄 일인가. 혹시…… 통역을 잘못한 건 아닐까. 하지만 연주의 실력이 그렇게 형편없지는 않을 텐데. 나는 연주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녀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연주에게 속삭였다.

“왜 저러는 거야? 여기서 살기 힘들다는 거야?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

연주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눈길은 셜리에게 향해 있었다.

셜리가 창가에서 돌아섰다. 그리고 방을 왔다 갔다 하며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통역하는 연주의 목소리도 불안하게 흔들렸다.


소설을 쓰고 있어요. 삼년 전인가, 19세기 심령연구가 집단이 논문을 쓰기 위해 어떤 흉가를 빌려 연구한 책을 읽다가 아이디어를 얻었죠. 나는 흥분했어요. 그 이야기를 소설로 써야겠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쓰고 말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흉가’가 필요했어요. 상상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기괴한 악몽이 아니라, 손끝에 와 닿는 공포의 체온을 느끼게 해줄 진짜가 필요했어요. 가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언제나 진짜가 필요해요. 이 모든 건 진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에 불과하니까요. 그래서 나는 영감을 줄 만한 흉가를 계속 찾아다녔어요. 없었어요. 아무리 찾아도 없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도와줬어요. 평론가이자 편집자인 그는 늘 제 작업에 협조적이죠. 그는 훌륭한 예술작품에 대한 심미안을 갖고 있고, 네. 나를 존경한다고 말하곤 하죠. 어쨌든 그는 내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죠. 그건 나를 위해 돈을 벌거나 살림과 육아를 도맡는 하찮은 종류의 일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그는 더 위대한 방식으로 내게 헌신하죠.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요. 그도 그렇게 생각하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야만 하죠. 그래야만 해요. 그는 내가 무한한 경험과 감정적 한계를 돌파하는 걸 돕죠. 내 이야기는 인간의 음험한 감정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때문에 내가 그 상황을 이해하지 않으면 쓸 수 없기 때문이죠. 맨정신으로 견디기 힘들어요. 그래서 우리는 매일 술을 마셔요. 담배를 피우고 약을 하죠. 그는 그것들이 나를 해방시켜줄 수 있을 거라고 말하죠. 그래요. 그럴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야만 하죠. 그래서 나는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도 참죠. 아니에요. 때때로 참지 못하죠. 하지만 그가 실망하리라는 걸 알기에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지 못하죠. 난 이게 어떤 건지 알아요. 정확히 알아요. 이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군요. 어쨌든 저는 흉가를 찾아다니는 일이 좋았어요. 그러던 중 캘리포니아 어떤 마을의 기괴한 흉가를 보았어요. 전체가 불타버리고 건축 뼈대만 남은 흉물스런 건물이었죠. 캘리포니아에는 어머니가 살고 있었어요. 아,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증오하고 한심해하고 질투하죠. 그녀는 내가 뚱뚱하기 때문에, 예쁘지 않기 때문에, 사랑받을 만한 글이 아니라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글을 쓰기 때문에, 너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을 거라고 말했죠. 나를 사랑하는 건 오직 어머니뿐이라고 했죠.

어쩌면 결국 나는 평생 어머니의 인정을 받기 위해 그 많은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어떤 분노도 내보일 수가 없었죠. 만일 내가 분노를 터뜨린다면 그녀는 낙담하고 배신감에 치를 떨겠죠. 그녀를 깨우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녀는 하상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니까요. 나는 그것이 두려웠던 거예요. 결국 그녀가 실망할까봐 주저했던 거죠. 어쩌면 그래서 내가 두려움을 만드는 사람이 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그 건물의 유래와 소문, 원래의 용도, 만든 사람에 대해서 말이에요. 그녀는 예상대로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이 가득 담긴 답장을 보내왔어요. 건물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았죠. 그녀는 말했어요. ‘직접 와서 조사하지 그러니. 셜리.’

나는 그때 어머니가 건물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걸 눈치챘어요. 알고 있었다면 잘난 척을 늘어놓으며 내게 말했겠죠. 이런 것도 모르다니 작가답지 않구나. 편지에는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구절이 있었어요. 바로 제 증조할아버지가 그 건물을 지었다는 이야기였죠.

‘하지만 네 증조할아버지가 갑자기 그 건물을 만든 이유를 아니? 모르겠지. 네 증조할아버지는 세계를 유람했고, 거기서 얻은 영감들로 건물을 올렸다. 그 건물은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기묘한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단다. 그때 조선이라 불리던, 일본의 식민지였던 나라의 작은 항구도시에 가신 적이 있었다. 그곳에 호텔이 있었는데 그 하룻밤이 얼마나 기이했던지 뜬눈으로 밤을 새우셨고, 날이 밝자마자 우마차를 불러 수도로 향했다고 하시지. 너는 동양에 대해 잘 모를 테니 그 경험이 어떤 건지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덕분에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는 충분히 되었어요. 부패와 질병, 배신감과 미움, 질투와 실망, 그 감정들이 한데로 뒤엉켜 내 안을 흔들었고, 이제 첫 문장을 쓰기만 하면 되었죠. 나는 오래된 저택에 얽힌 이야기를 쓸 생각이었어요. 그 집의 초자연적인 현상에 흥미를 느낀 어떤 박사가 보통사람과 다른 경험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는 그런 이야기를 쓸 생각이었죠. 네! 박사는 바로 저예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죠. 그는 판을 벌리고 인물들을 배치해서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볼 생각이었던 거죠. 그는 나처럼 가짜를 만드는 사람이고, 가짜들이 느끼는 진짜 감정에 몰입해 있었죠. 나는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때 남편이 물었죠.

“적어도 동양의 그 호텔을 직접 봐야 하지 않겠어?”

나는 거절했어요. 이미 이 자료만으로 충분하고 머릿속에 구상이 다 끝났다고 말이에요. 그러자 남편은 실망한 것 같았어요. 내가 안일하고 평범한 태도로 작품을 구상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모르겠어요. 정말로 그가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그래서 내게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해버린 걸까요. 그 바람에 마음이 약해졌고, 나는 결국 여기에 왔죠. 외관은 볼품없고 역한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죠. 나는 영감보다는 짜증과 피로를 느꼈어요.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죠. 하지만 그는 말했죠.

“굉장한 곳이야. 여기서 몇개월 더 지내자. 아예 이곳에서 소설을 써봐.”

나는 거절했어요. 우리는 밤새 소리 지르고 서로를 비난하고 물건을 집어던졌어요. 나는 여기가 싫었어요. 이런 곳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싫었어요. 우리는 지독하게 싸웠고, 나는 패배했어요. 그는 항상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말을 하죠. 내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면, 그는 그건 나쁜 생각이라고 대답하죠. 그때의 수치심, 기막힌 양보. 나는 이를 갈며 대답했죠. 

“그래, 가장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를 쓸게.”

그러자 그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했어요. 그 순간, 아세요? 기묘한 위로를 받았다는 걸. 분노와 증오가 사라지고 어떤 뿌듯함이 밀려왔다는 걸.

어쩌면 저는 어머니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네.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죠. 이후 난 이곳에 머물렀죠. 아무 일도 없었어요. 어떤 것도. 여기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낡고 지저분한, 금방 몰락할 호텔에 불과했죠. 미친 듯이 메모하고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어요. 나는 그의 말을 들은 것을 후회했죠. 그리고 바다를 보았어요. 이곳의 바다는 태평양이죠. 나는 대서양을 보며 살았어요. 다른 바다에 왔는데 나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죠.

그러자 명료해졌어요!

살면서 이렇게 제정신인 순간이 없었죠. 그래서 짐을 챙겼어요. 나는 그와 헤어지겠다고 생각했고, 어머니와도 인연을 끊겠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가능성이 다 펼쳐진 느낌이었죠. 그리고 이제 더는 여기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죠. 곧장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어요. 그 순간, 그 소리를 들었던 거예요. 쥐처럼 무언가를 갉아먹는 듯한, 우박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

그리고 어떤 감정이 내게 전해졌어요. 내가 토해낸 증오와 미움이 그대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어요. 마치 내가 그 모습을 원했다는 듯이 말이에요. 그것은 내게 속삭이기까지 했어요. 잘 들어, 제대로 들어, 이런 걸 듣고 싶어 했잖아? 이런 걸 원했잖아? 이런 걸로 네 글을 완성하고 싶어 했잖아? 모르겠어? 이런 소리가 없으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무엇도 쓸 수 없지. 집 밖으로 나가려 할수록 그 소리는 더욱 커졌고, 나를 짓눌렀어요. 나는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어요. 갇히고 만 거죠.

이전에는 확신이 있었어요. 어떤 곳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사람은 나라고요. 내가 그것을 읽어내고, 그래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진짜가 있어요. 여기서 만드는 사람은 내가 아니에요. 다른 존재예요. 그가 나를 만들고 있어요.

당신들은 진짜인가요?


이 여자 완전히 미쳤군. 돌았어.

셜리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생각했다.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으니 이런 환각을 보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 그걸 진짜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건가. 겨우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우리를 붙잡아 둔거야? 나는 연주에게 눈짓했다. 적당히 맞춰주고 빨리 나가자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연주가 이상했다. 그녀는 셜리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한 것 같았다. 보기에는 그랬다.

설마, 연주야. 이것도? 이런 말까지 장단을 맞출 생각이야?

아니나 다를까, 연주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왜 그래?” 나는 물었다.

셜리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연주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연주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내게 먼저 말했다. 그리고 곧장 셜리에게 말했다.

“이 집은 이상해요. 저도 알아요.”

나는 뭔가 끼어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 그렇긴 하지. 오래된 건물이잖아.”

연주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런 말이 아냐.” 그녀는 나를 똑바로 보며 덧붙였다. “내 앞에 어떤 여자가 계속 나타나.”

나는 당연한 게 아니냐고 말할 뻔 했다. 나와 연주, 그리고 셜리까지 이 3층에는 모두 여자들뿐이었다. 동시에 뒷문 너머를 보며 잔뜩 겁에 질렸던 연주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혹시 내가 모르는 누군가 살고 있나?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 그래서 셜리와 연주를 괴롭히고 있는 건가.

그런데 왜 내게는 찾아오지 않는 거지? 

“그게 누군데?” 나는 물었다.

“모르겠어. 계속 나를 따라다녀. 그리고 그냥 느껴져.”

이번에는 웃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연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외국인이야. 긴 치마를 입고 있고, 머리숱이 굉장히 많고, 키가 커. 그리고 나는 그 여자의 이름도 알아.”

그러더니 우물쭈물하며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였다. 왜 그러냐고 묻자, 연주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대답했다.

“유령이야.”

나는 웃음을 터트릴 뻔 했다. 농담이지? 이거 모두 농담 맞지? 한시간 전만 해도 우리는 나라즈케를 만들고 있었다. 부엌에 함께 있었다. 나는 내일 이불 빨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김치찌개를 끓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을 생각했다. 다다음 날을 생각했다. 비슷한 일정이 계속되는 나날들. 항상 연주가 있고, 그래서 항상 연주의 일을 돕는 나. 차오가 건물을 넘긴다는 사실이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어차피 누구도 이 건물을 구해내지 못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다시 숙박업소로 쓰이거나 음식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연주와 나는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렇게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연주가 셜리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유령에 대해서일 것이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셜리가 연주에게 하는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셋이 함께 있었지만 나는 혼자였다.

한참 후, 연주가 내게 말했다.

“그 여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어.”

“응.”

나는 서운하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물었다. 여전히 우스웠다. 연주가 대답했다.

“그 여자는 내가 여기를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내가 여기 같이, 함께 있기를 원해.”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왔다.

“영원히?”

연주는 섬뜩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응. 영원히.”

나는 연주의 시선을 피했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덮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래서, 그 여자의 이름이 뭐야?”

연주가 셜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에밀리 브론테.”


 


강화길
소설가. 소설집 『괜찮은 사람』, 장편소설 『다른 사람』이 있다.




8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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