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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의 동문서답(3회)

서현경
2019년 07월 18일
 
 
 
로라의 한국인 부모는 주말부부였다. 생부는 요즘 들어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지만, 평생 손에서 일을 놓아본 적이 없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김희경 씨는 로라가 주말에 찾아오면 좋겠다는 생부의 말을 전했다. 그는 로라가 아직도 찾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운해한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김희경 씨가 사용한 ‘네 아버지’라는 표현을 옮기지 않기로 했다. 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은 성실함은,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고 고쳤다. 생부는 주말마다 로라가 혹시 찾아오지 않을까 기다린다고 바꾸었고, 아직 찾아오지 않는 로라를 이해한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네가 우리 중 누구를 닮았는지 궁금하구나.
 
김희경 씨의 편지를 고치는 건 더이상 힘들지 않았다. 고친 이야기 속에서 로라의 한국인 가족들은 어느정도 각자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어떤 문장은 오랫동안 곱씹어야 했다. 나는 궁금해, 네가 나와 내 남편 중 누구와 비슷한지. 이런 식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김희경 씨의 문장들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이유는, 결국 그 말들이 나를 통해 전해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당장은 마땅한 문장이 생각나지 않아 나는 다음 내용을 눈으로 훑었다. 내외는 여동생을 보러 두번 일본에 갔었고, 좁아터진 숙소를 보며 마음이 언짢더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로라의 빠리 아파트가 떠올랐다.
 
로라의 아파트는 오래된 건물이라 걸을 때마다 소음이 엄청났다. 바퀴벌레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했고, 낡은 수도관 때문에 수리공을 몇번이나 불러야 했다. 집을 계약하면서 전에 거주하던 사람으로부터 반 강제로 인수한 물건들과, 로라가 독립하면서 옮겨온 짐이 뒤섞여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근처 공원에서 수업을 했는데, 학생들은 은근히 야외수업을 기다렸다. 로라는 집세를 감당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장비를 마련하는 것도 만만찮아서, 로라는 세가 저렴한 그 집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러나 그녀가 특별히 안타까운 처지인 건 아니었다. 그저 보통의 프랑스 청년일 뿐이었다. 적어도 내가 볼 때는 그랬다. 그렇다고 해도 그때의 로라는 더 자주 웃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나는 로라의 사진을 보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꼭 네 작품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갤러리에서 오픈하는 레스토랑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한 시절이 지났고, 모두들 그때의 말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김희경 씨는 매번 자신이나 남편과 연관된 로라를, 동생과 닮아 있을 로라를 궁금해했다.
 
넌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는지 알고 싶구나.
 
나는 겨우 마음에 드는 문장을 떠올리고는, 곧바로 프랑스어로 옮겨 적은 후 로라에게 보내버렸다. 로라는 바로 메일을 확인하고 답을 보내왔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엄마를 닮았습니다. 엄마가 저처럼 말이 적고 무뚝뚝한 편이세요. 언제 찾아갈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로라가 보내온 답은 김희경 씨의 질문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모녀의 문답은 합이 잘 맞았다. 로라의 답신은 짧고 건조했다. 김희경 씨가 쏟아내는 많은 이야기들 중, 한두개만 골라 간단한 평가라도 하듯 문장을 적어 보냈다. 그래서 나는 로라가 생모와의 편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는지, 어떤 기대를 하며 그 편지들을 받아보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로라에게 답신을 보냈다.
 
김희경 씨의 편지는 날이 갈수록 여백이 보이기 시작했다. 별다를 것 없는 내용들은 마지막에 잊지 않고 적힌 언제쯤 만나러 올 거냐는 질문을 위한 포석처럼 느껴졌다. 그에 반해 로라의 답신은 조금씩 구체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델프 자격증이나 회화 위주의 과외만 하다가 지난달부터 예술학교 진학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취업은 여전히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나는 이제 사진이 즐겁지가 않아요. 다행히도 이 일이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로라가 여전히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친구들조차 몰랐던 사실이었다. 로라가 가끔 전하는 소식에는 참선이나 수행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지극히 유럽식으로 변질된 것들이었는데, 로라는 어째서인지 점점 심취해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김희경 씨에게 전하는 편지에는 여전히 현실을 걱정하는 로라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나는 로라에게 김희경 씨의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두 사람 간의 편지가 뜸해졌다. 번역을 부탁할 일이 없어지자 로라로부터 연락도 줄어들었다. 
 
로라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 것은 크리스마스를 한주 앞둔 날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전화였는데 로라는 쾌활한 목소리로 대뜸 이렇게 말했다.
 
“지나, 너 TV에 나왔더라!”
 
금방 알아듣지 못하자, 로라는 어제 본 영상을 설명했다. 이미 한달 전에 방영된 프로그램이었다. 관장이 레스토랑 홍보를 위해 방송국에 홍보비를 주며 추진했었는데, 갤러리의 기획팀, 홍보팀 전원이 출연해 회식을 하러 온 손님인 척 한바탕 연기를 펼쳐야 했다. 심야 시간대에 케이블에서 방영됐는데, 뜻밖에도 방송을 본 지인들이 제법 많이 연락을 해왔다. 그런데 그 방송을 로라가 본 것이다.
 
“요즘 한국 방송 찾아보는 게 취미거든. 네가 나와서 엄청 놀랐어.”
 
아무리 한국인 친구들이 한국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떠들어대도,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던 로라였다. 그런데 이제는 직접 한국 프로그램을 찾아서 볼 정도로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모양이었다.
 
“참, 겨울 휴가 때 한국 갈 거야.”
 
로라의 말에 오기 전에 미리 연락하라고 답한 후,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한국 엄마는 아직도 편지 보내?”
 
“김희경? 아니, 한동안 조용하네. 안 그래도 그 일도 좀 알아볼 겸 해서 가볼까 해.”
 
왜, 만나보려고?라는 질문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전에 로라는 인사를 던지고 통화를 끝냈다. 이번에 로라가 한국에 들어오면 김희경 씨를 만나러 갈 것 같았다. 만약 로라가 김희경 씨를 만난다면, 자신을 버린 부모가 생각보다 사정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정작 김희경 씨의 편지에서 거리를 둬야 할 사람은 나였다.
 
깊이라는 말은 무서운 말이야. 우리가 서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리거든. 누군가 먼 곳에서 우리를 본다면, 우리는 나란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런데 안으로 들어올수록, 우리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서 있다는 걸 알게 되겠지. 그런데 이런 사실이 감춰져 있잖아. 그래서 우리는 가끔 우리가 평면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거야. 그러다보니 자꾸만 상처받게 되는 거지. 생각보다 우리는 참 멀구나. 쉽게 가까워질 수 없구나. 이런 식으로.
 
로라는 그 깊이를 벗어나, 숨겨져 있는 엄청난 거리감을 사진에 담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로라의 설명이 끝난 후 한동안 멍하니 풀밭에 드러누워 있던 친구들은, 누군가 “깊이깊이 빠져든다는 건, 말하자면 멀리 더 멀리 멀어진다는 의미겠네?”라고 말장난을 하는 순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어쩐지 로라의 설명이 낯간지럽기도 했고,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로라가 친구들과의 거리를 분명하게 말한 건 한번이었다. 어울렸던 무리 중 첫번째로 빠리를 떠나는 친구를 위한 환송회에 로라는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평소에는 사진 좀 찍어달라는 친구들의 부탁을 엄청난 모욕처럼 받아들이던 그녀가 그날은 레스토랑 화장실로 친구들을 차례로 끌고 가 거울 앞에 서게 했다. 친구들의 옆모습을 전부 찍은 후, 로라는 자리로 돌아와 투덜거렸다.
 
“거리 조절에 실패했어. 내가 너흴 너무 가깝게 여기나봐.”
 
로라의 말에 누군가 그녀를 로라 언니라고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러자 다들 깔깔거리며 그 말을 따라했다. 로라는 인상을 쓰며 “쥬느쉬빠 언니”를 인내심 있게 되풀이했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로라를 언니라는 부른 것도 그날뿐이었다. 그날의 사진에는 누구도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로라의 말대로 거리 조절에 실패해서인지, 사진에 담긴 모습은 어떤 가게 화장실에서 찍힌 평범한 옆모습에 불과했다.
 
 
로라는 해를 넘겨서야 다시 한국을 찾았다. 열흘의 짧은 일정이었다. 나는 일을 핑계로 로라와의 만남을 미루다가 결국 갤러리 휴관일에 로라에게 연락을 했다. 숙소로 가겠다고 말하자 로라는 근처 카페를 알려주며, 거기서 만나자고 했다. 다시 만난 로라는 매일 만나는 사람처럼 짧게 인사를 했고, 나는 로라가 사계절 내내 입고 있는 녹색 티셔츠가 추워 보여 벗었던 코트를 다시 걸쳐 입었다. 주문한 커피를 들고 돌아왔을 때, 로라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은 알아보고 있어?”
 
그제야 내가 돌아온 걸 알았는지 로라가 고개를 들었다. 어깨를 털며 고개를 흔드는 로라에게 숙소는 어디냐고 묻자 역 근처 도미토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네명이서 한방을 쓰는데 잠만 자는 곳이라 괜찮다고 말하며 로라가 다시 휴대폰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고는 시선도 떼지 않고 나에게 안산이라는 곳을 아냐고 물었다. 어쩐지 대답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요즘도 삐드로랑 자주 만나?”
 
나는 말을 돌리려고 엉뚱한 질문을 했다. 삐드로 베가는 디스플레이 설치미술로 유명한 작가였다. 로라의 소꿉친구라 파리에 있을 때 함께 어울리기도 했는데, 그때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아놓지 않은 것이 아쉬울 만큼 삐드로는 모시기 어려운 작가가 되었다. 로라에게 묻고 나니 로라와 삐드로 베가가 함께 작업한 시리즈로 기획안을 올리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로라는 여전히 포기할 생각이 없는지 “서울에서 멀어?”라고 물었다. 나는 결국 안산을 가본 적은 없었지만, 오늘 안에 다녀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로라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가자. 지금.”
 
로라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봉투를 꺼내 들었다.

 


서현경
소설가.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마지막회에서 계속됩니다.
(7월 매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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