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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8회)

강화길
2019년 0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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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해 할 거 없어. 이건 일이잖아. 연주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그날, ‘에밀리 브론테’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셜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열띤 대화를 나눴다. 셜리는 반가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셜리는 연주를 매우 신뢰하게 된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신뢰하고 있었다.

그 이름 때문에? 겨우 그 정도로? 그 사람이 누구길래?

그들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나는 그들 옆에 있었지만, 다른 곳에 있었다.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날 밤, 연주는 방에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째 계속 그랬다.

나는 걸레를 물통 속에 집어넣었다. 아직 청소가 다 끝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연주는 제대로 보지도 않을 것이다. 알아차린다고 해도 별소리하지 않을 것이다. 셜리와 이야기하느라 바쁠 테니. 심지어 지금 호텔에 있지도 않았다. 이틀 전부터 두 사람은 아침 11시가 되면 밖으로 산책을 나갔던 것이다.

나는 이 집에 갇혔다고 벌벌 떨던 그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웃음이 나왔다. 소리가 들린다며. 우박이 떨어진다며. 그리고 유령을 봤다며. 그래서 영원히 갇혀버린 듯이 굴더니, 매일 밖에 나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웃음은 금세 사라졌고 나는 힘이 빠졌다. 식사를 준비할 때였는데 의욕이 나지 않았다. 두 사람 생각이 자꾸 났다. 두 사람 생각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셜리는 연주를 의지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갈 기세였다.

미국. 미국이라.

나는 연주의 오래된 아메리카 드림을 떠올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는 걸까. 알 수 없었다. 연주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로 유령을 본 사람 같았다. 내가 목격하지 않았던가. 장독대 너머를 바라보던 겁에 질린 얼굴. 밤마다 찾아오는 아무도 없는 꿈. 그러면 연주를 둘러싼 그 많은 소문들도 결국 사실이었던 걸까.

혼란스러웠다.

사실 지난 밤, 연주가 방에 들어왔었다. 그녀는 내게 에밀리 브론테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영국의 소설가라고 했다. 나는 물었다.

“누군지 정말 몰랐어?”

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셜리에게 들었다는, 그 여자의 소설 내용을 이야기 해주었다. 「폭풍의 언덕」이라는 소설이었는데, 사랑하는 여자에게 선택받지 못한 남자가 그녀와 가족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연주는 소설 내용이 끔찍하다며 진저리를 쳤다. 남자가 여자의 가족을 괴롭히는 방식이 무시무시하다고 했다. 하지만 연주는 아마 남자가 영원한 지옥에 빠졌을 거라고도 말했다. 결국 여자를 죽게 했으니, 그 후회와 고통 속에 갇히는 게 당연하다고 말이다.

나는 물었다.

“그러면 그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은 거야?”

나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연주가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에밀리 브론테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셜리가 그 사실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셜리에게는 끔찍한 소리로 나타난 ‘그것’이 왜 연주에게는 ‘에밀리 브론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궁금해 한다고 했다. 셜리는 연주의 감정을 알고 싶어 했다. 두려워요? 그 여자는 화가 나 있나요? 외롭나요? 왜 당신을 여기에 묶어 두려 하나요? 무수히 이어지는 질문들. 무수히 연결되는 대답들.

연주는 아주 차분하고 조용한 말투로 이야기 했지만, 뭐랄까 약간 신이 난 듯이 보였다.

내가 보기에도 연주의 이야기는 셜리에게 자극이 되는 것 같았다. 이제 셜리는 방도 깨끗이 관리했고 메모지를 아무데나 놓지도 않았다. 정리된 종이에는 글씨가 빼곡하게 차 있었는데, 아마 연주가 해준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은 것 같았다. 나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물통에서 걸레를 꺼냈다. 비틀어 물을 짜내고 다시 복도를 닦았다. 오래된 걸레의 촉감이 까끌까끌했다. 주위는 조용했고, 나 홀로 있었다.

중얼거려보았다.

“에밀리 브론테?”

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 여자, 유령, 알 수 없는 존재, 끔찍한 소설을 쓴 사람, 누군가를 묶어 두려는 사람, 에밀리 브론테. 그녀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걸레를 다시 물통에 집어넣었다. 걸레가 물에 빠지며 첨벙, 하는 소리를 냈다. 물이 조금 튀었다. 그뿐이었다.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고 바닥을 긁는 이상한 소리도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계단 아래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등이 딱딱하게 긴장되었다. 소리는 계단 아래쪽에서부터 서서히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말했다.

“당신인가요?”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쩐 일로 오셨어요?”

내 말에 당숙모가 짧게 웃었다. 왜 소리를 안 지르시나.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어디가 심하게 아픈 거라던데. 그때 당숙모가 말을 꺼냈다. 막냇동생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니까 돈을 좀 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웃었다. 빌려달라니. 돈을 달라는 말을 저런 식으로도 할 수 있나. 내가 가만히 쳐다보자 당숙모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나도 너를 찾아오고 싶지는 않았다.”

소리는 지르지 않았지만, 웃음은 없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가 어쨌든 널 키워줬잖니. 그 값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니니.”

이제야 내가 아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말을 하면서 뒤로 한발짝 물러섰다. 어이가 없었다. 이런 말을 내뱉으면서 내가 무섭다는 듯 굴고 있었으니까. 이해도 됐다. 이 건물에 있으면 이유 없는 위압감이 느껴질 때가 있긴 하니까. 그녀는 정말로 여기가 불편한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는 슬쩍, 그녀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나는 웃었다. 친척 사이에 서로 웃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까. 그래서 더 다가섰다. 그녀 뒤에 계단 난간이 있는 것이 보였다. 조금만 더 뒷걸음질 치면 그곳에 등이 닿을 것이다. 그녀는 매우 긴장해 있었고, 이곳이 낯설고 어려우니 아마 까무러치게 놀라겠지. 그동안 받은 구박에 비하면 이 정도는 별것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계속 뒤로 몰아세웠다. 그녀는 정말로 조금씩 더 겁을 먹는 것 같았고, 드디어 그녀의 등이 난간에 부딪혔다.

그녀가 내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내가 너를 생각해줬잖아. 그동안 내가 얼마나……”

겁을 먹으면 헛소리가 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장난은 충분히 했다.

“숙모.” 나는 태연하게 그녀를 불렀다.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쨌든 여기는 위험했으니까. 복도 안쪽으로 데려간 뒤 적당히 약값을 줘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당숙모가 내 손을 뿌리쳤다.

그녀는 옆으로 몸을 홱, 돌리며 뛰었는데 하필이면 계단 끝이었다.

“어어! 숙모 거기 위험해요!”

나는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당숙모는 이미 계단 끝에 발을 디뎠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나는 당숙모가 아래로 푹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상황을 판단할 겨를도 없었다. 당숙모가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벽에 부딪히고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그때, 아래층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연주와 셜리였다.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숙모! 괜찮으세요?”

나는 계단을 내려가며 소리쳤다. 숙모가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누구처럼 목뼈나 다리가 부러지지는 않은 듯 했다. 끙끙대며 일어나서는 나를 쏘아보는 것이 아직 기력도 남아 있어 보였고.

때마침 올라온 연주가 물었다.

“영현아, 무슨 일이야? 괜찮아?”

나는 별일 아니라고, 당숙모가 넘어졌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당숙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혹시 머리를 다치신 건가. 그 순간, 연주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당숙모의 팔을 잡았다. 정말 괜찮으시냐고 물어보려던 거였는데, 당숙모는 질색하며 내 손을 물리쳤다. 하지만 나는 당숙모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쨌든 심하게 넘어졌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자 당숙모는 거의 울먹이다시피 했다. 나는 당황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그리고 곧장 이해했다. 연주와 셜리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가 얼마나 배은망덕한 조카인지 보여주려고 이러는 것이다. 이 표리부동한 인간 같으니. 나는 그녀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 당숙모는 연주의 뒤로 숨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당숙모가 연주를 두고 한 말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이 사람을 견딜 수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랜 세월 함께 지낼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나는 돈을 꺼내 그녀의 치마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속삭였다.

“다시는 오지 마요.” 

그녀와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열다섯살 때부터 나를 키워준 사람에게 보내는 마지막 예의였다. 그녀는 무섭다는 듯 나를 쳐다보더니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훌륭한 연기였다.


돌아보니 두 사람은 없었다. 벌써 홀에 들어간 듯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안쪽에서 조용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연주였다. 두 사람은 홀의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셜리는 뭔가를 적고 있었고, 연주는 그걸 바라보며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연주는 중간중간 말을 멈췄는데 그때마다 셜리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말이 계속되기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나는 그들의 세계로 비집고 들어갔다. 물었다.

“점심 차릴까?”

연주는 나를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니, 우리 밖에서 먹고 왔어.”

연주의 목소리에는 아무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사무적이었다. 나는 천천히 홀에서 빠져나왔다. 두 사람 중 누구도 나를 불러 세우지 않았다.

나는 혼자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생각했다. 외로움인가, 슬픔인가, 아니면 질투인가. 공허했다. 잠시 꿈꿨던 많은 일들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렸다. 애초 내 것이 아니었기에 아쉬워 할 수도 없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 두달 정도는 여기에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셜리가 떠나면 연주는 더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일이었을 뿐이니까. 어쩌면 정말로, 연주는 셜리를 따라 한국을 떠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알아서 자신의 인생을 살겠지.

나는 일어나서 방을 둘러보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우리 방’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곳을 차마 그렇게 부를 수 없었다. 책상, 티 테이블과 작은 소파, 창문 위에 놓인 작은 화분, 벽에 걸린 말린 꽃. 나는 연주가 즐겨 앉던 그 소파로 다가갔다. 앉았다. 허리가 깊숙이 들어갔고 등받이가 어깨를 감싸 안았다. 편안했다. 이 자리에서 방을 바라보니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방의 물건들은 모두 이 소파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화장대와 책상이 있었고, 창가의 화분과 벽에 걸린 꽃도 여기서 가장 잘 보였다. 무엇보다 여기서는 바깥 풍경이 보였다. 창가 너머의 세상이,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 보였다. 너는 항상 이런 풍경을 보고 있었구나.

그때, 소리가 들렸다.

탁.

탁탁탁.

침대 밑 어두운 곳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귀를 기울였다. 혹시 홀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겠지? 아니었다. 분명 침대 아래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침대로 다가갔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착각이었나. 나는 소리를 기다렸지만, 역시 그것들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침대 아래 뭔가 있는 것 같았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침대 밑으로 오른손을 살짝 넣었다. 손에 그림자가 졌다. 마치 반으로 나뉜 것처럼. 그리고 나는 뭔가에 이끌리듯 손을 안쪽으로 천천히 집어넣었다. 멈췄다. 손끝에 뭔가 만져졌던 것이다. 딱딱하고 넓적한, 부드러운 질감의 무언가.

책이었다. 나는 그것을 끌어당겼다. 어차피 책을 읽는 사람은 연주뿐이었기에, 나는 당연히 그녀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책은 다 책상에 있는데 왜 이 책만 침대 밑에 있는 걸까. 자다가 떨어뜨렸나? 의문은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사라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셜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난 뒤 나는 연주와 마주친 일이 거의 없었다. 두 사람은 한 몸처럼 붙어 다녔고 나는 늘 혼자 다른 곳에 서 있었다. 하지만 단 한번, 우리가 부엌에 함께 있던 순간이 있었다. 연주가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내게 빈 그릇을 갖다줬던 것이다. 나는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연주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굴었다. 나는 그녀에게 관심을 구걸했다. 그녀가 흥미로워할 질문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가 내게 대답해주지 않고는 못 배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 소설 말이야. 그 흉가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시작하게 된 거라고 했잖아. 거기서 무슨 사건이 있었던 거야?”

예상대로 연주는 나를 바라봐주었다.

“무슨 사건인지는 잘 모르겠어.” 그리고 그녀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그 이야기는 안 해줬어. 다만. 그 흉가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흥미로웠대.”

“그게 전부야?”

“응 그냥 그렇게만 말했어. 그리고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어디서? 그 흉가에서?”

“응.

“모두들 그 집에서 나오지 못했대.”


나는 책의 제목을 읽었다.

「폭풍의 언덕」


작가의 이름은 에밀리 브론테였다.


 


강화길
소설가. 소설집 『괜찮은 사람』, 장편소설 『다른 사람』이 있다.




9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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