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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의 동문서답(마지막회)

서현경
2019년 07월 25일
 
 
 
 
안산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로라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로라는 안산이 가까워질수록 내 말수가 줄어든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로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앞을 응시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편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면 어떨 거 같아?”
 
“생가를 찾은 입양아 마음은 이 두가지래. 너무 잘살아서 상처이거나, 너무 못 살아서 상처이거나.”
 
로라는 내 얼굴을 슬쩍 쳐다보고는 건너편 창을 바라봤다. 창문을 통해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지만, 서로 약속한 듯 눈을 돌렸다. 로라의 대답으로는 김희경 씨의 편지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때 로라가 “그런데 마망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하더니 목소리를 감추려는 사람처럼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언젠가 필요할 때가 올 거라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창문에 비친 로라의 얼굴을 바라봤다. 로라는 필요한 거구나. 그걸 확인하자 어째서인지 불안했던 감정 대신 다른 감정이 그 자리를 채웠다. 나는 낯선 사람을 보듯 로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로라는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 고집스럽게 나에게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버스를 한차례 더 갈아탄 후 우리는 공단 입구에 도착했다. 나는 휴대폰 지도의 안내를 따라 한참 걷다가 같은 가게 앞을 지나가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소를 말하자 주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말하면 잘 모르겠고, 이 일대가 하도 바뀌니까. 구멍가게 근방인 거 같긴 한데, 가는 길 알려줄 테니까, 일단 한번 가봐요.”
 
그리고 주인은 묻지도 않은 설명을 늘어놓았다. 같은 자리에서 삼십년도 넘게 장사를 해온 가게라며, 문을 연 이래로 하루도 쉰 날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밖으로 나오자 로라가 “구멍?”이라고 물었다. 나는 구멍―가게라고 띄어서 말하고 “아주 작은 가게야”라고 알려주었다. 로라는 소리 내 웃다가 이렇게 말했다.
 
“난 그게 사라진 가게인 줄 알았어.”
 
로라는 ‘구멍’을 프랑스어의 ‘공백’이나 ‘기억 상실’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이 생각지도 못한 의미가 로라의 상황과 잘 맞아 떨어져 나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공단 깊숙이 들어갔다. 작은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는 한산했다. 낡고 오래된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로라는 여기냐고 물었다. 나는 아마 더 작은 가게일 거라 말하거나, 생필품을 파는 곳일 거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런 곳에 로라가 필요로 하는 어떤 것이 정말 있을까 싶었다. 로라의 걸음이 조금씩 느려졌고, 나는 힘들어? 왜 아직 안 보이지? 하며 걸음을 더 서둘렀다.
 
로라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나는 휴대폰 지도를 확대하고 있었다. 걸음을 옮겨 로라의 눈길이 향했던 곳을 들여다보았다. 공장 사이로 정말 작은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정말 가게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간이 화장실 두개를 붙여놓은 정도의 폭에, 갈색 철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간판도 없었다. 길 어디에 세워두더라도 걸리적거리지 않을 만큼 작고 초라한 가게였다.
 
로라는 콧등에 흐르듯 걸쳐진 안경을 몇번이나 추켜올리며 가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몇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볼 때까지도 로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로라는 무언가 고민하는 사람처럼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다가 가게로 다가갔다. 그때 가게 안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몸이 불편한지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은 묘하게 어린 인상을 주었다. 한참을 가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가 나와 로라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가게 쪽으로 몸을 돌렸다. 뒤뚱거리는 움직임이 더욱 심해졌다. 남자가 가게에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뛰쳐나왔다. 남자보다 키가 큰 여자였다. 마른 몸에 걸친 옷은 낡았지만 깨끗했다. 곱게 빗어 올린 머리와 화장한 얼굴이 어쩐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지도의 현재 위치 버튼을 몇번이나 눌렀다. 그러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었을 때 여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누구에게 시선을 둬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가 로라의 뒤쪽으로 한걸음 물러서는 것과 동시에 여자의 뒤로 남자가 다가왔다. 우리 네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대치하듯 서서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당장 몸을 돌려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로라는 두 사람 앞으로 걸어갔다.
 
로라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내외는 동시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내가 들어본 중 가장 자연스러운 억양이었다. 얼마나 한국인 같았는지, 두 사람은 로라가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믿은 모양이었다. 로라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더니, 여자의 입에서 단번에 로라,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로라는 일단 그녀의 손을 잡긴 했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 지나?”
 
로라의 다급한 부름에 나는 가까이 다가섰다.
 
“아, 로라는 한국어를 전혀 몰라요. 제가 대신 전해줄게요.”
 
나의 말에 여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로라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희경 씨는 로라와 그다지 닮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이목구비를 가졌는데도, 두 사람은 똑같은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 아주 조심스럽고, 조금 우울한 표정이었다.
 
 
로라는 가게에 발을 들여만 놓았을 뿐, 앉을 생각은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내부를 둘러볼 뿐이었다. 가게에 딸린 방 하나가 전부인 곳이었다. 김희경 씨는 고해성사라도 하는 사람처럼 두 손을 꼭 맞잡고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말을 로라에게 옮겨주면서 나는 그녀의 죄책감이 나에게도 전이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이런 장소에 도착한 것이 마치 내가 편지를 멋대로 고쳤기 때문인 것 같았다.
 
김희경 씨의 편지로 그려본 로라의 생가와는 너무나 딴판이었다. 그것은 내가 편지를 고치기 위해 떠올렸던, 그래야만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모습에 더 가까웠다. 로라는 그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김희경 씨가 로라를 붙잡을 듯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밥이라도 먹고 가지 않을래요?”
 
나는 김희경 씨의 말을 로라에게 전하면서 경칭을 붙이지 못했다. 로라는 내 말이 끝나자 일정이 있어서 이제 가봐야 한다고 답했다. 로라의 대답에 실망한 듯 고개를 푹 숙이면서도, 김희경 씨는 결국 두번은 권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로라 대신 인사를 전하고 걸음을 옮기는데 로라가 다시 몸을 돌려 이렇게 물었다.
 
“왜 그런 편지를 보냈어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어내는 로라를 멍하니 바라보던 김희경 씨가 나를 봤다. 그러나 로라는 재차 물었다.
 
“전부 다 거짓말이었잖아요.”
 
그 말을 하며 로라 역시 나에게로 눈을 돌렸다. 나는 로라가 김희경 씨에게 말을 옮겨주기를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눈에 담긴 비난이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로라를 위해서였지만, 결국 로라를 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로라에게 전해진 편지 속에서 사실을 이야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입을 통해 전해지는 로라의 질문에 김희경 씨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로라의 생부는 그런 아내를 안고 한참을 달래다가, 어눌한 말투로 대답했다.
 
“너무 초아하믄, 안 찾아 올까봐. 너무 모 살믄, 안 온다고 그어드라. 혹시 드어붙을까봐.”
 
내가 생부의 말을 전하자 로라가 고개를 숙였다. 한참을 그 자세로 서 있다가 그대로 허리를 꾸벅 숙였다. 김희경 씨는 로라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다급하게 눈물을 닦았다. 그러나 로라는 그녀에게 그리 긴 시간을 주지 않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이번에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공단을 빠져나오는 길은 순식간이었다. 나는 로라의 뒤를 쫓는 사람처럼 빠른 속도로 걸어야 했다. 지하철에서 내가 몇번이나 말을 붙여보았지만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편지, 내가 고쳤어.”
 
“그 남자 말이 아니라, 네 말처럼 들렸어.”
 
나는 지하철 차창 밖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나, 발음이 많이 좋아졌더라.”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이번에는 로라는 다시 물었다.
 
“원하는 대로 잘 고친 것 같아?”
 
나는 내가 고친 편지들이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별다를 것은 없었다. 심지어 말하지 않았다면 로라는 내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달랐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김희경 씨가 보여주고자 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한동안 고민하던 나는 “별로”라고 말했다. 우리는 세개의 지하철역을 지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로라는 복지회에 김희경 씨가 자신의 생모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겠다고 했다.
 
“나 한국 와서는 프랑스어 손 놓고 지냈어.”
 
내 말에 로라는 담담한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잘 고쳤을 거야.”
 
 
로라는 빠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로라에게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김희경 씨의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며 로라는 아직 서울에 있다고 했다. 나는 로라에게 만나자고 하지 않았고, 로라 역시 왜 서울에 남았는지 말하지 않았다. 김희경 씨의 짧은 편지에는 로라의 동생도, 로라의 생부도 없었다. 아주 잠깐 만나보았던 로라에 대한 이야기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전의 편지들과 닮은 질문으로 끝이 났다.
 
언제 다시 볼 수 있겠니.
 
김희경 씨는 아주 약하게 이어지는 신호처럼, 띄엄띄엄 로라에게 편지를 보냈다. 로라는 그녀의 편지에 전혀 답을 하지 않았다. 편지를 번역해 전달할 때마다, 나는 로라와 김희경 씨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보려 했다. 과연 이 희미한 신호가 언젠가는 아득하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로라에게 가닿는 날이 오기는 할까. 그런데도 김희경 씨는 그만두지 않았다. 문득 어울리지 않게 곱게 화장을 한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로라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시간이 꽤 흐르고, 아주 오랜만에 로라에게서 메일이 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이 번역이 맞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아래에 이어진 한줄의 문장을 본 순간, 나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디 안산의 유명한 사원은 무엇입니까?

 


서현경
소설가.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로라의 동문서답」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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