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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9회)

강화길
2019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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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던 거야.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연주가 나를 찾아왔던 날이 떠올랐다. “얘, 우리 같이 살지 않을래?” 그때 연주는 도움이 필요해 보였고, 절실해 보였다. 내가 그렇게 느꼈던 것이다. 그녀가 내 도움을 원한다는 사실에 기뻐서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해버린 것이다. 연주는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랬을까. 겨우 사람 한명이 들어와 있을 뿐이었다. 연주는 자기 방을 내줘야 할 정도로 손님이 몰렸을 때에도 혼자 일했다. 내게 도움을 청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물론 벅차긴 했을 것이다. 식사도 챙겨줘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하지만 그렇게 과중한 업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전과 비교해서 훨씬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아아, 모든 것이 뒤집혀 보였다. 나는 두달간 벌어진 일들을 차근차근 생각해보았다. 아니, 내가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보았다. 새벽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아침을 준비하고, 점심에는 또 청소를 하고. 그때 연주는 무엇을 했지?

항상 셜리와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은 항상 대화를 했다. 나는 셜리가 연주를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나는 그녀의 말투, 짧은 대답,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유추했을 뿐이다. 그들은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셜리가 정말로 어떤 대답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셜리는 연주의 이야기에 고개를 계속 끄덕이며 짧은 대답만 이어나갔던 걸지도 모른다. 그녀의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되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끊기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내가 청소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그렇게 서서히 가까워졌던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연주는 그런 시간을 위해 나를 고용한 것은 아닐까.

어째서일까.

나는 「폭풍의 언덕」을 집어들었다.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책장이 반들반들했다. 아마 연주는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주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에밀리 브론테’를 모르는 척했다. 셜리가 그 책의 내용을 이야기 해줬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셜리도 믿고 있겠지. 그러면 연주가 셜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에밀리 브론테’의 일화들은 무엇일까. 귀신? 목격담? 그냥 그녀는 이 책에서 읽은 것들을 재조합에서 들려주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머리를 감싸 안았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문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이 집에는 온통 그런 소리뿐이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셜리가 들었다는 소리들도 모두 오래된 나무판자들이 뒤틀리며 내는 소음에 불과했다. 셜리는 그저 겁을 먹은 것이다. 여기는 그녀에게 완전히 낯선 곳이었으니까. 연주는 그걸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것에 넘어가고 말았다. 매번 넘어갔다. 처음에는 믿었고, 믿지 않았고, 결국은 또 믿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는 연주가 왜 이런 쇼를 벌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연주를 향한 셜리의 신뢰가 떠올랐고, 연주를 데리고 당장 이곳을 떠나버릴 듯한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도 떠올랐다. 연주의 오래된 실패도 떠올랐다. 떠나간 선교사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때문에 연주에게 기회는 없었다. 아아, 아메리칸 드림. 연주는 셜리가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곳을 떠나게 해줄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 것이었나. 새로운 드림. 드림. 드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모든 생각이 어처구니없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이 전체가 하나의 쇼였다. 코미디였다. 그리고 내 역할은 바로.

‘너는,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셜리가 필요했던 거야. 그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 내가 필요했던 거야.’


그때, 방문이 열렸다. 책은 이미 침대 밑으로 다시 넣어둔 터였다. 그리고 설사 들킨다 해도 내가 무서울 건 없었다. 때문에 나는 연주를 보고 전혀 놀라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침대 옆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연주가 나를 보고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면 했다. 그러나 연주는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지나치더니 소파에 앉아 기지개를 폈다. 이전 같으면 직접 물어봤을 것이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고. 내 생각이 정말 맞는 거냐고.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연주는 더이상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필요로 했고, 나를 필요로 했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도저히 그녀와 한방에 있을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연주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영현아. 당숙모 왔다 가셨어. 너랑 만나기로 하셨다던데.”

연주의 목소리에서 내가 당숙모를 함부로 대한다는 힐난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에게 나를 비난할 자격이 있던가. 나는 대답했다.

“아니, 몰랐어. 나한테는 오신다는 말씀 없었어.”

“그래?”

연주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묘하게 추궁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불쾌해졌다.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고,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지? 네가? 지금 내 앞에서? 연주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비참하게도 나는 아쉬웠다. 오랜만에 나누는 이 대화가, 내게 다가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정말 그리웠다. 이 순간에도 나는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연주에게 물었다.

“당숙모가 다른 말씀하셨어?”

“아니.”

연주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녀는 내게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와 대화를 이어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굴욕적이었다. 누군가 나를 빨래처럼 쥐어짜고 있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머리가 쪼개질 것만 같았다. 가슴이 꽉 막히며 구역질이 밀려왔다. 쓰러질 것 같았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그러나 연주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게 어떤 관심도 주지 않았다. 반듯하게 앉아 있는 연주의 목덜미를 조르고 싶었다.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연주는 무심한 눈길로 나를 한번 쓱 바라보더니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강화길
소설가. 소설집 『괜찮은 사람』, 장편소설 『다른 사람』이 있다.




10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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