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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10회)

강화길
2019년 08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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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일주일이 지나갔다. 연주와 나는 일상적인 대화만을 나누었다. 연주를 만난 이후 처음이었다. 미소도, 다정한 눈짓도, 무심한 듯 챙겨주는 일도 없었다. 물론 핑계는 있었다. 며칠 전 셜리가 몸살이 났다. 연주는 셜리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게 뻔한데, 연주는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굴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 연주는 밤늦게 방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나는 어색하게 맞이하기가 싫어서 늘 자는 척 했다. 등 뒤에서 연주는 한숨을 쉬곤 했다. 그것이 나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심장 부근이 옥죄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힘들다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연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를 믿을 수 없다는 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말,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 보라는 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던 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점심 즈음, 연주가 다급히 나를 찾았다. 정산 문제로 차오를 만나러 다녀와야 한다고 했다. 서두르는 모양새가 미리 계획된 약속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셜리를 부탁했다. 식사와 약을 챙겨주고, 베개포를 갈아달라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뒤, 그녀는 무슨 말을 덧붙일 듯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내게 하려던 말을 상상하지 않았다.


방은 냄새가 고약했다. 몸이 안 좋은데도 셜리는 담배를 계속 피우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들어가서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들어왔다. 그러자 셜리가 몸을 일으키며 뭐라고 말했다. 나는 대답했다.

“하이, 셜리. 우리 둘뿐이네요.”

그리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셜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창문을 가리켰다. 문을 닫으라는 뜻 같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할 줄 몰랐기에 손짓으로 표현했다. 그녀가 알아듣기를 바랐다. 이렇게 답답한 공기를 마시고 있으면 전혀 낫지 않을 거예요. 춥더라도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닫을 거예요. 그녀는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셜리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직접 창문을 닫으려는 것 같았다.

“아니에요. 금방 닫을게요. 침대에 누워 계세요.”

셜리의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은 부르텄다. 눈밑은 퀭하고 머리는 부스스했는데 약간 냄새가 났다. 처음에 몸살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별거 아니겠지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 많이 아파 보였다. 그녀는 창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힘든 모양이었다. 화장대 의자에 손을 얹고 몸을 기대더니, 깊이 한숨을 쉬었다. 나는 셜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손짓을 했다. 침대로 가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어쨌든 연주가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고, 나의 일은 연주를 돕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셜리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문은 곧 닫을게요. 냄새가 심해요. 어서 침대에 누워요.

셜리는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보아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기운이 없어서 내가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것 같았다. 얇은 잠옷 하나만을 걸친 채 침대 속으로 들어가는 이 외국인 여자를 보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셜리와 내 처치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문제가 뭔지 잘 알고 있으면서 그 안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 누군가는 그녀에게 묻겠지. 그러니까 왜 남아 있었니. 셜리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피곤해 보였다. 첫날부터 그녀는 줄곧 이 표정이었다. 나는 슬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비록 말로는 아무 뜻도 전하지 못하지만, 마주 잡은 손을 통해 내 위로가 전해졌으면 했다. 이건 연주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리고 소리가 들렸다. 나직한 어조로 가만가만 이어지는 말소리. 아래층에서 울리는 소리일까. 아니면,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의 목소리일까. 에밀리 브론테. 나는 눈을 감았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내가 연주의 옆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였다. 나는 연주가 미웠고 의심스러웠지만, 그녀를 향한 기대를 도무지 멈출 수 없었다. 그녀에게 마음을 쓰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계속 기다렸다. 혹시 정말로 그들이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연주의 이야기가 진짜라는 걸 내게 알려주지 않을까. 그래서 나의 이런 미움을 거둬가지 않을까.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목소리는 하나가 되어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나는 눈을 더 꼭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했다. 왜냐하면 그건 혼자 남겨진 누군가를 바라보는 비열한 웃음이었다. 누구지? 누가 이렇게 끔찍한 감정을 전하는 거지? 나는 셜리의 손을 꼭 쥐었다. 타인의 온기가 느껴지자 마음이 살짝 진정되었다. 셜리도 내 손을 꼭 쥐었다. 그때 알았다. 그녀도 이 소리를 들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셜리와 내가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힘주어 꼭 잡았다.

그 순간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영현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연주였다. 그녀가 내게 달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셜리에게서 떨어졌다. 믿을 수 없었다. 분명 나는 셜리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나는 셜리의 목을 누르고 있었다.

‘내가 잡은 손은 뭐지?’

연주가 나를 셜리에게서 떼어냈다. 셜리는 떨고 있었다. 두 사람은 무섭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러나 진짜 겁먹은 사람은 나였다. 방금 느낀 것들이 무엇인지, 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내가 왜 저 사람의 목을 짓누르고 있었던 거지? 그리고 저 사람은 왜 가만히 있었던 거지? 셜리는 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았다. 아무리 아프다지만 나를 밀어낼 힘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왜 가만히 있었던 거지? 왜 이 지경이 되도록 그대로 있었던 거지? 그때 셜리가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기다란 속눈썹 아래 자리한 검은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순간, 직전에 들었던 웃음소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는 사실도.

‘일부러 그런 거야. 눈을 감고 있는 사이에 자신의 목으로 내 손을 옮긴 거야.’

나는 그 방에서 도망쳐 나왔다.


연주가 내 뒤를 쫓아왔다. 방문을 잠그려 했는데 그녀가 더 빨랐다.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설명했다. 아니라고, 그러려던 게 아니라고.

실수였다는 말을 늘어놓는데 연주가 내 말을 잘랐다.

“영현아.”

그리고 물었다.

“너 다른 친척은 누가 있어?”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이런 걸 왜 묻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찾아갈 수 있겠어?”

이 말을 하려던 거였구나. 나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가라면 나가야겠지. 연주가 가만히 나를 보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그때는 왜 찾아가지 않았어?”

“응? 무슨 소리야?”

“당숙 집에 갔을 때 말이야. 얹혀 살 형편이 안 된다는 걸 알았잖아. 왜 떠나지 않았어?”

그러고서 연주는 내게서 조금 물러섰다.

“그런 걸 왜 묻는 거야?”

“대답해줘. 왜 찾아가지 않았어?”

“멀리 사니까.”

“어디에 사는데?”

“연주야.”

“그 다른 친척은 어디에 살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질문에 대답할 의무는 없었다. 그러자 연주는 나를 지나쳐서 화장대로 가더니 서랍에서 종이 한장을 꺼냈다. 거기에 적힌 글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전주 지의구
대전 지영구
서산 이길자
서울 이영선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모르겠어?”

나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네 친척들이잖아.”

“응. 맞아.”

“정말 그래? 이 사람들 정말 네 친척이야?”

“자꾸 왜 이러는 거야?”

나는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연주는 차분했다. 연주가 이런 걸 왜 묻는 건지 알 수 없었고, 내게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친척들이 어디에 사는지, 누구누구가 있는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피난길이었다. 나는 열다섯살이었고, 기억나는 사람은 당숙이 전부였다. 그 순간, 당숙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그녀가 연주를 찾아왔다고 했었지.

“숙모가 너한테 뭐라고 하신거야?”

“중매 같은 건 없었다고 하셨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렇게 말했으리라 예상했다. 연주가 말을 이었다.

“너를 시집 보낼 계획도 없었고, 네가 벌어오는 돈을 받은 적도 없었고.”

“그래. 그렇게 말했겠지.”

“그리고 당숙은 숙모를 때린 적도 없고.”

“그래. 항상 그렇게 말하지.”

이제 연주는 떨고 있었다. 마치 내가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 감히 어떻게 자신을 속일 수 있냐는 듯 결벽하고 준엄한 태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연주야말로 나를 속이지 않았던가. 셜리를 속이고 있지 않던가. 소리를 들었다고? 에밀리 브론테를 봤다고? 연주는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조잡하게 섞어서 셜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 진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 말을 믿어?”

내 질문에 연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어. 그냥 뭐든 말해봐. 어디서 살았는지, 가족들은 어땠는지, 피난에서 가족들이 죽었을 때는 어땠는지, 형제는 없었는지, 그립지는 않은지, 가끔 그들의 꿈을 꾸며 울지는 않는지, 보고 싶은 사람은 없는지, 어떤 동네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런 걸 제발 좀 말해봐.”

“말했잖아. 나는 항상 말했어. 네가 듣지 않은 거지.”

연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지나갔다. 나는 다시 말했다. 

“지금도 안 듣고 있구나.”

연주는 이제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듯, 말을 뱉어냈다.

“진짜 지영현은 누구야?”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 여기 있잖아.”

연주가 대답했다.

“아니, 너는 여기 없어.”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그날 밤, 셜리의 침대 위에서 「폭풍의 언덕」이 발견되었다.

 


강화길
소설가. 소설집 『괜찮은 사람』, 장편소설 『다른 사람』이 있다.




11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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