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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지의 효과

한연희
2019년 08월 07일
   
 

뱃지의 효과
 

돼지를 달았다 
그건 돼지 코를 갖고 있지만  
활짝 웃는 모양이 두더지 같기도 해서 
정체를 숨기기에 딱 좋았다

저는 인간을 혐오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저는 혐오를 혐오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거리를 꿀꿀 거리며 활보하니 
돼지는 쉽게 내게서 떨어져 사라졌다

가방에 해골과 심장을 
주머니에는 분홍색 권총과 만년필을   
꿈꾸는 고양이는 모자에 달았다 

충분히 나를 나답게 보이게 했다

아니에요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았습니다

밋밋한 얼굴에 콧수염으로 방점을 찍는 거예요
나에게선 없는 구멍 찾기 놀이에 빠지는 거예요  

긴 양말의 입구를 찾다 보면 쓸모 있는 구멍이 보이지 않나요?  

구멍투성이인 나를 쓰레기통에 빠지지 않게 한다
사랑이라는 관념을 둥글넓적한 공으로 보게 한다
우리 모두 함께 손을 잡는 꿈을 꾸게 한다

하지만 신념을 바닥에 흘려버리고서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서 
나를 밀치고 가버리는 행인들을 바라봅니다

저는 인간을 끝까지 혐오하지 않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스마일 배지를 뺨에 달아보자
일부러 대충 달아서인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배지(badge) 「명사」
일부러 뱃지라고 쓰고 읽는다. 혹은 뺐지, 뺏쥐, 다 허용한다. 이것은 사물이 아니기에 어떤 얼굴로든 변할 수 있다. 사나운 짐승일 수 있으며 나를 물고 달아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곁에 남아서 수호천사가 된다. 하고 싶은 말을 전해주는 고맙고 다정한 분으로 평생 함께할 것이다.  



한연희
2016년 창비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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