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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는 믿음

정재율
2019년 08월 21일
   
 

온다는 믿음

 
쁘라삐룬이 온대요

여기 어디쯤 우리가 살고 있을 거예요
그가 지구본을 가리킨다

벌레 한마리가 텐트 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지구 반대편을 바라본다

나는 오른쪽으로 그는 왼쪽으로
빙그르르 지구본이 돌아가는데

버려진 것들은 지구본에 보이지 않고

아이스크림이 녹아간다
하나의 덩어리처럼

타들어가는 발바닥을 핥으며
잠들어가는 개들

둥근 전구를 오래 쳐다보면
비문증이 생기는 것처럼

그의 고향에는 실종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마을에서는 오래 살라고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풍습이 있다던데

내가 살았던 고향에는 개들이 너무 많아요
지붕도 없이 다 어디로 숨었을까요

너무 익숙해서 안부도 없이 닫히는 문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서른번도 더 물을 맞았다고 한다

무언가 온다는 슬픔이
이곳을 낯설게 만들고 있다

지구본에 스티커를 붙인다
그와 내가 가고 싶은 곳은 하나도 겹치지 않고

나는 태풍이 오기 전
그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바깥에는 수거되지 않은 마음들이
인간보다 많았다

불빛이 흔들리고
그의 눈동자가 지나치게 맑다

그것과는 무관하게
오고 있었다
 
 


지구본 「명사」
멈추면 도착하는 만나본 적 없는 이름들.  



정재율
2019년 현대문학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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