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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과 우리가 만든, 신비한 죄책감 이야기

조혜은
2019년 10월 10일



 

첫번째 여성, 조혜은 시인

나와 당신과 우리가 만든, 신비한 죄책감 이야기



우리의 몸은 아직 신비를 가지고 있을까. 한번은 산후조리원에 있던 산모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첫아이를 출산했을 때였는데, 출산 과정이 남긴 상처와 출산 직후 수유를 시작하며 얻게 된 피로감으로 몸 상태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도대체 몸은 언제 임신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걸까? 이렇게 아픈 게 정상일까? 수유는 저절로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결단코 아니었다. 임신 기간 내내 건강한 출산을 위해 병원을 다녔고, 조리원에도 왔지만 임산부의 건강은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해서’만 강조될 뿐이었다. 태아의 성장과 움직임은 매달 측정되었고, 신생아가 얼마나 먹고 누는지를 매일 체크했지만 정작 우리의 몸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임신 기간 내내 병원을 통해 “태아의 정상 소견”만을 들을 뿐,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와 아픔에 대해 여전히 “출산만이 해결책”일 뿐인 임신부의 현실에 대해 우아영은 “임신 주체인 여성이 어떤 일을 겪는지는 쓰이지 않고 납작해지고 지워진다”(10면)라고 말한다.1) 이런 현실은 출산 후에도 다르지 않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회가 추구하는 건강한 출산과 완전한 수유에 도달하지 못하면 득달같이 ‘나쁜 엄마’ 프레임을 씌워 죄책감을 주는 것이다. 임신하지 않는 여성에게 “너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비하하는 것과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엄마답게 행동해”라며 훈계하는 시선에도 어김없이 죄책감은 맡은 바 역할을 다한다. 이렇게 학습된 죄책감은 고통받는 여성의 몸을 지우고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마저 지움으로써, 여성이 자기 몸의 주체가 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너무나 쉽게 스스로의 몸을 사회 내 재생산의 도구로 작동시킨다. 왜 여성은 임신하지 않는다고 인류애마저 의심받아야 하며, 임신 후 ‘진짜’ 우리의 몸이 겪는 변화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일까. 나 역시 매달 병원을 다녔지만 내 몸에 대해서는 들은 것이 없었다. 초음파로 나의 뱃속에 있는 태아의 뱃속 물혹까지도 찾아낼 수 있었지만, 정작 출산 후 나의 몸에 찾아온 면역 질환 때문에 앞으로 평생을 고생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여전히 임신 중인 것처럼 커다란 배를 끌어안은 채, 우리는 타자화된 우리의 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A 산모가 아기를 낳은 병원에서는 자연분만만을 고집하고 제왕절개를 해주지 않았다고 했고, B 산모가 아기를 낳은 병원에서는 일요일에는 분만을 하지 않아 임신부들이 모두 일요일에 아기가 나오지 않게 기도했다고 전해 산모들의 공분을 샀다. 자연분만은 옳고 제왕절개는 나쁘다는 기준은 누가 세운 것일까? 분만 예정일은 어디까지나 예정일일 뿐인데, 일요일에 나오겠다는 아기를 못 나오게 틀어막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주체는 여성이고 여성의 몸인데, 왜 그 과정에 있어서 결정권은 병원이나 사회의 통념 혹은 여성이 아닌 누군가가 더 많이 가지는 것일까.
 

나 역시 다른 산모들과 마찬가지로 출산에 대해서조차 내가 결정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첫아이를 자연분만하기로 한 것은 태어날 아이를 위한 완벽한 선택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산부인과에서는 높은 자연분만율을 자랑처럼 내걸곤 했는데,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당연한 수순으로 결정이랄 것 없이 자연분만을 하는 상태에 놓였는데, 예정일이 되어도 아기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는데 초음파상으로 자연분만이 가능했던 나의 아기는 그 사이 내가 자연분만으로 출산할 수 없을 만큼 자라 있었고, 담당 의사의 휴무일에 진통이 왔던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기다려야 했다. 내진을 견디며 자궁경부가 충분히 열릴 때까지 진통을 했지만 아기는 오히려 가슴까지 치받쳐 올라갔다. 그제야 이상하게 생각해 찍어본 초음파에서 아기의 위치가 위험하다는 것이 발견되어 급하게 수술이 결정되었다. 나는 다리 사이로 피를 뭉텅뭉텅 흘리며 온몸을 감싼 통증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수술실로 끌려갔는데, 도축장으로 향하는 짐승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몸이 함부로 다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 출산을 하고 엄마가 되는 경험은 내 몸을 타자로 만드는 경험이었고, 내 몸이 아기를 낳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된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뼈저린 경험이었다.

자연분만을 한 산모가 분만 과정에서 진통과 회음부 절개 같은 고통을 얻듯이 제왕절개를 한 산모도 수술 상처를 얻고 1년이 넘는 긴 회복기를 갖는다. 내 배에는 제왕절개로 생긴 11cm의 상처가 있다. 출산 직후 불어터진 젖은 계속 흘러내렸고, 당장 아기에게 젖을 물리지 않으면 가슴은 팽팽해져 찢어져버릴 것 같았다. 소변줄을 매단 채 아기를 받아 아물지 않은 수술 부위에 올리고 젖을 물려야 하는데, 자연분만 산모가 회음부 상처 때문에 앉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자연히’ 혹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아직까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자연분만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며 혹시라도 분만의 고통 대신 수술 후 고통을 택하면 고통을 유예할 뿐인데도, 제왕절개를 한 산모를 비난하기도 한다. 누구나 고통을 두려워하는데 출산의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이유로 여성은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고생을 하며 아기를 낳았지만 들었던 말은 “태어날 아기 고생하는데, 왜 진작 유도분만을 하지 않았냐”라는 말이었다. 두시간에 한번씩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고 돌아서서 다시 수유를 위해 사골 한사발을 억지로 마시고 다음 수유를 준비하는 나에게 돌아온 말은 아기가 순해서 엄마가 편하겠다는 말이었다. 몸을 조금 추스르자 언제 일을 할지 물었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자 엄마가 같이 있어야지 아이가 불쌍하다는 말을 들었다. 살림은 일을 할 때에도 아이를 볼 때에도 여성인 나의 몫이었다. 잠든 아이를 안고 글을 쓰거나 잠을 아예 포기할 때도 많았고, 몇달 단위 사업이라도 신청해 일을 하려면 아이를 맡기려 혼자 동분서주해야 했다. 출산을 했을 뿐인데 나의 삶은 출산 전과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내 삶은 24시간을 단위로 쉴 새 없이 돌아갔지만 사실상 모두 무급이었다. 기간이 짧은 일을 할 때면 “그거 해서 얼마나 버냐?”라며 빈축을 샀고, 육아를 할 때면 “아이들이랑 논다”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자아실현이거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 나만의 욕심이 되었고, 육아는 모든 엄마가 하는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다. 맞벌이를 하는 가정과 늘 비교 하위에 놓였지만 막상 맞벌이를 하는 엄마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도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심하게 받고 있었다. 여성이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가정도 사회도 끊임없이 여성의 몸을 착취하면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 여성의 몸이 하는 일을 폄하하고, 더 많이 착취할 명분으로 완벽한 엄마의 모델을 내세워 이에 부합하지 못하면 어김없이 죄책감을 부여한다.


노동뿐 아니라 몸에 대한 이상도 여전하다. “엄마들에 대한 요구와 기대에 의한 모델에 따르면, 엄마의 육체는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도 갖추어야 하고 출산장려 기준에도 들어야 한다. 임신 중과 출산 직후, 출산 후 몇년이 지나도 예외가 아니다. 항상 탄탄한 몸매를 유지해 미적 이상에 맞춰야 하고, 성적 능력이 있다는 암시를 주어야 한다는 요구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다.”(63면) 오늘날 엄마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기대에 대해 오나 도나슨은 말한다.2) 그래서 C 산모의 이야기도 기억한다. 분만 과정에 참여했던 남편이 아내를 더이상 여자로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아내가 임신 중일 때 외도를 하는 남편이나 출산 후 몸이 달라진 아내를 거부하는 남편의 이야기도 나왔다. 출산은 오롯이 여성 혼자서만 겪어야 하는 경험일까. ‘여자’란 분만을 하지 않은 여자의 몸을 말하는 것일까. 어쨌든 임신 기간 동안 여성의 몸은 태아가 자라기 위해 장기의 위치가 이동하고 뼈가 벌어지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데, 분만 후 일정 기간에 거쳐 겉보기에 그럴듯하게 회복된다고 해도 이전의 몸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타자화되는 경험을 하고 만다. 만삭 때는 배가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와 몸을 굽힐 수가 없어 내 몸을 닦는 것도 힘들다. 임신 중 여러 증상으로 직장을 다니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나는 만삭 때 숨이 차다 못해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밀폐된 공간에 있지 못했다. 잘 견디면 다행이지만 몸에 한번 이상 신호가 오면 결국 유난을 떠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무사히 임신이 되었다는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었다. 주변에서 원인을 모르는 난임으로 시험관 시술을 시도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매일 아침 자신의 배에 주사를 놓고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어렵게 임신이 되었는데, 다시 유산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엄마의 면역력이 너무 강해 유산을 한 이야기도 들었다. 여성이 아기를 갖는 것 또한 몸에서 일어나는 항원-항체 반응이라서 엄마와 다른 혈액형의 아기는 황달을 갖고 태어나기도 하는데, 엄마의 면역체계가 특히 강하다면 아기가 유산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흔한 생각처럼 착상이 되는 순간부터 “사랑스러운 내 아기”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연한 일인데도, 임신 중지조차 죄악시하는 나라에서 자라왔기 때문인지 어쩔 수 없는 유산조차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아기를 죽인 죄인으로 스스로를 몰아 죄책감에 눈물 흘리는 예비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다.

비교적 무사히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임산부들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도 과정에서의 고통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여성이 엄마가 되는 것 또한 보편적 명제는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나는 출산 전에는 생리통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생리를 이유로 체육수업을 빠지거나 약을 먹는 친구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없는 일, 나와 상관없는 일로 만들 때, 그런 ‘내’가 만연하는 사회라면 그곳에서 우리는 진짜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게 엄마가 되기까지 여성의 몸이 겪는 모든 고통은 타자화되고 지워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고작 분만 과정에 좀 참여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직접 출산의 고통을 경험한 아내에게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지운 남편의 이야기를 아직도 곱씹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무렵에 「Let美人」이라는 예능 프로그램도 있었다. 출산 후 겨드랑이 부유방으로 남편에게 거부당한 아내와 아들 셋을 낳아 수유를 하고 나서 유방이 사라진 엄마가 한번은 주인공이었다. 방송을 통해 수술을 받은 뒤 남편의 환대를 받고, 세 아들의 엄마는 아들에게 “누나”라는 말을 들으며 행복한 끝을 맺었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조리원에서는 출산 하면 배는 탄력을 잃고, 수유로 가슴은 없어지고, 육아의 고단함에 팔과 다리 살은 빠져 결국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ET처럼 몸이 변한다는 말이 농담처럼 떠돌았는데 그다음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여성의 몸은 왜 신비해야 하며, 왜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신비를 잃어서는 안 되는 걸까. 우리의 몸이 잃은 건 허위로 둘러싸인 신비가 아니라 도구화되었다는 최소한의 자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차라리 ET가 되는 편을 택하겠다”라고 했지만 둘째 출산 후 2년이 지날 때까지도 들어가지 않는 배꼽과 사라진 근육이 ‘복직근이개’라는 증상이며 만성화되면 위험하다는 것을, 나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아이 엄마에게서 들은 뒤, 운동을 결심했다. 물론 나에게는 조직검사까지 했지만 원인불명인, 병원에서 가장 흔하게 둘러대는 면역질환으로 오인 중인 만성 피부질환도 있었다.

어느 날엔 열 손가락이 모두 찢어져 구부릴 때마다 피가 배어나는데, 두 다리에 진물을 흘리며 서서 피가 흐르는 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항상 그래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나는 고장 난 엄마였고, 남편에게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1년 전부터 아침에 오로지 복싱을 하기 위해,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아이가 “오늘은 엄마랑 있고 싶다”라고 말하는 날에도, 오후의 활동을 기약하며 꼬박꼬박 제 시간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만 이제 죄책감은 갖지 않는다. 아이들이 물으면 “엄마 몸도 소중해”라고 답한다. 생활비를 버는 남편의 노고는 인정하지만 나의 육아와 살림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내가 쉴 시간에 자신의 감정을 위로 받으려는 남편을 거부하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우리는 관계 속에 있고 관계라는 건 한 존재를 갈아 넣어 만든다고 완성되는 게 결코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몸과 사생활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산모들 가운데 가장 어려 보였던 D 산모는 출산 후 신생아 돌보기와 자신에게 무관심한 남편과 이혼을 할 거라며 호언장담해 언니들에게 웃음을 주었었다. 우리는 왜 웃었던 것일까. 우리에게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걸까. 그저 뒤돌아서서 ‘현실이 그렇게 녹록한지 겪어 보라’며 철부지 취급했던 건 왜일까. “엄마잖아”라는 말을 당연하게 삼키는 이면에는 “그러니까 의문을 갖지 마”라는, “네 선택이었잖아”라는 폭력이 도사리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의 나 역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늘 “나는 나쁜 엄마인가 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 엄마들과 함께 매일매일 반성하기 바쁘지만, 나는 이 선택과 수순이 내 삶에서 내가 정말 원한 것이었는지 매일 ‘의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더이상 이 신비한 죄책감의 노예로 내 몸을 혹사하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름과 내 몸을 지우지 않을 때 비로소 사랑하는 존재와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 우아영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 휴머니스트 2019

2) 오나 도나슨 『엄마됨을 후회함』, 반니 2018.

 



조혜은
시인. 2008년 『현대시』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구두코』 『신부 수첩』이 있다.

 


 

다음주에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동녘 2019)의 저자 조한진희의 글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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