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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한 몸과 여성적 몸

조한진희
2019년 10월 17일
 



 

두번째 여성, 조한진희 작가

병약한 몸과 여성적 몸 


 

“병약하게 나와야 돼. 양호실 컨셉으로.”

하얀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개그우먼 신봉선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청순가련 스타일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다는 촬영 현장 영상에서 나온 말이다.1) 신봉선이 숲길을 걷는 장면에서는 연출자이자 개그우먼인 송은이가 신봉선 손에 소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신봉선은 자신의 손이 너무 ‘장군’이라며, 꽃을 다소곳이 쥐고 사뿐히 걷는다. 신봉선은 촬영 내내 ‘나는 청순하다’ ‘나는  38킬로그램이다’ ‘나는 오마이걸이다’를 되뇌이고, 스탭들은 폭소를 터트린다.

 

‘병으로 인해 약해 보이는 몸’은 여성성을 강화하는 매력자원이다. 방송에서 청순함의 상징으로 10대 여자 아이돌의 마르고 유약해 보이는 몸이 소비된다면, 그 대척점에 개그우먼이 있다. 개그우먼의 흔한 소재 중 하나는 여자 아이돌에 비해 튼튼한 신체, 면적이 넓은 몸이다. 그들의 다부진 몸 그리고 직설적 감정 표출은 웃음의 소재가 된다. 병약해 보이지 않는 씩씩한 몸과 감정은, 청순하지(여성스럽지) 않다고 여겨짐으로써 큰 웃음거리가 된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청순가련한 여자 주인공은 수없이 많다. 국민 소설 혹은 국민 첫사랑 소설로 불리는 황순원의 「소나기」. 소녀는 하얀 얼굴에 분홍 스웨터를 입고 있다. 급작스런 소나기로 추위에 떠는 유약한 소녀, 그리고 얼마 뒤 시름시름 앓다가 추억이 묻어 있는 분홍 스웨터를 입고 세상을 떠나 청순한 첫사랑으로 기억된다. 한국 드라마의 전형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가을동화」의 은서도 그렇다. 청순한 은서는 어려움을 이기고 꿋꿋이 살지만, 결국 백혈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아련한 사랑으로 남는다. 백혈병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이 등장시켰는지 온라인 백혈병 환우회 카페에는 이따금, 백혈병은 청순한 여자들만 진단받는 병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가 올라온다.

 

#병약한 청순함: 청순(淸純)에 대한 남성의 집착은 청순(聽順)의 욕망

현대 남성에게 ‘병약해 보이는 청순한 여성’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모호하고 낭만적 존재로 여겨지는 걸까, 마치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여성이 남성과 동물의 경계에 놓인 모호하고 미개(未開)한 존재라고 여겨졌던 것처럼. 그러니까 남성들에게 병약해 보이는 청순한 여성은 이를테면 여성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사에 자주 등장하는 “미지(未知)의 세계”로 데려가고 싶고, 데려가기 쉬운 존재라는 뜻일까. 

 

청순(淸純)은 깨끗하고 순수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남성들이 그토록 ‘청순’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 동음이의어인 청순(聽順) 때문이리라. ‘남의 말을 듣고 따르다, 명령에 복종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청순(聽順). 청순(淸純)에 대한 집착은 청순(聽順)한 존재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 ‘깨끗하고 순수하며 동정이 가도록 애틋함’이라는 뜻을 가진 청순가련(淸純可憐)한 여성 앞에서 남성은 강한 남자, 구원자, 영웅이 된다. 

 

소설 「소나기」에서 소년은 새하얀 얼굴을 가진 부잣집 소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진다. 소년은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맞고 파랗게 질려 추위에 떠는 소녀에게 수숫단을 세워, 비로부터  보호한다. 추위에 떨며 거센 물살 앞에 놓이게 된 소녀는 순순히 소년의 등에 업혀 개울을 건넌다. 소년은 고작 소나기 앞에서 무기력해져버린 소녀의 몸을 거친 물살로부터 보호한다. 소년은 소녀 앞에서, 더이상 자신을 작은 존재로 느끼지 않는다. 

 

여성의 하얀 얼굴과 외부의 작은 자극에도 파랗게(靑) 질리는 유약한 몸이, 청순하다며 매력을 느끼는 남성의 시선. 그 시선을 생각하면, 중국의 전족이 떠오른다. ‘멀쩡한’ 발을 인위적으로 병약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어 손상시키는 행위인 전족은 여성의 발을 작게 만드는 악습으로, 3~6세 여자아이의 엄지발가락을 뺀 나머지 발가락을 발바닥 쪽으로 접어넣어 약 2미터의 헝겊으로 꽉 동여맨다. 여자아이는 통증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워하지만, 집안 어른들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더 작은 발을 만들려 애썼다. 알려졌다시피 당시 남성들은 전족으로 작아진 여성의 발을 보며 만족감과 성적 쾌감을 느꼈다.

 

전족의 유래는 여러가지로 설명되는데, 이유가 무엇이었든 전족은 여성의 몸을 나약하게 만들고 혼자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어려운 존재로 만들었다. 전족을 한 여성은 느리게 뒤뚱거리며 겨우 걸을 수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발이 너무 작아 한걸음도 뗄 수 없어서, 움직일 때는 꼭 다른 사람에게 업혀 다녀야만 하는 포소저(抱小姐, 업혀 있는 여자아이)라고 불리는 이들도 있었다. 남성은 그런 작은 전족 앞에서 자신은 크고, 여성을 지배한다는 만족감을 얻었을 것이다.  

 

‘전족’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요술 거울’이었을 거라는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즉 『자기만의 방』에서 “오랜 세월 동안 여자는 남자가 자기 얼굴을 비춰 보면 기분 좋게도 실제 모습보다 두배로 커 보이게 만드는 신비한 요술 거울 노릇을 했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통찰. 이는 전족을 비롯한 ‘작은’ 여성성 현실과 거의 맞닿아 있다.  

 

커다란 것은 남성의 것이었다. 커다란 욕망, 커다란 웃음소리, 커다란 페니스, 커다란 몸. 당연히 작은 것은 여성의 것이었다. 작은 욕망, 작은 웃음소리 그리고 작은 몸. 작은 전족에 갇혀 있던 삶은 시대가 지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즘 일부 10대 여성들은 SNS에서 '거식증을 선망하는 프로아나족' ‘개말라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창백한 마른 몸을 인증샷으로 올린다. 몸이 점점 기운을 잃고 나약해지고, 사라질 만큼 작아지고 손상된다. ‘발을 옭아맨다’는 뜻을 가진 전족은 몸을 의지대로 운신하지 못하게 하여, 삶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거식증은 거울과 저울에 몸을 옭아매서, 삶을 꼼짝 없이 납작하게 만든다. 

 

창백하고 나약하고 혼자 운신하기 힘든 ‘여성스러운’ 몸은 거침없이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어렵다. 그런 몸 앞에서 남성은 훨씬 유리한 몸이 되고, 자신의 강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다. 평균보다 약한 몸의 남성조차 그런 여성의 몸 앞에서는 강한 남성이 된다. 기본적으로 병약한 몸은 질병에 의해 통제되는 몸이고, 전족을 한 발은 손상에 의해 통제되는 몸이다. 자기 주도권을 상실한 몸이며, 보호(통제)가 필요한 몸이라 볼 수 있다. 여성성이란 남성성을 하염없이 돋보이게 하는 장치인 것일까, 여성의 수동성은 남성의 지배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인 것처럼.

 

#거울 속에서 깨지기 시작한 병약한 몸

병약한 몸을 여성적인 몸으로 보는 것은, 질병에 걸린 몸을 액자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포획된 몸으로 보기 때문이다. 즉 갇힌 몸, 수동적 몸, 통제 가능한 몸이라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전족으로 작아진 손상된 발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면 주체적이고 날렵한 이동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실제로 병약한 몸이 수동적이고 질병에 포획된 몸인 것만은 아니다. 건강중심사회2)가 질병에 걸린 병약한 몸을 그렇게 만들고자 했을 뿐이다. 전동휠체어 보급이 이동 약자의 삶을 변화시켰듯, 건강 중심성 탈피 같은 사회적 조건 변화는 질병에 걸린 몸도 적극적 존재로 살 수 있게 한다. 

 

어쨌거나 병약한 몸이 여성적이라는 남성의 거울은 부서져야 하고, 많은 곳에서 명백히 부서지고 있다. 습관화된 꾸밈 노동을 거부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화장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늘어나고 있다. 붉은 입술과 볼터치가 사라진 화장기 없는 ‘아파 보이는 얼굴’은 남성의 시선과 외부 거울을 거부한 ‘주체적 얼굴’이 되어가고 있다. 자신의 몸을 조이고 역동성을 제한하는 브레지어, 하이힐, 미니스커트를 벗어던지며, 좁은 몸에 자신을 가두는 것을 거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통계청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자료3)에 따르면, 20대 여성들의 화장품, 미용실, 의류 구입비용이 현저하게 줄었고, 자동차 구입비용이 확연히 늘어났다. 여성들은 점점 더 많은 거울을 깨고, 병약하고 청순한 몸을 벗어나 자신의 의지로 채워지는 삶을 더 크게 욕망하기 시작했다.



*‘브라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포함하여, 세상의 거울을 부수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자 했던 가수이자 배우. 故 설리(최진리) 님의 명복을 빕니다. 
 





1) 셀럽파이브 뮤직비디오 「안 본 눈 삽니다」 촬영 비하인드 영상, 비보티비 2019. 

2) 건강한 몸만을 표준의 몸으로 설정하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도록 만든 사회를 의미한다. 병약한 여성 몸에 대한 추앙도 결국 건강한 몸을 중심으로 한 사고의 연장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동녘 2019), 2장 “나약함이 여성적이라니” 참조.

3) 서영빈 "‘탈코 세대’ 20대 여성, 화장·성형 안하고 자동차 샀다.", 『뉴스1』 2019.09.16.
 



조한진희(반다)
작가, 활동가. 지은 책으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가 있다. 

 


 

다음주에는 조시현 소설가의 글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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