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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1회)

김성중
2019년 11월 05일
 


라이카 1


내 삶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 사이의 투쟁이었다. 
 
사랑, 언제나 사랑이 문제였고 지금도 그렇다. 
 
지금은 어디인가? 다시 말해서, ‘지금’은 어느 장소인가? 데이모스는 여기가 화성이라고 말하지만 글쎄. 생물학적 생명이 중단된 이후 나는 ‘지금’을 ‘여기’와 같은 뜻으로 사용할 때가 많다. 벼룩들을 다시 만난 게 언제였더라? 아, 달에서였지. 루를 발견한 건? 백이십번째로 화성을 산책을 하다가…… 이런 식으로 말이다. 
 
모스크바를 떠돌던 유기견 시절에 나는 작은 성당에서 여름과 가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성모상 뒤의 덤불을 어슬렁거리다가 안성맞춤의 은신처를 발견했다. 치즈 색깔의 고양이가 먼저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다툼은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거리자 ‘치즈’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면서 앞가슴의 작은 털을 뽐내듯 내밀었다. 그 애처로운 방어술이라니! 그녀의 하얀 털은 완벽한 하트 모양이었고 아마도 그 하트를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 같은 잡종견 암컷에게 가당키나 할 교태란 말인가. 치즈는 즉시 쫓겨나 성당 뒤뜰에서 새끼를 낳았지만 어쩌다 마주치면 본체만체 나를 무시했다. 우아함을 모르는 무례한 개 취급을 하면서. 
 
나는 성당을 사랑했다. 금박 입힌 성화들이 좋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안쓰러웠다. 예수의 옆구리에는 창이 박혀 있었는데 어찌나 실감 나던지 방금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제대 왼쪽에 놓인 성자의 조각상에도 고문받는 자의 공포가 어려 있었다. 보고 있으면 좀 아리송했다. 그러니까 인간들이 숭배하는 것이 성자인가, 고통인가? 내가 보기에는 고통 쪽이 좀더 무거웠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듯 생생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벨벳 쿠션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제의 뒷덜미, 꺼지는 법이 없는 기원의 작은 촛불들, 솜털이 가시지 않은 복사들의 종종걸음, 궁륭 가득 울려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 성당은 영성이 담긴 그릇 같았고 나는 그 안에서 첨벙거리기를 좋아했다. 그렇지만 개는 세례를 받을 수 없기에 죽어서도 천국에 가지 못하고 우주라는 연옥을 헤매는 모양이다. 
 
데이모스의 목이 지구 쪽을 올려다보느라 미세하게 삐뚤어진 것처럼 나 역시 우주로 나오면서 어딘가 삐딱해진 것이 틀림없다. 내 혓바닥이 지나치게 매끄러운 것, 연극조로 떠벌리지 않으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다는 것, 지시하고 명령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원래의 성격에서 굴절된 부분이다. 
 
세살 때까지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터럭 하나 세지 않았고 컹컹 짖는 목소리는 낭랑하기 짝이 없었으며 똥구멍에서 나는 냄새조차도 향기롭던 시절, 내게는 무엇보다 촉촉하고 반들반들한 코가 있었다. 후각은 본능이자 지성이었고 적과 친구, 안전한 잠자리와 위험한 잠자리,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하게 해주었다. 조향사처럼 코끝을 킁킁거리는 내 영리한 모습은 루마니아, 헝가리, 몽골에서 만들어진 기념우표에 잘 표현되어 있다. 나는 루마니아 우표가 마음에 든다. 반면 모스크바에 세워진 내 동상은 근엄하게 점잔을 빼고 있어 쑥스럽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 출산을 통해 네마리의 귀여운 아이들을 낳았다. 수녀님이 데려가신 세마리는 지구에 내 후손을 퍼뜨렸을 것이다. 가엾은 코스텔로만 석달도 못 채우고 세상을 떠나 버렸다. 작은 사지가 뻣뻣하게 굳어가는 순간 나는 알고 있는 모든 기도문을 동원해 자식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다가 나중에는 저주를 퍼붓고 말았다. 그 때문인지 기도는 이상한 방식으로 응답을 받았다. 코스텔로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이런 세상에 나와 있지 않은가. 
 
내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손가락이 여덟개인 기타리스트 바실리밖에 없었다. 마을 광장에서 그의 연주를 들은 후 나는 즉시 사로잡혔다. 바실리는 잘생긴 중년 남자로 기타도 끝내주게 치지만 교도소에서 손가락 두개를 잃은 후 삶의 의욕이 꺾여버린 듯 했다. 그는 구걸에 가까운 방식으로 살아갔다. 광장에서 기타를 치고 약간의 돈으로 빵과 술을 산 다음 야영을 하거나 누군가의 헛간에서 잠을 청하는 식이다. 멀찍이서 따라다니는 나에게 바실리는 먹던 빵의 일부를 던져주었다. 나는 음식보다는 여덟 손가락으로 치는 그의 기타 연주에 이끌린 것뿐인데. 
 
“날 택하다니 너도 참 어지간하다.”
 
우리 둘 다 지독히 외로웠기 때문에 서로를 길들였다. 바실리는 알콜 중독자였지만 거쳐간 주인들 중 유일하게 나를 때리지 않은 인간이었다. 또다시 인간과의 사랑에 빠진 어느 날, 바실리는 기차역에 나를 앉히고 네곡을 내리 연주하더니 작별의 말을 건넸다. 
 
“좋은 여행이 되길.”
 
그를 태운 기차가 출발하자 나는 미친 듯이 따라 달렸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버릴 거라면 왜 나를 길들였는가? 빵과 온기, 여덟 손가락이 빚어낸 기타 선율에 이미 젖어 있는데, 이렇게 버림받는 건 몽둥이로 맞는 것보다 더 지독한 일인데 말이다. 자기파괴적인 충동에 휩싸인 나는 들개들과 싸움을 벌이다 몇달이나 절룩거릴 만큼 상처를 입었다. 나는 우리 종의 본능에 저항하고 어떤 인간도 믿지 않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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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생존 능력이 강한 길거리 출신들은 절대로 방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해 겨울 모스크바는 너무나 추웠고 실내로 들어가지 않으면 동사할 수밖에 없었다. 성당에 들어갔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나는 연구소에 들어갔다. 즉, 문이 열려 있기 때문이었다. 
 
실험동물이 된 나는 ‘영리하고 순종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알 수 없는 기계에 넣어지거나 회전판 위에서도 침착했고, 발사 소음을 재현한 훈련에도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월등한 성적을 보였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거리 생활의 혹독함을 견딘 데다 연이은 불운 탓에 어지간한 스트레스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개별의 인간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리라는 결심은 잘 지켰지만 한 무리의 인간, 연구소 식구 전체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번갈아가며 나를 돌봐주고 음악을 듣거나 실험에 몰두하면서 우주를 바라보는 불타는 이상주의자들. 똑똑하고 활기 넘치는 그들에게 나 자신이 중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달콤한 일이었고 저항하기 힘든 행복이었다.  
 
스푸트니크 2호에 오르던 밤, 그들은 나에게 마지막 성찬식을 베풀었다. 따뜻한 수프와 고기, 디저트까지 갖춘 호화로운 식사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것은 그걸 맛있게 먹은 후에 내 발로 로켓에 올라갔다는 점이다. 누군가 캡슐 안이 춥다며 온풍기를 연결한 호스를 가져와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그러니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순간까지도 그들의 호의를 믿을 수밖에. 멍청한 라이카. 그렇게 당하고도 또다시 인간의 손길을 믿어버리다니.
 
연구원들은 기타리스트와 똑같은 작별의 말을 건넸다. 나에게는 하나의 저주처럼 들리는 주문.
 
“여행 잘하렴, 라이카.”
 
그 여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셈이다. 
 
나의 최후는 트램펄린 위로 높이 솟아오르다가…… 다시는 땅에 돌아오지 못한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겁쟁이 인간들을 대신해 우주로 나갔더니 일곱시간 만에 개죽음이라. 나는 우주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 않나. 인류는 우주로 나간 최초의 인간 유리 가가린이 살아 돌아올 수 있던 것이 실험동물 라이카가 남긴 생체 데이터 때문이라고 칭송한다. 하지만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발사의 순간 엄청난 스피드가 느껴졌고 고막이 찢어질 듯 아팠다. 내 뒤로 또다른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용없어. 어차피 다 죽게 되어 있으니까.”
 
체념조로 달래는 소리의 주인공은 회색 토끼였다. 스푸트니크 2호에는 나 외에도 토끼 한마리와 실험쥐들이 탑승해 있었다. 그들은 왕과 함께 묻히는 부장품 같은 존재들이라 이름조차 없었다. 일곱시간이 지났을 때 캡슐 온도가 치솟기 시작했고 우리 모두 쇼크로 기절했다. 
 
눈을 떴을 때 몸이 간지러웠다. 벼룩들이 힘차게 피를 빠는 것이 느껴졌다. 네마리의 벼룩들에게 우주 조종사들의 이름을 붙여 콜린스, 어윈, 슈와이카트, 앨드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그건 아주 나중의 일이다.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한 이후 많은 인간들이 우주로 나아갔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내 피를 빠는 벼룩이나 다를 바 없다. 
 
“너희들 맞니? 그대로 있는 거야?”
 
벼룩은 나무에 매달린 원숭이처럼 즐겁게 털 사이를 뛰어다녔다. 도약은 높고 느렸다. 중력 때문일까? 이 모든 사실을 판단하고 인지한다는 점에서, 감각이 살아 있다는 점에서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벼룩들이 피를 빠는데, 그럼 피가 있고 살이 있고 신체가 있다는 건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나 혼자 우주로 나오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닐까? 엔지니어 샤바로프와 재회하기 전까지 나는 속 편하게 이런 추론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발사 직전 마지막으로 내 코에 입을 맞춘 다정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풍성한 말총머리 대신 대머리에 살이 찐 창백한 노인이 나를 반겼을 때 연구소에서 보던 그의 젊은 모습을 떠올리지 못한 탓이다. 먼저 나를 알아본 샤바로프는 눈물을 흘리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어차피 너는 살아봐야 일주일이었어…… 애초에 귀환 로켓이 없었으니까. 속여서 미안하다. 비행을 마친 후 편안하게 안락사할 거라고 발표했지만 모두 거짓이었어. 넌 우주로 나간 최초의 포유류야. 그런 영웅이 몇시간도 안 돼 개죽음을 맞았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난 죽는 날까지도 너를 그렇게 보낸 게 마음에 걸렸단다.” 
 
‘당연히 개죽음이 맞잖아. 내가 개지 사람이야? 지금 누구를 속여서 미안하다는 거지? 사람들, 아니면 나? 나한테 미안할 필요는 없어. 내가 죽은 건 인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고야마는 빌어먹을 내 본능 때문이니까.’ 
 
속으로 이렇게 반문하며 후일담을 마저 들었다. 스푸트니크 5호에 탑승한 내 후임들은 무사히 지구로 귀환해 이듬해 여섯마리의 새끼까지 낳았다고 한다. 반면에 사체가 된 나는 5개월간 지구를 2570바퀴나 돌고 착륙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때쯤 내 영혼은 우주를 유랑하고 있었으니까.
 
샤바로프는 내 등을 연신 쓰다듬었다. 사형집행인의 손길에도 저항하지 않은 사형수가 된 모욕감이 나를 덮쳤지만 가만히 있었다. 나는 충전하고 있었다. 애정 어린 손길을, 인간의 스킨십을. 이런 나 자신에게 역겨움을 느끼지만 저항할 수 없다. 개들은 왜 인간을 사랑하도록 진화한 것일까? 경험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나는 인간을 증오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인력이 자아라는 척력으로 뒤바뀌는 순간을 반복하면서도 번번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사랑, 언제나 사랑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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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별에 도착했을 때 나는 평화를 느꼈다. 내 위험한 본능이 작동될 우려가 없이, 이 별에는 인간은 고사하고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황폐한 오렌지빛 사막이 성모상 뒤의 덤불처럼 아늑하게 여겨졌다. 이곳은 사랑할 인간이 없으므로 안전했다. 나는 나 자신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루가 왔다. 삼백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죽음밖에 남지 않은 짧은 생을 시작하기 위해 그녀가 나에게 왔다. 안전한 고독의 시기는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루는 연약했다. 보호가 필요했고 나는 루를 돌볼 수 있었다. 루는 아는 것이 적었고 가진 것은 더 적었다. 고장 난 우주선과 짧은 생명력. 그게 다였다. 하지만 웃음만은 태양도 당해내지 못했다. 나를 보면 눈부터 웃음으로 변하는 루. 그 환한 웃음은 심장에서부터 시작된 온기가 내부를 따뜻하게 데우고 밖으로 흘러넘치는 듯했다. 
 
루는 비스듬히 처박힌 우주선에서 발견되었다. 안에는 열두마리의 실험동물이 들어 있었는데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상한 과육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캡슐 안을 살펴보다 코스텔로를 닮은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보다 좋은 것은 냄새, 루의 냄새였다. 부패한 시체들 사이에 보석처럼 빛나는 루의 체취는 복잡하고 미묘했다. 삼백년 동안 냉동되어 있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좋을 리 없지만 살아 있는 인간의 냄새를 들이마시자 나는 아찔했다. 
 
루는 성인 여자의 신체와 지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억이 지워져 매사 어리둥절했다. 자세히 보니 사람도 아니었다. 손가락과 발가락에 박쥐의 비막처럼 얇은 물갈퀴가 달린 데다 귀 뒤에는 희미하게 아가미가 묻어 있던 것이다. 그리고 함께 지낸 지 보름쯤 지났을 때 나는 더 나쁜 사실을 깨달았다. 
 
물결사막 ‘에덴’으로 산책을 나간 날이었다. 먼지 폭풍에 불어오자 겁먹은 루가 나를 꼭 껴안았다. 숨 막힐 듯한 포옹 속에서 희미한 심장박동을 느꼈다. 뛰는 심장이 두개였다. 오, 이런. 
 
“너, 임신했구나. 암컷이었어! 정말이지 인간은 잔인해. 임신한 동물을 어떻게 우주로 내보낼 수 있지?”

 


김성중
소설가. 지은 책으로 『개그맨』 『국경시장』 『이슬라』 등이 있다. 



2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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