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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달라졌습니까?

유지영
2019년 11월 07일
    



 

다섯번째 여성, 유지영 기자

그래서 달라졌습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한달 전의 일이다. 가을볕이 좋았던 9월의 아침, 나는 여느 때처럼 회사에 출근해서 점심시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11시 30분이 넘은 시간, ‘사실상’ 점심시간의 범주에 드는 시간이 되자 나는 총알처럼 튀어나가 내가 좋아하는 식당에 갔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정신없이 젓가락으로 그릇을 옮겨 다니면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식후에는 기분이 좋았다. 날은 화창했고 배가 불렀다. 문제가 발생한 건 그다음이었다. 밥을 먹고 나와서 식당 앞 유리에 비친 내 실루엣을 보고 그만 구역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슴과 엉덩이가 볼품없이 툭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볼에 가득 찬 살 때문에 작아진 눈이 보기 힘들었다. 뚱뚱해 보였다. 순간 거리를 지나가는 여성들의 잘록한 허리가 눈에 들어왔다. 
 

구역질을 참을 수 없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몇번 더 구역질을 반복하자 목에서 올라오는 거북한 신음과 함께 구역질이 멈추었다. 토하려던 걸 억누르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 거울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나를 캄캄하게 만든 건 비단 내가 구역질을 했다는 사실만은 아니었다. 여성의 몸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송을 1년 남짓 만들고 진행하면서도 정작 몸에 대해 ‘극복’하지 못한 내 자신, 이런 나 자신과 별일이 생기지 않는 한 수십년을 고스란히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캄캄했다. 물론 팟캐스트를 만든 지는 고작 1년밖에 안 됐고 몸을 혐오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훨씬 길었으니 당연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문학3〕 원고의 주제가 “몸의 말을 듣는 경험은 나의 몸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가?”라는 질문이었을 때 나는 아득하고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난 정말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여성과 몸, 그리고 록산 게이


작년부터 CBS 박선영 피디와 함께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고백하고 이야기하는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있다. 11월 현재, ‘말하는 몸’에는 ‘위안부’ 생존자부터 성소수자, 배우, 인권 운동가, 방송작가 등 60여명이 넘는 여성들이 출연해 자신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에 때로는 슬픔과 좌절이 있었고 때로는 기쁨이 있었다. 삶을 결코 몸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기에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들었다. 되도록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기 위해 직업군을 다르게 섭외하려 했다. 나와 박선영 피디 모두 ‘오늘의 뉴스’를 처리하는 데 지쳐 있었기 때문에 ‘사안’에 대해서 다루기보다 청취자가 팟캐스트 끝나고 1년이 지나서 들어도 아무런 상관없는 방송을 만들고 싶었다. 동시에 출연자 공모도 받았다. 지금까지 10명이 넘는 출연자들이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싶다고 직접 연락을 주었다. 
 

10분 남짓한 분량의 팟캐스트에서는 출연자가 에피소드별로 록산 게이의 책 『헝거』(노지양 옮김, 사이행성 2018)의 일부를 낭독하고 여성 한명의 목소리만을 담는다. 오롯이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기 위한 장치다. 
 

록산 게이가 자신의 몸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한 책 『헝거』에 화답하는 의미의 팟캐스트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던 건 작년 늦여름 무렵이다. 몸의 고백을 담고 있는 『헝거』에 크게 공감했다. 팟캐스트를 처음부터 88편만 할 거라고 기획했던 이유도 『헝거』의 챕터가 88편이기 때문이었다. 
 

『헝거』에 크게 공감했던 이유 중 하나는 책에 나오는 ‘양가감정’ 때문이었다. 록산 게이는 유명한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몸에 대한 타인의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잘못된 타인의 시각을 멋있게 비판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어느새 록산 게이는 키 190센티미터에 몸무게 261킬로그램이라는 거대한 “우리”와 같은 몸에 갇힌 자신을 발견한다. 록산 게이는 ‘나도 아름다워지고 싶다’고 ‘날씬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책을 덮은 후 나는 『헝거』의 독자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만 이 책을 좋아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 오로지 책 한권으로만 88편의 팟캐스트를 만든다는 다소 ‘대담한’ 기획은 약간의 ‘팬심’에서 시작했다. 
 

녹음에 참여한 많은 여성은 페미니즘을 접한 뒤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게 자신의 몸이었다고 고백했다. 사회가 자신이 몸을 미워하도록 혹은 신경 쓰게 만든다는 걸 잘 알면서도 결국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몸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지독하게도 상대적이고, 그 상대적인 시선은 불행을 부른다. 미디어가 비추는 여성의 체형이 비현실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체형에 속하기 위해 ‘노력하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좌충우돌 시작부터 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팟캐스트가 나를 이끌었다. “벌거벗은 몸을 보면서 혐오스럽고 (살을) 다 잘라버리고 싶다”는 고백(4화)이나 “내가 이걸 먹고도 살이 찌지 않게 해달라고 하루에도 몇번씩 기도했다” 같은 고백(21화)을 듣고 집에 돌아가는 날에는 흐느적거리며 거의 드러누운 채로 간다. 말에 무게가 느껴졌다. 그 ‘말’에는 분명 무게가 있었다. 
 

한번은 15년 동안 나와 친구로 지냈던 성희가 오랜 고민 끝에 팟캐스트에 나오고 싶다는 의사를 내게 전달했다. 성희는 팟캐스트를 녹음하는 스튜디오에 나와서 “내 몸도 나인데, 거기에 가려져서 내가 사람들에게 안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22화)고 울면서 고백했다. 그때 나는 가까운 친구임에도 그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사실은 나는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기 전까지 미처 몰랐던 것 같다. 이토록 많은 여성이 몸매 강박을 갖고 있고 그 때문에 매 끼니를 전쟁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러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팟캐스트를 만들면서 분명 내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순간 이 방송을 앞에 두고 나는 모순에 사로잡힌다. 거짓된 실천을 하는 것만 같아 끝 맛이 개운치 않다. 그저 실천이 이렇게 어렵다는 걸 증명하고 마는 걸까? 

 

여기까지, 나는 


학교 앞 떡볶이집을 가는 낙으로 초등학교 6년을 보내면서 내 몸에는 착실하게 살이 붙기 시작했다. 먹을 걸 워낙 좋아하는 탓에 간혹 수치심을 느끼는 날도 있었다. 종이컵에 500원어치 떡볶이를 넣어 파는 ‘컵볶이’를 들고 집으로 먹으면서 돌아오는 날에 같은 아파트에 살던 남자애가 내 몸을 보면서 “맨날 뭘 그렇게 먹으면서 다니냐”고 했다. 그 한마디가 비수처럼 내 통통한 배를 찔렀다. 치마를 입고 다리를 양껏 벌렸다가 지적을 들은 일도 있다. 몸에 대한 기억은 이렇듯 늘 수치심을 동반했다. 
 

몸매 강박을 갖고 다이어트를 심하게 했던 스물한살의 어느 날, 나는 입안으로 내 손을 쑤셔 넣어 먹은 걸 다 토해버렸다. 그때 나는 너무 뿌듯하고 행복했다. 끔찍하지만 그랬다. 내가 먹은 걸 아까워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토할 정도로 마르고 싶은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는 게 좋았다. 나는 누구보다 그때의 내게, 지금 내가 만드는 이 팟캐스트를 들려주고 싶다. 
 

그래서 달라질 수 있냐고? 많은 지인이 팟캐스트를 만들고 실제로 몸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는지를 묻는다. 부끄럽지만 나는 여전히 몸과 싸우면서, 사실 날마다 지는 싸움을 하면서 살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씩 나의 몸을 무자비하고 거친 퍼스널 트레이닝의 전장으로 내맡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 몸에 대해 입을 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내게 몸이란 ‘완성’되기 전까지는 내 입으로 말해서 안 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 몸은 영원히 말해질 수 없었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몸에 대한 치열하고 대담한 고백을 담은 록산 게이의 『헝거』는 그 점에서 내게 천기누설에 가까웠다. 어떻게 살이 찐 몸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할 수가 있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출연자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나도 내 몸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었고 입이 트이기 시작하니 말할 수 있었다. 
 

그동안 몸의 일부를 가리고 감추는 데 나름 치열했다. Y존이라 불리는, 허벅지와 배 사이에 ‘균일하지 않게’ ‘예쁘지 않게’ 튀어나온 부분을 숨기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Y존은 이미 여성들에게 ‘관리 대상’이 된 지 오래다. ‘Y존’과 함께 ‘미백 케어’나 ‘시술’이 연관검색어로 뜬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레깅스를 입고 Y존을 가리기 위해 엉덩이를 덮는 펑퍼짐한 셔츠를 굳이 찾아 입지 않는다. 예전보다 더 날씬해지지 않았음에도 그렇다.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싶지 않은 날이면 착용하지 않는다. 좀더 활동하기 좋은 옷을 찾아 입는다. ‘여자라면’이라고 개인의 가능성을 한정 짓는 말은 되도록 듣지 않는다. 
 

나 혼자서는 못했을 일이다. 물론 출연자들이 내게 직접 ‘그래도 된다’고 말해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내게 대신 말을 해주었다. 나는 진행자로서 본분은 잠시 잊고 이들의 옆에 앉아 녹음이 진행되는 한시간 동안 편하게 이야기를 듣는 행운을 누린다. 출연자들은 그렇게 자기 자신이 편한 대로 살아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팟캐스트를 만들면서 나는 출연자들에게 구체적인 경험을 말해 달라고 자주 요구했다. 구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주 작은 행동이지만 무척 구체적이어서 생생한 것들. 이를  테면 식이장애라는 커다란 단어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에 대해서. 더러워진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구토를 하면서 올라오는 토사물 같이 피하고 싶지만 차마 피할 수 없는 구체성 말이다. 
 

몸을 이야기할 때는 구체성이 좀더 필요하다고 믿는다. ‘탈브라’는 그저 속옷을 벗는 하나의 행동에 불과하지만 그 행동이 있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있음을 믿는다. 어느 날, ‘실수로’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학교에 가는 버스를 타는 바람에 내내 팔뚝으로 가슴을 자연스러운 듯 가리느라 땀을 질질 흘리던 나를 설명하지 않고는 지금 나의 ‘탈브라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많은 것들이 아직 그대로다. 팟캐스트를 만나고 나의 성공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고작 여기까지 왔다. 꽤 많이 뛰어온 것 같은데 뒤돌아보면 출발선이 눈에 보이는 듯도 하다.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또 그만큼 많이 달라졌다.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에계, 그게 뭐야’라면서 실망하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지금의’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우연히 유리창에 비친, 카메라에 담긴 내 모습을 보고 내 표정보다 몸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날이 올까. 내 몸에 맞는 옷보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사실 아직 ‘그럴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그런 날도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팟캐스트는 이제 종영까지 두달여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또 내 몸은, 내가 몸에 대해 갖는 생각은 어떻게 변할까.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만난 여성들이 어떻게 서로를 돕게 될까. 우선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해줄 다음 출연자를 기다린다. 

 

 



유지영
오마이뉴스 사회부 취재기자. CBS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공동 기획했다.  

 


 

다음주에는 과학사를 연구하고 있는 하미나 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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